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 : 1 ~ 11)
한 해의 빛깔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작년은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고 어려운 일도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일도 있었고 잊고 싶은 일도 있었습니다.
특히 국가적으로는 총선과 대선으로,
국외적으로는 경제 한파로, 국제정세의 긴장으로
굵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의 입에서 가장 많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참 힘들었다’라는 말입니까? ‘참 아쉬웠다’는 말입니까?
혹은 ‘참 좋았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무엇이 그렇게 말하게 만들었습니까?
환경 때문입니까? 여러분 자신 때문입니까?
바울의 상황
빌립보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낼 때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갔을 때는
가택 구금 상태에 있었고,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며 성경을 가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네로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변하면서, 바울은 가택 구금의 상태에서
로마 시위대 안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되었든지,
아니면 가택구금에서 풀려나서 다시 체포되어
로마 감옥에 있게 되었는지, 어쨌든
지금 바울은 재판 결과에 따라 석방될 수도 있고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을 오해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와 바울을 대적하고(빌 1:15, 17)
바울이 전한 복음에 원수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빌 1:18~19).
또한 자신이 개척한 빌립보 교회 안에
분열과 갈등이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듣고,
믿음이 약한 자들 중에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면
바울의 하나님이 로마의 신보다 약하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빠진 사람도 생겼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무슨 말을 가장 먼저 했을까요?
무슨 말을 주로 했을까요?
바울은 이때 가장 먼저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가장 자주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뻐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란 단어가 특별히 많기에
‘기쁨의 서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참 놀라운 일입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으면
기쁨, 감사란 말이 그리 놀랍지 않으나,
로마 감옥과 그를 둘러싼 너무나 힘든 상황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감사와 기쁨이란 말을 할 수 있고, 어떻게
그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는 로마 감옥이라는 가나안 땅을 기쁨과 감사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모시킨 것인데,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의 상황만 보고서는 알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취한 바울의 태도,
바울의 믿음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응
바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환경에 처하게된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유명한 랍비로서 지위도, 명예도 있었는데,
갈수록 더 힘든 환경에 빠져 들다가
마지막에는 로마 감옥이란 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내면은 처음에는 갈등 속에 있었는데,
갈수록 더 깊어지고 더 기뻐했습니다.
이런 역설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 비결은 바로 그의 믿음의 응답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믿음은 교리를 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지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것,
그것이 믿음의 실체였고,
그 믿음이 이런 역설적 기쁨과 감사를 낳았습니다.
곱셈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어진 수가 있습니다.
그 수에 무엇을 곱하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집니다.
아무리 큰 수가 주어져도 마이너스로 곱하면 마이너스가 되고,
아무리 작은 수가 주어져도 플러스로 곱하면 플러스가 됩니다.
주어진 상황에 내가 플러스의 말을 곱하느냐,
아니면 마이너스의 말을 곱하느냐,
그런 나의 응답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주어진 상황에 내가 감사란 플러스의 태도로 응답하느냐,
혹은 불만이란 마이너스의 태도로
응답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또한 달라집니다.
주어진 상황에 예수님처럼 반응하느냐,
인간적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환경과 반응의 함수
우리가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한 해를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한 해 동안 일어난 일들입니까?
한 해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입니까?
둘 다입니다. 한 해는 일어난 일들과
그에 대한 우리 반응이 곱해져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새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새해에 일어나는 상황으로만 이루어집니까? 아닙니다.
상황과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이 곱해져서 만들어집니다.
새해의 일들과 만남들과 사건들만이 새해를 만든다면
삶은 그냥 운명이고 재수입니다.
새해 좋은 일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고,
저도 그것을 바라지만,
그것이 곧 새해를 만드는 전부는 아닙니다.
내 능력 밖에 있는 것,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내 영역이 어차피 아닙니다.
무엇이 내게 올 것인지 하는 것은 다 맡기고,
무슨 일이 주어지든지, 그에 대해서 바르게
반응함으로 새해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내가 무슨 행동으로, 말로 곱하느냐?
플러스로 곱하느냐, 마이너스로 곱하느냐?
이런 나의 응답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기 때문에,
새해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어떤 플러스 행동,
어떤 플러스 말로 곱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바울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우리는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감사의 곱하기
바울은 여러 겹의 어려움들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빌립보 교회의 내적 불화의 문제였습니다.
아마 유대주의자들이 잘못 가르친 교리 때문에
교회 안에서 논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바울에게 매우 크고 힘든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바로 책망할 수 있었고,
또 바로 질책하며 분노할 수도 있었습니다.
필요할 때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그문제에 때로 함몰되어 균형을 잃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진이나 그림을 볼 때
사진 안의 사물을 배경과 함께 보는 것처럼,
문제를 볼 때도 그 배경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현재 문제점만을 보지 않고,
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배경 속에서 그 문제를 봅니다.
