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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26) 2025. 1. 8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
열왕기상 11:9-25
<마음이 돌아선 솔로몬>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초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던 마음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변질되었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혼인 동맹’(이방 민족과의 정략결혼) 때문입니다.
3절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무려 1000명의 처첩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신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결국, 그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했습니다. 어디에서 돌아섰다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에게서입니다.
마음이 돌아선 결과, 마침내 솔로몬은 말년에 우상 숭배자가 되고 맙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참을 만큼 참으신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진노하십니다.
9~10절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미 두 번에 걸쳐 경고를 했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날 밤이었습니다(왕상 3장).
하나님은 ‘듣는 마음’을 구하는 솔로몬을 극구 칭찬하시면서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3:14)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왕궁 건축’이 막 끝났을 때였습니다.
왕상9:5-7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첫 번째에 비해 두 번째의 묵시는 좀 더 경고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특히 우상 숭배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백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솔로몬은 하나님의 경고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징계>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11절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앞서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직접 현현(3:5; 9:2)과 달리, 본 절의 말씀은 어느 선지자(아마도 '아히야', 29절)를 통한 간접 전달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네 신하에게 주리라”에서 신하는 '여로보암'을 의미합니다. 그는 솔로몬의 노역 감독관이었습니다(28절). 그런데 솔로몬 사후, 이 예언대로 여로보암은 남북으로 분열된 왕국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B.C. 930-910).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에 몇 가지 여지를 남겨 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2~13절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들 르호보암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아빠 찬스’입니다. 아버지의 다윗과의 약속, 곧 다윗에게 집(왕조)을 세워주시겠다는 약속 때문입니다(삼하 7:15).
과거 사울 왕에게 내려진 심판을 생각해 보십시오(삼상15: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왕의 이웃’은 다윗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예 왕조를 바꾸셔서, 다윗 왕조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처럼 엄중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에게는 이토록 엄중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윗과 맺으신 약속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은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위하여'(레미안)는 '말미암아' 혹은 '인하여'로 번역 가능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소돔에 열 명의 의인이 있다면 그들로 '인하여' 멸망을 연기하시겠다는 말씀 속에서도 사용된 말이다(창 18:26-33).
또, 아들 때에 가서라도 ‘한 지파’는 남겨 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유다 지파'를 말합니다(12:20).
여기에는 더 큰 원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 가문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탄생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지파’는 남겨 두시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13), 남겨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조사를 책망하신 하나님은 다윗에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명하십니다(삼하 24:18-25).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은 50세겔’을 주고 타작마당과 소를 삽니다. 즉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집(성전) 터를 준비해오신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어딘가 하면, 바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 산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솔로몬의 대적들>
솔로몬을 괴롭히는 대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4~22절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15 전에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 군대 지휘관 요압이 가서 죽임을 당한 자들을 장사하고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16 요압은 에돔의 남자를 다 없애기까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여섯 달 동안 그 곳에 머물렀더라/ 17 그 때에 하닷은 작은 아이라 그의 아버지 신하 중 에돔사람 몇몇과 함께 도망하여 애굽으로 가려 하여/ 18 미디안을 떠나 바란에 이르고 거기서 사람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매 바로가 그에게 집과 먹을 양식을 주며 또 토지를 주었더라/ 19 하닷이 바로의 눈 앞에 크게 은총을 얻었으므로 바로가 자기의 처제 곧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를 그의 아내로 삼으매/ 20 다브네스의 아우가 그로 말미암아 아들 그누밧을 낳았더니 다브네스가 그 아이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그누밧이 바로의 궁에서 바로의 아들 가운데 있었더라/ 21 하닷이 애굽에 있어서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것과 군대 지휘관 요압이 죽은 것을 듣고 바로에게 아뢰되 나를 보내어 내 고국으로 가게 하옵소서/ 22 바로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있어 무슨 부족함이 있기에 네 고국으로 가기를 구하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러나 아무쪼록 나를 보내옵소서 하였더라.”
에돔 사람 ‘하닷’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에돔’은 이스라엘 동남쪽에 있는 사각형 모양의 국가입니다. 에돔의 선조는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형인 ‘에서’입니다(창 36:1). 이는 두 국가가 민족적 혈통 상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에도 열왕기 시대에 에돔은 내내 남왕국 유다의 적(敵)이었습니다.
다윗 시대에 요압과 아비새 휘하의 다윗 군대가 어떤 이유로 에돔 왕족과 군대를 진멸시키기 위한 학살 작전을 감행했습니다(삼하 8:13~14, 대상 18:12~13). 그때 요압이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에돔 남자를 모두 학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소년이었던 ‘하닷’은 애굽으로 망명을 갑니다. 바로의 눈에 들어 그의 보호를 받고 성장한 후, 바로의 처제와 결혼하게 됩니다. 바로의 집안 식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바로는 하닷을 극구 만류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에돔은 솔로몬이 혼인을 통해서 평화조약을 맺은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왕상11:1). 솔로몬의 계획대로라면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에는 분쟁이 없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뒷부분에 보면 하닷이 ‘솔로몬의 일평생에 환난을 끼쳤다’(25)라고 기록합니다.
