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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5
황영철 (2013.10.17.03.28)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하나님 앞에 어떤 상태에 있는지가 드러났다. 인류 앞에 율법을 들이대 보니 모두가 율법을 범한 죄인일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은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킬 의지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방인 경우는 양심이 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좀 더 풍부하게 드러난 사실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그들 안에 율법을 어기는 힘이 작동해,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셔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율법은 신령하고 선하고 생명을 주는 법임에도 사람의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문제 핵심이 이것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만이 이 율법의 딜레마에서 사람을 건져낼 수 있음을 가르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성령을 받아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뚱딴지같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가서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다.’고 가르친 것이다. 새 관점 학파가 일어나서 갈라디아 교회에서 문제가 된 것이 유대교의 몇 가지 의식법이라고 가르쳤는데, 문제 본질은 그 정도가 아니다. 이 문제 본질을 더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종교개혁자들이었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가 몇 가지 의식법을 지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겠다는 태도라는 것을 제대로 봤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겠다는 자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으려 하면 어떻게 되는지가 구약 이스라엘 역사에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후에 율법을 통한 의로 돌아가는 것은 옛 경륜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이 지배하는 구약 이스라엘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거기서 뭐가 드러났는가? 율법의 지배 아래에 있으면 정죄와 죽음밖에 없다는 것이 거기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는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한 셈이니, 이건 정죄와 죽음의 구렁텅이로 들어가자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그런 뜻을 가진다. 타락한 인간이 율법을 칭의의 수단으로 삼을 때 필연으로 발생하는 정죄와 죽음이다. 생명을 줘야 할 율법이 죽음을 가져다주는 수단이 된 것이다.
바울 사도 통찰의 압권은 생명을 줘야 할 율법이 죽음을 가져다주게 되는 매커니즘에 관한 설명이다. 무척이나 분명하고 상식적이어서 오해의 여지가 없다. 율법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사도는 먼저 율법이 없는 상태를 상정한다. 율법이 없다면 사람에게는 범죄의 가능성이 없다. 죄란 불법인데 죄를 범하려면 어길 법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주어진다는 것은 범죄의 가능성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예는 선악과 금령이다. ㅡ선악과 금령의 의미와 기능에 관해서는 내 담벼락에 몇 번 끄적거린 적이 있으니까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ㅡ 이 금령이 없을 때 사람에게는 범죄의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나 이 금령이 주어짐으로 비로소 사람에게는 범죄의 가능성이 생겼다. 범죄의 가능성만이 생긴 것이 아니라 영생의 가능성이 함께 생겼다. ㅡ“아담은 영생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한 논쟁은 사절한다.ㅡ 그것이 율법의 본질 기능인 까닭이다. 율법은 사람을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지’ 앞에 세워, “율법을 지키면 의와 생명을 얻을 것이고, 어기면 정죄와 죽음을 얻을 것이다.”고 선언한다.
하와가 타락하는 과정에 관한 통찰은 중요하다. 거기서 율법과 죄와 죽음의 본질이 드러나는 까닭이다. 뱀이 개입한 결과 선악과 금령이 하와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와의 마음속에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려는 강력한 욕구를 일으켰다. 하나님께서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언하신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다.”고 했다. 그 나무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것이 율법이 죄를 도입하는 과정이다. 하와는 시원적인 의를 가진 여인이었다. 죄악을 경험한 인류와는 다르게 아직 그 마음에서 타락의 힘이 작동하지 않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여인에게 율법이 주어지자 그녀 마음속에 그 율법을 범하고자 하는 불같은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마음속에 탐심을 일으킨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은 이 현상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돼 영생을 주시려고 주신 선악과 금령이 죄를 도입한 결과를 초래했다. 사람의 범죄는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유죄 판결을 일으키고 거기에는 영원한 죽음이라는 선고가 뒤따른다. 이렇게 돼 율법과 죄와 죽음의 삼중주가 그 이후의 인류를 휘감게 됐다. 영생의 도구였던 선악과 금령이 정죄와 죽음을 초래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 이후 땅에 존재했던 모든 인류에게서 율법은 언제나 동일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을 순종했다면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줬을 율법이 사람에게 정죄와 죽음을 가져다주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그리해 온 인류는 율법이 가져다주는 정죄와 죽음에 종속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벗어난 단 한 명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도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이상 율법 아래로 들어오신 것이다. 곧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생명을 얻는다.’는 규칙에 종속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율법은 생명을 얻게 하는 원래의 역할을 하게 됐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기 때문이다. 소극적으로는 억울한 고난을 당하셨을 때도 순종하셨고, 적극적으로는 그 생애 전체에 걸쳐서 율법의 가장 작은 것이라도 어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율법에 비춰 완전한 삶을 사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이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죄인의 삶이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기묘한 현상이다. 어느 시대나 반복되는 현상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진리의 기준이 달라지면 진리가 비진리가 되고 비진리가 진리가 되는 것이 평범한 현상이다.
