진정 서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노신사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 부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샤모니레스토랑'이라는 통나무집에서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조심스레 날라 온 그의 편지를 받고 한순간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 약속 장소로 나갔었지요.
때마침 창밖엔 하얀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고 레스토랑 내부엔 페치카에서 장작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마른 몸매였지만 두 눈동자는 서슬이 퍼렇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소름이 짜르르 돋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푸근한 연륜이 묻어 있더군요. 그 추운 겨울임에도 반듯한 정장 차림에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있는 모습은 멋을 아는 사람의 향기가 느껴졌고 또박또박 분명한 말투와 언어사용, 적절한 몸짓은 그가 살아온 인생의 자존심과 소신을 느끼기에 충분했었죠.
"서산이 고향이면서도 이렇게 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죠. 한편으론 고향이 아니면서 서산을 위해서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에 고마워서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그가 한 첫 마디였습니다.
"글이 맛있다고나할까요. 평범한듯하면서도 어쩜 그렇게 맛깔스럽고 자연스럽게 문맥을 이어 나갈까. 누구나가 읽어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부드러움에 매료 되었다고나할까요." 그가 두 번째로 저에게 한 말이어요.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1, 2대 시의원을 역임하시다가 지난 3대 때 시의원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 반추로 보낸 4년의 세월이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 수가 없었다면서 창가로 슬며시 고개 돌리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있는 듯했어요.
'핀셋', '족집게', '대쪽', '꼬챙이' 그의 이름 석 자는 윤찬구! 평소 살아온 모습에서 붙여진 별명들이 한결같이 날카로운 이미지였는데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그 별명에 이의가 없을 정도로 60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열정과 패기, 정열이 살아 있었어요.
서산시 읍내동 444번지에서 사는 그의 하루아침은 베란다에 놓인 화분과 정원에 있는 나무들을 관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살아오는 동안 못다 이룬 뜻과 정열을 나무를 통해서 대리만족할 정도로 나무에 관한 한 각별한 관심에서 얻은 고급스러운 지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서산에 살면서 서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토록 깊고 그윽할 줄이야! 서산에서 15년 이상 살면서 많은 사람 속에서 부대끼고 엉켜 보았지만 이렇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대안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처음인 듯싶을 정도로 확실하고 꼿꼿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정녕 젊은 청년들의 목마름을 이해하고 이끌어 주고픈 마음이 간절한, 낭만과 멋을 즐길 줄 아는 문화인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지역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는, 지방자치제가 전달하는 진정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아는 그는 분명 서산이 필요로 하는 진정한 시민들의 대변인일 거라고 믿고 있지요.
비 오는 날 허름한 주막집에서 이웃들과 소주 한잔 나누며 허무한 인생을 스스로 달래며 위안으로 삼는 모습에서 그토록 외로웠을 지난날들의 그림자가 주마등처럼 깜박일라치면 껄껄껄 큰 웃음 지어 보이며 마냥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순수로 돌아가지요.
말로만 앞서가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지역사랑 정신을 가진 그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존경 그 자체의 감동으로 다가왔지만 남모르게 더욱 깊은 정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차가운 듯 얼음장 같은 가슴을 녹일 수 있는 문화적인 감성이 풍부하다는 거죠.
언제나 그의 가슴엔 고향과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서산의 미래를 걱정하고, 서산의 문화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며 서산의 향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서산의 인재들을 기다리며 오늘도 서산 발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목 놓아 호소하고 있는 모습. 그러한 그를 존경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어설픈 인연으로 만나 끈끈한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음에 소복한 감사와 서산 시민으로서 자부와 긍지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합니다.
작성일: 2002/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