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경북 의성을 시작으로 산불이 났다.
산불이 금방 진화가 될 줄 알았는데 2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의성 뿐만 아니라 경북 지역으로 확산된 초대형 산불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모니터로 이 뉴스를 접했다. 직접 산불을 본 적도 없었고, 산불 피해를 입은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인지 ‘큰일났구나’라고 인지만 했을 뿐 심각성을 느끼
지 못했다. 바로 직전에 LA에서 불이 났다는 뉴스처럼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그런 나에게 풀라님이 많은 사람들이 의성 사람들의 일상 복귀를 돕기 위해 수
시로 그곳을 찾아가고 있다며 그들의 틈에 끼어서 의성을 경험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인류애가 부족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4월부터 가족세우기에 있는 사람들이 의성에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같이 내려가기도 하지만 가족들끼리 내려가서 도와주고 오기도 하고, 혼자 내려갔다오기도 하고, 물품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함께 공부한 박티, 디와니 때문일까? 아니면 풀라님의 말 때문일까?
5월 초 팀 토론을 통해서 박티와 디와니가 의성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 산불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밭과, 집들이 모두 사라졌고, 마을 사람들 역시 모든 것을 잃었다고. 그때서야 나의 가까운 사람에게 일
어난 일임을 실감했다. 그럼에도 의성까지 가는 일은 나에게 어려웠다. ‘내가 가서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가 6월에 다녀왔다.
의성에는 아침에 비가 많이 내렸는데 내가 도착한 오후 12시쯤에는 비가 그치고 해가 비치고 있었다.
농촌을 직접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서 의성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길게 이어진 밭, 청명한 하늘과 구름, 파란색 지붕. 그리고 저멀리 보이는 까맣게 탄 산봉
우리. 이상했다. 평온하게 보이는 마을, 아름다워보이는 자연 속에 까맣게 타서 까만 산봉우리가 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까만 산 속에 초록색 입사귀들이 부분, 부분
보인다. 죽은 나무들의 주황색도 보인다. 산 하나에 3-4가지 색깔이라니. 이게 의성 사람들의 현실이었다.
아침에 사과밭에 가서 낫을 들고 잡초를 베었다.
처음 잡아보는 낫, 처음 베는 잡초.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한 사과나무를 둘러싼 잡초를 베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앉아서 베고, 또 베고.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해가 내리쬐니 덥고. 처음엔 승혜쌤과 각각 한 줄을 맡아서 했는데 나중에 문희씨가 일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한 명은 앞쪽을, 다른 한 명은 마주보고 뒤쪽을 베면 된다
고. 혼자서 할 땐 힘들게 느껴졌는데 함께하니 덜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말고도 3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는데 5명이 함께 잡초를 베고 있었다.
이렇게 같이 일한 적이 언제였더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면 서로 더 긴밀해질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토요일 낮에는 10여명의 가족세우기 트레이닝 멤버들이 박티의 집에 있었다.
나는 그들이 바디웤을 하는 동안 4개월 된 아이 세명과 7살 지안, 4살 리아를 돌보았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낯설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공동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라서 4개월 된 아이들 3명이 동시에 젖을 달라고 울어서 정신이 없었음에도 힘들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바디웤이 끝나고 사람들이 박티집에 모여서 옥수수를 먹고 수박을 먹는데 참 낯선 모습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생활한 적이 있었나? 나는 편하면서도 어색하게 공
동체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하루를 가꾸어가는 사람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려면 4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부터 4년이다. 박티와 한 할머니가 사과나무가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하는 모습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잡초를 제거하는 모습,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무니쉬를 보면서 든 단어는 ‘그럼에도 하루를 가꾸어가는 사람들’이다. 삶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언제 사과가 열릴지 잘 모르는 상황이며, 4년이란 긴 시간에 불안함을 품고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6월 30일인 오늘 제주도는 아침 8시에 30도였다. 의성 또한 30도를 넘을 것이다. 땡볕 아래서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했다. 흘려보내는 시간들, 무기력하게 죽인 시간들이 몇 시간이나 될까. 그들처럼 하루를 살아간다면 내 삶은 달라질텐데.
인류애는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다.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나에겐 어려웠다.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에 혼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았다. 먼저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가족세우기를 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배워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