이제 복음의 본질로 조금 더 들어가도록 하자.
댓글
…(댓글 전략)…
TLChoi
교수님, 그만 멈추십시오! 교수님은 믿음이라는 의미를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은 언약 관계적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ㅎ 교리나 말씀의 동의하는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목적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입니다! ㅎ 교리가 아니에요! ㅎ
…(댓글 중략)…
전종득
TLChoi 장로님, 큰 함정에 빠져 계시는 것 같습니다.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에 빠져 계시구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은 마땅히 지켜져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킨다면 우리 역시 보호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성령님을 힘입어….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이 율법을 무시하는 구원파와 매우 비슷하게 닮아있습니다.
고등학교 선배님이시라 이렇게 댓글을 남겨 봅니다.
TLChoi
귀하의 복음이 무엇인지 밝히시고 나에게 댓글을….
…(댓글 중략)…
TLChoi
옛 언약에서는 율법을 주셨지만 새 언약에서는 성령을….
TLChoi
성령을 누리며 살아야!
…(댓글 중략)…
TLChoi
하나님 나라 복음을 공부하시고, 대화하시지요! 소모적 대화가 진행될 수밖에…. 귀하의 복음은 이신칭의 같은데, 옛 관점과 새 관점처럼 새 관점을 모르면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서로 무시할 수밖에….
…(댓글 중략)…
전종득
그냥 본인 갈 길을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남의 담벼락에 와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할 것 없이요. ^^
朴埰同
여기서 이러고 계시네요. ㅠㅠ
朴埰同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교회 역사상 이단으로 정죄당한 행함구원론의 펠라기우스’와 ‘바울 사도 구원론을 받든 은혜구원론의 어거스틴’과 함께 할 수 없듯이 ‘반半 펠라기우스 구원론을 가진 이른바 “새” 관점 구원론’을 ‘바울 사도 구원론을 받든 구원론’으로 여기는 이런 분은 바뀌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제 갈 길 가는 게 정답입니다.
‘성령의 법’을 내세우며 ‘하나님 나라 백성인 신자의 생활 준칙으로서 시내산 율법’ 폐기를 주장하는 이분 주장은, ‘이 땅 위 예수 그리스도 신성’을 부정한 이단 박창진 목사 주장과 유사합니다. ‘{뉴스앤조이} 박창진 <성령님의 율법 바르게 이해하기>(2009.10.08.)’에서 “오늘날 교회에게 도덕법(시내산 십계명)이라고 할지라도 유효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율법만이 유효합니다. 성령님의 율법은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입니다.”는, 제가 듣도 보도 못한 주장을 읽게 됐습니다. ‘세대주의 영향을 받은 주장인가?’ 생각으로 하나하나 제가 따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한 채 박창진 목사에게 들은 소리는 “깝죽댄다.”였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창진 [예수님은 신인(God-Man)인가? (완결편)](2011.02.08.)’은 이른바 “옛” 관점, 정통신학의 그리스도론, ‘참 사람이자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 신인神人이신 그리스도론’을 부정한 글입니다. ‘이 땅 위 예수는 사람이었을 뿐 하나님은 아니었다.’는 이단 사설을 늘어놓은 글입니다. 이 글에서 박창진 목사는 그 근거 하나로 톰 라이트 주장을 내세웁니다. 인용부호 ‘《 》’를 써서 옮깁니다.
