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1일 부활주일 설교 >
또 다시 부활로
성경 / 갈라디아서 1:6-10
또 부활절이 돌아왔습니다.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여의도에서는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다고 떠들썩, 지역마다 지역 연합예배를 드린다고 떠들썩 합니다. 연례 행사 치루기에 바쁜 모습들입니다. 한국의 개신교 역사상 부활절이 참된 부활의 의미를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심어주었던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가 민족의 고난에 함께 하였던 시절에나 부활의 의미가 소중하게 다가왔을 뿐, 해방 이후 이 승만 정권 치하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지금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 까지 교회는 민족과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에는 무관심하였기에 부황의 의미도 새삼스러울 것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특히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난 뒤에야 오는 부활은 더 더욱 이야기 하기 어려웠을 태고, 그래도 고난을 얘기 안할 수 없으니까 우리의 삶과는 멀리 떨어진 2000년전 예수님이 받은 고난 얘기만 하고 있었던 거죠?
예수의 고난과 우리 민족과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을 조금이라도 결부 시키려 하면 교회가 앞장서서 빨갱이 운운하며 정부의 입장을 옹호했습니다. 지나온 현대사에서 부활절 이야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당시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회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일으켰던 1973년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있었던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 삐라 사건입니다. 유신 시대의 개막 이래 유신이 민족과 민중의 미래를 압살하는 폭거라는 지적을 교회가 맨처음으로 한거죠. 부활의 참된 의미가 확연히 들어났던 사건이었습니다. 그 일후 NCC를 중심으로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암흑시대에 참 부활을 꿈꾸는 운동들이 힘차게 일어났고 우리 민족과 민중들의 가슴속에 부활의 희망을 제공하였습니다.
참된 부활 신앙의 깃발을 우리의 현대사 속에 꽃은지도 벌써 20여년이 흘러 갔습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는 격동기를 살아왔고 참으로 많은 고난을 짐져왔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 우리역사는 많이 진보했고 민중들의 고난은 눈에 띠게 갑ㅁ소되었습니다. 민족 통일의 기운도 점차 드세지고 있습니다. 이쯤이면 우리가 져야할 고난의 짐을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마음이 들 시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 사후 대략 20년정도가 흐른뒤 바울에 의해서 보내진 편지글 입니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교회(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들 입니다. 본문에 비추어 보면 수신 교회들에 다른 복음, 즉 거짓 복음이 들어와 교인들을 미혹시키고 있는데 참된 복음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며, 그것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게된 배경을 좀더 자세히 살펴 봅시다.
그리스도의 해방복음의 깃발을 든지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교회는 크게 양분되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정통파라 자처하며 타협주의의 길을 가는 그룹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방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비타협적인 경향성을 가진 교회 그룹 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유대교와 타협하여 율법을 받아드리고 로마제국과의 대결도 회피하며 적당히 복음을 윤색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양 그룹의 지도자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게되고 대립과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전자의 지도자가 베드로라면 후자의 지도자는 바울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1,2,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이방인 지역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들교회에 예루살렘교회의 주장들이 들어와 복음의 참된의미를 희석시키고 타협과 편안을 추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것을 전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바울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전투적으로 대항하며 참된 복음을 회복하도록 격렬히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사도권이 정당한 이유와 복음을 위한 자신의 헌신을 증거로 오직 하난밖에 없는 복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1) 먼저 바울은 6절에서 그렇게도 속히 복음을 떠난자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불과 20년 세월만에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복음의 참된의미를 왜곡시켜가며 기득권 세력에 협조하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이나 지금 우리 상황에서 집권당에 협조하는 NCC 인사들이나 별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2) 누구든(하늘로 온 천사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받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과거에 어떤 고난을 받았고, 어떤 훌륭한 일을 했을찌라도 지금 현재 다른 복음을 전하고 백성을 미혹케 한다면 주께서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항상 현재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이제 하나님을 기쁘게할 것인가,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길 원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일이 하나님과 배치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광명시 보궐 선거에 민자당 공천을 받은 사람이 손학규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70년 초 이 시대 민주화 운동의 지평을 열었던 수도권 특수지역선교회 실무자 출신으로 오랜동안 재 야에서 일해왔던 사람입니다. 인물로 보면 깨끗하고 참신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들어올렸던 참된 복음의 깃발을 거둬드리고 다른 복음을 쫓아갔습니다. 그의 당선을 돕기 위해 예장은 인명진, 기장은 권호경, 감리교는 김동완 목사가 맡아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과 1-2년 사이인데도 격세지감을 갖게 합니다.
4) 다른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좋게 하려고 따라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 일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우리가 궁지에 몰리지 않았난 하는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아니 세상적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는 분명히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바울이 처했던 상황도 우리와 흡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모범을 통해 큰 힘을 얻습니다. 바울은 승리했고 바울의 가르침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확실하게 대변했으니 말이죠?
우리는 80년대라는 격동기에 민중교회를 세우시고 민중교회에 허락하신 해방과 구원의 복음을 꼭 붙들고 지켜야 합니다. 어둠은 빛이 오면 사라질 뿐입니다. 이 소중한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민족과 민주의 가슴에 다시 불질러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기쁨으로 맞이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또 다시 부활을 향해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