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존재가 풍덩~~무감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예기치 못한 순간, 내 생을 두드리는 순간, 그래서 파문의 진동에 내맡긴 채 흔들리기로 마음을 여는 순간은 생의 비의를 엿보게 하는 기적이다. 기꺼이 우연의 파동에 나를 내맡기게 하는 불가사의한 끌림. 생은 그 힘을 통해 변화하고 생성되어간다. 생에 의미가 있다면.. 이 우연의 기적을 만나는 데 있는 건 아닐까. 땅꼬의 생글거리는 뒤통수가 환하게 빛나던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무턱대고 데려온 어린 고양이는 어떻게 내 마음에서 존재의 빛으로 점화되었던가. 그 기적의순간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려 한다.
아기 고양이의 쓸쓸한 첫날밤이 지나고...
아기는 노력했다. 낯선 공간을 탐색하면서 돌아다니고, 장난감을 흔들면서 놀이에 초대하면 즐겁게 함께 했다. 깃털같은 몸으로 쏜살같이 장난감을 낚아채는 아기가 땅꼬는 마뜩치 않았다. 놀이를 중단하고 싸하게 노려보다 팩 떠나버렸다. 나란히 먹으라고 차려둔 밥상에 다가와 앉으면 "하악~~~" 짜증을 내고 떠나 버린다. 아기는 그런 땅꼬의 등을 서운한 눈빛으로 뒤쫓다 풀죽어 깨작깨작 사료를 씹었다. 츄르를 맛나게 먹다가도 땅꼬의 시선을 느끼면 입맛을 잃었다. 아기는 계속 땅꼬만 바라봤다. 몇일이 지난 후 아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데나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모래 화장실 상태가 심각해졌다. 아무데나 물똥을 지리고 다녔다. 이불도 소파도, 바닥 러그에도... 지친 몸으로 퇴근한 후 쉬지 못하고 따라 다니며 지린 물똥을 닦고 세탁기를 돌려대면서 나는 지쳐갔고 입양한 걸 후회했다. 아기는 땅꼬와 달랐다. 나는 아기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내 마음도 아기에게 흐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아기의 면면이 못마땅했다. 너무 긴 다리, 너무 긴 몸뚱이, 너무 긴 코, 너무 가늘어 하찮은 꼬리, 짝짝이 눈...그렇게 몇일이 지나갔다.
아기의 똥꼬가 빨갛게 헐어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부어오른 똥꼬를 계속 핥아대니 똥꼬상태는 더 악화되어 갔다. 주말이 오면 동물병원에 가야지... 기다리다... 깡 말라 기운 없이 늘어져 있는 아기의 상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위태롭다.
늦은 밤 야간진료병원을 찾았다. 간호사들이 이동장 안을 기웃거리다 말했다.
"아이, 귀여워!!!"
"귀여워요?"
"네. 아기 고양이네요."
"..."
가책을 느꼈다.
약을 타와 몇일을 먹였지만 역시 차도가 없었다. 내 맘도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주말이 왔다. 땅꼬를 데려갔던 동네 병원에 아기를 데려갔다.
"장이 균에 감염됐어요. 약을 지어드리겠지만...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셔야 할 거 같아요."
앳된 얼굴의 젊은 의사선생님의 눈빛이 저 멀리 쑥~~물러서고 나와 아기만 우두커니 남겨졌다.
"..."
무거운 맘으로 돌아와 간절한 맘으로 약을 먹였다.
아기는 구석을 찾아다니며 힘 없이 엎드린다. 쉬다가도 시도때도 없이 닥치는 변의에 우왕좌왕... 물똥을 지리고 지친다. 열어둔 옷장, 겨울 바지를 쌓아둔 맨 아래 칸을 찾아 들어가 바지를 깔고 엎드린다.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나와 땅꼬를 문득 올려다보면서 "폭~~~ "한숨을 내쉰다.
그 순간... 여린 한숨이 내 심장을 쓱--가르고 지나갔다.
자신에게 닥칠 운명의 정체도 모른 채 무방비로 겪어내고 있는 여린 생명이 여기 있다. 깡 말라 더 퀭해진 눈은 무구하게 웃고 있는 듯하다. 그 눈 앞에 서 있는 나와 땅꼬 그리고 이 낯선 집, 낯선 세상은 아기에게 쌀쌀맞고 냉혹한 절벽일지 모른다. 그 절벽을 향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투명한 존재가 여기 있다. 닥쳐올 추위 앞에서도 세계에 대한 한 없는 호의로 생글거리던 어린 땅꼬의 뒤통수처럼... 지척에 온 죽음 앞에서 비명을 지를 힘도 없고, 지를 줄도 모른 채 그저 폭~~~ 내 쉬는 여린 한숨.
그 숨을 타고 뱉어진 가볍디 가벼운 생명의 무게와 따순 온기가 끝없이 팽창하기 시작한다. 옷방을 채우고 거실을 채우고 온 집안을 채우고 내리 누르며 터져버릴 것 같다.
...
아기의 숨 앞에 나란히 앉아있던 땅꼬에게 아기를 안아 내밀었다. 그러면서 늘 그렇듯이 몸짓으로, 표정으로 내 생에서 꼽을만한 혼신을 다한 연기를 시작했다. 땅꼬는 몸짓과 감정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아기가 아야아야 해. 아기는 쭙쭙, 꾹꾹하고 싶어. 땅꼬가 안아서 할짝할짝해줘."
나를 쳐다보는 땅꼬의 눈빛이 깊어지며 생각에 잠기고 있다. 아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머리를 핥기 시작했다. 됐다 싶어 아기를 내려놓자. 아기는 필사적으로 땅꼬의 품을 파고 들었다.
그 순간부터 땅꼬는 아기에게 빈 젖을 물렸다.
"그르렁 그르렁... 쭙쭙..."
맹렬하게 품을 파고 드는 아기를 꼭 안고 살뜰히 그루밍을 한다. 한달 동안, 하루의 반을 그렇게 보냈다. 약 덕분이었는지 땅꼬의 빈 젖 때문이었는지... 아기는 회복되었다.
땅꼬의 빈 젖은 비어 있었을까?
...
"폭~~~"
아기가 내쉰 한숨은 내게도, 땅꼬에게도 존재의 무게였고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