《예수님이 신인이 아니라 사람이시기에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의의가 크다. 엔 티 라이트(N. T. Wright)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승리}에서 예언자로서 예수님을 말한다. 새 시대를 가져오시는 분, 새 백성을 일으키시는 분, 떠나간 신이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분으로 그 인격과 사역을 정리한다. ㅡ‘N. T. Wrigh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박문재 역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4)’ 380, 493, 561쪽에 주어진 자료에 근거한 정당한 연구 결과다.ㅡ》
그때 이 글을 읽고 저는 ‘톰 라이트’를 알게 됐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인가?’ 하는 의심이 들어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를 구입해 읽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쪽수가 ‘1051 쪽’인 걸 보고, 노안이 찾아와 돋보기를 쓰고 책만 읽으면 졸기 일쑤라서 ‘박창진 목사가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에서 취할 것만 취해서 왜곡했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며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승구 {톰 라이트에 대한 개혁신학적 반응}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13)’에 <라이트에게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가?>가 있습니다. 이 소제목 아래 이승구 목사님께서는 톰 라이트 텍스트를 제시하신 뒤 톰 라이트 모호한 글쓰기를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톰 라이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는 정통신학(옛 관점)의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아무튼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전종득 목사님 고교 선배이신 이분에게 이른바 “새”가 참 신선하게 다가왔나 봅니다. 이른바 “새”를 등에 업고 옛 관점 정통신학을 무너뜨리는 일이 사명인 톰 라이트, 톰 라이트 구원론은 ‘교회 역사상 이단으로 정죄당한 펠라기우스 행함구원론’을 답습한 신학임에도, 그래서 ‘최종 칭의는 심판 시에 있다.’는, ‘최종 구원은 성령의 법(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이 세상에서 선한 행실을 얼마나 맺었느냐, 맺지 않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행함주의 구원론임에도, 이걸 바른 복음으로 주장하는 분과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 갈 길 가면 된다.’는 전종득 목사님 말씀에 동의하며 긴 글 남깁니다.
TLChoi
희망이 없군요! ㅎ
朴埰同
제가 희망이 없다는 건가요, 귀하에게 희망이 없다는 건가요?
朴埰同 <TLChoi 님, 귀하에게 소망이 없다는 뜻이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식 복음만 아시다가 ‘이미와 아직의 하나님 나라’를 아신 뒤 마음이 뜨거워져 하나님 나라에 사로잡히신 분이라, ‘이미와 아직의 하나님 나라’를 깨닫게 하신 성령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황영철 목사님께서 귀하와 페절하시면 저를 포함, 여러 사람 고생하지 않고 가장 편한데, 하나님 말씀을 맡은 목자로서 님의 왜곡된 성경 해석, 그 오해를 푸려고 애쓰시는 게 성령 하나님께 소망을 두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돼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딤후 2:24~26)
TLChoi
이신칭의와 율법에서 잘들 해 보세요! ㅎ 너무 경직되어 있네요! 시내산 율법이라. ㅎ
朴埰同
<시내산 율법>이 싫으시면, 주님께서 <시내산 율법>의 정신을 풍성하고도 충만하게 해설해 주신 <산상보훈>을 받아들이십시오.
朴埰同
할례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 7:19)
위 고린도전서 7장 19절은 갈라디아서 6장 15절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서로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구절들을 “병행구”라고 하지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갈 6:15)
자녀들에게 제5계명을 지키라 명령하셨던 바울 사도, “오직 하나님의 계명(시내산 율법)을 지킬 따름이니라.” 하신 바울 사도도 참 경직돼 있지요?
TLChoi
산상수훈의 대전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복음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천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해보세요!
