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3:1-22> 떨기나무와 야훼 / 너와 함께 있으리라/ 스스로 있는 지 / 여호와
출3장은 모세가 소명을 받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소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언약을 이루는 이 이루기 위함입니다.
떨기나무와 같은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셔서 함께 하심으로 언약을 성취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1. 떨기나무와 같은 이스라엘, 모세,우리들의 모습
모세기 양 떼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하나님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나오는 불꽃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모세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 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1-3절) 하면서 다가갑니다.
떨기나무를 막12:26절, 눅20:37, 행7:30,35절에서는 “가시나무 떨기” (바토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가시가 있는 덤불 형태의 관목 (주줄기가 분명하지 않고 땅 속에서부터 줄기가 갈라져 나오는 형태의 나무)을 말합니다. (영어로 bush). 그러니 자연적으로는 불이 붙어 타기가 쉬운 나무가 분명한데 타지 않는 놀라운 일이 모세 앞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임하셨을까요?
가시가 있는 떨기나무는 종노릇 하는 이스라엘의 백성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힘이 없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불이 붙으면 그냥 타버리고 재로 남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떨기나무에 뿔 꽃의 모습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신 것입니다. 불꽃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임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불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신명기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히브리서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그러나 여기서는 소멸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절)고 하신 것입니다,(신을 벗으라는 의미- 하나님의 종이되라는 것, 새로운 사역의 신발을 신으라는 것)
어떤 신학자는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은 “쇠 풀무불”과 같은 애굽에서 고된 종노릇 하는 이스라엘 형편을 나타내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신4:20).
[신명기 4:20]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아무튼 타서 없어질 떨기나무와 같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타지 않고 보존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시고자 한 것이 분명합니다.
▶ 우리들은 모두가 다 가시가 있는 떨기나무와 같습니다. 하나님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타서 없어지고 재만 남을 존재들인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자들은 실제 지옥불에서 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출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다른 떨기나무는 타서 없어지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떨기나무는 타지 않는 것입니다 (지옥불).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 임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 스스로 있는 자의 하나님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 / 하야, 야훼,여호와
모세가 하나님께 대답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보낸 분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리이까? 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은 자기의 영원한 이름, 대대로 기억할 칭호를 가르쳐 줍니다 (14-15)
그게 바로 “여호와. 야훼”입니다.
원어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 영어로는 “I am who(that) I am“ ”나는 나다“, ”나는 곧 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있는 자이다“(70인역, 에고 에이미 호 온)로 해석됩니다. 히브리어 기본 어근은 ”하야“(~이다)의 뜻입니다.
”에흐예“의 기본 어근인 ”하야“에서 우리가 부르는 ”여호와, 야훼“가 나온 것입니다. (YHWH, 신성4문자, 손을 보라 못을 보라) / 요드-손, 바브-갈고리,못)
이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자존자라는 의미이며, 존재의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 참고로 여호와라는 이름이 창2:4절에서 처음 등장하고 창4:26절 에노스 시절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창12:8절에 아브라함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출6:3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엘샤다이)으로는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야훼,예호봐)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이 모세 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라는 이름의 속성으로는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옥스퍼드 주석)
그러면 출애굽기에서 나타난 ”여호와“의 속성은 무엇일까요? 출6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①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속의 하나님 입니다(출6:6) ②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하나님 입니다(출6:7) ③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출6:8)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하실 여호와의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여호와의 칭호입니다 (창3:15).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가르쳐 준 것은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과 떨기나무와 같은 우리들은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떨기나무와 같을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스스로 있는 속성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출3:12)
3.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 모세야 모세야!
1)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이름을 아시고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찾아오셨습니다.
사무엘에게도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3:10]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3: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아시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전부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를 알고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 그 이름으로 구하는 것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양들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요한복음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반대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것입니다.
[출애굽기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구원받는 나사로는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부자는 없습니다 (눅16장). 부자의 이름이 없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당신의 이름을 이마에 기록해 주실 것입니다. 이름으로 인치는 것입니다. 또 그의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3: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반대로 사탄의 이름 곧 사탄의 인을 받으면 사탄의 소유가 됩니다 (계 13:16)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알고 불러주시며 당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인쳐 주시는 것은 구원 받은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이름이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고 불려져야 합니다.
2) 또한 우리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불러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아는 자를 높여준다고 했습니다.
[요엘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시편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러나 망령되게 불러서는 안됩니다 (출20:7). 더렵혀서도 안됩니다 (겔10:14, 말1:12).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어디로 데리고 가고자 하는 것입니까?
4. 출애굽의 목적지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큰 그림을 모세에게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주께 사용되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계셨고, 부르짖음을 듣고 게셨고, 그들의 근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출3:7)
그래서 본격적으로 개입하셔서 내려오셔서, 건져내시고, 인도하시고, 데려가시길 원하십니다 (출3:8)
스스로 계신 그 큰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오셔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은 어디입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인데, 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이 사는 땅입니다 (7곱족속은 기르가스 족속 포함, 신7:1)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재물도 가져 나가게 하시겠다고 다시한번 말씀하십니다 (창15:14, 출3:21-22)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이 차지하여야 할 가나안 땅은 어디일까요?
① 먼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이 이미 점령해 있는 우상숭배로 죄가 관영한 이 땅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을 믿게 하여 영적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다 쫓아내지 못한다면 그들과 함께 살아도 거룩한 구별을 통하여 썩이지 않는 것입니다.
② 두 번째는 우리들 마음의 땅입니다.
우리들 속에 가나안 일곱 족속에 역사하는 더러운 영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각 족속별로 대표적인 영이 있습니다)
마음의 땅을 점령해야 합니다. 우리들 속에 어두움의 것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몰아내야 합니다. 마치 가나안 족속을 멸절시켜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재물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떨기나무와 같은 우리를 스스로 계신 크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모세를 찾아오셔서 언약을 이루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이름을 부르시면서 찾아오십니다. 각자의 출애굽의 역사를 위하여 말입니다. 마침내 마음의 가나안 땅, 이 땅의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모세처럼 우리가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모세처럼 버티는 부분도 있겠지만 (4장) 결국에는 능력 받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애굽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모두 모세처럼 부름 받고 능력 받아 영적 가나안 땅을 점령하시는 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세의 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