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신전은 종묘입니다.
종묘에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까지 왕으로 추존하고 이후 역대 왕들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으며 종묘제례악도 유네스코 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선정되었습니다.(자세한 사항은 종묘문화재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창덕궁에는 2곳의 신전이 있는데 구선원전과 신선원전입니다.
창덕궁 구선원전
우리의 문화재/창덕궁 2011-04-06 20:48:21
구선원전은 처음부터 선왕들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며 처음에는 대비전으로 지어진 것이었으며 본래 전각의 이름은 춘휘당이었는데 1694년 숙종은 춘휘당을 선원전으로 개칭하고 역대 선왕들의 어진영을 봉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선원전은 1985년1월8일 보물 제817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초상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궁궐 밖으로는 종묘를 두었고, 궁 안에는 선원전을 두고 이곳에서 숙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의 어진을 모시며 달마다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생신날에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내는 궁안의 사당으로 선원전은 궁안의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겼으며 왕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습니다.
<구선원전 내부입니다.>
원래 선원전은 경복궁에 있었는데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습니다.
이후 1695년(숙종 21년)에 어진 제도를 새로 정비 및 재정립을 하면서 창덕궁에 선원전을 두어 100여 년 만에 부활하였으며 이 때 건물을 새로 짓지 않고 별당 춘휘전 건물을 선원전으로 고쳐 활용하였습니다.
1868년(고종 5년) 경복궁 중건 때 경복궁 내에 선원전을 지으면서 창덕궁 선원전의 어진을 경복궁으로 옮기고 이후 고종이 경복궁에 머물 땐 경복궁으로, 창덕궁에 머물 땐 창덕궁으로 어진도 따라 옮겼다고 합니다.
아관파천 이후 1897년부터 고종이 경운궁(현재 덕수궁)에 머물 때 덕수궁에도 선원전을 세워 태조,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문조, 헌종까지 총 7점의 어진이 봉안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춘휘전이었던 건물을 조선 효종 7년(1656) 경덕궁(지금의 경희궁)의 경화당을 옮겨지어 사용하다가, 숙종 21년(1695)에 선원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조선총독부에 의해1921년 창덕궁 후원 서북쪽에 대보단 터에 선원전을 새로 지어 왕의 초상을 옮긴 뒤부터 구선원전으로, 새로지은 선원전은 신선원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구선원전의 겨울 풍경입니다.>
새로 지은 선원전에 옮긴 왕의 초상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화재로 소실되어 아쉬움을 더 한다. 현재 구선원전은 궁 안의 주요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간결하고 불필요한 장식을 꾸미지 않은 건물로, 조선시대 왕실 제사용 건물의 유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이기도 합니다.
앞쪽 동편 진설청입니다.
앞쪽 서편 진설청입니다.
구선원전 부속건물인 창덕궁 진설청(昌德宮 陳設廳)입니다.
청(廳)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서 대단한 건물로 보이는데 진설청은 신선원전 부속건물로 선원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할 음식, 다과 등을 준비하고 차려놓는 작은 건물인데 신선원전 앞쪽 동쪽과 서쪽 그리고 뒤편 서쪽 등 3채가 있습니다.
창덕궁 양지당(昌德宮 養志堂)
선원전의 부속 건물입니다.
양지당은 어진이나 어필 및 어의 등의 보물을 보관하거나 왕이 선원전에 참배하기 전 잠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던 곳입니다.
양지(養志)란 부모님 뜻(志)을 받든다(養)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양지당은 원래는 효종이 왕대비 장렬왕후를 모시기 위해 지은 작은 별당이었는데 숙종 때 춘휘전을 선원전으로 바꾸면서 선원전의 부속건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정면 4칸에 측면 2칸 반 정도의 작은 건물로 앞면의 반 칸은 툇마루를 놓고 정면 기준 서쪽의 2칸은 온돌방으로, 동쪽의 2칸은 대청을 두었습니다.
창덕궁 영의사(昌德宮 永依舍)
선원전의 재실 중 하나입니다.
영의(永依)란 영원히 선대왕들을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창덕궁 의풍각(昌德宮 儀豊閣)
선원전 뒷편에 있는 부속 건물로 제사 용품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동궐도나 동궐도형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건물은 'ㄱ' 자 형태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나 동북쪽 지붕은 팔작 형식으로 만든 점이 특이 합니다.
현재는 갖가지 잡스럼 용품을 두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데 의풍각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러합니다.
오래전 이곳에 건물이 있었는데 영조의 엄마가 되는 숙빈최씨, 그러니까 숙종의 후궁입니다.
숙빈최씨가 무슬이로 일하던 시절 이곳에 있었다는 건물에서 궁궐의 갖가지 바느질을 했었나봅니다.
영조가 왕이되어 엄마인 숙빈최씨에게 궁궐에서 일하면서 제일 힘들었던일이 무었이었나고 물어보자, 숙빈최씨는 궁궐의 이불이나 옷 등을 누비는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조는 이후부터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전하는 이야기로 사실여부는 확인하지 않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