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 시인의 시 창작법 29
하얀 꽃잎 한 장 떨어진 싱크대_푸른 딸기 속에 있는 붉은 깻잎을 깨물다_나를 믿고 가는 길
송 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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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二十九, 위의가 그윽하다
『수보리야,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여래가 혹 온다거나 간다거나 혹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하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바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니라. 왜 그러냐 하면 여래는 어디로 조차 오는 바도 없으며 또한 어디로 가는 바도 없으므로 여래라 이름하는 때문이니라.』
* 금강반야바라밀경/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집 역/선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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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왜 보느냐 그런 옛 선사의 말씀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하는데 손가락을 보게 되면 달이라는 본질의 목적지에 도착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길을 잃고 손가락만 보다가 돌아오게 되지요. 달(시)의 본질에 가닿고 싶으면 달(시)라는 본질을 보아야 합니다. 손가락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에 빠져 그게 시인 줄 알고 그것을 시라고 생각하면 달(시)의 세계에 가닿기가 어렵습니다.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손가락을 바라보고 달을 보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달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허공에 늘 달이 떠 있는데도 말입니다. 시의 본질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소처럼 묵묵히 열심히 시를 놓지 않고 생각하고 쓰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갈 뿐입니다. 어두운 숲길을 헤치고 나오면 환한 보름달을 만날 수 있듯이 간절히 온 몸과 마음의 정성을 쏟아서 열심히 가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달(시)이라는 깨달음이 와서 달(시)의 본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
새벽 싱크대에 하얀 꽃잎 한 장 떨어져 있네 꽃잎아 너는 어디서 왔니 꽃잎의 눈동자에 눈물이 반쪽 맺혀있네 반쪽은 어디 간 거니 찾을 생각이 없다고 그래 찾지 마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반쪽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야 반쪽, 반쪽, 각자의 길을 알아서 잘 찾아 가는데 왜 울 아빠는 걱정했지 이렇게 잘 가고 있는 반쪽들을 울 아빠는 울보였어 담배도 피웠지 나도 가끔 아빠처럼 담배를 피우고 싶어 그렇지만 안 피워 왜냐고 왜냐면 나는 폐가 없거든 바로 죽어 연기가 내 몸을 질식시키지 이미 오래전에 질식되어 죽어있지만 그러면 넌 좀비니 나도 몰라 흥미진진하네 너에게 마구 호기심이 일어 그렇다고 너에게 나의 소중한 반쪽을 쉽게 내어주지는 않아 누가 달래 줘도 안 받아 내가 갖고 있는 반쪽만 해도 지친다구 네가 갖고 있는 반쪽이 너라는 뜻이니 응 나도 그래 누구의 반쪽이 되던 누구의 반쪽이든 내가 그 반쪽의 반쪽이든 반짝반짝하게 살기엔 이미 글렀어 나는 반쪽이라도 있는 게 눈물 나게 고마워 이 반쪽이라도 없었다면 오늘 아침 싱크대에서 방금 자고 일어난 너의 하얀 오얏꽃잎 같은 잠옷과 부스스한 초록 눈동자 반쪽 옆에 붙은 초록빛 눈곱 반쪽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야
송 진 _ <오얏꽃잎 한 장의 밀도>
지금 쓰는 게 바로 시가 되도록 스스로 문장을 단련해야 합니다. 그 단련의 방법은 첫째도 쓰는 것 두 번째도 쓰는 것 세 번째도 쓰는 것입니다. 쓰다보면 언어의 결핍, 사유의 결핍, 상상력의 결핍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부족한 것을 찾아 또 공부하고 읽고 쓰고 또 공부하고 읽고 쓰고 그렇게 세월이 가면 부족했던 시의 틈이 촘촘히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밀도가 큰 시가 탄생하는 순간이지요. 부피가 크고 밀도가 작은 시보다 부피가 작고 밀도가 큰 시가 좋은 시입니다.
◉문장 연습 :밀도를 생각하며
오이가 있다
-오이가 죽었다
-오이가 냉장고 속에서 죽었다
비록 오이는 죽었지만 오이가 기르던 토끼들은 빨간 눈망울을 등대불처럼 깜빡이고 있다
오이 속에는 아버지가 피우던 담배들이 씨앗처럼 박혀있다
‘오이’와 ‘감자’에서 연상되는 언어 찾기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정리해보기
◕오이
-오이 껍질은 감은사지 빈 절터 자리이다.
