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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림천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내 남편이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화성시에 있는 K콜택시 기사들이 내 남편을 목매달아 죽게 했습니다.
그들은 남편의 직장 동료입니다.
억울합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힘없이 죽은 남편과 저 그리고 제 자식들의 한을 풀어 주십시요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아닙니다.
‘힘들다’,‘힘들다’하길래, ‘사람이 싫다고,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하길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회사를 관둘까봐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습니다.
눈에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합니다. 이렇게 목에 줄을 걸고 죽을 정도로 힘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며’ 때려 치라고 했을 것입니다.
남편이 죽으면서 짤막한 유서를 남겼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따돌린 대략적인 내용만 있더군요 물론 2명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회사 동료들을 미워 할수도,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죽는 날(3월6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잘 갔다 와”하면서
오후 2시에 갈곳이 있다며 깨워달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몹쓸 사람 이런일도 못 견디고 죽어’ 하며 남편만 더 원망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애들도 아직 안치웠는데 나혼자 어쩌라고, 어쩌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문득 남편이 죽기 전날 저녁에 가족사진을 벽에서 때내어 만져본 기억이 나서 생각 없이 똑같이 사진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뒷판을 때냈더니 처음의 유서를 보충해 주는 구체적인 내용과 상황들이 쭉 적힌 유서가 있었습니다.
이 종이 몇 장 안에 그동안 남편이 겪은 수모가 있고, 택시 기사들의 고통이 있고, 변칙적인 회사 운영방법도 있습니다.
이사람 간 날 회사동료들이 왔습니다.
어떻게 이사람 사진을 쳐다보며 뻔뻔하게 절을 하고, 애도 하고, 조문을 했는지.........
이사람 사진 앞에 두고 어떻게 술을 먹고, 웃으면서 노름을 하고 했던 얼굴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 사람 영정 옆에 회사 노동조합 깃발을 걸게 해 두었습니다. 이사람 영정 사진이 웃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죽일놈들.......
할줄 아는 것이 운전밖에 없어 택시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원에서 했으나 개인택시를 받으려면 경쟁도 치열하고 오래 기다려야 된다 하길래 누군가 이 사람에게 집이 화성이니 화성택시로 올 것을 권유해서 매송 토박이 이고 집에서도 가깝고 하고 수원보다는 개인택시 받기가 수월하다고 하길래 남편이 직장을 화성으로 옮긴지 어느덧 만 4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입사해서는 좋아했습니다. 고향에서 일하니까 맘이 편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었습니다.
이 사람의 고통은 화성으로 온 다음부터 였습니다. 그나마 수원 택시회사에서 근무 할때는
입금을 시키고 돈 100만원 이상의 벌이를 해서 생활비로 갖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화성에 있는 k공사 택시회사로 옮기고서 수입은 점차 줄었습니다. 남편은 집 앞에 사무실이 있는 매송사무실에서 근무를 했는데 기사들끼리 잦은 다툼과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손님들이 유선으로 콜을 부르면 순번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한번이라도 더 나가려고
순번을 무시한 채 본인들 이익들만 챙기느라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 운영이 제대로 되지못하고 기사들끼리 갈등이 심해져서 회사에 팀장의 자질을 이의제기 하고, 노동조합과 함께 팀장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회사는 새로운 팀장을 선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팀장은 또한 나아진 것은 없었습니다.
차량의 정․배차나 콜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자기 말을 잘 듣는 기사는 고정배차 자리를 쉽게쉽게 주고 해서 오히려 기사들의 갈등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 후로 남편의 고통은 더욱 심했습니다. 내 남편은 뭐가 그리 미웠는지 팀장이었던
‘이○○’와 전 사무장 ‘김○○’은 내 남편을 매송 지역이 아닌 봉담과 동탄등 타 지역으로 일부러 영업을 보내고 그곳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 남편을 스스로 그만 두게 할 작정으로 본인의 학연과 지연 그리고 회사에서의 위치 등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따돌림을 시킨것 입니다. 통합이 된 이후에는 아예 입금도 제대로 하지 못해 제가 공장에서 번 돈을 택시회사로 입금을 시키는 일도 있었고, 저한테 미안해 돈을 달래지 못해 입금을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돈 못벌어 온다고 닥달하면 운전하는데 일생길까 싶어서 ‘괜찮다. 개인택시 받을때 까지만 고생하면 되지 않겠냐며 위로하고 격려 하며 안전하게만 일하라고 했습니다.
개인 택시는 이 사람 인생의 마지막 목표이자 우리가 열심히 산 결과물 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영업이 왜 이렇게 안돼”하고 물으면 “나한텐 콜을 안줘”이러며 흘러가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무실이 통합 된 이후 작년 한해 점점 한숨도 많아지고, 농담과 우스게 소리도 잘하는 사람인데 농담도 안하고, 담배도 부쩍 많이 피고, 일 끝나고 집에오면 한숨 쉬면서 혼자 한잔씩 하고 잠들길래 많이 힘들긴 한가보다 했숩니다. 하지만 애써 아는 척 안하고 있었습니다. 개인택시 받을 날이 얼마 안남았는데, 여적 참아왔는데 혹시 관둔다고 할까봐여
그냥 단순히 손님이 없고 나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줄 알았지 회사 동료들이 그 나이있고 점잖은 사람을 따돌리거나 빈정 거리기나 할것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쉬는 날은 가끔 어디를 가길래 어디가냐고 물으면 교육 간다고 교육을 갔습니다.
