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재두 대종회회장님 정년퇴임사(속편)
그간 안녕하신지요?
저의 정년퇴임 인사를 읽고 답신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회신이 늦어 죄송합니다.
잊을 만 할 때 이렇게 답장 받는 것도 괜찮지요?
전에는 해야 하는 일을 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만 하다 보니
오히려 시간은 더 쪼들리는 거 같네요.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군요.
출근 의무가 있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정도였답니다.
과로사 하지 않으려고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야 답신 보내게 되었으니, 너그러이 양해하여 주세요.
느린 덕분에 늦게 들어와서 정년까지 채우게 되었을 거니까요.
저의 긴 글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읽어준 것만도 고마운데,
많은 분들이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시니,
무어라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남에게 배려하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자원은 마음과 물질과 시간이겠지요.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과 시간을 할애하게 될 테니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질과 시간일 겁니다.
그 중에서 물질보다 시간을 할애하기가 더 어려운 때도 있지요.
저도 현직 시절에는 경조사 연락이 오면 10번 중 한두번만 직접 참석하고
나머지는 경조금만 보냈으니까요.
그 시절에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하였을 때,
저의 아내는 제게 말로만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지 말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진정으로 아끼는 것을 주어야 합니다."
라고 하더군요.
저의 메일에 회신하신 것은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주신 것이기에
더욱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아첨이라고 하는데,
두 번이나 읽었다는 분도 계시니,
저의 글이 헛수고가 아니었구나 싶네요.
자기가 몸 담았던 조직을 떠날 때, 어떤 이는 후회하고,
어떤 이는 원망하고, 또 어떤 이는 감사하지요.
저는 수십년간 월급 주고 자기발전과 복리후생의 혜택을 준 조직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
선배 공무원들이 쓴 건조한 퇴임 인사를 읽으면서
저 자신은 다르게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1년의 공로연수 기간 동안에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 두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읽는 분의 시간을 많이 빼앗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분량을 줄인다는 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마음 먹고 글을 쓰고 있으니까
지난 번보다도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전편보다 더 나은 속편이 없다고 하는데도 말이죠.
현직 시절 저는 특정인이 인사를 마음대로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직원들을 평정할 때를 생각해 보면 결코
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 본인의 행적과 여러 측면이 씨줄과 날줄처럼 위치하여
좌표를 형성하였기에, 필연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이지요.
저 자신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은 냉혹하고 합리적이어서,
우리 자신은 스스로를 주관적으로 보지만
세상은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지요.
자기평가와 타인평가 사이에 있는
간격(gap)의 크기만큼이 불행의 크기가 되겠지요.
그래서 특정인에게 매달리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가장 견고한 감옥은 스스로 만든 감옥이라고 하지요.
다들 아는 내용들이라도 ‘실천’은 어려운 것이지요.
제가 쓴 정년퇴임 인사의 글에서 두어 가지 부연하고 싶은 말이 있네요.
제가 퇴임인사에서, 식사하면서 업무 지시하는 상관이
참 싫었다고 했었는데,
밥 먹으랴 업무지시 받으랴 하면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낑낑거리던 기억은 지금도 악몽처럼 떠오릅니다.
이를 거울 삼아 저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함께 밥 먹다가 무슨 생각이 나면 메모를 했다가
식사 후 사무실에 와서 얘기하고 하였답니다.
마지막 부분에 "미래"라는 단어가 나오지요.
그 단어를 제가 사용했던 한 때를 떠올려 봅니다.
1999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주OECD대표부 3년 근무를 마치고
귀국 환송모임에서 저는 답사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각 부처에서 쟁쟁한 인재들이 주재관으로 나와 있었는데,
다들 일만 열심히 하고, 근처에 있는 "트로카데로 묘지"에는
아무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바로, 에펠탑 사진을 찍는 트로카데로 광장이 있는 곳입니다.
저는 점심 식사 후 300m 남짓 떨어진 그곳에 가끔 산책을 갔는데,
그 곳에는 교향시 "바다"를 작곡한 드뷔시의 묘소도 있답니다.
생전의 드뷔시를 만날 수 없었겠지만,
그곳에 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주재관 동료들에게, 일만 하시지 말고
그 곳에도 가보라고 하면서, 불쑥
"그 곳에 가면 우리의 미래가 보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와아~ 하고 폭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 사연이 있는 단어입니다.
