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심미적 거리와 長江의 도도한 물결
편집부에서 연재원고매수를 줄여달라고 요청이 왔다. 원고를 쓰다보면 길어지는 내 습성이 제동이 걸렸다. 일전에 만난
김남조선생님은 내 시집을 받고 시가 너무 길다고 하였다. 긴 글은 할말이 산적한 탓이지만 실용위주의 현대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전화나 메일도 짧을수록 좋다. 시도 짧을수록 좋을까? 시간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한다. 정보량은 삼 년마다 배가되고 인구와 상품량도
가파르게 올라간다. 자연은 일년에 만종이 멸종하는 겨울인데 문명은 뜨거운 여름이다. 다양한 기호와 상품의 수용은 짧은 시간을
요구한다. 단위시간들의 집합이 개인의 일생이라면 단위 시들의 집합이 한 시대 시의 유행이겠지. 이 시대의 시들 중에서 병과 죽음을
다룬 시들로 연재 글을 시작한다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햇살
오후가 되면
서향의 입원실에 햇살 몇 줌 들어와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는 슬그머니 침대에서 일어나
햇살을 따라
발길을 이리저리 옮긴다
순간,
눈부신 햇살,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인생처럼
오늘도 그렇게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기다려지는 햇살 몇 줌의 사랑
- 빅명용 (시와상상 2008.봄호)
아버지, 내 임종을 지켜주세요
아버지 내 임종을 지키시어 천 일을 앓아도 나, 죽지 않았네 아버지 내 임종을 지키시며 화분을 들이시네 입원하면 풍란
퇴원하면 철쭉 입원하면 풍란 퇴원하면 개나리 아버지, 나는 숯부작이어요 아버지, 나는 자라다 만 나무이어요 아버지, 나는 당신의 돈
먹는 기계라지요,
아버지 내 임종을 지키시어 나 죽을 수 없었네 복수는 나의 것 아무것도 내 아버지를 죽일 수 없을 것이오 친절한 아버지 내
방에 썬팅을 하시고 쌘드백을 달아주시고 내가 왜 죽어 내가 왜 죽어 방바닥 기어다닐 때마다 화분 뿌리에서 벌레가 기어나왔네
아버지 나는 이제 병으로 시를 쓰지는 않을 것이오 임종의 임종을 만들지 않을 것이오 서른이 되는 해에 나도 아버지가 될 것이오 아버지 내 임종을 지키시어 차마 충혈된 내 눈 속으로 못 들어오시어 꽃나무 속에 숨어사는 벌레가 되었네
-박진성 (시집 아라리, 랜덤하우스)
박명용시인은 동아일보 해직후 전전하다가 뒤늦게 학위를 받고 대전대학교 문창과를 개창한 시인이다. 『시와 상상』 잡지를
창간하고 대전문학관추진등 활동이 많았던 시인인데 작년에 정년 후 지난달 폐암으로 영면했다. "일산 국립암센터에서"는 햇살로 은유한
생명이 꺼져가는 아픔을 그려냈다. 눈부신 햇살(목숨)은 "잠시 머물다/떠나가는 인생처럼/오늘도 그렇게 슬그머니 사라진다".고
말한다. 단순한 시도 극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설정하면 보석같이 빛난다. "오후가 되면/기다려지는 햇살 몇 줌의 사랑"같은 메시지도
그런 표현이다. 박진성은 공황장애로 고통받는 시인이다. 첫 시집 『목숨』에 이어 두 번 째 시집 『아라리』도 여전히 병과 죽음에
대한 투쟁과 발작의 서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박진성은 고통의 순간에 " 방바닥 기어다닐 때마다 화분 뿌리에서 벌레가 기어
나왔네"로 자신의 생명의지를 보여준다. 병고의 극한이 독자를 시적 긴장으로 몰고 가는 시편들이 가슴에 아프다. 다음 시집에는 병이
나아서 삶의 기쁨과 긴장이 드러나는 시들로 엮었으면 좋겠다.
여기 모란
웬만하면 한 번 돌아보지 그래, 웬만하면 한 걸음 멈추고 뒤돌아보지 그래, 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저 폭포도 단오하게 휙
떨어져 내리기 전 한 번쯤 멈칫하듯이 웬만하면 한 번 되돌아보지 그래, 잠시 할 말을 잊었을 때 머리칼을 쓸어 올리듯이, 봄이
이미 왔더라도 이추위 잊지 말라고 꽃샘의 바람이 불듯이.
웬만하면 한 번 웃어주지 그래, 저 악보가 오선지를 떠나 음악이 될 때 소리통을 한 번 쿵 울리고 떠나는 것처럼 웬만하면 한
번 웃어주지 그래, 이미 꽃이 진 자리에도 슬쩍 배추흰나비가 잠시 쉬었다 가듯이 웬만하면 웃어주지 그래, 잠시 구두끈을 고쳐
매듯이.
영영 고개를 돌린 이여
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대여
웬만하면
참 웬만하면.
