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6464>포크 스푼
발행일 : 2004.08.03 / 여론/독자 A2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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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례에서 장지로 가기 위해 출관(出棺)할 때 문턱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밟아 깨고 나가게끔 돼 있다. 고인이 항상 쓰던 밥그릇을 밟아 깨던 것이 깨기 힘들어지면서 바가지로 대체된 것이다. 관북지방에서는 밟아 깨지 않고 사기 밥그릇을 동댕이쳐 깬다고도 한다. 이것은 망인의 넋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행위로 그 많은 생활도구 가운데 식기나 식구가 그 망인과 가장 밀착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식사문화에서 젓가락 숟가락 밥그릇은 개인에 속하는 점유물이다. 내 숟가락, 내 밥그릇이 따로 있으며 아무나 쓰지 못한다. 그 사람과 영적으로 밀착돼 있는, 생활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서양의 식사문화에서 식기나 식구가 그 개인에 밀착돼 있다는 법이 없으며 아무 놈이나 아무가 써도 되게 돼 있다. 곧 비인격화돼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이 식구문화가 근대화과정에서 변질돼 있음을 절감케 하는 독자투고를 읽은 기억이 난다. 열 살 난 초등학교 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제상에 얹는 숟가락 젓가락 대신 숟가락 끝이 갈라진 포크 스푼을 대신한 것을 두고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는 내용이다. 혼백사회에서 낯선 외래문물은 소외당해 쓸모가 없기에 포크 스푼은 영혼을 굶주리게 한다는 아버지와 살았을 때 평소에 들고 먹었던 것이어야 영혼도 편히 들고 먹을 수 있다는 어머니와의 갈등이다. 스푼 끝을 갈라지게 하여 포크와 스푼 겸용의 이 포크 스푼이야말로 서양화해가는 한국문화의 기구한 몰골을 노출시킨 것으로 젓가락의 쇠퇴영역을 포크가 메우고 있다는 문화사의 증거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처럼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이 포크 스푼 사용을 자제시키고 젓가락을 쓰도록 권고해온 덕분으로 초·중등학교에서 20년 내 반감을 거듭해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곧 서구화로부터 전통문화 구제운동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 된다. 지금 젓가락문화의 부흥을 위해 젓가락으로 콩집기 교습 등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인지라 이 포크 스푼이라는 기형문화를 재고할 때가 됐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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