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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음악치료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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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음악치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참전 군인들의 심신 안정을 위해 음악을 이용한 것이 최초의 시도였으며, 선진국에서는 이미 대체의학으로 인정하고 각 병원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음악치료는 우리가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굿”이라 할 수 있는데 굿은 연극적인 요소에 다양한 음악과 치료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즉 영매(무당)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여 죽은 영혼을 달래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 위한을 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음악치료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
【음악치료의 개념】
음악치료(뮤직테라피)란 음악치료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체의 과정으로 환자들은 음악감상, 즉흥연주, 그룹연주, 노래가사 바꾸기 등의 방법을 통하여 치료를 받게 된다.
음악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며 연주해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춰 협동심을 기르기도 한다.
노래가사를 바꾸는 과정을 통해서는 내부에 억눌려 있는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정신적인 치료에 도움이 된다.
즉, 음악을 이용하여 인간의 신체적․정신적․정서적인 불안상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켜서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적이며 체계적인 치료의 과정이다.
【왜 민요인가】
음악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선택! 즉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감정상태가 달라져 치료효과에 영향을 준다. 환자가 좋아하는 음악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우리 몸에는 우리음식이 잘 맞듯이 음악 또한 우리 고유 정서가 물신 스며들어 있는 우리 전통음악이 좋다고 하겠다.
우리 전통음악에 대해서는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누며 많은 설명이 필요하나 여기에서는 일반 대중들이 즐겼 던 민요! 양반음악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배층으로부터 냉대와 천대를 받았던 바로 그 민요가 어떤 이유로 우리정서를 치료하는 특효약인지 조명해 본다.
【민요의 특징과 치료효과】
① 민요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 노래이다
인간의 의식중 눈은 새로운 것을 원하고, 귀는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할머니의 자장가, 기찻길 옆 종소리 등)
새로운 음악들이 유행을 타고 계속 나오지만 오래전부터 들었던 익숙한 노래가 우리정서를 더욱 자극하여 추억을 회상하게 되는데 지금의 노인들이 들으며 자랐던 아리랑, 도라지타령, 노들강변 등은 치매노인의 기억력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되는 민요이다.
② 민요는 삶의 보편성이 담겨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
일반 대중들에 의해 대중들의 정서와 감정으로 빚은 음악이다. 대중들의 한과 슬픔 그리고 애환이 담겨 있어 누구에게나 친근감이 느껴진다.
친근한 음악이 정서치료에 더 효과적이며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활용 가능한 음악이다.
③ 민요는 감정 분출의 민중 음악이다
선비들(지배층)의 인격수양을 위한 음악이었던 정악과 달리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민중 음악이다.
억눌려 있던 무의식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출함으로써 참고 살아야 했던 노인들의 화병(과거 시집살이 등) 치료와 바쁜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음악이다. 또한 민요의 가사는 각자의 심정에 따라 자유롭게 만들어 부름으로써 성취감과 창의력을 높인다.
④ 민요의 5음계(중려, 임종, 무역, 황종, 태주)는 사람의 오장(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한방음악요법 세미나 자료)
우리 전통음악은 동양의 철학사상의 근간이 되는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두고 생성되었으며, 우리 전통음악에도 서양의 음계처럼 12율명* 이라는 고유한 이름의 음이 있는데 6개의 양률과 6개의 음률로 나누어 진다.(음양)
* 12율명 :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
또한 중국 한의학서인「내경」에 ‘우주에는 오음이 있고 사람은 오장이 있으며 우주에는 육률이 있고 사람은 육부가 있다. 이처럼 사람은 우주와 상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 음 : 중, 임, 무, 황, 태
오 행 : 木, 火, 土, 金, 水
오 장 :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중국음계 : 치, 우, 궁, 상, 각
위와 같이 음양오행에 근거한 우리 전통음악이 소우주인 사람의 장부와 깊은 연관성이 있어서 정신과 신체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함(한방음악치료 개념)
특히 경기민요는 5음계의 평조로 되어 있어 밝고 명랑한 느낌으로 계면조의 슬픈 음악에 비해 활동이 적은 노인들에게 더 활기를 준다.
⑤ 민요는 장단에 따라 느낌이 다르며 복식호흡으로 부른다
호흡의 길이에 따라 장단이 생성되는데 느린 장단의 민요는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와 진정 효과가 있으며 빠른 장단의 민요는 가라앉은 기운을 북돋아 밝고 활기차게 한다.