- 성선경 (현대시 2008.5월호)
누
내 안에는 반골의 기질이 없어 어느 반골 시인의 반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데, 그것이 풀의 테두리에 갇혀 살아온
결과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나를 뒤져보는데, 나 살면서 누구에게도 반항의 '누'끼치지 못해, 온순한 '누'가되어 1,600키로
습지를 건너다 쉽게 악어의 떼밥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내가 만약 반골이라면 내 주위에 반골만 모이겠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어깨동무하고 술이나 마시겠지 그리고 뒤돌아서 흉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인데, 나보다 센 뿔 가진 놈에게 한 방 먹일 준비는 아예 말아야하는 데,
'누' 에게도 뿔은 있으나 '누' 는 '누' 끼리 누를 끼치지 않는다 달밫은 그 따뜻한 광경 비추어줄 뿐이다
누가 죽어 수천의 누 떼가 강을 건넌다는 데,
-문정영(시선 2008.봄호)
병든 시인들의 극한과는 달리 생의 평화와 아름다움에서 희로애락을 주제로 한 시들도 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는 슬픔과
고독도 아름답다. 성선경은 "여기 모란"이라는 화자의 투사물을 놓고 "영영 고개를 돌린 이여/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대여"라고 부른 타자가
모란인 주체를 돌아봐 줄 것을 호소한다. 김영랑과 김소월을 현대시버전으로 합성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옛날과 다른 점은
화자가 "웬만하면 한 번 돌아보지 그래...웬만하면 한 번 웃어주지 그래"라고 시작하는 아이러니 시각에 있다. 문정영은 아프리카의
"누"떼를 보조관념으로 해서 약육강식의 현실세계를 풍자하고 있다. "누"처럼 초식동물로 살아가는 화자(시인의 자아가
투영되었다)가 현실세계에게 패배하지만 그 덕분에 같은 무리들인 "누"같은 동료들이 악어에게 벗어나 무사히 고난의 강을 건너간다.
역시 윤동주식의 겨레희생과 자기성찰이 표현된 현대버전이다. 윤동주의 시를 들여다보면 聖人콤플렉스가 있다. 문정영의 이 시도 같은
주제를 공유한다. 조금만 더 치열하면 윤동주를 따라잡거나 넘어설 수 있다.
쉼표들의 마라톤
웅덩이에 쉼표들 몰려다닌다
그 질척한 문장에는 느낌표나 물음표가 필요 없어
쉼표들만이 쉬지 않고 마라톤을 한다
나도 한 점의 부호였으니
올챙이 꼬리 힘차게 흔들며 질주하는 속도였으니
내 한 생 그 텃밭에 튼튼하게 말뚝 박아야 했음으로
누구보다 먼저 그 위대한 지점에 나를 꽂아야 했음으로
그들의 마라톤 그 절정이 끝난 후
은행나무 수꽃가루 공중을 맴돌다 날아 내린다
풀밭이거나 길바닥 운동장에 쌓여 있다가
빗물에 쓸려간다
지친 꼬리들이 하수구를 따라서
늦은 밤 하수관으로 물 흐르는 소리
흐느낌처럼 울음처럼 쏟아진다
-박분필(정신과 표현 2008.5~6)
동백 변전소
타오르는 불이야 고압적으로 벽을 쳤어 산을 먹어치우고 있어 우듬지 끝에 접근금지 팻말이 매달려 있어 딴전을 피우고 있어
갈라진 가지마다 차고 오르는 동박새의 불꽃을 봐 태양관선은 그저 곁불이야 전압을 올려 시간을 달구던 새들이 알을 낳데 불꽃의
산란이야 바람이 변죽을 울리면 불알은 이리저리 덜렁거려 저 아래 뿌리내린 눈알로 전송되지 완고한 고압선이야 찌지직 스파크 일으키는
어둠은 저항 단위를 몰라 과부하로 옴이 붙어 툭툭 떨어져 나가는 알불이야 암자를 뒤로 한 채 다시 세상을 배경으로 돌아앉았어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바코드가 붙어있지 않은 동백꽃은,
- 김지순(애지,2008.여름호)
박분필은 웅덩이의 올챙이를 통해서 생의 시작과 종말을 그렸다. 그들의 몸짓이 쉼표라는 기호인식은 바라보는 자가 문화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 점의 부호"라는 표현은 인간도
기호로 보는 타자의 큰 인식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생의 욕망은 "내 한 생 그 텃밭에 튼튼하게 말뚝 박아야
했음으로/누구보다 먼저 그 위대한 지점에 나를 꽂아야 했음으로"의 표현처럼 온다. 죽음의 시간은 목적이 달한 올챙이가 "늦은 밤
하수관으로 물 흐르는 소리/흐느낌처럼 울음처럼 쏟아진다"의 표현으로 온다. 유한한 존재의 시간을 강조해서 생과 사의 운명을
긴장으로 처리한 시다. 그러나 죽음을 의식하지 않은 존재자체의 정열을 이야기한 시도 있다. 김지순은 "동백변전소"라는 제목으로
존재란 타자의 에너지변주라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에는 "불꽃의 산란"처럼 타오르는 존재의 기쁨만 드러낼 뿐 죽음이라는
슬픔이 없다. "옴마니 반메훔"은 '연꽃 속에 보석이 있다'라는 티벳밀교의 만트라인데 음양이 합일한 상태의 존재의 열락을
나타낸다. "바코드가 붙어있지 않은 동백꽃은"이라는 결구로 존재란 인간의 문명으로 가둘 수 없는 神性의 顯現임을 암시한다.
