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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25) 2026. 8. 26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다
왕하7:11~20
<나병 환자 네 사람>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자, 성안의 식량은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심지어 자신의 자식까지 잡아먹는 비극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이때, 성문 밖 어귀에 네 명의 나병 환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차피 굶어 죽을 운명인데, 차라리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4) 하며 아람 진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람 진영이 텅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람 군대의 귀에 ‘환청’이 들린 것입니다. 실제는 오지도 않은 외국 군대(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의 병거 소리와 말소리, 돌격 소리를 듣게 하신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람 군대는 겁을 먹고 자기 진영을 그대로 두고(‘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해 질 무렵’이었습니다.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이 언제 일어나 아람 진영으로 출발한 시점이 바로 ‘해 질 무렵’(5)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가 두려움에 도망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해 질 무렵’(7)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병 환자들이 아람 진영을 향해 움직이는 발소리를 하나님께서는 아람 군대의 귀에는 외국 군대의 병거 소리와 말 소리, 엄청난 군대의 함성 소리를 들리게 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역사, 즉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잘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은 구원의 소식을 그 시대 가장 연약한 자들을 통해 전하게 하셨습니다.
2) 그리고 그 멸시받는 천한 자들의 발소리, 엄청난 군대의 진격 소리로 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쓰시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은 아람 진영의 끝까지 가서, 아람 군대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장막 안으로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그들이 남기고 간 귀중품(은과 금)과 의복을 챙겨, 자신들만 아는 장소에 숨겨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사마리아 성에서 굶고 있는 형제들(가족과 동포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로부터 멸시를 받았지만,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일 자신들이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지 않은 채로 내일 아침 해가 뜬다면, 벌이 자신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왕궁으로 달려가서, 사마리아 성 문지기에게 자신들이 본 사실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왕의 불신앙>
나병 환자들의 보고를 들은 성문 문지기들은 곧장 이 사실을 왕궁에 알렸습니다.
11~12절 “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12 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하니.”
보고를 받은 여호람 왕은 밤중에 일어나서 신하들을 소집하였습니다.
왕은 나병 환자들의 보고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아람 군대의 계략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왕의 생각에는, 그들이 분명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유인하고자 함정을 판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 진영을 비우고 들에 매복해 있다가, 우리가 성 밖으로 나오면 우리를 생포하고, 이 성안으로 들어오려는 계략을 세운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한 신하의 제언>
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제안하였습니다.
13절 “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아직 성 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 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아직 성 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정탐꾼에서 주어서 적진을 정탐하게 하라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이어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그것들이 성 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무슨 뜻일까요? 표준새번역 성경 – 13절 [그러자 신하 가운데 하나가 의견을 내놓았다. “이 성 안에 아직 남아 있는 다섯 필의 말은, 이 성 안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모든 사람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굶어 죽고야 말 것이니, 이 말에 사람을 태워 보내어서, 정찰이나 한번 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들도 어차피 죽을 것이니 이 말에 사람을 태워 보내어서, 정찰이나 한번 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견입니다.
성안에, 군마(軍馬)가 단 다섯 필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미 싸울 능력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설혹 적진에 들어가 붙잡히더라도, 싸울 힘이 없어 점령당할 사마리아 성민과 같이 죽게 될 것이니,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당시, 사마리아 성읍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신하가 왕에게 이런 정도의 비참한 말을 할 정도라면, 이미 멸망 직전의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탐꾼을 파견과 보고>
왕은 신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정탐꾼을 보냅니다.
14~15절 “그들이 병거 둘과 그 말들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15 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니.”
왕은 말 두 필이 끄는 병거 둘을 정탐꾼에게 주어, 아람 군대의 뒤를 쫓아가 상황을 알아볼 것을 명령하였습니다(병거에 두 마리의 말이 쓰인 경우도 있고, 세 마리가 쓰인 경우도 있었음, 중요치 않음). 왕이 두 병거를 동시에 보낸 것은 하나가 적에 잡히더라도 나머지 하나가 급히 돌아와 보고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정탐꾼이 아람 군대의 뒤를 따라가 요단강에 이르니, 아람 군대가 급히 도망치느라 버리고 간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습니다. 네 명의 나병 환자가 보고한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정탐꾼은 급히 돌아와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처럼 된 현실>
본문에는 두 가지 예언의 성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경제의 회복 : 아람 군대가 퇴각했다는 ‘아름다운 소식’은 금방 성안의 모든 백성에게 퍼졌습니다.