느린장단 (중모리장단) : 정선아리랑, 한오백년, 금강산타령 등
∥ (세마치장단) : 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노들강변 등
⇓ (굿거리장단) : 청춘가, 태평가, 창부타령 등
빠른장단 (자진모리장단) : 군밤타령, 잦은방아타령, 경복궁타령 등
민요를 부르면 뇌를 진동시켜 스트레스 물질을 빠져나오게 하고, 치매 및 뇌졸중 예방과 치료에 가장 효과가 좋으며 복식호흡을 통해 순환기능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비교적 활동량이 적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에너지 사용을 늘려서 운동을 대신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음악치료가 노인의 우울증 및 혈중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수치에 미치는 영향, 2000년 오용희 이대음악치료교육전공 논문)
⑥ 민요는 공동체 의식이 발달한 음악이다
민요는 메기고 받은 형식 즉 선창자가 먼저 부르고 후렴은 다 함께 부르는 공동체 의식이 발달한 음악이다.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자신의 이익만 앞세우는 우리사회를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국가차원에서도 대동단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데2002년 월드컵 경기때 윤도현 밴드의 ‘아리랑’(응원가)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⑦ 민요의 반주는 주로 장구로 친다
노래를 부르며 양손으로 장구를 치는 것은 좌․우뇌가 골고루 발달하는데 도움을 주며, 가죽으로 된 악기(장구, 북)는 가슴과 배를 진동시킨다고 한다.(우리소리 우습게 보지마라, 김준호 저)
어린이들의 피아노 교육도 손 끝에 힘을 기르며 좌․우뇌의 발달과 창의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지만 피아노에 비해 비교적 쉬운 타악기인 장구를 배우는 것은 소극적인 아이에게 더 적합하며 우리 정서에 맞는 악기를 접하므로써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울 수 있다.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자폐증 등을 앓고 있는 장애아동에게 사물놀이는 많은 치료효과를 가져오며 언어장애에도 국악의 리듬과 사설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이 이미 입증되고 있다.
(2007.12.22., 중앙일보 보도)
【우리 전통음악이 서양음악보다 대접을 못 받는 이유】
①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
일제강점기에 문화말살 정책은 우리문화를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문화로 왜곡시켜서 현재도 기방예술로 취급받게 되었다.
② 문화사대주의
해방이후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무조건 외국 것을 선호하는 풍토로 인해 자국문화의 줏대를 잃어버렸다.
③ 우리음악 교육의 부재
예전과 달리 초중등 음악교과서의 50%가 국악이 차지함에도 이를 교육할 지도자가 부족한 현실이다. 현재 음악교사의 대부분이 서양음악 전공자가 임용되어 있어 국악을 제대로 지도할 수 없는 실정이므로 양악․국악을 나누어 전문 교육자를 배치하여야 한다. 어릴 적 체험은 인생의 귀중한 경험이 된다.
④ 전통예술인의 자질 부족
경기민요 전공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론과 실시를 겸비한 내적인 성숙이 이루어진 진정한 예술인의 자질이 더욱 요구되며 전통예술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열린 사고로 대중과 호흡하는 생활 국악으로써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맺 음 말 >
각 나라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우리민족은 신명이 많고 멋과 흥이 넘치는 민족으로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졌다. 국악중 민속악에 속하는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등 외국에서 더 많이 인정받는 문화가 된 것은 자랑스러움과 함께 우리 것이 귀한 줄 모르는 우리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오늘날 우리는 장수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초 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어 ‘건강한 노년기’에 관심이 높다. 그리하여 건강식품 등 건강을 트랜드로 하는 여러 가지 실버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 치매와 뇌졸중의 예방과 치료에 가장 적합한 음악은 우리 전통음악이며 노인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도 유용하다 하겠다.
이제까지 치료음악을 서양 클래식 음악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국악 중 거문고, 대금 등의 연주곡들이 태교음악 또는 명상음반으로 제작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실제 음악치료 현장과 국악강사로서의 경험에 의하면 국악 중 가장 홀대 받았던 민요가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음악임을, 대다수의 서민층이 즐긴 대중들의 문화였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음악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전통음악에 바탕을 둔 치료음악이 어쩌면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데 한 몫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사물놀이는 이미 세계인이 선호하는 치료음악이 되었음)
이제 자신을 비우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의 리듬에 몸과 마음을 맡겨 보자.
