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쳐 흰 띠 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젖어드는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저 멀리 능선길에 철쭉꽃 필적에 너와 나 다정하게 손잡고 걷던
길
이 설악가가
거의 모든 산노래의 기본이다. 설악산이 남한 제일의 명산으로 꼽히는 바에야 어차피 가장 많은 전문산악인들의 요람이었으니, 가장 널리
불려졌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전문산악인을 만들어내던 등산학교가 있다. 바로 권효섭옹이 교장으로 운영하던 “한국 등산
학교”가 그것이다. 이곳에 입교를 하면 동계와 하계 훈련을 하게 되는데, 미쳐 여명도 깃들지 않은 새벽 미명에 등산학교 교정으로 사용되는
권금성 산장이나, 천불동 중간의 양폭산장, 서울의 우이동 골짜기를 가르며 훈련생들이 악다구니를 쓰며 부르던 노래가 있는데 바로
“아득가”다.
아득가
아득히 솟아오른 저 산정에 구름도 못다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높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 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오르세
추운 새벽, 전일(前日: 어제)의 고된 훈련으로 지친 육신을 이끌고 불러야 하던 이 노래는 아마도 대게의
훈련생들이 악에 받쳐서 불렀으리라. 이 노래를 부르며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던 강사들을 얼마나 곱씹었을까? 그러나 이렇게 호된 훈련을
기반으로 하여 산악인 사이엔 돈독한 위계질서와 우정이 싹 틔워졌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등산학교에서 하계에는 암벽등반(록클라이밍)을
주로 가리키고, 동계에는 빙벽등반(아이스 클라이밍)을 가르쳤다. 이 때 막영법이나 자일 매듭법 등을 가르쳤는데, 자일 매듭법은 수 없는
반복연습으로 한 손으로 매듭을 짓고 풀 수 있을 만큼 숙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자일을 다른 말로 “생명줄”이라
하였겠는가.
자일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일에 얽힌 노래를 하나 보기로 한다. 그렇다고 “친구여 자일을 끊어라”는
아니다.
자일의 정
우리는 잘 웃지
도 속삭이지도 않지만 자일에 맺은 정은 레몬의
향기에 비기리오 깍아지른 수직의 암벽도
몰아치는 눈보라도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못 한다오 살롱의 휘황한 불빛도 아가씨들의 눈웃음도 좋지만 산사나이는 이 조그만 정으로
살아간다오
산사나이는 이 조그만 정으로 살아간다오
여기 이 노래들이 전문 산악인들이 주로 불렀던 노래라면
대체의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공통으로 애창하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언제 끝이 날 줄 모를 만큼으로 재간 있는 사람들이 전국의 산을
총망라하여 끊임없이 부르기도 하였는데, 처음 듣는 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 있게 되면 한동안은 재미를 느끼다가 '언제 끝나요?'라고 끝내
질문을 던지게 되기도 한다. 사실 이 노래도 "설악가"로
알려져 있는데 노래가 설악가 보다는 밝고 경쾌한 리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 노래를 전국의 명산을 총망라 한다고 하여서 명산가가
좋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제목을 "명산가(名山歌)"로 사용하겠다.
명산가
잘 있거라 설악아 다시 보는 날까지 대청봉에 피어있는 에델바이스 뒤돌아
보면은 서북주 능선 눈 감으면 떠오르는 천불동 계곡
잘 있거라 지리야 다시 보는 날까지
천왕봉에 곱게 물든 저녁노을 뒤돌아 보면은 세석대
평전 눈감으면 떠오르는 칠선동 계곡
잘 있거라 한라야 다시 보는
날까지 백록담에 펼쳐있는 캠프사이트 뒤돌아 보면은 개미주능선 눈감으면 떠오르는 탐라
계곡길
여기에서도 보여지 듯, 어디 이
노래의 끝이 있겠는가.
앉은 자리에서 두꺼비(얼마전까지는 진로소주의 상표가 두꺼비였던 데서 연상하여 소주를 통칭하여 이렇게 불렀다.) 여남은 마리
족히 잡으며 밤을 꼬박 새워 일본의 “고토 분지로(일본의 지리 학자로 우리나라의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민족의 얼과 맥을 끊을 의도로 금강으로 잘라지는 태백산맥<太白山脈> 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하여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는 다르고, 산맥이라 함은 맥이 끊기지 않아야 하는데, 백두산에서부터 부산의 금정산까지로 정한
태백산맥은 금강에서 맥이 끊기게 되어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태백산맥으로 학교에서
배워왔었다.)”에 대한 토론과 백두대간
능선마루를 수 없이 오르내리지 않았던가. 이는 비단 노래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산행 경험담을 구수한 입담에 실어 풀어 놀라치면 잠을 청하던
이들까지 귀를 기울이고 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진주에서 출발한 백두대간 산행길이 이야기만으로 중산리를 거쳐 천왕봉을 오른 듯 싶은데 이미
장터목을 거쳐 세석평전을 내 달리고, 육십령을 지났나 싶으면 남덕유도 한참 뒤에 쳐져 아스라 해 진다. 그게 산꾼들의 이야기고 추억의
끈이다.
설악을 들어 서면 이미 산행의 끝자락 마산봉이 멀지 않은
탓인지 술 잔이 이쯤에서 제법 걸어지고 취기도 오르게 마련이다. 산과 헤어짐이 그만큼 서러워서리라. 그런데 이게 그냥 하룻밤 사이에 이야기만으로
걷는 백두대간이니 옆에 앉아서 듣기만 해도 이미 백두대간을 몇 번 한 이만큼 정확하게 길을 외우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자신은 직접 백두대간에 서
본 적이 없으면서도 다른 이의 이야기 속에서 더불어 걸어 간 것이 된다.
가끔 이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몇 명은 이미 술에
골아 떨어져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언덕배기를 힘겹게 오르는 증기기관차의 엔진 소리를 내기도 하고, 더러는 깊숙히 숨겨
두었던 비상식량을 안주 삼자며 슬그머니 꺼내 놓기도 한다. 비상식량이라고 깊이 숨겨 둔 거라야 장조림이나 육포, 견과류 같은 거지만 한밤중 높은
산 산장에서나 깊은 계곡 텐트 속에서라면 이도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겠는가.
산꾼들의 밤은 이렇게 수많은 두꺼비를 잡아먹으며
산노래에 실어 먼저 간 악우를 추모하고 서로의 우정을 돈독히 하며 세속의 찌든 앙금들과 무거리들을 풀어 놓으며 깊어가고 새로운 여명을 열어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