16절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성안의 백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람 진영으로 달려가서 그들이 남겨둔 것들을 노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사마리아 성의 경제가 하룻밤 사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내엘 이맘때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될 것이라”는 엘리사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열왕기서 저자는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2) 장관의 죽음 : 엘리사의 예언을 듣고, 한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엘리사의 예언을 조롱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2절)고 심판의 예언을 했습니다. 이 예언도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17~20절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18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19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20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왕은 자신이 신뢰하던 그 장관에게 성문의 출입을 통제하는 중책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굶주린 백성을 통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는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예언대로 눈으로 보았으나 먹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역시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배우는 교훈>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지체된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11절 “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나병 환자들은 자신들이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당시의 규례(레 13:46, 민 5:3) 때문에, 성안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아람 군대가 도망했다는 기쁜 소식을 문지기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성 문지기들은 나병 환자들의 보고를 듣고, 처음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믿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은 당시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확신이 없는 보고를 가지고 왕을 깨우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왕이 일어나는 아침까지 기다리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 문지기들은 나병 환자의 보고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왕궁에 보고하였습니다.
12절a “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지체하지 않았기에 속히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구원의 복음을 먼저 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돼야 합니다.
유명한 법언 중에,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변형하면, ‘지체된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구원의 소식은(복음)은 필요한 순간에 전달되어야 가치가 있으며, 계속해서 미루어지거나 때를 놓치면 더 이상 받는 이에게 진정한 기쁨이나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병원에 가면, 치명적인 질병으로(희귀 질환) 고통받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신약 개발의 소식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자신이 죽은 다음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복음을 전파하라”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복음 전파의 시급성).
둘째, ‘의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여호람 왕은 보고를 받았음에도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12절 “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하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예언이 있은 직후이기 때문입니다.
18절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엘리사의 예언이 왕에게 전달된 직후, 일어난 사건의 보고입니다. 그렇다면 여호람 왕은 이 보고가 엘리사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엘리사의 예언을 ‘의심’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접근하여 시험하는 첫 번째 말은 ‘의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창 3장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취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3:1~6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또, 베드로는 왜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려야 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14:22~3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또, 도마는 예수님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분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까? 그 역시 ‘의심’ 때문입니다.
요20:24~29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특별히 오늘 도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적용할 부분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나 존재에 대해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1) 도마는 자신의 의심과 조건(손의 못 자국을 보고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직한 질문과 고민을 외면하지 않으시므로,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기도에 담아 아뢰는 것이 좋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는 도마를 책망하거나 내쫓지 않으시고 직접 찾아오셔서 그의 눈높이에 맞춰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3) 도마가 혼자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집 안에 머물러 있었을 때 찾아오셔서 그에게 만져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혼자 고민을 안고 고립되기보다는 믿음의 동역자나 공동체 안에서 있음으로 해서 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끝내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의심을 신앙의 실패로 여기기보다,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17~20).
왕의 장관은 엘리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엘리사의 예언을 조롱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그 장관에게 “그 일을 보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씀대로, 그 장관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것은 모두 이루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노아에게 주신 심판의 예언도 이루어졌습니다(창6:13).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언약을 주셨는데, 결국, 백 세에 성취해 주셨습니다.
그 자손이 타국의 노예로 400년간 살다가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도(창15:;13) 출애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에게 하신 가문의 멸망 예언도 그 아들들이 전쟁에서 죽음으로(홉니와 비느하스), 또 그 자손 중에서 마지막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던 아비아달이 솔로몬 때 축출됨으로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왕상2:27).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 동정녀 탄생의 예언(사7:14) 역시, 2000년 전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눅1:31~35).
이렇게 하나님의 예언은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예언들을 성취하실 것입니다(겔12:28).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예언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통한 구원의 완성을 간절히 기대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소망을 가지고, 반드시 이루실 그 날까지 믿음을 잃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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