강사 프로필
▷ 강 사 : 임혜성 (1961년 서울에서 출생)
구 분 |
주 요 내 용 |
비 고 |
학 력 |
- 경기민요 전공 (단국대 대학원) - 한국외국어대학 졸업 (’87 일본어과) * 중등교사 자격증 취득 -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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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 한국은행 근무(’80~’87)
- 경기민요(이춘희, 전숙희), 서도민요(한명순), 판소리(진봉규) 수학 - 전국 국악 경연대회 민요부 최우수상 수상(부천시) - 전국 국악 경연 대회 명창부 입상(고양시)
- 국악지도사(민요, 판소리) 1급 자격 취득 (한국국악교육원) - 음악치료사 2급 자격 취득(대한음악치료학회) - 음악치료과정 수료(이화여자대학 평생교육원) - 사상의학 수료(서울시민대학 강좌)
- 시집가는날, 춘풍별곡 등 창극 다수 출연 - 제3회 한중 전통음악교류회 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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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활동 |
- 국악&음악치료실(녹번역 소재) 운영
-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출강(국악실기지도자 과정) - 은평예술회관 출강(우리음악 치료교실) - 서울시니어스(우수실버타운선정) 민요강사 및 음악치료사로 활동 - 국민은행 초청 특강(국악과 건강)
- 전숙희 민요보존회 회원 - 한국 전통음악 학회(단국대) 회원 - 은평구 아동위원 위촉 |
판소리로 귀신 부른 명창 (사진) ㄷㄷ
1930년 이화중선이 협률사 공연 때 전남 낙안 읍에서 공연할 때 옛 스승인 송만갑 선생을 인사차 들렀더니 송 선생이 보물 자랑을 하기에 그 보물을 구경하자고 했더니 네가 보면 달라고 할 것 같아서 보여줄 수 없다고 한다. 화중선은 궁금하여 다음날 찾아와서 졸라대자 건넌방에 열 두세 살 된 소녀들이 7, 8명 있었는데 그 중에 보물인 김순옥 열세 살도 끼어 있었다. 송만갑은 순옥을 불러다 화중선 앞에 앉히고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 한 토막을 들은 화중선은 이 애를 저에게 딸려 보내면 서울에 데려가 명창으로 키우었다고 하며 공연이 끝나고 순옥을 데리고 서울에 와서 정정렬 선생에 학습한 뒤 당대를 울린 여류명창으로 이름을 남긴 김순옥이 훗날 김소희(金素姬)인간문화재이다. 이화중선(李花中仙 1899-1943년)은 경남 부산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렵게 살다가 그가 열일곱 살 때 전라북도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 홈실 박(朴)씨 집으로 시집가 길쌈하며 농사짓고 사는 촌 아낙으로 사는데 어느 가을날 홈실에 국창 송만갑(宋萬甲) 일행의 협률사가 들어와 포장 굿을 3일 동안 공연하게 되었다. 수지면 사람은 물론이고 인근 동네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들어 굿 구경을 하는데
그 중에는 이화중선도 동네 아이들과 굿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들어본 자지러진 풍악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고 출연한 소리 광대와 기생들의 토막극 춘향전에 넋을 잃은 화중선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갈기를 결정하면서 3일 동안계속해 한번도 빠짐없이 구경을 했다. 굿판에 매일 같이 구경한 사람은 오직 이화중선 한 사람 뿐이었다.
촌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어린 아낙으로서 광대나 기생들의 호사스런 비단옷 입은 몸맵시나 얼굴에 곱게 화장한 분 내음을 맡으면서 황홀감에 빠져들어 넋을 잃은 이화중선의 마음속에 허영심을 발동시켜 자신이 광대나 기생이 되어 소리하고 토막극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녀도 못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기가 소리를 배워서 사람들 앞에서 부르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얼마나 우러러 보면서 부러워할까 하는 허영심까지 생겨나 공상에 빠져들 때 협률사는 마을을 떠난다.