詩論, 입맞춤
여자는 키쓰 할 때마다 그것이 이 生의 마지막 입맞춤인 듯
눈을 꼭 감고, 애인의 입속으로 죽음처럼 미끄러져 들어간다는데
남자는 군데군데 눈을 떠
속눈썹의 떨림이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며
풍경의 변화와 춤추는 체온의 곡선까지 꼼꼼히 체크 한다고 하니
누가 시인일까
독자는 여자 편에 설것이고
시인은 당연히 남자 편에 설 것이다
몰입의 바닥에는 시가 없다
불타는 장작을 뒤집어 불길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남자여
불쌍한 시인이여
키쓰가 끝날 때 까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은 시인이거든
그대 당장 독자의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하리
그러나 시인의 발바닥은 완전 연소의 재 한 줌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
-이화은 ,현대시학 2008.5월호)
당신은
- 이 시대의 시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오래 서 있어본 적이 없다.
- 그래도 볼 것은 다 보지 않았나?/- 그건 침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나는 걸어 다녔다.
- 그래도 옷차림이 바뀌지 않았나?/- 패션만 보고 그 사람의 심성이 곱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그건 패션이 아니라 포즈 아닌가?/- 멍청이들한테는 둘 다 똑같다
- 구분하는 방법이라도?/- 그 정도로 성숙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가.
-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쉰다.
-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는 말인가?/- 뿌리가 깊다는 말이다
- 다른 나라의 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는 번역되지 않는다. 수출할 뿐이다.
- 그건 토산품인가? 공산품인가?/- 나라의 명에 달렸다. 애석하게도.
- 불가능하다는 말로 들린다./- 도서관에서 시인을 발견할 수가 없다.
- 책은 많이 보지 않는가?/- 불가능한 책들이다. 상은 많이 받고.
- 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 아닌가?/- 생활력이 강한 시들은 살아남는다.
- 자연을 노래하는 시는?/- 자연도 인간을 생활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당신과 다르다는 걸로 만족한다.
- 그래도 뿌리는 같지 않나?/- 핏줄은 들먹이고 싶지 않다. 대체로 권위적이다.
- 끝까지 남남이 좋은가?/- 우주는 혼자다.
- 왠지 쓸쓸해 보인다./- 충분히 비좁다는 뜻이다.
- 당신 말고 또 누구를 거론하겠는가?/- 지구와 화성. 아니면 벌레와 친구.
- 웃음이 많은 시가 좋은가? 울림이 큰 시가 좋은가?/- 이미 많다.
-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먹은 공기를 말하고 싶다.
- 식성이 꽤 좋은 것 같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토하고 왔다.
- 지금은 어떤가?/- 등이나 두드려 달라. 잘 가라고.
-김언(현대시학 2008.4월호)
독자에게 쓴웃음을 선사하면서 통찰을 제공하는 패러독스는 즐겁다. 시의 상처를 경험한 시인들의 詩作이나 詩論을 소재로 한
시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시작경험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서 보조관념의 설정이 중요하다). 이화은은 詩作의 정서고양을 남녀의 키스로
비유했다. 시의 장악을 위해 이성을 놓지 않아야 하는 시인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진도를 더 나간다면 정사의 마지막 절정에서 射精을
참아야하는 남자의 고통과도 같다. 그러나 작은 고통은 큰 기쁨의 불꽃이고 시인은 독자가 상상으로 느끼는 세계를 몸으로 느끼는
보상을 받는다. 김언의 詩作에 대한 시각과 패러독스도 좋다. 아직 젊은 시인인데 시에 대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수처럼 말한다.
선문답의 방식을 취했으나 선문답이 완전히 딴 소리로 질문을 해체하는데 반해 이 시는 독자의 상상을 위해 질문을 타고 넘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야 시가 되겠지. 선문답은 시가 아니니까.(부연하자면 선문답에서는 드러난 질문과 패러독스의 답(드러나지 않은
답)이 정반합을 거쳐 전체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선사는 전체집합의 場에 제자는 부분집합의 場에 있다. 제자의 질문에 대한
正答은 역시 부분집합이다. 선사는 誤答으로 제자를 전체집합의 장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여기에 가짜선사들의 비리가 많다. 자신도
모르고 誤答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우리나라 독자들은 서정시를 좋아한다. 대부분 시인들도 그렇다.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는 지적통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란? 양쪽으로 다 읽혀야한다. 天衣無縫이란 이런 때 필요한 말이다. 서정과 통찰을 江의 兩岸처럼 궤 뚫은 시의 심미적 거리가
확보될 때, 시는 長江의 물결처럼 도도히 흐른다
김백겸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로 등단.
.『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가슴에 앉힌 산하나』『북소리』『비밀 방』『비밀정원』의 시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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