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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역) - 2008년 4월 5일 문원출판사 -
반달역에 가 볼래요?
기차가 산모퉁이를 반달처럼 돌아 허리를 쭉 펴면 닿는 곳,
반달역에 가 볼래요?
철로 가에는 측백나무 초록빛 울타리가 파도처럼 넘실거리고요.
들꽃들과 키 작은 코스모스가 별처럼 꽃을 피운 곳이지요.
날려 보낸 민들레 씨앗들이 뭉게구름이 되어 찾아오고요.
모퉁이 모퉁이마다 억새꽃들이 솜사탕처럼 꽃을 피워요.
그런데 어쩌죠? 손님이 없어서 머잖아 반달역이 문을 닫는대요.
그곳에는 평생을 기차와 함께 보낸 역무원 아저씨가 있고요.
기차를 타고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있어요.
그리고 장가를 못 간 노총각 아저씨가 있고요.
또 여러분의 친구인 그림이가 살아요.
세상은 빨리 변한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디 우리 친구들이 그렇게 바쁜가 봐요.
하루가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가지요. 친구들과 편하게 앉아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요. 꽃이 언제 피는지 몰라요.
바람 냄새, 비 냄새, 땅 냄새를 몰라요.
그래서 말이에요. 특별히 우리 친구들을 위해서 기차를 준비했어요.
느리게 천천히 가는 안행열차래요. 그 열차를 타야만 반달역에 내릴 수 있대요.
천천히 지나치는 바깥 풍경도 보고요.
마주앉은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워요. 서운했던 마음도 살금살금 풀어 놓고요.
화났던 일들도 조금조금 떼어 창밖에 놓아 줘요.
기차가 산모퉁이를 반달처럼 돌아 허리를 쭉 펴면 닿는 곳,
반달역에 가 볼래요?
2008년 봄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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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바가지) - 2007년 12월 25일 국민서관 -
길잡이 별
사람마다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똑 같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부끄러워할수록 더 부끄러워진답니다.
이 이야기의 제목이 참 특이합니다.
'똥바가지.'
예전 시골에서 재래식 화장실을 청소할 때 쓰던 생활도구지요. 그 쓰임으로 해서 아주
천대를 받던 물건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 얼굴이 못생기거나 못난 짓을 하는 친구를 빗대 '똥바가지'라고 놀렸습니다.
놀림을 받은 친구는 열이면 열, 부끄러움에 울음을 터뜨렸지요.
이 이야기 속에는 크게 두 개의 줄기가 있습니다. 아빠의 부끄러움과 주인공 망이의 부끄러움
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똥바가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할 역사의 부끄러움입니다. 이 때문에 망이의 부끄러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과 닿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너는 과연 부끄러움에 당당해 질 수 있느냐?'
모두가 '아니요!'라고 솔직히 대답해도 괜찮습니다. 다문화 친구로 태어난 망이 역시 그랬습니다.
'똥바가지별.'
북두칠성을 이렇게도 부른답니다. 부끄러움도 멋진 별자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저는 똥바가지별을 길잡이 별로 내세웠습니다.
망이가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 올 날을 기다립니다.
마음이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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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보랏빛구두) 2007년7월30 섬아이-
지켜야 될 자리
밤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캄캄한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보일 거예요.
그 무수히 많은 별들도 저마다 제자리가 있답니다.
사람들도 그래요. 저마다 지켜야 될 자리가 있지요.