열심히 갔습니다.
교육을 갔다오면 언제 부턴가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짜증도 부리고 말입니다.
그러더니 그 얼마 후 부터는 교육인데 안간다고 하더군요
왜 안가냐고 물으면 가면뭐해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하고 왜 왔냐며 비아냥 거린다고.....
그땐 이 사람이 따돌림을 받는지 윗사람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긴 제가 바보 인가봅니다. 예비기사로 입사해서 긴 시간동안 고정기사를 배정 받지 못했을 때 눈치 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항상 반듯하고, 남에게 실수할까 조심하고, 남한테 실은 소리 못하고, 자존심도 강해서 남에게 싫은 소리도 듣는 것도 싫어합니다. 사람을 좋아해서 술자리를 좋아는 하나 실수하고 남에게 폐 끼칠까 술도 적당히 먹습니다.
결혼 한지 27년이 넘었지만 술 마시고 집에 와서도 실수하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자기 관리와 자기 절제가 잘 되는 사람입니다.
목 맨 그날(2008.3.6) 새벽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길래 뭐하냐고 물었더니 회사일이라며 저한텐 피곤할테니 얼른 자라고 했습니다.
이하는 제 남편이 써놓고 간것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수원에서(E운수)에서 화성(K공사)로 옮긴 것을 후회한다.
회사 및 자체 교육은 강제성을 띄울 수 없으나 나름대로 대부분 참석을 하였는데 이를 이유(음성)로 타지역에 근무를(불법) 하게 했으며, 팀장(이○○)와 이상무(k공사)는 고교 선후배 관계로 아예 먼 동탄 지역이나 퇴사를 하게끔 하기위해 동료들과의 전화 통화와 대화를 두절 시켰고 고정기사가 될 기회가 왔음에도 고정을 안 시키고 예비기사로 타지역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들어 고통을 주려고 했다. (본인이 타지역 근무 시초였음)
【고정 기사될 기회】
1차(80)호 - 팀장한테 80호는 장애인 장치가 발에 걸려 급정거시 등골이 오싹하니 다른 사람이 탄다면 주고 없으면 내가 타겠다고 함
2차(79)호 - 팀장의 사고로 2006년 7월부터 6개월간 정지되어 본인이 고정 될 차례이나
조○○을 고정시켰음
3차(79)호 - 팀장이 정지 되었다 복귀당시 조○○을 예비기사로 다시 내리고
팀장이 고정기사 됨
* 노동조합에서는 팀장이 퇴사 사유이기 때문에 유길수(본인)를 고정 시켜야 되지 않느냐 말했음
4차(81)호 - 허○○ 기사가 사표내서 본인이 고정기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2007년 3월 29일 배차표도 고정으로 나와 4월 1일 출근하니 팀장이 새로된 배차표를 보여주며
조○○이 고정이라 해 귀가함
5차 (81)호 - 조○○의 사고와 40일 정지가 겹쳐 퇴사될 것이라 본인이 조합에 방문하여
사무장께 이번에는 본인이 고정기사 되는거냐고 물으니 우선권한은 팀장이라
다른 사람이 고정 될거라 하여 어째 입사순번이 우선이지 팀장 권한이
우선이냐 하니 막무가내 하여 조합장과 별도로 상의하니 알아봐 준다고 한 후 2007년 8월부터 81호 고정됨
【봉담 근무 시 상황】
- 타 지역 근무시부터 81호 고정기사 되기 얼마전 까지는 교육을 100% 참석하였음
- 전 사무장(김○○)을 중심으로하여 이○○(팀장), 최○○(이○○동창)외에 주위의 몇 명이
단결력이 좋았으며 이○○은 전 사무장에게 ‘단결’하며 거수경례를 할 정도였고, 모임때면 팀장은 항상 전 사무장 옆에 앉음
- 07년 4월 28일 새벽 4시 봉담 콜 사무실 맞은편 감자탕 집에서 동료들 식사 준비했다고 해 들어가니 전 사무장(김○○)이 본인을 보며 ‘어! 오늘은 안가고 오네’ 한후 조금이따 본인의 등 뒤로 두 번이나 왔다갔다하며 서성댐
- 봉담 기천리 저수지 옆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1시간 쯤 되었을 때 전 사무장이
“어! 오늘은 안가고 여태있네”하여 문열고 나오니 봉담 팀장이 쫓아와 조금 더 있다 가라고 함(외에)
【상황 및 일정】
06년 4월 - 팀장이 봉담 근무도 몇칠씩 해라고 해서 싫다고 함
4월 중순 - 사교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두고 보라고 팀장이 본인에게 말함
06년 5월 - 봉담에서만 한달 내 근무
6월 - 봉담10일 매송 2일 근무
7월 - 79호 조○○은 고정기사 됨 (매송은 헤쳐 모여 할 것이란 말 들음)
7월 - 매송근무(예비기사)
8월 - 봉담․ 매송 근무(매송 자원자도 모자라는데(팀장정지)왜 봉담으로 근무시키느냐고 이상무님께 이야기 함
9월 - 매송 근무 9-10월
11월 - 봉담․매송 근무 11월 07년 7월까지
07년 3월 - 29일 81호 본인이 고정기사로 배차표 확인
4월 - 4월1일 팀장이 새 배차표 보여주며 조○○이 고정이라 함
5월 - 따돌림 받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교육 불참 시작
* 전 사무장(김○○)본인 따돌린 관계도 사무장에서 제명 시킴
07년 5월 - 19일 81호 고정기사 문제로 사무장 만나고 위원장 만남
