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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스크랩 자성대
박 지기 추천 0 조회 92 09.08.14 08:3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를 반찬으로 햇고구마를 삶아 점심식사를 대신했다.

 

우산을 쓰고 자성대까지 걸었다.

한 낮의 도로에는 외부 차폭등을 켠 차도 보인다.

 

* 태풍 ‘모라꼿’의 피해로 대만에서는 산사태로 600명이 매몰되고, 중국에서는 아파트 6동이 붕괴하고 9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일본의 지진소식에 이어 우리나라에도 오늘 밤(8. 11)과 내일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 한다.

 

  

부산진 지성(釜山鎭 支城)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7호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580-5일원

 

이 성은 흔히 자성대(子城臺)라고 부른다. 지금 남아 있는 성지(城址)는 임진왜란인 1593년(선조26)에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모리 테루모토 (毛利輝元)가 부산진의 지성(支城)으로 쌓은 일본식 성이다.

 

그러나 원래 이곳에는 우리나라 부산진성의 외성(外城)이 있었다고도 한다.

일명 자성대(子城臺)라고도 하는 것은 부산진성을 모성(母城)이라 하고, 그 자식의 성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것이라고도 하며, 산 정상에 자성을 만들고 장대(將臺)로 사용하였다는 데서 나왔다고도 한다.

 

또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지휘소로 이용했는데, 일본 장수의 이름을 따서 고니시성(小西城)이라고도 불렀다. 일본군이 물러간 뒤에는 명의 만세덕(萬世德)군이 진주한 적이있고, 그 후 만공단(萬公壇)이 있었기 때문에 만공대(萬公臺)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다시 수축하여 부산진첨사영(釜山鎭僉使營)으로 사용하였다.

일제시대에 시가지 정비계획에 따라 성이 철거되고 말았으며, 이때 자성대 일대의 해면이 매축되어 옛 모습은 없어졌다.

 

남아있는 성지(城址)는 2단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고 10m이며 최저 1.5m이다. 성벽은 비스듬히 경사져있고,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나사모양으로 감돌며 좁혀 올렸다. 일본식 성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지금 이곳에는 1974년에 시작한 정화공사로 신축된 동문인 진동문(鎭東門), 서문인 금루관(金壘關), 장대(將臺)인 진남대(鎭南臺)가 복원되어 있다. 또 명나라 장수 천만리(千萬里)의 후손이 세운 천장군 기념비(千將軍紀念碑)와 고려 말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최영 장군 비각(崔瑩將軍碑閣)이 경내에 보존되어 있다.

 

 

충장공 천만리장군 유적비명

 

임진왜란의 공신이신 천만리장군은 원래 중국 영양사람으로 자는 원지 호는 사암이시다.

 

1592년 임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원병의 영양사로서 이여송과 더불어 조선에 출정하여 평양 곽산등지에서 전공을 세우시고 정유재란 때는 마귀장군과 함께 나와 울산 동래등 남방 싸움에 참전하시었다.

 

 명군이 돌아갈때 장군께서는 그대로 조선에 머물게 되매 나라에서 충장공이란 시호를 내리시고 화산군에 봉책하여 그 공을 길이 빛나게하였다.

 

이 유적비는 한때 왜인들에 의해 매몰되었던 것을 1947년 후손들이 되찾아 세운 바이니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기를 우리는 맹세해야 되리라 생각한다.

 

1975년 2월 20일

요산 김정한 짓고

창남 고동주 쓰다.

김허 김차수 새김

 

 

 

부산진 지성 서문 성곽 우주석(釜山鎭 支城 西門 城郭 隅柱石)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9호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321-29

 

이 돌기둥은 부산진 지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돌기둥을 세운 연대는 사료에 나타난 것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부산진 지성 서문의 양측 성곽에 끼여 있으므로 임진왜란 후 부산진 지성을 축성할 때 세운것으로 추정된다.

 

돌기둥에는 남요인후(南?咽喉) 서문쇄약(西門鎖?)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되는 남쪽 국경이라,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 같다.'라는 뜻으로 임진왜한 후 왜적을 크게 경계한 당시의 시대적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 유물이다.

 

이 돌기둥은 원래 부산진 지성의 서문자리였던 성남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는데, 1975년 부산진 지성의 정화공사 때 서문인 금루관(金壘關)을 복원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 석축의 좌측은 높이 272Cm, 폭 46~94Cm이며, 우측은 높이 277Cm, 폭 62~71Cm이다.

