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매화'에 이어, 2월에 '복수초'를 이 달의 꽃으로 올려 봅니다.
매월 한 송이 꽃을 카페에서 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앉은부채, 얼레지, 노루귀, 현호색, 괭이눈, 산괴불주머니, 변산바람꽃, 깽깽이풀, 미치광이풀, 제비꽃, 앵초, 피나물, 양지꽃, 매미꽃, 복수초, 수선화, 동백, 생강나무꽃, 서어나무꽃, 복자기나무꽃, 신갈나무꽃, 산수유, 산목련, 보춘화...
이 꽃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렇다. 이른 봄에 앞다투어 제일 먼저 피는 꽃들이다. 그 중 '수선화'와 '동백꽃'은 겨울꽃으로 부르는 편이 맞다. 그 외의 꽃들은 서로 먼저 일등을 차지하려고 날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입춘 무렵의 뒷동산을 아름답게 꾸민다.
소설가 박완서님의 수필 중에 집 정원에 심어놓은 여러 꽃들이 봄철에 경쟁하듯 피어나는 모습을 '학교에서 출석 부르기 하듯' 한다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이 분 정원에는 백여 가지의 꽃들이 있는데, 그 꽃들이 '나는 1번, 너는 2번...'하듯이 시샘하면서 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 피는 꽃들 중 70%가 봄철에 피어난다. 그리고 그 봄꽃들 대부분이 잔설이 날리는 이른 봄에 거의 다 봉오리를 터뜨린다. 강추위와 꽃샘바람, 차가운 냉기도 마다 않고 그들은 겨우내 갈무리한 모든 기운과 힘을 알록달록한 보물덩어리로 이 세상에 내어놓는다. 우리가 아랫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이른 봄의 추위를 서러워할 때, 이들은 그 가녀린 솜털과 애처러운 고운 얼굴을 서슬 퍼런 날씨에 드러내는 것이다.

풀과 나무들은 잎이 돋아 생명의 고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열매와 씨앗을 내기 위한 준비를 꽃 한송이로 펼쳐 놓는다. 날갯짓이 찬 바람에 고와져서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이른 봄에도 벌과 나비들은 꽃을 위해 힘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 인간보다 훨씬 빨리 봄을 준비하고 알뜰하게 반긴다.
봄철의 들녘은 그 들녘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농부의 살림 준비와도 닮아있다. 굳이 영국 속담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농부의 부지런한 아침기상은 '새벽부터 일하는 노력이 인생을 살찌운다'는 진리와 통해 있고, 그것을 자연이 꽃과 벌·나비를 통하여 알려주는 것이다.
수많은 봄꽃 중에서 거의 공식화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복수초'이다. '미나리아재비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꽃으로, 녹색(또는 연보라색)줄기에 황금빛 꽃이 달린다. 꽃의 특성은 이른 봄을 좋아하여 2∼3월에 개화하여 초여름까지 피었다가 한여름에 열매를 맺은 후 꽃대를 떨구고 다음해까지 긴 휴식을 취한다.
이 꽃이 눈 덮인 들판에 꽃을 피워낼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의 온기 때문이다. 꽃 한 송이의 온기만으로 주변 땅을 녹여 버릴 수 있어서, '복수초'가 모여 피어있는 언덕은 눈이 모두 녹아 있을 정도이다. 그 중 한 뿌리를 캐어내 보면 뿌리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하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다. '식물 난로'와 같은 성격의 이 꽃은, 그 강인한 성질 때문에 예로부터 한의학에서 심장병의 특효약으로 쓰여져 왔다.
한·중·일 동양 삼국에 가장 널리 퍼져 피는 이 꽃은, 한자어 그대로 신년에 피어나서 행복(幸福)과 장수(長壽)를 가져다 주는 행운의 꽃이다. 일본은 정초에 이 꽃 화분을 선물하는 집안이 많다. 그래서 주요 일간지의 요즘 때에 '봄을 알리는 전령사'라는 제목 아래 이 꽃이 눈밭 위에서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모습의 사진이 실리기도 하고 야생화 달력의 맨 앞 장이나 둘째 장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한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 핀다고 하여 '설연(雪蓮)'이라고도 하며, 또는 '얼음새꽃', '눈새꽃'이라고도 한다. 새해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풀꽃이라 하여 '원일초(元日草)' 또는 '원단화(元旦花)'라고도 하고, 다른 꽃들에 비해 봄날 꽃피는 시기를 가장 길게 누린다고 하여 '장춘화(長春花)'라고도 한다. 한방에서는 '측금잔화(側金盞化)'라고도 부른다. '복수초'는 우리의 고유종이나, 서양에서 이와 닮은 붉은 색 꽃을 '아도니스'라고 부른다. 동양에서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고 서양의 꽃말은 '슬픈 추억'이다. 서양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도니스'의 슬픈 전설과 맞닿아 있어 꽃말이 우울한 듯 하다.
'복수초'는 전국 어느 산골짜기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야생화이지만, 그동안 약재 용도 외에는 대중의 관심 밖에 있었다. 최근에 와서 등산객들이나 사진작가들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복수초'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제주도 한라산이다. 98년도 이맘때로 기억이 되는데, 모 단체에서 '제주도 복수초 눈꽃산행'이란 특이한 여행을 기획하여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눈 덮인 절물 휴양림 길목에서 흐드러지게 핀 수 백 송이의 '복수초'군락을 보고, "이것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복수초'꽃은 매우 앙증맞고 소담스럽고 당찬 꽃이다. 모자처럼 눈을 뒤집어쓰고 노란 볼을 쏙 내밀고 있는 그 봉오리를 보면 생명의 환희와 함께 신비스러움을 느낀다. 모든 생명들이 갈색의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시기, 얼음장 밑, 땅의 혈관을 타고 눈이 부시도록 샛노란 얼굴로 피어난 봄의 편지, '복수초'는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상징이 된다. 이처럼 자연의 미물들도 시련을 이겨내고 온몸으로 봄날을 준비하는데, 과연 나는 나의 생애에 얼마나 많은 나태와 타성에 젖어있었던가 반성도 하게 된다.
'복수초'는 해가 떠 있는 동안만 꽃잎을 연다. 흐린 날이나 밤에는 꽃잎을 다물어 그 고결한 정신을 지킨다. 한여름에는 무성해진 다른 꽃풀 들에게 미련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숨는다. 아무리 세상이 유혹하고 주위가 흔들려도 자신의 본 모습은 지키겠다는 그만의 소중한 의지의 표현이라 여겨진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향기로 세상을 가장 먼저 깨우고도 자만하거나 미련을 품지 않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복수초'의 한 떨기 삶에서, 성실과 인내와 헌신으로 인생의 성공을 준비하는 모습을 본다.
첫댓글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올해도 하얀 눈이 그렇게 내렸나보다???!!!! `복수초` 정말 앙증맞고 귀엽네요 여러모로 달솔님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