그 다음에 ‘르손’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23~25절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24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자기에게 모으고 그 무리의 괴수가 되어 다메섹으로 가서 살다가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25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르손은 기존에 있었던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라 새롭게 역사에 등장하는 국가를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시리아 지역에 있는 ‘소바’ 왕 하닷에셀을 주인으로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4:47). 그러다가 다윗의 군사들에 의해서 소바가 점령될 때, 패잔병들을 모아서 그들의 지도자가 됩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서 스스로 왕이 됩니다. 하닷이 그랬던 것처럼, 르손도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신앙적인 교훈>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신앙적인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은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9~10절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미 두 번에 걸쳐 경고를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솔로몬은 하나님의 경고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회개할 충분한 시간을 주십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팔 계획을 세운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13:26~3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회개할 충분한 시간을 주셨습니다.
벧후3: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회개할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도록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2.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시는 미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당장 죽이지 않고 대적들을 통해 괴로움을 받는 정도로 멈추신 것은 솔로몬의 죄가 이전의 사람들의 죄보다 가볍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솔로몬이 범죄하였음에도 유다 지파와 예루살렘을 지켜주신 이유는 오직 다윗과 맺으신 약속 때문입니다(신학적 표현 –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
<계약 신앙 - ‘나는 너희 하나님, 너희는 나의 백성’> 기독교 신앙은 ‘계약 신앙’ - 대표적인 계약이 ‘시내산 계약’.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중재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고 계약 조문인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시내산 계약’의 특징은, 첫째, 조건적이며 쌍무적인 계약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구원하여 주신 무한한 은혜가 베풀어졌기 때문에 그 은혜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여야 할 과제가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신 27:910). 2) 인격적 배타적인 계약 관계라는 것입니다. 시내산 계약은 다른 신을 두지 말고 다른 신의 형상을 만들거나 섬기거나 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여야 합니다(신 6:45). 하나님은 그의 계약의 파트너에게 전인적이고 절대적이며 배타적인 헌신을 촉구하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표현되었습니다(출 34:14). 3) 무효화되거나 변경되지 않는 계약입니다. 하나님은 식언(食言)치 아니하면 변개(變改)함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이 계약을 끝까지 영원히 지키십니다. 지금도 사람들 사이의 계약은 일방이 위반하면 위약금을 물리게 하고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계약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수시로 어겨 징계를 받지만 그러나 회개하고 돌아오면 여전히 그 계약은 영원히 유효한 것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계약의 하나님께서 그 계약을 무효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약은 시내산의 옛 계약에서 신약은 최후 만찬의 새 계약에서 유래한 말이기도 하다. 신약시대에는 새 계약의 징표인 공동체적 성찬과 개인적인 세례를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역사적 쌍무적 특수 관계를 맺어 온 것입니다. |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을 ‘미쁘신 하나님’으로 정의합니다.
딤후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살후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미쁨'..... 순수한 한글입니다. 믿음직하게(faithful) 여기는 마음입니다. 믿고 맡길만한 가치가 있는 마음입니다.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안전을 느끼게 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온전히 발견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상황과 환경과 서로의 반응에 따라 언제든지 등 돌리고 배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미쁨이 없는 우리를 향해 일향, 항상 미쁘십니다. 미쁜 마음으로 우리 안에 머물러계시며, 우리가 그렇게 무시하고, 구박하는데도, 우리 안에서 견디시며 사십니다.
히 10:23~25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나님과 우리 주님의 신실하심과 그의 약속들을 믿고 항상 소망 중에 살아갑시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주님의 미쁘신 약속들을 굳게 붙들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읍시다. 그리고 서로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합시다.
3. 솔로몬의 지혜가 아무리 놀라워도 하나님의 권능을 이기지 못합니다(진정한 역사의 주관자).
하닷이나 르손을 솔로몬의 대적으로 세우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14) - 주어가 ‘여호와께서’입니다.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23) - 주어가 ‘하나님이’입니다.
이렇듯 하닷과 르손이 솔로몬을 대적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입니다.
얼핏 인간들끼리의 사건처럼 보이는 역사의 모든 대소사의 배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솔로몬이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신 바가 있습니다(삼하7:14). 그 예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징계가 일어난 것입니다.
진정한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우리 주님이 오시는 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항상 두 길이 있습니다. ‘다윗의 길’과 ‘솔로몬의 길’입니다. 둘 다 연약한 인간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았던 사람이지만, 솔로몬은 약속을 끝내 저버린 사람입니다.
솔로몬의 마지막 모습을 경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길로 가야 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실하신(미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관자(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칭찬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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