지나고 보니 저는 남이 쓴 책 몇권 암기해서, 일생에
딱 한번 합격한 시험으로 평생을 울궈먹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영혼이 자유로운 시간이 되어,
익명으로 사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있네요.
대학원 다니던 시절, 주위의 학우들은 대부분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친구에게 가끔 소설책도 보느냐고 물어보았지요.
그랬더니 그 친구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우리나라 행정을 이끌 사람들이 저렇게
삭막하게 살아서 어떻게 하나 하는 공연한 걱정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자유와 행복을 느낍니다.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늘 노력하였으면 싶네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더 너그러워질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까. 더 편협하여짐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 눈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너그러이 보고 넘기라는 조물주의 뜻이 아닐까 싶네요.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고 하지요.
저는 지금 16층 아파트 건물의 8층에 사는데,
겨울철이 되면 앞동 아파트 꼭대기에 해가 걸려서 햇빛이 반쯤 가려집니다.
9층만 되어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는데,
문득 생각하니 7층보다는 한결 낫더군요.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퇴직자의 경우, 과장에서 퇴직하면 실국장이 못되어 불만이고,
실국장은 장차관 못된 게 불만이지요.
장차관은 더 오래 재직 못한 것이 불만일 겁니다.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는 부자’가 되면 불만은 없겠지요.
공직 선배 중의 한 분은, 지나고 보니 열심히 일한 것은 남지 않고
인간관계만 남는다고 하시더군요.
“귀족은 사냥을 하나의 품위 있고 멋진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냥개 담당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한 파스칼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사람들이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사람의 괴로움은 모르더라"
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혜안을 떠올렸지요.
이제 저는,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가장 잊어버려야 할 일을 가장 잘 기억하고,
가장 기억하여야 할 일을 가장 잘 잊어버린다“는 경구도
깊이 간직하여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또한, 장르의 문제를 수준의 문제로 착각하지 않고
취향의 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혼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껄.껄.껄"한다고 하네요.
베풀 껄...
용서할 껄...
재미있게 살 껄...
껄껄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저는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했던,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제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살고 싶군요.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는 법이지요.
한편으로는 정년이 있어 다행이다 싶군요.
저의 손위 동서는 의사라서 70세 가까운 연세에도 병원에 출근하시는데,
공무원도 정년이 없었으면 마나님 등쌀에 은퇴는 할 수 없었겠지요?
재작년(2008년) 3월, 당시 제1차관께서는 면담자리에서 저에게
산하기관의 자리를 제의하면서 명예퇴직을 권유하셨습니다.
저는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생각하신 것이므로 이를 응락하였지요.
제가 총무처 인사국 인사기획과 사무관이던 시절, 총무과장께서
인기부서인 인사기획과에는 고참 사무관이 밀집해 있어
평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저보고 비인기부서인
복무담당관실로 옮길 것을 권유하신 적이 있지요.
인사기획과 사무관들은 그대로 있으면 평정에 불리하다고 해도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때도 전체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므로 받아들였고,
결국 서기관 승진을 복무담당관실에서 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재작년 그때 제1차관께서는 그 다음 날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행정안전부 고위공무원단 정원에 한 자리 여유가 있다고 저보고는
명퇴 또는 정년퇴직 중에서 선택이 가능하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전부터 여망하던 대로 정년퇴직을 하겠다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정년 때까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지만
후배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하하…)
차관께서는 명퇴해서 산하기관에 가면 월급 더 받는다고 하시기에
저는 그것도 그리 달갑지 않다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근무를 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건 더욱 싫다고 했지요.
소리 내어 웃으시더군요.
주위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무도 잘 했다는 사람이 없네요.
미국 원주민 속담에서는
“당신의 혀가 당신을 귀머거리로 만든다.”라고 하였다는데,
저의 글이 예상대로 무척 장황하게 되고 말았네요.
옛날 얘기까지 하다 보니 너무 길어졌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예 재 두 드림
첫댓글 정년퇴임사를 읽고 감명받은 분들에게 답변형식으로 작성하신 속편에도 여전히 인용하신 좋은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들이 주제가 되어 계속 시리즈로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친회 회보 특별호라도 만들어서 배포하여 계속 종친회 차원에서라도 어떻게 추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랍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