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섬마을
전통 마을인 고택이 잘 정비되어 있는 무섬마을
프로그램 진행자에 의하면,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은 "태백산에서 흘러 내린 내성천과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이 마을을 휘돌아나가 물위에 뜬 섬 같다"고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모습이 양반골 안동 하회마을을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안동은 양반, 영주는 선비의 고장인듯합니다. 무섬마을은 3면이 강으로 막힌 이곳에는 4가지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농토, 우물, 대문, 감실(위패를 모셔놓는 사당)이라고 합니다. 둑이 생기기 전에는 홍수가 잦아 위패가 떠내려가는 경우가 많아 감실을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물을 길어 먹었고, 농사는 외나무다리를 건너 마을 밖에서 지었습니다. '가마타고 들어와 상여타고 나간다'던 오지가 바로 무섬마을입니다.
마을 내에 있는 '아도서숙(아시아 반도의 서당)'은 1928년 김락풍의 증손자 김화진 등 마을 청년들이 세운 공회당이자 교육기관으로 애국지사들의 활동거점이었다고 합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았으나 증언과 사료를 모아 2015년 복원됐다고 합니다. 또 '까치구멍집'이라는 전통가옥 형태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남쪽이지만 겨울이 추운 영주지역 초가집들은 부엌 창고는 물론 외양간까지 실내에 들여놓은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환기 등의 이유로 용마루 양 끝을 뚫어놓았는데 이를 까치구멍이라고 합니다. 기와집들은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으로 지어졌습니다.
무섬마을이 생긴 건 450여년 전인 16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반남 박씨 박수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후 선성 김씨(예안 김씨라고도 함)가 들어와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이 됐습니다. 일제 때는 100여가구 500명이 살기도 했지만 현재는 47채가 남아있으며 박수의 고택인 만죽재를 비롯해 9개 가옥이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00년 넘는 고택도 16채에 이른다고 하네요. 대자연도 박가인데 반남 박씨는 아니고 밀양 박가입니다.
무섬마을에서 본 외나무다리와 반대편에서 본 외나무다리 모습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는 고택과 정자 등으로 이뤄진 전통마을로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강을 따라 은백색 백사장이 펼쳐지며 맞은편에는 소나무, 사철나무 등이 숲을 이룬 나지막한 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 위로는 다리가 놓여져 마을과 마을을 잇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의 포토존으로 유명한 이 다리는 양쪽에서 동시에 지나가기에는 좁아 중간 중간 비켜서서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깊지않아도 건너다보면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현지 사람들은 '전에 있던 다리에 비하면 한강다리 수준'이라며 튼튼하니 걱정말라며 걷습니다.
대자연도 보기는 좋았는데 막상 걸어 가보니 백사장은 문제 없었는데 반대편 근처 수심이 깊어지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흔들흔들합니다. 넘어지면 어쩌지, 들고 있는 카메라는 어찌하지, 이런 생각에 더 흔들리는 거 같습니다. 잠시 멈쳤다 발에 힘을 주어 걸어 갑니다. 그래도 관객이 보고 있어서 그런지 불안 불안하고 어설퍼집니다. 무서워 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집니다. ㅋㅋㅋ
대자연은 이런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적어도 1개월 정도 살아 보기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고도의 디지털화 사회를 잠시 떠나 의도된 불편함을 택해보겠다는 각오가 생깁니다. 이제 인생 2막을 꽤 긴 거리의 외나무 다리가 존재하는 그런 마을에서 체험 활동이라 생각하고 살아 보고 싶습니다. 여행자로 잠시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출처] '4도 3촌 생활' 영주 경험하기(여기 어때? 우리 지금 영주!) ~ 부석사/무섬마을/소수서원/순흥 벽화고분/여우 생태 관찰원/관사골/인삼박물관|작성자 대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