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사진 콘테스트
“박종성 병장, 휴가 준비하게. 7일간 특별휴가네.”
“축하합니다. 박 병장님.”
박종성 병장이 애인사진 콘테스트에서 일 등을 한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분명히 이문래 상병이 일 등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대장과 중대장은 박종성 병장의 애인 사진인 얼굴만 크게 나온 사진을 선정했다. 병사들의 인기 체크는 압도적으로 이문래 상병의 관물대 앞에 붙여둔 사진이었다.
연말이 되자 소대장은 뭔가 이벤트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소대원을 불러 놓고 회의를 하였다.
“아, 뭐시라. 연말도 되고 하니께.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해봤으면 하는디, 의견들 한 번 내놓지라요.”
“거시기, 소대장님, 소대 송년의 밤 어떻습니까?”
“송년의 밤에 애인사진 콘테스트도 넣지요.”
“앗다, 거 뭐시라. 댄스경연대회 어쩐다요.”
“장기자랑 코너로 니캉내캉 실력 한 번 뽐내보는 기라.”
병사들은 아주 다양한 의견들을 저마다 말했다. 그래서 결국 송년의 밤으로 음악회, 장기자랑 등도 하고, 애인사진 콘테스트도 하기로 했다. 애인이 없는 사람은 누나나 여동생, 아니면 엄마나 조카의 사진도 좋으니 뭔가 여성의 사진 한 장씩 준비해서 관물대 앞에 붙이기로 하였다. 그것도 구하지 못하면 잡지에 있는 여배우들 사진도 좋다고 했다.
시간이 한 달여 있었으므로 병사들은 각자 편지를 써서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였다. 보름정도가 지나자 병사들은 고향에서 보내온 사진을 자신의 관물대 앞에 붙이기 시작했다.
“아, 반가운 소식이지라. 거시기 대대장님께서 애인사진 콘테스트 1등에게는 특별휴가를 보내주기로 했지라.”
“와, 짝짝짝.”
병사들이 애인사진 콘테스트에 더욱 열을 올린 것은 휴가라는 특별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대장이 대대장에게 부탁을 해서 7일간의 휴가를 약속 받았다. 이 때문에 소대는 연일 들뜬 분위기였다. 병사들의 사진을 보면서 각자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근디, 사진 등수는 어찌 매긴다냐?”
“사진 옆에다가 각자 맘에 드는 것으로 점수를 매기면 어떻습니까?”
“아, 그도 그렇고. 대대장님과 중대장님이 심사를 하시기로 했으니께. 같이 하지라.”
소대장은 사진에 대한 점수를 소대원들의 의견과 심사위원의 의견을 같이 접목하자고 하였다. 소대원들은 모두 그러기로 하였다.
이문래 상병은 애인이 없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편지를 써서 사진 콘테스트에 대한 사연을 말했다. 그리고 누나의 사진 중 하나를 보내 달라고 하였다. 누나는 편지와 함께 사진을 동봉해 왔다. 사진은 의외로 멋진 것이었다. 바닷가 작은 돌 위에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는 데, 치마도 바람에 나부끼는 그야말로 섹시한 모습의 사진이었다. 늘씬한 몸매에 바다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더욱 돋보였다.
“미스코리아 사진 아인교.”
“어매, 어찌 이리 예쁘다냐.”
“일 등이다.”
누나의 사진을 관물대에 붙여놓자 소대는 발칵 뒤집혔다. 다들 최고라고 하였고, 사진 옆에 있는 인기 체크란에는 동그라미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요즘은 스티커를 붙이지만 그때는 스티커가 없기 때문에 흰 종이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 옆에 자신의 이름을 적도록 했다. 무려 40명의 소대원 중 25명이 동그라미를 쳤다.
이문래 상병은 크게 바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특별휴가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병사들의 반응이 좋기 때문에 그런 바람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진 옆 체크 란 위에는 사진 주인공에 대한 소개란이 있고, 애인의 소재지 즉 고향을 적도록 했다. 둘러보면 어머니, 애인, 누나, 친구, 여동생 등 정말 다양했다. 내무반 통로를 드나들면서 전시해 놓은 사진을 다 볼 수 있기에 상당히 재미있었다.
병사들은 소대 송년의 밤 행사 준비에 다들 바빴다. 어떤 병사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 연습을 하고, 어떤 병사는 춤 연습을 하고, 단막극을 만들어서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내무반 치장에도 열을 올렸다. 무대가 따로 없기 때문에 내무반 입구에 색 테이프를 늘어뜨려서 무대를 만들었다. 송년의 밤이 진행되기 며칠 전부터 벌써 축제 분위기였다.
이런 일은 경계근무를 서면서 개인 휴식시간에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틈만 나면 모여서 행사 준비를 하였다. 그 때문에 지루한 연말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에, 사랑하는 2소대 여러분 1984년 송년의 밤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비록 낮 정오이지만 밤이라 생각하시고 맘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
이상근 병장은 숟가락을 입에 대고 한껏 폼을 잡으면서 송년의 밤 행사를 진행하였다. 대대장의 축하 인사가 끝나고, 각자 준비한 재주를 이상근 상병의 사회에 맞춰서 펼쳐보였다.