또한 문제만이 아니라 문제가 없는 점도 함께,
부족한 점만 너무 크게 보지 않고 좋은 점도 함께,
약점만이 아니라 장점도 함께 본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 하나만 보지 않고 주위를 넓게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문제를 먼저 감사로 반응합니다.
우리도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내다 볼 때,
여전히 풀지 못한 현재의 문제만 볼 수 있습니다.
그 문제만 너무 크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넓게 보는 것,
주위의 상황과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좋은 일도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보면서 문제에 감사로 대응하십시오.
좋은 면을 보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합니다.
이럴 때에는 제일 먼저 현재의 문제가 생각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립보서 1:3).
그는 지금 감사의 생각을 합니다.
지금 바울은 현재 문제만 보지 않고
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에 대해서 먼저 감사로 대응합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빌립보서 1:5).
바울이 전도여행을 갈 때
주로 유대인 회당을 찾아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유대 회당은 미국 한인교회들처럼,
종교적 기능만이 아니라 직업 알선도 하고
여행자를 위한 여관 기능도 하는 사회적 기능도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주로 숙소를 얻고
또 그곳에 찾아오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게 전도하고,
당시 유대교에 매력을 가지고 유대 회당에 다닌 이방인들,
성경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그런 유대 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안식일에 기도 모임을 연다는 강가로 가는데, 그곳에서
자주 장사 루디아란 재력있는 여자 무역상을 만납니다.
그녀가 바울 일행을 초정하면서 그녀가 믿게 되고,
그녀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됩니다.
이 교회가 바울의 전도 여행의 발판이 됩니다.
그들은 첫날부터 복음의 일에 참여했습니다.
이런 교회의 과거의 모습을 생각하니,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제 세월이 지나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감금됩니다.
처음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는데,
그 셋집을 위한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그 경비를 빌립보 교회가 부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전도여행의 첫 날부터 이제까지
그들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니
또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위한 일에 처음부터 이제까지 참여했습니다.
이 일은 그들이 행한, 참 착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서
그런 마음과 동기를 주셨기 때문에 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착한 일은
하나님이 그들 속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그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면,
도중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루실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이러한 빌립보 교회의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니
더욱 감사함이 생겨났습니다.
지금 바울은 교회의 현재 문제만 보지 않고,
그것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배경 속에서 보니,
안타까운 생각보다 감사한 마음이 먼저 생겨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어진 문제에 먼저 감사로 반응한 것입니다.
좋은 점, 남은 점을 먼저 보라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무슨 말이 가장 먼저 나올까요?
이 질문을 물었습니다.
그 답은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먼저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을 크게 보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문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현재 문제만 보면 그 문제가 더 크게 보이고,
그 문제가 주는 감정에 함몰됩니다.
감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빠지면 안됩니다.
문제를 과거, 현재, 미래란 큰 배경 속에서 보십시오.
그것만 생각하지 말고 과거의 은혜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란 먼 지평선을 배경으로 보십시오.
그리고 먼저 감사하십시오.
지금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주된 반응이 분노나 후회이면 안됩니다.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라는 플러스로 내 주어진 환경에 계속 곱하기를 하십시오.
그렇게 하려면 감사할 것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문제와 어려움만 크고 자세히 볼 것이 아니라,
과거에 주어진 은혜, 현재 내게 남아 있는 것들,
미래에 주어질 것들을 크고 자세히 보도록 노력하십시오.
평범하게 보이는 일들도 자세히
잘 들여다보시고 당연한 것들로 여기지 마십시오.
감사 색맹이 있답니다.
아예 감사란 색깔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감사 약시가 있습니다.
감사를 보고 싶어도 못보는 사람입니다.
감사 근시는 눈 앞의 감사만 보이는 사람입니다.
감사 원시는 남의 감사는 잘 보이는데
자기 감사는 안보이는 사람입니다.
감사 난시는 감사는 보는데 간신히 보이고
영 선명치 않은 사람입니다. (이의용, 감사일기,64)
좋은 것을 찾아보려고만 하면,
얼마나 감사 조건이 많은지 모릅니다.
과거에서 찾을 수 있고, 현재에서도 찾을 수 있고
미래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로 반응하면서 감사로 곱하기를 하십시오.
한 해를 보내면서 감사 리스트 50개만 작성해 보십시오.
감사로 모든 상황에 곱하기를 해보십시오.
갑자기 행복해집니다. 부자가 됩니다.
연말을 TV와 동행하지 마시고, 부부간에 가족 간에
시간을 내어 감사할 것을 서로 헤아려 보십시오.
2012년도의 감사제목을 만들어 보십시오.
아마 멋진 한 해의 열매요 자산이 될 것입니다.