(위원장이 강의때 나도 나이가 먹었을 때는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고
본인에게 말함)
8월 - 81호 고정기사 됨(본인)
*8월 초순 이상무님이 작업하다 말고 왔다며 집앞 개천 도로변에서 교육좀 잘 나오게 해 못나간다고 상무님도 알다시피 여태껏 많은 수모를 겪었는데 상무님이 모른다면 말도 되지 안찮습니까? 이런 상황에 상무님 같으면 교육에 참석하시겠습니까? 하니 그러면 자체 교육은 말고 회사 교육이나 나오라고 하고 여럿이 한사람 바보 만드는 것 쉬운 일 이라고 함
* 8월 중순 봉담 팀장이 만나자고 하여 밤 8시경 콜 사무실 아래층에 가니 이상무,김○○,봉담팀장이 있는데 봉담팀장이 교육 좀 나오라고해 팀장도 알다시피 그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농락을 당하는데 봉담 팀장 같으면 교육을 받겠냐고 알아서 하라고 함
*콜 문제도 있으나 여기서 열거치는 않겠으며 그래서 봉담지역 수영리 콜도 안받고 바보되기 싫어 봉담가서 일을 안함
작년과 같은 선출기준이면 올해 개인 택시를 받고, 아니면 내년이면 될 수 있는데 바보된 사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기까지가 저희 남편이 써 놓고 간 글입니다. 제가 알기로 팀장이던 누구던 저희 남편보다 나이가 많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남편은 함께 힘들게 일하는 동료들에게 말한마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저희 남편과 얘기하는 동료들은 같이 따돌림을 당했을 테니까요
정말 억울합니다. 가진 것 없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빗없이 힘겹게 힘겹게 자식들과 행복하게 살아온 남편입니다. 오죽했으면 나이 50넘은 사람이 직장에서 얼마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했으면 마누라와 출가도 시키지 않은 자식들을 두고 죽었겠습니까?
너무도 억울해 같이 일했던 기사들과 만났습니다. 전부 똑같이 말하더군요, 자기들은 따돌린적이 없다고요. 자기들 회사는 교육을 받던 안받던 간에 뭐라고 하지도 않고 강요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금성 공사는 절대 사람들을 따돌리거나 그런 일 없다고 강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남편이 말도 없고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해서 따돌림 당할 일이 없다고 말입니다 누구 한명도 남편의 유서에 대해 동요해 주거나 입증을 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식하고 힘없어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는 제가 정말 죽고싶을 정도로 한심하고 답답합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동조합 위원장님을 만나자고 했더니 유서에 써 있는 회사관계자들을 전부 데리고 집에 왔더군요 한패가 되어 남편을 죽음의 궁지로 몰고 간 놈들과 말입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합니다. 자기들은 남편의 자살과 아무 책임도 없고 관계도 없다고 도와 줄 수도 없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위원장님은 경기도의원 이라고 합니다. 자기 회사 조합원의 죽음에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억울함을 글로써 남겨놓았는데도 나몰라라 하는 경기도의원님 저희 남편도 경기도민입니다. 도민들을 위해서 뭘 어떻게 해 주시는지 무슨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발 부탁 드립니다. 저 정말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힘이 없습니다.
저놈들과 대응할 힘이 없어 행복을 눈앞에 두고, 그토록 바라던 개인 택시 나올날을 목전에 두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으면.........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는 것처럼 글로나마 짧게 남기고 간 남편의 한을 꼭 풀어주고 싶습니다.
힘없는 저에게 살아서 못한 한을 풀어달라는 저희 남편을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는 K공사 택시회사를 혼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또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아 저와 같은 고통을 당하는 가족들이 발생하지 않킬 바라는 마음으로..............도와주십시오. 제발 도와 주십시오
K공사 ; 직원수250명
택시100대정도
운행지역은 : 조암.발안.와우리.매송.봉담.동탄.(화성시 지역)
출처 : 한국노총 열린마당 17157호(2008년6월7일자) 제목/내 남편이 목을 메고 죽었어요!글쓴이 유OO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