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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주 정하는 기준과 야자시와 조자시 문제
황제내경영추에서 하루를 나누어 사계절에 비교하면 아침은 봄, 즉 입춘(立春)이 되고, 정오는 여름이 되고 저녁은 가을이 되며
밤중 12시(0시)는 동지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문헌을 적용하게되면 동지부터 입춘까지 약 45일 사이에
출생한 사람의 연주기준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주풀이를 해온 셈이 된다.
옛 성현의 근거문헌을 통해 하루빨리
바로잡는 것이 명리학자의 최소한에 도리일 것이다. 닭이 봉황이 될 수 없듯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은 하늘(우주)로부터
천부적이 재능과 특성을 부여받고 출생하게 되고 사람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나 자신의 운명을 알고
미래를 설계한다면 좌절내지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운명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사항]
그렇다면 왜 그동안 입춘을 기준으로 사주팔자의 연주(年柱)를 잘못 정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는 공자(孔子)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함으로부터 생긴 오류라는 의견이다.
일찍이 공자(孔子)님의 제자인 안자(顔淵)께서 국가의 제도 정하는 기준(농사짓는
기준)을 공자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러자 공자님께서 입춘으로 년(年)의 첫 달을 삼으면 농사일을 하는데 편리할 것이고 가르쳐
주었다.(子曰行夏之時) 그러니까 공자님의 말씀이 사주팔자의 연주를 정하는 기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농사짓는 기준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잘못 적용해왔다는 것이다.
사주팔자란 연월일시, 즉 날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원(曆元)이 되는 동지를 기준으로 연주(年柱)를 정해야 맞는것인가? 그러니까 동지를 기준으로 연주를 정하는 것은 하루가 12시(0시)부터 시작되는 근거가되고, 입춘을 기준으로 연주를 정하게되면 새벽 3시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된다.
경암은 오늘도 큰숙제를 풀기위해 연구분석중입니다.....
야자시와 조자시 문제
1. 동경시 문제
日柱의 기준점
일주의 기준점은 子正이다. 여기에서 자정이라고 하는 것은 '子時의 한 복판' 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에 子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언급을 하기도 했는데, 다시 한번 정리를 한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우선 이 자정을 日柱의
기준점으로 삼는다는 이야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하루는 12시이라는 관점
하루는 子時로 시작해서 亥時에 끝나게 되어있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자정을 날짜의 변경 점으로 잡았건 말건, 일단 자연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十二時가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당연히 정답이다. 실은 일반적으로 하루의 시를 따질 적에 하루
十二時라고 하는 말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히 상식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얼마든지 당당하게 주장을 할
수가 있는 이야기이다. 地支도 열 두 개이고, 그 시작은 子時로 시작을 해서 亥時로 끝이 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子正이 날짜의
경계선이 아니라, 자초(子初)가 날짜의 경계선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현재의 시간으로 따지면 밤 11시 30분이 날짜가
바뀌는 경계선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아울러서 자정이 날짜의 경계선이 되는 것은 현대의 시간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한재에는 자정이 날짜의 경계선이
된다. 그래서 당연하게 밤 12시가 되면 0시라고 해서 날짜가 바뀌는 것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신각에서 양력 1월 1일
자정에 종을 울리면서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근대에 발생한 기준이고 원래의 명리학에서는 이것을
도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자정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일축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언제부터 이 자정을 날짜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는지를 관찰해보는 것이 매우 큰 의미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몇 권의 서적들을 토대로 해서 관찰을 해봤다. 원래에는
자정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을 턱이 없기 때문에 분명히 언제부턴가 새롭게 사용이 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자료를 뒤져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고전의 관찰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종합적이라고 할만한 최초의 자평명리학의 종합서적인 '연해자평'을 우선 살펴봤다. 여기에서는 하루를 12시로
보고 있다. 일명 야자시(夜子時)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 연해자평에서는 그대로 子初를 기준해서 日柱가 바뀌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연해자평이 편찬된 것이 송나라에 해당하는 시기이고 지은이는 서균(徐均)이며 일명 서대승이라고 추정이 된다. 이 시대를
사전적으로 봐서는 서기 960년부터 1279년까지라고 되어있다. 그러면 대략 천년 전이라고 봐도 되겠다. 상당히 오래 전이기
때문에 당연히 야자시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 같다.
명리정종은 명나라 때에 나온 책이라고 보면 되겠는데, 역시 야자시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명조에 써진 명리서 에도 야자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좋겠다.
삼명통회도 역시 명나라에 등장한 명리서로 생각이 된다. 삼명통회를 저술한 분은 만육오(萬育吾) 선생인 것이 확실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여기에서도 야자시에 대한 것은 언급이 없다.
청나라의 시대에 이르러서 명리학은 대단히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어갔는데, 이 당시에 나타난 서적들로는 상당히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명리학에서 우뚝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으로 자평진전이 등장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또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러나 여기에서도 야자시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적천수징의 에서도 이 말은 보이지 않고,
명리약언에서도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볼 적에 청대의 명리서 에서도 자정을 날짜가 바뀌는 기준이 된다는 말은 찾을 수가
없는 셈이다. (처음으로)
근대(近代)의 命理書
왕정이 마무리되고 근대의 사회에서는 더욱 개방적이고 활발한 동서문물의 교류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뤄지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세계대전을 경계선으로 해서 전후가 뚜렷하게 나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명리학에서도 이 무렵에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새로운
이론들이 속속 등장을 하게 되는 중흥의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선 서낙오(徐樂吾) 선생이 지은 자평수언(子平粹言)을 보면
비로소 야자시라고 하는 용어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子正 이전은 야자시라고 해서 금일의 일진을 그냥 사용하고, 자정이
지나면 다음날의 일진을 사용한다는 언급이 되어있다.
