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은 경북 최북단에 있다. 한겨울 곧잘 남한지역 최저기온으로 맹위를 떨치는 춘양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많이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봉화행은 쉽지 않은 길이다. 차로 네댓 시간만 달리면 북으로 인접한 영월군이나 태백시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더욱 멀기만 하다. 그래도 빼어난 산세와 맑고 깨끗한 계곡이 가득한 봉화는 청정자연 여행길로 흠잡을 데가 없다.
◆산사에서 바라보는 최고 전망
봉화 출생인 지인을 통해 축서사(鷲棲寺)를 소개받았다. 소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이웃 영주의 부석사(浮石寺)와 마주보는 형국이라고 얘기했다. 불교 신도들이나 산꾼이 아니라면 잘 모르는 곳이라고도 했다.
지난 2일 부푼 가슴을 안고 축서사로 향했다. 축서사 가는 길은 물야면을 통과하는 915번 지방도를 타야 한다. 915번 도로는 춘양면에서 88번 도로와 이어지기는 하지만 눈 내리는 겨울에 해발 780m 주실령을 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오전약수관광지에서 주실령을 넘어가는 길은 교통이 통제돼 있었다. 결국 봉화읍내 삼계삼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915번 도로를 타고 6km 정도 쭉 올라가다가 '축서사 가는 길 7.5km' 표지를 발견했다. 해발 800m 문수산 중턱에 떡 하니 자리한 축서사를 오르는 길이다.
인간의 손을 묻힌 흔적이 있는 밭을 지나다 보니 어느덧 축서사 앞마당에 이르렀다. 차 오르는 길은 누군가의 은덕에 눈이 말끔히 치워졌지만 주차장은 아직 잔설이 멀리서 온 객(客)을 반겼다. 차에서 내려 먼저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늘 위에서 쏟아지는 겨울 햇살과 달리 구름이 낀 산봉우리들을 본 순간 가슴 속 탄성이 터져나온다.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는 이 광경을 이렇게 전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며 파도 치는 산능선들, 구름 속에 섬인 것처럼 떠있는 산봉우리들, 태백산맥에서부터 달려 내려오던 산들의 용틀임, 이 모두에서 당당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절집에서 바라보는 전망 중 최고라는 소백산 부석사와 어깨를 견줄 만한 유일한 곳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축서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더 쳐주는 사람들도 많다.
축서사가 자리를 잡은 곳은 해발 1,205m 문수산(文殊山)의 800m 중턱. 문수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축서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깎아지른 듯한 산세가 바로 그렇다. 불교에서 문수보살이나 독수리 모두 지혜를 뜻한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설명이 있을까?
◆호젓한 겨울산사에서 번뇌 씻기
무여 스님이 주지로 계시면서 중창한 불사(佛舍)는 투명한 햇빛에 더욱 빛을 발한다. 축서사를 찾는 중생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보탑성전(寶塔聖殿)이다. 화려한 단청과 웅장함이 엿보이는 불전으로 절 내부 방향으로 설치된 대형유리를 통해 사리탑과 대웅전을 향해 기도하게 한 곳이다.
보탑성전을 지나면 축서사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래도 도량이 크지 않다. 눈으로 한번 휙 하니 둘러봐도 모두 보일 정도이다. 오히려 그것이 축서사의 매력이다. 축서사 경내에 들어서면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5층 진신 사리탑이 눈에 띈다. 중창불사의 일환으로 2005년 9월 20일 세워졌으며 '축서사괘불탱화'(보물 제1379호) 복장낭에서 발견된 적사리 2과와 한 불자가 미얀마에서 기증받은 사리 등 진신사리 112과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사리탑을 돌아 돌계단을 오르면 최근 단장을 마친 대웅전이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섬세하고 화려한 단청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보광전이 보인다. 옛 대웅전을 옮긴 이곳에는 신라 문무왕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목조 광배의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보물 995호)이 서벽에 봉안돼 있다. 석탑기에 의해 9세기 후기에 조성됐다는 절대연대가 밝혀져 신라 후기 불상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보광전 뒤편 위 선방(적묵당)에는 경북 문화재자료 157호인 석탑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라 담 넘어 엿볼 수밖에 없다. 1999년 봉화군이 복원을 완료했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탑내의 성물을 탈취해 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호젓한 겨울 산사는 도시 나그네의 번뇌를 씻어 주고도 남았다.
불자라면 산사에서 하룻밤 머물며 예불을 드리는 것도 괜찮다. 종무소(054-672-7579)에 미리 연락해 방을 잡으면 하루 1만원씩, 이틀에 2만원이면 가능하다. 오후 6시 공양, 7시 예불, 9시 소등, 3시 30분 새벽 예불 등 도시인의 생활과 다른 일정이 몸과 마음에 찌든 때를 속시원히 털어내게 한다. 저녁 공양 전후 대웅전 앞을 지키다 보면 소백산맥의 저녁 노을을 볼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을 얻을 수도 있다.
산 좋고 물 좋기에 갖가지 먹을거리도 풍부한 봉화이지만 물야면 장가네 매운탕(054-672-2197)을 꼭 들러 보라는 추천도 받았다. '웬만큼 입맛 까다로운 사람도 넘어갈 맛'이란다. "생선이라면 고등어 자반도 못 먹는데 국물까지 싹 비웠다"는 후기를 보니 괜스레 군침이 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글·사진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축서사는?
축서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다. 신라 제30대 문무왕 13년(서기 666년) 의상대사가 문수보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창건했다. 당시 문수산 아래에 지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의 한 스님이 어느 날 밤 지금의 개단초교(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앞산을 바라보는데 휘황찬란한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이에 광채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 동자는 청량산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리고 불상만 남았다. 의상대사가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다니다가 현 대웅전 터에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
1875년(고종 12년)에만 해도 축서사는 대웅전, 보광전, 약사전 등 전각과 함께 승방 등 1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 산내 암자만도 상대, 도솔암과 천수암 등 3곳이나 됐다.
축서사는 그러나 을사늑약(1905년)과 정미7조약(1907년) 이후 일본군이 의병 토벌 작전의 일환으로 방화해 대웅전 1동만 남기고 모두 탔다. 한동안 폐사로 있다가 일제 말기 삼성각과 6·25전쟁 직후 요사 1동을 신축해 사찰의 모습을 유지해 왔다. 무여(無如) 스님이 1987년 주석(駐錫)한 이래 대규모 불사를 끊임없이 펼쳐 현재의 축서사로 중건했다.
조문호기자(대구 매일)
첫댓글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 전 몇해전에 다녀온곳인데 한번더 가서 잘 보고 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