이 이야기는 가족이 지켜야 될 자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점점 갈수록 바쁜 일들이 많아 가족이 한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는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어떤 가족은 지켜야 될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져 산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물론 저마다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겠지요. 저는 바끙로 드러나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랍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도 비탈에 서 있는 소마무의 자리 지킴을 우리 친구들에게
들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나무의 친구가 되어 역시 멋지게 자리 지킴을 한 청설모를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친구들이 저마다 지켜야 될 자리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이 '소나무와 보랏빛 구두'가 친구들의 마음자리가
되었드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7년 7월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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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산 얼룩송아지) - 2006년 10월 6일 영림카디널 -
머리말
얼룩산 아래로 출근을 하지요. 작품 속에 나오는 나랏집은 바로 나라의 일을 하는 정부청사이고
그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어요. 정부 청사 앞 공터에는 자주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요.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말이에요.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어요. 그 날도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하는 중이었지요. 정부 청사 앞 공터에 못 보던 모습이 나타났어요. 바로 송아지들이었어요.
몇 마리의 송아지가 밤새도록 내린 이슬에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지요. 마침 퍼지기 시작한 아침 햇살이
송아지들의 몸을 어루만져 주기는 했어도 송아지드릉 너무 추워 보였어요. 송아지들은 공터에 몰려온 사람들처럼
어깨에 띠를 두르고 있었어요.
걸음을 멈추었어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송아지 한 마리가 울타리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갛게 눈을 맞추는 거예요.
송아지의 눈에는 눔루이 가득 고여 있었지요. 그리고 그날 텔레비전과 신문에도 기사가 났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의 일이 더 새록새록 되살아 났어요.
눈물 가득 고여있는 송아지의 눈은 정말 맑고 투명했어요. 그 눈빛이 바로
얼룩산 얼룩송아지를 탄생시킨 이야기의 씨앗이었어요.
비둘기 비기와 구돌이, 까치 까달이의 우정과 노력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내려고 했고요. 송아지 몽이와 얼이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 내는
용기를 말해주고 싶었어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함께 더불어 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려고 했지요.
나라의 일을 하는 정부 청사 앞 공터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몰리고 있어요.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 이웃끼리 정을 나누기 위해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거예요. 정말 좋은 일이에요.
오늘도 공터에는 까치들이 날아와 놀고요. 이웃해 있는 공원에는 비둘기들이 살아요.
그 모습을 보며 까치와 비둘기, 사람들 모두가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지요.
소앙지 몽이와 얼이가 엄마를 만나 행복하게 사느 모습은 일부러 옮겨 놓지 않았어요.
그것은 우리 친구들이 몫으로 남겨 놓았지요. 궁금한 친구가 있으면 길을 가다가 까치에게 물어 보세요.
공원에서 놀고 있는 비둘기에게 물어 봐도 좋아요. 아니 자신의 마음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파란 풀밭이 보이고 얼룩송아지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일 거예요.
얼룩산 밑에서 2006년 10월 6일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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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음표) - 2006년 9월 30일 낮은산 -
슬픔을 딛고 날아오르는 나무새
저는 솟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솟대가 뭔지 알고 있나요?
솟대는 우리 조상들이 풍년을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을 지켜주는 상징으로
마을 어귀에 세운 장대로 그 장대 끝에는 나무로 만든 새가 앉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솟대는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마음 지킴이였습니다. 솟대 위에 앉아
사람들의 마음을 하늘에 전한다는 나무새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분명 장대 끝에 앉아 있지만 가만히 올려다 보면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새의 재료로는 소나무 혹뿔이 으뜸이랍니다.
혹뿔은 소나무 가지에 상처가 나 그곳이 기형적으로 변해 생긴 혹입니다. 상처지요.
아픔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가끔 거짓말 같은 일을 만납니다. 내 친구가 내 이웃이 그 거짓말 같은 일을 당합니다.
거짓말 같기에 그 슬픔은 오래가며 깊습니다.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슬픔에 젖어 살 수는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견딘다는 것입니다.
상처없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픔이 뒤따른다고 해서
상처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입었지만 아픔을 참으며 몸을 부풀린
소나무의 혹뿔을 기억하는 겁니다. 혹뿔은 울퉁불퉁하고 못생겼지만 훌륭한
나무새로 다시 태어납니다. 모진 비바람에도 썩지 않고 오래가는 하늘이 새로
말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끼어들기와 함게하기의 차이를 깨달았습니다. 끼어들기란 참견입니다.