 

 

영가대(永嘉臺)

 

영가대는 1614년 광해군때 경상도 순찰사 권반(權般)이 부산진지성 성밖 서쪽 해안에 선착장을 축조하면서 퍼올린 토사가 쌓여 작은 언덕이 생겼고 이곳에 8칸의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조성한 곳으로 누각의 이름은 1624년 인조때 선위사(宣慰使) 이민구가 이곳에 파견되어 와서 권반의 고향인 안동의 옛 지명인 영가(永嘉)를 따서 영가대라 이름하였다함

 

1617년 이후 순조때까지 통신사 일행이 출발하여 돌아오던 장소로 거친 대한해협을 건너기전 안전 항해와 무사 귀환을 비는 해신제를 올리던 장소였으나, 1910년경 경부선 철도의 부설과 항만 매축 공사로 소실된지 90여년만에 복원하여 준공(2003. 9. 25)한 것으로 우리나라 조선통신사 연구 및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해주는 출발지로서 한.일 선린 외교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지임.

 

 영가대는 일본에 파견되었던 통신사행과 관련이 깊은 부산의

명소였습니다.

 

 통신사들이 일본을 향해 배를 띄우면서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해신제를 지내던 장소이자, 출발과 귀환의 지점이 되기도 한 한일 양국 선린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며, 경치가 빼어나 시인 묵객은 물론 이곳을 거쳐간 통신사행들이 많은 시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1910년경 경부선 철도 부설과 항만 매축공사로 소실되고 현재는 부산진시장 뒷편 철길 옆에 영가대가 있었음을 표시하는 비석만 남아 있습니다.

 

? 2조선통신사: 조선후기에 에도막부의 요청에 의해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가 파견되었습니다.

통신이란 신의를 교환한다라는 뜻으로 통신사는 조선국왕이 일본 막부장군에게 파견하였던 조선국왕의 공식적 외교사절이었습니다.

 

? 조선통신사의 길

 

- 이들은 국서(國書)와 일본 가속에 줄 예단의 품목인 별폭(別幅)을 지참하고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영가대)까지는 육로로 간 뒤, 대마도(對馬)를 경유, 대마도주의 안내로 해로를 이용,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하여 일본 각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大阪)의 요도우라(淀浦)에 상륙하였습니다.

 

- 그뒤 육로로 교토(京都)를 거쳐 일본의 에도(지금의 토쿄 -東京)까지 왕복하였는데, 이들의 왕래 일정은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개 6개월 ~1년이 소요되었습니다.

 

- 그 규모는 조선국왕의 국서를 가진 3인(정사, 부사, 종사관)을 포함하여 조선의 최고 관료, 학자, 예술인, 악대, 무인(경호원), 통역관 등 300~500인에 이르렸으며, 일본 막부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통신사를 접대하였습니다.

 

? 조선통신사의 의미

 

이 시기는 한일간의 전쟁이 업었던 평화의 시대로, 통신사는 평화와 선린 우호를 위한 국가 사절로서 선진 문물을 전파함과 동시에 한일 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안내도에 동문은 진동문(鎭東門)으로 표기되었으나. 동

 

문의 현판에는 건춘문(建春門)으로 표기되었는 바 확인

 

해 보려고 한다..

 

* 경복궁의 동쪽문이 건춘문(建春門)이라고 하는데...

 

 

 

 

 

 

 

최영장군 사당(崔瑩將軍 祠堂)

 

최영장군은 고려 충숙왕 3년(서기1316년)에 출생하셨다. 장군은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왕실의 숙위병(宿衛兵)으로 근무하였고 공민왕 3년에는 대호군(大護軍)이 되어 수차에 걸쳐 내.외란을 평정하여 그 용맹함이 원나라까지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홍산(鴻山) 싸움에서는 왜구를 크게 무찔러 왜구가 최영장군을 백수 최만호(白首崔萬戶)라 하여 장군의 이름만 들어도 몹시 무서워 하게 되었다.

 

--- 왜구를 섬멸한 장군의 고마움을 하나의 신앙(信仰)으로 승화시켜 사당(祠堂)을 지어 마을 수호신(守護神)으로 장군의 영(靈)을 모시면서 매년 오월 오일(단오)에 지역주민에 의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1996. 6. 부산광역시 동구청장)

 

 

자성대가 소재한 범일동 로타리는

 

고층 건물이 많이 들어 서 있다.

 

* 촬영: 2009.8.11. 15:30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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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8.14 08:39

    첫댓글 아름다운 강산.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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