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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 보물 제2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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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부석사당간지주(浮石寺幢竿支柱) |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부석사 입구에 1m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마주보는 안쪽 옆면과 바깥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양쪽 모서리의 모를 둥글게 다듬었다. 기둥 윗부분은 원을 2겹으로 경사지게 조각하였고, 옆면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기둥머리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 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기둥 사이에는 한 돌로 된 정사각형의 받침 위에 원형을 돌출시켜 깃대를 세우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 주변에는 연꽃을 장식하고, 윗면 중앙에는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치고 있다.
대체로 꾸밈을 두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주이다. 또한 가늘고 길면서도 아래위에 다소 두께 차이가 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감을 주며, 간결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부석사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는 옛 절터에 남아 있던 두 탑으로, 1966년 이곳 부석사로 옮겨 세웠다. 탑을 옮길 때 세워 놓은 비석에 의하면 서쪽의 탑은 익산왕궁리오층석탑(국보 제289호)에서 나누어 온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한다.
동·서로 서 있는 두 탑은 크기만 약간 다를 뿐 형식은 같아서, 모두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부의 몸돌에는 기둥을 본 떠 새겼는데,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조각을 두었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양끝에서 살짝 들려 가벼움을 실었다. 꼭대기에는 후에 보충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비록 지붕돌 밑받침이 4단으로 줄어들었으나 전체적으로 당당한 기품을 잃지않은 모습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석사(浮石寺)의 주요 전각인 무량수전(無量壽殿, 국보 제18호) 맞은편에 있는 누각으로, 2단으로 쌓은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누 밑을 통과하여 무량수전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어 일종의 누문(樓門) 역할도 하는데 전면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무량수전 쪽에서 보면 단층 전각처럼 보인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이중의 기능이 부여 되어 있어 건물 전면에는 ‘안양루’, 뒷면에는 ‘안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문은 극락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고,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한다. 조선 중기 건물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안양루는 다포식 건물로 기둥은 층단주 형식으로 되어 있고, 2층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 천정은 우물천정이다
국보 17호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 (浮石寺無量壽殿앞石燈)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국보 제46호부석사조사당벽화 (浮石寺祖師堂壁畵)
이 벽화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지금은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 유리상자에 담아 무량수전에 보관하고 있다.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색·백색·금색 등으로 채색하였으며,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 폭 75㎝ 가량이다.
양쪽의 두 보살은 풍만하고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며, 가운데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 보는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년(1377)임을 알게 되었으며,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석
선묘각
국보 제18호 부석사무량수전 (浮石寺無量壽殿)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짓고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날아 와 줄곧 의상을 보호하면서 이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아직도 무량수전 뒤에는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로 전하는 ‘부석’을 볼 수 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간결한 형태로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쪽은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보물 제249호 부석사삼층석탑(浮石寺三層石塔)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아래층 기단은 가운데에 2개씩의 조각을 두고, 위층 기단에는 하나씩을 두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있는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으로 통일신라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문무왕 16년(676)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아래층 기단의 너비가 매우 넓고, 1층 몸돌 또한 높이에 비해 너비가 넓어서 장중해 보인다.
1960년 해체하여 복원할 때 철제탑, 불상의 파편, 구슬 등이 발견되었고 이 때 일부 파손된 부분은 새로운 부재로 보충하였다. 탑은 원래 법당 앞에 건립되는 것이 통례이나 이 석탑은 법당의 동쪽에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德山 古宅 (덕산 고택)
덕산고택은 원래 계회에 없던 곳이었다.
(사실 처음 여정계획을 세울때 고택방문 자체를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괴헌고택을 찿아간것이었는데 괴헌고택에 바로 이웃하여 위치해 있었다.
덕산 고택을 찿은건 일행에게 행운이었을 것이다.
그저 오래된 옛날집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불식 시켜준 몇백년후에도 그 자손들이 밥짓고 빨래하며 자식들 키우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집"에대한 원형을 생각케 해준 계기가 되었던 거다.
내성적인 진순이
마당에 개 키우고 때가되면 가마솥에 밥지어 먹고 손님이 오면 맨발로 맞이해주고
방한켠에서는 오래된 옷을 꺼내어 꿰메어 쓰고 오래된 집이지만 부뚜막에 불피우지 않고 보일러로 따끈히 온돌해서
겨울을 나고 서울사는 아들이 해준 최신형 슬라이드 모기장 덕분에 여름에도 문풍지 바른 문 활짝열고 모기적정 없이
살수 있는 이집이 나는 정말 탐난다.