자신은 이만큼 떨어져 있으면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아는 척하고 그리고 뒤돌아서서는 모르는 척하는
것입니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저 또한 이제껏 동화를 쓰면서
친구들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빙빙 겉돌았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함께하기란 내가 친구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함께 울고 웃으며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아니라 하나가 되어 함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슬픔을 딛고 날아오르는 멋진 나무새 한 마리씩을 선물합니다.
2006년 가을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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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매 붕) - 2006년 4월 15일 대교출판사 -
용감하고 멋진 매부리가 되어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린 날의 하늘에는 매가 자유롭게 날아 다니고 있다.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빙빙 원을 그리며 날다가 사냥감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모습, 또 땅을 향해 무섭게 내리꽂히는 모습,
그 날렵한 몸놀림과 날카롭게 번득이는 눈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매는 유난히 용맹스럽고 멋져서 해동청이라 불렀다. 매와함게 산과 들을 달리며 사냥하는 조상
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벅차 오른다.
매는 어릴 때만 해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새였으나 지금은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사라져가는 매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사람이 함부로 잡아서 기르거나
훈련시키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매를 받아서 기를 수 있는 사람이 딱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진안의 전영태 할아버지와 대전의 박용순씨다.
이분들은 나라에서 지정한 무형문화재로 매사냥을 전통문화로 계승하고 있는 분들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두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매는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시는 것입니다. 매가 사납게 굴면 매를 탓하지 말고 내가 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해야 해요.'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나는 구상해 놓았던 작품을 다시 써야 했다. 단순히 재미로 여겼던
매사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들을 역사 속, 자연 속으로 초대하고 싶다. 이 동화는 시공을 초월해 과거오 현재를 넘나들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역사의 맥과 전통문화 계승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한 부분을 살아가고 있다. 이 동화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체험해 보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 온 조상들의 숨결을 느껴 보길 바란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전영태 할아버지와 박용순씨, 그리고 훌륭하고 멋진 그림을 그려준
김재홍 씨에게 감사드린다. 이 작품을 읽고 우리 친구들이 용감하고 멋진 매부리가 되어
주인공들과 함께 어우러져 자연 속을 달렸으면 좋겠다.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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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내려오는 마당) - 2005년10월 25일 샘터사 -
생명의 자리를 밝히는 꽃등
어느 초여름, 시골집에 당도해 보니 마당 가운데에 멍석 넓이만큼의
채송화 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차를 주차하려다 채송화 몇 포기를 망가뜨렸다.
어머니는 아들을 반기기보다 망가진 채송화 포기를 쓰다듬으며 울상을 지으셨다.
"왜 마당 가운데에다 먹지 못하는 채송화를 씸어 놓고...... 차라리 상추를 심어
자식들 뜯어 먹게나 하지."
나는 짜증을 부렸다.
"모르는 소리 마라. 달밤에 보면 별이 마당에 내려온 듯 하단다."
어머니는 그렇게 읊조리셨다.
'먹지도 못하는 채송화.'
그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실리적이고 욕심으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이었다.
'마당에 내려 온 별.'
그것이 진짜 동화였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감성이 바로 동심이엇다.
아이가 아니었던 어른이 어디 있으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우리네 감성의 밑그림은 항상 동심이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우리는 그 밑그림 위에 덧칠을 하고 산다. 그리고 그것을 삶이라고 귀결짓는다.
이후 나는 차근차근 삶의 덧칠을 벗겨냈다. 비로소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동화작가가 된 지
만 7년이 지나서였다. 덧칠을 벗겨낼 때마다 밑그림은 항상 어머니였다.
내게 생명을 주셨듯이 온갖 사물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거기 계셨다.
