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삿갓 욕설 시
김삿갓은 날이 저물어 잠자리 신세를 지려고 서당으로 들어갔다. 서당에서는 조무래기 아이들이 핏대를 올려가며 글을 읽고 있는데, 선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김삿갓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선생님 어디 가셨느냐?”
아이들은 김삿갓의 행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저희들끼리 얼굴을 마주보며 말한다.
“얘들아! 저 사람 거지 아냐? 모른척하고 글이나 읽자.”
그 말을 듣자, 이때까지 세속적인 시비에 대해서는 초연한 자세로 살아왔던 김삿갓은 문득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김삿갓은 넘치는 성질을 억누르고 아이들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얘들아, 선생님 어디 가셨느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어른이 물어 보거든 고분고분 대답을 해야지 왜 말이 없느냐?”
“얘들아, 저 사람은 틀림없는 거지야. 대답할 것도 없어. 우리는 글이나 읽자.”
사태가 그쯤 되고 보니, 김삿갓은 머리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김삿갓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자기도 모르게 제법 큰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선생은 내 불알이요, 생도는 넘이 습이다. 서당은 내 조지요, 방중엔 개존물이네!”
누가 들어도 입에 담기 힘든 해괴망측한 욕설이었다.
마침 그때, 오십 가량 되어 보이는 텁석부리 영감이 들어서며 호통을 친다.
“이놈들아, 읽으라는 글은 안 읽고 무슨 장난들을 하고 있느냐?”
그 늙은이가 훈장인 모양이었다.
“선생님! 저기 툇마루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이 우리들한테 욕을 퍼붓고 있어요.”
“저 사람이 너희들한테 욕을 퍼붓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선생님,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이 선생님을 내 불알이라고 욕하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들더러는 네미 십이라고 욕을 하구요.”
“또 있어요. 서당은 내 좆이고, 방중에 있는 건 개좆물이라는 거예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훈장은 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훈장은 김삿갓 앞으로 다가와 위엄을 보이려고 장승처럼 우뚝 서면서 거만하게 따져 묻는다.
“도대체 당신은 아이들에게 무슨 까닭으로 욕을 해서, 아이들을 저렇게 분개하게 만들었소?”
김삿갓은 조용히 일어나 머리를 정중하게 수그려 보이며, 우선 자기 소개부터 하였다.
“저는 지나가던 과객이올시다. 길이 저물어 서당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갈까 했는데, 공교롭게도 선생이 계시지 않아 선생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옵니다.”
김삿갓이 예의바르게 나오자, 훈장은 그의 범상치 않은 행동과 눈빛에 혈압을 올렸던 자신을 누그러뜨리며 말한다.
“하룻밤 쉬어 가신다는 데야 누가 마다고 하겠소. 그렇다면 우선 방으로 들어오도록 하시오.”
김삿갓은 서당 안으로 들어와서 초면 인사를 정식으로 청했다.
훈장은 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노형은 나와 아이들에게 해괴망측한 욕설을 퍼부었다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김삿갓은 웃음을 거두고 정색을 하며 이렇게 둘러대었다.
“내가 워낙 시를 좋아해서, 조금 전에 즉흥시를 한 수 읊었는데,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 시를 아마 해괴망측한 욕설로 들었던 모양이구료.”
그리고 김삿갓은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써 보였다.
先生來不謁 生徒念而習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한문을 발음 나는 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선생내불알 생도념이습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우리말로 풀이하면 아래와 같다.
선생은 와도 보이지 아니하고 생도는 글만 열심히 읽고 있구나 서당은 내 일찍부터 알고 있나니 방안에는 모두가 귀한 집 자손들이다.
훈장은 시를 읽어 보니 시비를 걸 만한 대목은 한 군데도 없었다. 훈장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즉석에서 우리말 소리 나는 대로 한시를 짓는 이 사람의 능력과 학식에는 정말 자신이 누군가의 불알이 되어 버린 듯한 심경이었다.
훈장은 백 번 죽었다 깨어난들 그의 발끝에도 갈 수 없음을 절감하였다. 훈장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지만 형용할 수 없는 존경심이 솟구쳤다. 훈장은 머슴아이더러 술도가에 가서 탁주 한 말을 지고 오라고 이른다.
이윽고 술상이 벌어지자, 훈장은 김삿갓에게 정중하게 술을 권하며 묻는다.
“도대체 노형은 집이 어디며,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오?”
김삿갓은 껄껄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집도 없고 가족도 없소이다. 발길가는 대로 떠돌아다니는 뜬구름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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