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면 어떤 것이 먼저 떠오를까.
아마 교육도시 거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 싶다.
그리고
1000m가 넘는 산이 스무 개가 넘어 외부에서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러들지 않는 청정의 고장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한서 차가 큰 날씨 때문에 맛과 당도가 뛰어난 사과나 딸기, 포도, 오미자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높은 산과 깊은 계곡 낀 들판에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거창의 역사, 문화, 관광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 그 가운데 자리 잡은
천혜의 땅 거창에서 자라거나 거창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한 가지를 더 떠올려야 할 것 같다.
거창윈드오케스트라를.
연습실에서 만난 거창윈드오케스트라 창단의 주역인 이건형 상임지휘자
지난 21일, 고센빌딩 후문 주차장 맞은 편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거창윈드오케스트라 연습실을 찾아갔다.
밤 8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마련한 전용연습실에서 연습이 한창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꿈나무 단원부터
망 육십에 이른 단원까지 나이 층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하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선생님, 음학원장, 음식점 주방장,
도배사, 산판업자. 전직 군악대장, 대구시향단원 등이
건물 지하실 연습장에 각각의 자리를 잡고 호흡을 맞추는,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 연습을 하고 있다.
군 단위 고장에서 윈드오케스트라를 창단한다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일단 인구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꾸릴 만한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처음에는 20여명으로 오케스트라를 꾸렸다가
지금은 50여명에 이를만큼 포지션이 제대로 잡힌 윈드오케스트라로 거듭났다.
나는 이날 거창 군민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 하는 실감을 제대로 한 날이기도 하다.
연습 장면을 구경하는 내내 이게 진정한 '거창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절로 거창 군민의 한 사람이라는 데 큰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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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때 입을 옷을 재고 있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쏟아내는 열기와 열정은 난방시설이 따로 없는 연습실을 후끈 달구었다.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기 시작하면 결국 그 꿈은 실현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명 지휘자 샤이먼 래틀이 한 말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거창을 첩첩산중의 오지라 하지 않는다.
수준 높은 교육과 다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와 천혜의 관광자원이 널려 있는 거창이다.
바톤을 넘겨 받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연과 전시와 발표회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 다닌다.
여기다가
우리 거창에
문화의 종결자라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다는 소식이다.
그 소식만으로도 가슴이 뛰는데,
며칠후에 창단 공연을 한다고 하니 어찌 가슴 벅차지 않겠는가.
타고난 각각의 재주를 관련 예술분야로 접근시켜주는 교육은 마땅치 않다.
거창에 오케스트라가 생긴 것은 거창 인근 꿈나무들에게는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와는 나라 형편이 많이 다르다 하겠으나
우리 거창에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를 능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겠는가.
2009년 2월 TED prize 수상 인터뷰에서
엘 시스테마의 대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마더 테레사>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가난과 관련하여 가장 참담하고 비극적인 일은 일용할 양식이나 거처할 공간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
아무 것도 안 될 것이라는 느낌,
존재감의 부재,
공적인 존중의 부재야말로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거창윈드오케스트라는 어려운 형편과 여건 때문에 접해보지도 못할 수 있던 꿈나무들에게
공평의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창단공연은 무료 입장이라 하니 거창인드오케스트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12월 8일 저녁 7시 30분부터 벌어지는 거창윈드오케스트라의 창단 공연이
거창의 기록 역사에 큰 획을 긋는 날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