어머니란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처럼 우리가 돌아가야 될 마음자리다. 그것을 감히 동심으로의 회귀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쓰면서 내내 아린 가슴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멀어진 것은 나 자신이었고 어머니는 항상 그 자리에 계셨다. 이 소박한 글이 우리네 마음자리를
찾아가는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내 생명의 자리를 밝히는 꽃등이고 싶다.
2005년 가을날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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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학, 날개를 달다) - 2005년7월 15일 대교 -
다시 쓰는 이빠진산의 전설
저에게는 꼭 한번 정리해야 될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내 동화의 밭은 어린 날이다."
저는 언제 어디서든지 망설임 없이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미 친구들을 찾아간 몇 권의 동화책,
그 밑그림이 되어 준 것도 역시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몇 권의 동화책으로 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기에는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 부족함을 메우는 것이 제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학, 날개를 달다'라는 이 작품으로 제 숙제를 마친 것 같아
기쁩니다.
흥타령으로 유명한 천안 삼거리를 지나 독립기념관이 있는 목천을 향해 가다 보면, '이빠진산'이 보입니다. 봉우리의
가운데가 이가 빠진 듯 움푹 들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산 아래에 있는 동네가 바로 제가
태어나 자란 곳입니다.
이빠진산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커다란 물난리가 나서 세상이 온통 물에 잠겼습니다.
한 도공은 신은 재앙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사기배를 만들어 띄웠고, 그 사기 배가 바위 산에 부딪쳐 깨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깨진 사기 배 조각인 사금파리를 줍기 위해 산꼭대기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사금파리를 주워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금파리, 그것은 저의 꿈이었습니다.
찔레꽃처럼 푸른 빛이 도는 어린 시절의 하얀 꿈이었습니다.
저는 '동화쓰기의 목적'을 꿈찾기에 두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많은 친구들이 꿈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빠진산 기슭으로 이사 오게 된 주인공 동욱이 역시 꿈을 잃어버린 친구입니다.
동욱이는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가족들 사이에는 웃음꽃이 사라졌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방황합니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친구 종식이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욱이는 이빠진산의 전설 속으로 빠져 들면서 잃어버린 꿈을 찾아 갑니다.
물론 아버지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석수장이가 됩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이제까지 한 번도 궁금해해 본 적이 없던 것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빠진산 봉우리, 저 움푹 파인 곳을 과연 누가 채울 것인가?"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물음에 답을 찾아 냈습니다. 잃어버린 꿈을 찾는 친구들, 그 친구들이 바로 움푹
파인 봉우리를 채울 주인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는 '이빠진산'을 '이채운산'으로 바꾸는 전설을 다시 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빠진산 기슭에서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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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말 벼리) - 2004년8월 10일 샘터사 -
약속을 했어요
'경주에 나가 승승장구하던 혈통이 좋은 명마였다. 그러나 경주중에 기수를 떨어 뜨렸다.
기수는 크게 다쳐서 기수 생활을 못하게 되었다. 그 후, 말은 성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은 경주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짧은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어요. 아무리 동물이라고 하지만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던 기수를 떨어뜨리고 말았으니 얼마나 미안했겠어요. 말을 할 수 없으니 사과도
할 수 없었을 테고. 그러한 말의 마음도 모른 채 쫓아내기까지 하다.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어요.
문득 말이 보고 싶어졌어요. 그 길로 경마 공원에 갔지요.
"와! 와!"
사람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 했어요.
하얀 말, 까만 말, 갈색 말, 점박이 말. 경주에 참가한 말들든 색깔도 가지각색이었지요. 갑자기
갈색 말이 날개를 단 듯 내달았어요. 앞서 달리던 말들이 뒤로 밀려났어요. 뭉게구름 사이로 높고 파란
하늘 길이 열렸어요. 눈부신 햇살이 경주장에 쏟아졌어요.