화중선은 며칠 동안 굿 보는 생각에 빠져들어 물 길러 갈 때나 밤을 지을 때나 굿판에서 들었던 소리를 부지갱이 장단으로 장단을 치면서 소리를 중얼대며 잠을 잘 때도 오직 협률사 생각에 사로잡혀 공상이 커지면서 먹고 자는 것도 불안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며칠 동안 몹시 고민하다가 결국은 소리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화중선의 입장에선 도저히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홈실 박씨집의 양반집 며느리로서 이러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집안의 체면은 고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소리를 배운다는 것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리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양반이고 기와집이고 서방이고 체면이고 모두 헌 짚신처럼 집어던지고 몇 가지 안 되는 헌송가지를 가지고 아무 눈에도 띄지 않는 야밤에 홈실을 빠져나와 남원읍을 향해서 도망치게 된 것이다. 홈심에서 남원읍까지는 20리 밖에 안되는 길이지만 밤길이라 고개를 넘고 시냇물을 건너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어려서 듣던 말로 노래는 단골집 재인에게 배운다는 말을 들은지라 남원읍에 도착한 그는 재인 집을 찾아가기로 하여 이곳저곳을 헤매는 중에 어떤 여인의 도움으로 단골(무당)의 집에 찾아든다. 그녀가 소리를 배우러 왔다고 말하자 염려 말라고 하면서 집안일을 시킨다. 화중선은 일을 도우면서 드디어 육자백이등 잡가를 배우기 시작한다.
집주인 단골의 꿍꿍이속은 풋소리 몇 토막 가르쳐서 색주가나 기생으로 내보낼 생각으로 소리를 가르친 것이다. 얼마동안 소리를 배우니 술집에 내보내 손님에게 술시중을 들며 아양을 떨고 돈을 벌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중선의 생각에는 소리를 배우려는 것이지 결코 몸을 내돌리려는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한 말에는 속지를 않았다. 그때 남원읍에 장득주란 광대가 있었는데 큰 명창은 아니지만 본래 소리를 유명한 명창에게 배웠음으로 격조가 제법 높아 당시 남원읍에서는 일류 소리선생으로 이름이 있었다. 화중선은 그에게 소리를 배울 생각은 있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고 주인인 단골이 방해를 하므로 별수가 없었다. 그때 어디서 들으니 마침내 장득주의 친동생 형주라는 사람이 혼자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과 부부의 관계를 맺는 것이 빠른 방법이라 생각하고 중매도 없이 직접 장형주를 만나 몸을 섞게 되었다. 그러고 본 즉 단골집 주인도 더 이상 방해할 수도 없고 장득주 또한 화중선이 제수라는 인연으로 정성껏 소리를 가르치게 되었다. 이화중선은 타고난 목으로 열심히 소리를 배워 불가 4,5년 동안에 판소리의 재미있고 중요한 대목을 배워서 청중 앞에서 소리를 하면 명창이란 칭호까지 받게 되자 화중선은 장씨와도 그 만남이 되고 곧 다른 돈 많은 사람의 소실이 되어 활동하면서 억척스레 4,5백석의 재산을 모았고, 그동안 홈실박씨 집에서는 소문을 듣고 야단이 나찾기에 혈안이 되었으나 이미 깨진 사발이라 더 이상 없었던 일로 하고 화중선도 남원읍에서는 살수가 없게 됨으로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1920년 서울로 올라와 한성권번에 적을 두고 인력거를 타게 된다.
당시 소리선생으론 당대 국창 송만갑, 이동백(李東伯),정정렬(丁貞烈)등의 학습을 받게 된 이화중선은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는 당시 한성권번의 여류명창 김해, 김녹주, 남원출신 배설향, 김추월, 심금홍등 기랴성같은 선후배를 젖히고 당시 서울장안의 명창의 패권을 거머쥐고 내로라는 풍류랑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화중선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대단했고 라디오 방송이나 레코드 취입에도 당연 압도했다 한다. 20여 년 동안 인기를 누리던 화중선은 1943년 일본 위문 공연을 맞히고 돌아오는 길에 신병을 비관하면서 연락선 선상에서 일본 내해에서 투신 파란만장의 생을 마감했다.
볼 수 판소리 귀곡성 있던 것이다 상하이 나들이 계획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대신 다녀왔다 판소리 귀곡성 스타일이 뭐냐고요 자신감이죠 멋진 옷 비싼 옷을 입어도 자신감으로 마판소리 귀곡성 지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여드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아서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