그렇다면 자정을 날짜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동시대의 원수산 선생도 그의 저서인 명리탐원(命理探原)에서 야자시에 대한 것을 설명하면서 채용하고 있는 대목이 보인다. 또 오준민 선생의 명리신론(命理新論)에서도 역시 어김없이 야자시에 대한 이야기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쉽게도 위천리 선생의 저서를 구하지 못해서 확인을 하지 못하겠는데, 일단 위의 세 분이 채용했다는 것은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면 이분들은 자평명리에 대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분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야자시설을 채용할 정도라면
이미 나름대로 상당한 임상을 해보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명리서
우선 가장 방대한 자료라고 생각이 되는 사주첩경(四柱捷徑)에서는 야자시를 인정하고 있다. 야자시가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문제의 그 쥐 발가락 이야기까지 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대로 사용하신 것같다. 도계(陶溪) 박제완 선생님의 명리요강(命理要綱)에서는 또한 야자시를 따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유는 당연히 기본원칙에서 벗어나는 이론이라는 말씀이고 또한 타당하신 견해라고도 생각된다. 야자시설은 근대에 발생한 것으로써 상당히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반대를 하는 학자 님도 상당히 계시다는 것도 역시 현실이다.
夜子時가 발생한 연유...
원래 없었던 것이 나타나게 된 것에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과(因果)를 믿는 학자의 사고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과연 어떠한 이유가 있었기에 이렇게 골치 아픈 문제가 등장을 했겠느냐는 점을 관찰해봤다.
무엇보다도 명리학은 가장 현실적인 학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살아가는 것과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당연히 폐기처분이
되고 삭제되어 가는 것이다. 아무리 탁월한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예언을 해서 적중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이 야자시라고 하는 것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연유로 인해서인가 우리는 밤 12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준을 가지고서 따져보니까 실제로 사람의 운명이 적중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렵게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이
그대로 채용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은 내년에 돈을 벌겠다고 예언(?)을 했으면 벌면 되는 것이다. 이치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론가의 입장이다. 물론 이치적으로도 완벽하고 실제로도 부합이 된다면 더욱 좋다고 생각을 할뿐이다.
이것은 입춘을 명리학에서 한 해의 시작으로 따지는 것과도 서로 통한다고 하겠다. 명리학의 시작을 인월로 삼게 되었느냐는 질문 이였는데, 여기에 설명하기를 '은나라에서는 子月을 설로 삼고, 다시 왕조가 바뀌어서 하나라 가 되자 이번에는 丑月을 설로 삼았다. 그리고 다시 주나라가 되자
이번에는 寅月을 시작으로 삼았다. 이렇게 별 의미 없이 왕조가 변하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정해진 그야말로 우연발생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라는 형태의 이야기였다. 우연이라고 생각이 되었겠지만, 실제로는 필연이 그 속에 들어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하나의 왕조가 들어선다면 많은 것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우선 법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인심이
달라진다. 어쨌든 이렇게 모든 것이 달리진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라면 그렇게 달라진 공기를 흡수하게 되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왕조가 바뀌었다는 것은 그만큼 천지의 기운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달라진 공기의
흐름을 타고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것은 인공분만의 운명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점과도 완전히 부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월로 한 해의 시작을 삼았던 후로 태어난 사람들은 인월의 기준에 걸맞게 사주팔자를 타고 난 셈이고, 그래서 우리는 또
그러한 기준으로 따져들어도 운명이 잘 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각은 子正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니까 당연히 야자시를
부여해서 감정을 하여야 맞게 된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그러한 리듬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는 셈이기도 하다.
사실 연구를 할만큼 하신 명리학의 대가들께서 야자시를 자연스럽게 책에 서술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검토를 마친 것이라고 믿어본다.
다만 야자시를 운용해야만 그 사람의 운명이 적중하는 자료를 찾아내기가 어려운 것은 실제로 명확하게 야자시라고 하는
공간에 탄생한 사람의 자료를 얻기가 쉽지 않고, 그렇게 얻어진 자료가 충분히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사주의 내용적인 상황을 봤을 적에, 야자시에 태어났다면 장관을 하게되고, 조자시를 적용한다면 거렁뱅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정확하게 임상을 해볼 자료가 되겠는데, 어느 것이 적용되더라도 변화가 뚜렷하지 않다고 한다면 이것을 학술자료로
채용하기에는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되어서이다.
그러나 적어도 서락오,
오준민, 원수산 등의 선배님들은 나름대로 충분히 명리학에 대해서 연구를 할만큼 했다고 믿기 때문에 그대로 채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학설이라고 해도 되겠다. 왜냐면 예전(적어도 청나라 이전에는)에는 없었던 학설(學說)인데, 그 후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학설은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확실성이론이 등장을 하면서 또 이상하게 되어버리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을 해보자.
아시는 대로 양자역학(量子力學)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중심사상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1+1=확실하지 않다.' 는
이야기라고 이해를 하고 있다. 확실하지 않은 이유는 그대로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수백 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뒤따르면서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상대성이론은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것이
결국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학설을 맞이하게 되는 것과 야자시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학설에 갑자기 엉뚱한 녀석이
등장을 한 것과 비교를 할만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의 사이에 깔려있는 사정은
문외한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계산적일 것으로 생각되어서 더 이상 언급을 생략하도록 하거니와, 다만 문외한이
단편적으로 느낄 적에 서로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무리를 하자면 야자시가 적용이 되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이러한 말썽장이를 잡고 늘어져서 시비꺼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의사에 따라서 원하는 대로 응용을 하시기 바란다. 구태여 어느 방법이 옳다고 하는 생각은 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야자시설은 어울리지 않지만, 실제로는 해당이 된다는 정도로 마무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다. 결국 이야기는 자정이 날짜의 기준점이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