전세값때문에 2년 주기로 이사하고 집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부동산 정보를 기웃거리는 서울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인지..고택에 있는 사람이나 서울 사람이나 다같은 대한민국 국민들인데.
德山古宅은 경상북도 民俗資料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는 槐軒古宅과 접한 대지에 서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이 가옥은 덕산 金慶集이 英祖 32년(1756)에 두암에서 두월로 이주시 신축하면서 당호를 德山亭이라 하였다.
그 뒤 正祖 3년(1779)에 고택의 왼쪽에 槐軒공의 살림집을 축조하면서 뒤쪽에 서당을 건립하여 인근의 후학들에게
배움의 터로 제공하게 되었다. 공의 후손인 禧淵(희연)이 光武8년(1904)에 일부분 중수하였다.
건물의 배치구조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를 연결하여 정면 6칸 측면 6칸 규모인 전형적인
ㅁ자형 평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민가건축으로서는 드물게 서당까지 잘 갖추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또한 마루를 설치한 곳간과 사랑채와 안채의
연결 동선 등 특징적인 부분이 잘 남아 있어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서울서 왔다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안방 부터 부엌까지 모든걸 일일이 안내하시는 종부에게는
당신의 집에 대한 자신감과 긍지가 넘쳐 흘렀다. 우리 서울 사람들 내집에 대해 이렇게 자신만만히
낯선 이들에게 보여 줄수 있는가?
우리나라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건
옛것을 보존하고 관리하는것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때이다.
덕산 고택도 작년부터 지원을 받아 재정비가 한창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옆의 괴헌고택에 대한 자료는 많이 보이지만
덕산 고택은 자료가 별로 없는것을 보면 우리가 참 소중한 경험을 한듯한 느낌이 든다.
입춘대길
만사형통
올해는 미처 새 지방을 달지 못한듯 한데도
이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환해 지며 속이 시원해진다.
槐軒 古宅 (괴헌 고택)
시도민속자료 제65호 (영주시)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번지 시대
뒤쪽이 약간 경사진 대지에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건물이다. 조선 정조 3년(1779)에 김영 선생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집이라고 한다. 그 후 광무 8년(1904)에 선생의 손자인 김복연이 일부 고쳤다고 하는데 이때 사랑부분이
현재와 같이 확장된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이 집은 용도에 따라 장고방·고방·광 등의 수납공간이 설치되었고, 안방에 피난다락과
사랑방 뒷벽에 은신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재미있는건
괴헌고택을 덕산고택에 살던 아버지가 아들 살라고 지어준 집이라는 것이다.
규모면이나 세부적인 구조를 보면 괴헌고택이 더 크고 고급스럽다(물론 후대에 가면서 증축이 된면도 있겠지만)
괴헌고택을 보기전 먼저 덕산 고택부터 보아야하는것이 순서인것이
이 순서를 지켜야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것을 알수있기 때문이다.
이쁜 내새끼를 바로 옆집에 붙여놓고 내집보다 크고 좋은집에 살게해주고
담넘어 내 손주도 자주 보러 다니고 싶은 부모의 단순하지만 깊은 사랑을 느낄수 있다.
덕산고택의 마루에는 삼강오륜등이 목각으로 붙어있다.
요즘 아이들이 거실에 있는 티비와 컴퓨터에 몰두하듯
옛날 아이들은 마루에서 거의 유일하다 싶은 이 볼거리를
보며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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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먼길 다녀오셨네요~고택들이 낯이 익어요~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우리 흑석동 것이 그쪽으로 간거 아녀요? 중앙대학교로 옮겨오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텐데~멋진 진순이가 지키고~비싼 소고기가 질겨보이네~부석사 옆 청국장이 맛있어서 정말 유명한데 맛은 보고 오셨나요? 다음에 사줘~잉~^^
저,,소고기 한웁니다..1-2등급 섞은건데 600그램(한근)에 19,000원,,특등급은 1근에 5만원정도,,돈아끼기 위해 기꺼이 1-2등급으로 선택..ㅠㅠ
600g에 19,000원이면 싸네요~특등급이 아니라 질겼나요? 5만원짜리는 정말 맛있겠다. 나 요즘 몸이 부실한데 특등급 고기 먹고 잡다~^^
화가의 감각으로 사진을 잘 찍어 주셨네요. 중앙고속도로로 가다가 여유가 있어면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부석사의 헌신적 사랑이 담긴 전설도 즐겁고, 풍기 사과 맛도 좋습니다. 한번 단녀와야 겠어요. 한우는 어디에서 샀어요?
재능도 있지만 사진기가 바껴서 더 선명하게 잘 나온거 아녀요? 찍사의 기술이 날로날로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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