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인 조광진
완당은 평양에 와서 그곳의 유명한 서예가인 눌인 조광진을 만났다..조광진은 본디 평양 사람으로, 부벽루 연광정의 현판을 쓴 당대의 명필이다.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는 정보이고 본래 말더듬이였기 때문에 자호하여 눌인이라 했다.
출신이 한미한데다 집안이 가난하여 사방으로 떠돌아 생활을 하면서 글씨를 배웠는데, 처음에는 원교 이광사에게 배웠다고 하나, 그는 완당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독창적인 서풍을 갖게 된다.
당시 그의 글씨는 획이 마치 '쇠를 구부리고 철을 녹인 듯'하여 세간의 글씨와 같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바로 이러한 개성적인 맛이 눌인 글씨의 특징인데, 완당도 나중에는 창아하고 기발함이 압록강 동쪽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바라는 상찬까지 할 정도 였다.
특히 그는 큰 글씨를 잘 썼다. 그의 명작인 부벽루 현판 글씨를 보면 강렬한 개성도 개성이지만 글자 크기가 김장독만 하여 더욱 감동적이다.
이런 필재가 있는 조광진이 완당을 만나 그 기량을 더욱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모두을 위해 정말로 귀중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완당과 조광진은 이후에도 편지로 글시에 대해 의견을 나무며 긴밀하게 지냈는데, 완당선생집에는 조광진에게 보낸 편지가 8통 실려 있고 필자가 따로 본 것만도 10통 가까이 된다. 그 중 두 사람의 정과 의가 뜸뿍 담겨 있는 편지 한 통을 소개한다.
10월이 하마 지나고 이 해도 역시 그럭저럭 다 되어가니 금석의 언약은 이제 이미 변해버렸소...
바로 곧 쪽지를 본 바 임서한 글자가 비록 많지는 않으나 평정하고 타당하여 차근차근 신묘의 경지로 들어가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로는 추측할 바가 아니요, 오직 그대와 내가 알 뿐이네, 한스러운 것은 자리를 마주하여 등불을 돋우고 한바탕 극론을 벌일 수가 없으니 말이외다.
추신: 필체가 이와 같이 괴괴하여 남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우니 곧 찢어 없애는 게 좋을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