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5. 07:38
‘문학미디어’ 가을호(2011) 계간시평
대한민국 시인들의 ‘등단’
정 성 수(丁成秀)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시인들의 ‘등단 방법’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양하다. 예를 들어서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아마튜어 시인들이 권위있는 문예지에 자신의 시를 투고하면 그 잡지 편집위원들의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수준작일 경우 기성시인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냥 그 지면에 발표해 주는 식이다.
말하자면 ‘신인 추천’이나 ‘당선’이라는 일정한 제도가 없다.
또 하나의 등단 방법은 자신의 개인시집을 발행해서 자기 작품의 ‘문학성’을 문단, 혹은 독자들로부터 객관적으로 인정(평가) 받는 것이다. 이것도 대체로 권위있는 출판사 편집위원들의 엄격한 ‘사전 심사’를 거쳐 발행되는 식이다.
그러니까 아무 조건 없이 그야말로 순전히 시의 질적 수준, 즉 작품의 ‘문학성과 독창성’만을 가지고 평가 받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문학도든 ‘현재(적어도 ’80년대 후반 이후)’의 우리나라 문단 일부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수준 이하의 시’를 들고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각 신문사(중앙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가작은 예외)’, 최장수 문예지인『현대문학』이나 시 전문지『시문학』등의 ‘추천’, 한국문인협회 기관지인『월간문학』의 ‘신인작품상(신인상)’ 등의 ‘당선’, 각 출판사에서의 ‘개인시집 출판’ 등의 여러 가지 등단 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서 어느 기관을 통한 ‘등단’이 가장 훌륭한가, 혹은 권위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문학사적으로 사실상 별다른 의미가 없다.
가장 화려한 것은 물론 대중 언론매체인 ‘중앙 일간지’의 <신춘문예(1928년 ‘조선일보’ 가 최초)>이다. 그러나 <신춘문예>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다 훌륭한 시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탁월한 시인이 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 반면에 <문예지> 출신이나 <개인시집>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다 훌륭하지 못한 시인이나 탁월한 시인이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인 각자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문학적 역량의 차이가 날 뿐이다.
한 사람의 시인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남긴 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등단 작품 한 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춘문예> 출신이라고 해서 오만할 필요도 없고 문예지 <추천>이나 <당선>, 혹은 <개인시집> 출신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쉬운 예로 서정주 시인은 <신춘문예(동아일보)> 출신, 이상 시인은 잡지『조선과 건축』출신, ‘청록파’ 시인들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시인은 모두 다 문예지『문장』<추천> 시인들이다.
김수영 시인은 문예지『예술부락』출신이고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김지하 시인은 시 전문지『시인』출신, 최근 몇 년째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고은 시인은 문예지『현대문학』출신이다.
백석 시인은 <신춘문예(동아일보)>에 소설로 당선됐으나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다가 <개인시집>(『사슴』)을 출판한 뒤 본격적으로 시인으로 활동했고, 윤동주 시인은 사후 출판된 <개인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신, 조병화 시인도 <개인시집>(『하루만의 위안』) 출신이다.
우리 ‘현대문학사’를 살펴보면 문단, 또는 사회적 유명, 무명과 관계없이 <신춘문예> 출신들도 좋은 시인들이 적지 않지만 <신춘문예>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등단한 시인들 중에서 좋은 시를 쓰는 탁월한 시인들이 더욱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어디로 등단’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좋은 작품’을 남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등단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문학성’이 문제이다. 또한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언론매체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들이 반드시 문학적으로도 훌륭한 시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고독하게 좋은 작품을 쓰고 있는 수많은 ‘무명시인’들이시여, 힘을 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