갈색 말이 당당히 일들을 했습니다. 경주가 끝났어요. 텅 빈 경주장에 남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때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경주장에서 쫓겨난 말의 아픔이 다시 살아났던 거예요.
"걱정 마. 너는 초록말이야. 내가 친구들을 불러 줄게."
이렇게 나는 약속을 했어요. 이름도 '벼리'라고 지어 주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초대했어요.
작품 속에서 '불화살'과 '수선화'가 벼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듯이 여러분들이 친구가 되어 주세요.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박수를 쳐 주세요. 어려움과 슬픔을 이겨내도록 손을 내밀어 주세요.
여러분들은 '벼리'의 친구들이에요. 친구란 힘을 주지요. 벼리가 초록말로 다시 태어난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달리고 싶었던 그 굼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사실을 벼리도 알고 있어요.
가끔 태워달라고 떼를 써도 괜찮아요. 초록말 벼리는 기쁜 마음으로 등을 내밀 거예요.
높고 푸른 하늘 길은 언제나 열려 있거든요.
2004년 여름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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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이상한 녀석) - 2003년11월 10일 그린북 -
작가의 말
해가 뉘엿뉘엿 지는 육교 위였어요. 좌판을 기웃거리던 아이가 마지막으로 남은 병아리 한 마리를 샀어요.
엄마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기계에 의해 깨어난 병아리들, 그 녀석들이 갈 곳은 뻔해요.
양계장으로 가는 병아리들은 암탉이 되는 병아리들이래요. 그 녀석들은 그래도 행복한 편이에요.
수탉이 되는 병아리들은 거의가 장난감으로 팔려가지요.
육교의 좌판에서 팔려간 녀석도 그런 녀석일 거예요. 슬픈 생각들이 어둠처럼 슬금슬금 몰려왔어요.
녀석을 사 가지고 간 아이의 얼굴이라도 자세히 봐 둘걸... 아이에게 녀석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해 둘걸....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어요.
밤이 깊어졌어요. 세상의 모든 소리들도 잠들었어요. 그러자 녀석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나는 녀석을 아주 씩씩하고 힘센 수탉으로 키워놓고 싶었어요. 잘난 척하고 건방지기는 해도 의리가 있는 '별 이상한 녀석'
으로 말이에요. 그래서 시골에 사는 다른 병아리 가족 속에 슬쩍 끼워놓기로 했어요.
함께 어울려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서로 닮아가게 했어요.
한 가족이 되게 했어요. 별나고 괴팍하던 녀석이 어떻게 변해가지는 지켜 보세요.
때로는 가슴이 아파 눈물이 찔끔 나오고 때로는 자랑스러워 어깨가 으쓱 올라갈 거예요.
그러한 일들이 어디 '별 이상한 녀석'의 이야기 뿐이겠어요. 사람 사이도 똑 같아요.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는 녀석과
닮은 친구가 있을 거예요. 아니 녀석이 바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어요. 어울려주지 않고 달으려 하지 않는 일이 참 많아요.
서로 아껴주고 보살펴 주려는 마음들이 모여 세상을 아릅답게 하지요. 그게 사랑이에요.
사랑은 용기와 힘을 주지요. 특히 가족간의 사랑은 거기에 꿈을 보태주지요. 삐딱한 녀석의 마음에 사랑을 담아주면서
그 사랑을 깨닫는 녀석을 지켜보며 나는 꿈을 꾸게 되었어요.
사랑이 지켜주는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울려주고 닮아 보세요.
"꼬끼오!"
붉은 벼슬과 빛나는 깃털을 가진 녀석이 힘차게 홰를 치며 울부짖는 소리, 항상 그 소리가 들릴 거예요.
사랑이 햇살처럼 펼쳐지는 그런 세상이 올 거예요.
사랑을 꿈꾸며 동화작가 홍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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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동이 말동이) - 2003년5월 30일 문원출판 -
글쓴이의 말
두 팔을 벌려 무엇인가를 끌어 안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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