기도의 곱하기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현재 문제에 대해서
먼저 좋은 점을 찾아 감사했습니다.
감사로 곱하기를 하면서 문제를 풀어갔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는 부족한 점이 있으면 금방 그것을 염려거리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짐으로 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부족한 점, 어려운 점을
염려제목이 아니라 기도제목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염려제목들을 새해에 기도제목으로 만드는 일을 하십시오.
그리고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새벽기도회에 참여하면서,
주어진 말씀을 들으면서,
꼭 넣어야 하는 기도제목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감사로 곱하고, 기도로 곱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사랑이 풍성해지도록.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현재 문제를 품고 기도했는데,
그러면 그 내용은 무엇일까요? 먼저 이것을 기도했습니다.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립보서 1:9).
빌립보 교회에 부족한 것이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랑 없음을 꾸짖기만 하지 않고,
그들의 사랑이 풍성해지도록 생각날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풍성해집니까?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해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상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상대가 무엇에 열등감을 느끼는지,
상대가 무엇에 상처를 받는지,
상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런 지식이 있는 만큼 사랑도 풍성해집니다.
이런 지식이 없으면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으로 풍성하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총명으로 풍성해집니다.
총명이란, ‘인싸이트’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보는 통찰력입니다.
우리가 통찰력을 가질 때 그제서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받아야 할 상대 속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한다는 사람, 자기 자신 속의 문제입니다.
사랑한다는 내가 얼마나 사실은 자기중심적이었는지,
얼마나 속이 좁은지,
이런 것을 보는 총명이 있는 만큼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우리에게도 이 기도제목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최선을 분별하도록.
이어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빌립보서1:10)라고, 분별력을 위해 기도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교리문제로 서로 갈라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리로 논쟁하면서, 그들은 진리를
잘 분별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교리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실수를 할 때가 많습니다.
사소한 것을 붙잡고 있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선을 붙잡고 있다가 최선을 놓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것과 지극히 선한 것,
덜 중요한 것과 더 중요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허물이 없도록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립보서 1:10).
진실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 앞에서 정직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말씀의 빛으로 비췸을 받아야 합니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자신에게 진실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매일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있어야 진실하게 됩니다.
영적 일기나 큐티가 우리를 진실하도록 해 줍니다.
또 허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허물이란 남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내 말과 행동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실족하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남이 손해 보거나 실족하지 않는 것,
디딤돌이 될지언정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
이것을 기도합니다. 자신과 타인을 위한
이런 기도제목이 얼마나 중요한 기도제목입니까?
의의 열매가 넘치도록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립보서 1:11).
여기서 ‘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의의 열매’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 행동, 삶’을 뜻합니다.
우리는 삶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실 노력한다고 잘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실망합니다. 하지만 포도 열매는
포도 가지가 애를 쓴다고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됩니다.
즉 주님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느냐?
얼마나 그분의 은혜와 말씀이
내 삶에 흐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 있으면,
삶의 나무에 의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가 달립니다.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생명이 흘러넘치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습관에 매인 삶이 아니라 흘러넘치는 삶.
바로 이런 삶이 맺는 선행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 기도입니까?
비움과 채움이 있도록
바울의 기도제목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좋은 환경을 위한 기도보다,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위한 기도가 더 많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새해 기도제목을 작성할 때 무슨 제목을 꼭 넣어야 할까요?
해결해야 할 상황이나 문제를 위한 제목을 담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내 손에 달려 있지 않으니 다 맡기고,
내가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믿음으로 반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제목을 빼지 마십시오.
모든 상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분별하는 분별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도 꼭 넣으십시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이 되고,
타인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
조금이라도 남에게
덕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십시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메마르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꼭 넣으십시오.
밖에서 무엇을 늘 채워 넣어야 하는 공허하고
메마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안에서 밖으로 흘러나오는 삶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하십시오.
의의 열매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기도입니까?
덧붙이면, 새해는 매일 비워야 할 것을 비우고
채워야 할 하늘에 속한 것으로 채우는 삶,
그래서 비움과 채움을 통해서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제목도 넣으십시오.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향하여
좋은 일을 찾아서 더 많이 감사하십시오.
그리 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염려하지 말고 기도제목으로 만드십시오.
이렇게 감사하고 기도하십시오.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염려할 것이 많은 세상입니다.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어떻게 해야 평강으로 채워진 심령이 될 수 있다고합니까?
감사함으로 너희 구할 것을 아뢰라고 합니다.
감사와 기도가 우리의 지각을 넘어선 하나님의 평강,
하나님의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성도 여러분, 새해가 옵니다.
무슨 일이 오든지 감사와 기도로 반응하십시오.
감사와 기도란 플러스로 곱하면서 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 서울영동교회 정현구 목사의 설교문(2012.12.3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