(어두운 쟁반 위에 오래 머물러있던 오이 껍질은 눅눅한 채 굳어져 굳은살이 생겼다 굳은살처럼 만져도 변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자리, 텅 비어져 있는 자리, 그 자리가 감은사지의 빈 절터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감자
- 감자의 혀를 씹었다 배가 고파 급하게 먹던 내 혀가 감자의 혀를 뱉었다 얼마나 아픈지 눈물물이 난다. 밤에 침대에 누워 얼음을 오물거리며 생각해보니 감자도 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감자는 고마운 사마리아인이다.(감자는 굶주린 사람을 배부르게 해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2017년 2월 1일 (음력 1월 5일) 저녁 일곱 시 무렵 달(초승달)과 화성과 금성이 밤하늘에 일직선상에 놓였습니다. 그 장면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어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고 신문들도 그 신비로운 모습을 선명하게 지면이나 인터넷에 올려주었습니다. 달이나 별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우주라는 신비로움은 우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밤하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늘은 늘 변함이 없이 그대로입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구나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구나 하늘은 그런 생각조차 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영원한 대자유인이지요. 어떤 생각도 없이 텅 비어있음이지요. 맑아졌다 흐려졌다 하는 것은 구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기 때문 하늘은 늘 그대로 하늘일 뿐입니다. 구름에 가리어진 나의 진면목眞面目을 찾아가는 길. 시를 쓰다보면 어느새 원래의 ‘나’ 를 찾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저런 분별심을 내려놓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안히 호흡하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전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집착과 망상에 시달리던 ‘나’는 누구이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편안해지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요? 시詩는 그렇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시>
그 곳은 파스타와 수제 햄버거를 잘 합니다
그 곳은 일곱 종류의 치즈를 넣은 고르곤졸라 피자를 잘 합니다
그 곳은 시원한 라임 생맥주와 바삭바삭 닭날개 튀김을 아주 잘하는 곳입니다
그 곳은 젖은 물휴지가 테이블마다 놓여있습니다
그 곳은 네덜란드 국경이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그 곳은 만년필로 서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 곳은 어제가 반복되는 곳입니다
비틀스의 Yesterday 는 없습니다
블랙사바스의 She's Gone 은 있습니다
은는이가 은는이가 은는이가 원을 빙빙 돌리는 마녀와 요정 사이에 끼여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눈이 내려도 눈을 먹지 않습니다
그 곳은 비가 내려도 비를 먹지 않습니다
수제 햄버거와 수제 함박스테이크와 수제 스테이크를 화이트 깃발 속으로 실어 나르는 금빛마차는 가을햇살 속에 금빛으로 잘 익은 여물을 먹지 않습니다
거기는 요
거 기는 요
거 기 는 요
모두 설 설 기어 다니며 시체의 살갗을 오븐에 구워먹는 오래된 전통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송 진_「설날, 人肉의 나라」
◈ 사물을 다르게 보는 연습
언어는 언어마다 언어의 힘과 언어의 지혜와 언어의 해박함과 언어의 해학과 언어의 진실을 스스로 몸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자입니다. 항상 정신을 얼음물 속에 알몸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어야 그 언어의 양면 칼날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무의식 속에서도 꿈속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언어는 늘 존재합니다. 공기처럼 존재하는 이 무한한 힘의 언어를 어떻게 끌어당길지 어떻게 내버려둘지 호흡을 조절해야겠습니다. 그런 호흡들은 시의 연과 행으로 나뉘어져 나타나기도 합니다. 띄어쓰기를 뛰어넘기도 합니다. 인간이 만든 문법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시각, 항상 깨어있는 시정신, 시를 쓰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그런 보이지 않는 에너지들이 하나 둘 모여 어느 날 시, 분, 초에 (‘갑자기’ 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직관력, 예지력, 영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빛의 도구로 시를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후에도 환경에도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를 쓰는 전천후 시인이 되고 싶다면 언어와 사물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다 다르게 보는 시각을 항상 가슴 속에 서늘한 비수처럼 지니고 다녀야겠습니다.
시로 가는 길이 처음에는 시도 그런대로 잘 써지고 수월해보이나 해를 거듭할수록 의문이 생기고 뜻대로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시로 가는 길은 인내심을 기르는 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왔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크고 작은 습관들을 고치는 길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시는 새로 난 길이 아니고 원래 있었던 길이고 앞으로도 이어질 길입니다. 욕심을 낸다고 해서 시가 금방 찾아오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상相들을 흐르는 물 위에 내려놓고 홀가분해 질 때 시가 다가옵니다. 욕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흐르는 물 위에 내려놓는 시간을 자주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시를 쓰기에 좋지 않은 습관들이 사라지고 스스로의 모순을 관찰하는 시각이 생겨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동자가 열릴 수 있습니다. 시는 시시각각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눈동자입니다 ‘나’를 믿고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시를 쓰다보면 어느새 시의 마음이 훌쩍 자라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직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 그게 ‘시’라면 이 봄에는 시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가시길 바랍니다. 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성을 쏟은 만큼 결실을 거둘 수 있게 해주는 정직한 흙이고 대지大地입니다. 부디 이 봄에는 시詩에 상相없는 공空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시詩도 상相도 공空도 모두 이름 일 뿐입니다.
<시>
손길을 내밀어
입술을 쭈빗거려
탈동백 탈매화 탈장미
자전거 쌩- 지나가고
탈국화 탈단풍 탈절개나무
잠자리가 조용히 창을 두드릴 때
봄은 살며시 방안을 기웃거리다 간다
탈향나무 탈회화꽃 탈꽃무릇
하얀 종이에 굶주린 언어의 댄서가
투명한 비옷의 모자를 벗을 때
시간은 자정너머 두시
누가 갈까
누가 올까
탈올빼미 탈올가 탈갈가
푸른 혓바닥이 공기와 키스를 한다
구금의 봄을 맞이하는
현 타는 라듐의 마법자 같은
갈색 금고안의 수취인들
송 진_「맥문동이 시들어간다」
주변에 시들어가는 것에 관심을 가져봅니다. 왜 시들어가는지, 어떻게 시들어가는지, 시들어가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시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사물, 사람, 자연들을 마음껏 상상해보고 글(시)로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 보는 것의 폭력, 말하는 것의 폭력, 자는 것의 폭력, 먹는 것의 폭력, 입는 것의 폭력, 듣는 것의 폭력에서 ‘나’를 잊지 않고 ‘나’를 지키고 ‘나’를 깨달아간다면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생명체들의 아픔들도 같이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머지않아 찾아오겠지요. 시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시이지만 또 그렇게 대단한 힘을 지닌 시이기도 합니다. 시는 자신이 그저 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나라고 부르거나 불리지만 나가 없는 나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