“다음은 박천 상병의 곱새춤이 있겠습니다. 자 여러분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박천 상병은 깔깔이를 말아서 등에 넣고 곱새춤을 추었다. 얼굴을 들어서 혀를 날름거리면서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손으로 원숭이처럼 흉내를 내면서 무대를 빙빙 돌았다. 커다란 위장복을 걸쳐 입은 탓에 정말 병신춤의 대가인 공옥진의 곱새춤처럼 보였다. 병사들의 박수소리에 맞춰 빙글빙글 곱새춤을 춘 것이다. 사람들은 원래 자기보다 못난 흉내를 내야 웃는다. 그 때문에 박천 상병의 곱새춤은 압권이었다.
“잘 봤다/ 못 봤다/ 말씀 마시고/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괴기 잡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 있어도/ 고푸 없이는 못 먹습니다./ 2소대 송년의 밤/ 나 아니면 누가하랴….”
조풍악 일병의 원맨쇼가 시작되었다. 군대의 특성을 살려가면서 현장감 있게 말을 살갑게 진행했다. 특히 중간에 넣는 조 일병의 입 색소폰은 소대원을 사로잡았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입 색소폰을 통해서 간들어지게 유행가를 소화시켰다. 큰 덩치에 비해 입술이 얇게 느껴지는 조풍악 일병은 입 색소폰을 정말 잘 불었다. 게다가 입심이 좋아서 원맨쇼로 남을 웃기는 것도 정말 잘 했다.
송년의 밤 분위기는 이제 절정에 이르렀다. 비록 술과 음식은 없었지만 다들 자신의 장기를 정말 잘 보여줬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남자들이 잘 놀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본 것 같았다. 재주들이 이렇게 많은지는 정말 몰랐다.
송년의 밤은 시간이 갈수록 열기를 더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맘껏 놀 수는 없었다. 어느 덧 시간이 되어 경계근무 침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 오늘의 하이라이트. 애인사진콘테스트의 심사에 대한 결과발표가 있겠습니다. 다들 긴장하시고 대대장님의 발표를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에. 오늘 3중대 2소대원들이 펼친 송년의 밤 행사는 너무나 멋졌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군대생활에 임한다면 우리 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기대하던 애인사진콘테스트의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작은 선물도 준비를 했습니다.”
“와, 짝짝짝.”
병사들은 선물이라는 말에 환호를 하였다.
“먼저 3등은 한지원 일병.”
“예, 일병 한지원.”
한지원 일병은 엄마 사진을 가져와서 응모를 했는데, 3등을 했다. 상품은 롤빵세트였다.
“다음 2등은 이문래 상병.”
“예, 상병 이문래.”
병사들은 뭔가 이상하다면서 다들 의아해 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던 대대장은 이문래 상병이 2등이라 했으니 그런 것이다. 상품은 사진을 넣을 수 있는 메모식 포켓 앨범이었다. 병사들은 그럼 일등은 누구일까하고 다들 궁금해 하였다.
“영예의 1등은 박종성 병장.”
“예, 병장 박종성. 에이….”
병사들은 약간 동요를 했다. 야유가 조금 흘러나오다가 소대장이 조용히 하라고 손을 들어 입에 대자 다들 조용히 했다. 해도 너무한 심사결과였다. 박종성 병장은 여동생의 사진으로 응모했다. 사진 속에 얼굴만 확대해서 찍은 것이다. 그것도 얼굴이 다 나온 것도 아닌 아주 복스럽게 생긴 얼굴 앞쪽 윤곽만 나온 것이었다. 병사들의 체크 점수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었다.
“박종성 병장이 이번 2소대의 애인사진콘테스트에서 1등을 했다. 물론 더 나은 사진도 있었다. 아주 멋지고 매력적인 사진이 많았다. 그러나 이 콘테스트는 애인사진콘테스트이기 때문에 얼굴이 크게 나와야 한다. 그 때문에 박 병장을 대상으로 뽑았다. 박 병장은 휴가준비를 해서 다녀오기 바란다. 그리고 이문래 상병은 소대원들의 체크점수가 제일 높았다. 그러나 아직 상병이고 앞으로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병장은 더 이상 기회가 없으니, 섭섭하더라도 이해하기 바란다.”
“축하합니다. 박 병장님.”
이문래 상병은 박종성 병장에게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박종성 병장은 얼굴이 빨게 졌다.
“대대장님, 저 1등 안 받겠습니다.”
박종성 병장은 반려를 하겠다고 하였다.
“야, 박 병장. 그냥 받아.”
옆에 있던 중대장이 박종성 병장을 나무랐다. 박종성 병장은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박 병장이 반려를 하려 한 것은 대대장과 같은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가 고향이며, 고등학교 후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