TLChoi
너무 오류가 심하네요! ㅎ
TLChoi
갈라디아서 2장 19, 20, 21절도 엉터리이겠네요?ㅎ
…(댓글 중략)…
TLChoi
산상수훈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산상수훈의 대전제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엉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ㅎ
朴埰同 <TLChoi 님, 제 답변들에는 귀를 닫으셨네요.>
갈라디아서 2장 19절~21절도 고린도전서 7장 19절과 갈라디아서 6장 15절과 똑같이 하나님 말씀인데, 왜 엉터리겠습니까?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해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2:16~21)
제 답변 다시 적습니다. 황영철 목사님 <율법 4>에 적은 답변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성령으로 거듭난 너희들은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하시면, 전후문맥을 파악해 어떤 의미에서 그 말씀을 하시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율법은 ‘지키면 산다.(의롭다 하심을 얻어 생명, 영생을 얻는다.)’는 축복 기능과 ‘어기면 죽는다. (사망이다.)’는 저주 기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어기면 죽는다.’는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셨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축복대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부활(딤전 3:16)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축복과 저주라는 기능을 가진 율법’, ‘그 율법의 지배’에 벗어난 자들입니까, 아닙니까? 벗어난 자들입니다. 축복과 저주라는 기능을 가진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함에도,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구원을 얻으려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어떤 자들입니까? 그리스도 구속 사역을 허무는 자들로, 바로 황영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주의자들”입니다.
TLChoi
십자가의 속량, 구속, 대속, 해방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세요! 속죄는 조금만…. 황 교수님은 십자가 속죄 교리 즉 이신칭의에 묶여 있다니까요! 다른 댓글을 읽어보세요! ㅎ
朴埰同 <TLChoi 님,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들어가는 천국은 ‘시내산 모세 율법(하나님의 계명: 천국의 통치법, 즉 천국의 헌법인 십계명)’ 없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①>
그러므로 ‘믿음’과 ‘율법(하나님의 계명)’을 분리한 이분법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3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 계명들을 지킬 때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분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분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2~3)
네 자녀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요이 1:4)
이른바 “새” 관점 대표 신학자 톰 라이트는 읽는 사람 혼란스럽게 글을 비비 꼬아 모호하고 장황하게 쓰는 게 주특기입니다. 그래서 호남의 명문고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해 치의학 박사이시면서도, 새 관점 신학자들이 이른바 “옛” 관점으로 부르는 정통신학, ‘정통신학을 무너뜨리는 일이 사명인 톰 라이트’에 사로잡힌 노예가 돼 혼란스러운 사고를 하시는 귀하에게 제가 더 이상 무슨 답변을 해야겠습니까?
톰 라이트는 모호한 글쓰기가 주특기이라서 톰 라이트 새 관점은 여러 사람 망쳐 놓지만, 새 관점 대표 신학자 제임스 던은 자신의 책 ‘{바울신학} 박문재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트, 2003)’ [제8장: 신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 ‘기독교 윤리’를 다룹니다. 즉, ‘천국의 윤리’를 다룹니다. 그러면 그 윤리는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세 율법의 대강령,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 즉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TLChoi
하나님 나라 복음을 알면 귀하처럼 어거지를 부리지 않습니다! ㅎ
TLChoi
말도 안 되지요! ㅎ
TLChoi
언약 신학 관점에서 다시 복음에 대하여 공부를 해야 할 듯 ….
TLChoi
새 관점을 모르는 사람들이 짜증 날 수밖에….
朴埰同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들어가는 천국은 ‘시내산 모세 율법(하나님의 계명: 천국의 통치법, 즉 천국의 헌법인 십계명)’ 없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②>
제가 ‘천국의 헌법으로서 <산상보훈>’에 적힌 말씀만이 아니라 ‘<산상보훈> 주제를 설명한 [요한일서]’에 적힌 말씀들을 적어 ‘기독교 윤리’로서 ‘하나님의 계명’, ‘천국의 윤리’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설명하는 답변을 적어 드린 적도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십자가 사건 전(구원 전)에 주신 것”?????? 구원 전에 주신 것이어서 구원받은 신자와는 상관없는 말씀, ‘이미, 그러나 아직의 천국’에 사는 신자와 상관없는 말씀이라는 뜻입니까?
[요한계시록]은 ‘이미, 그러나 아직’의 천국에 관한 말씀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해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 12:17)
성도들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요한계시록]에서 보는 대로 ‘이미, 그러나 아직’의 천국은 그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 나라입니다. 요한 사도께도 “엉터리”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 천국의 헌법으로서 <모세 시내산 율법>을 풍성하고도 충만하게 풀이해 주시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해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4~19) 하신 주님께도 “엉터리”라고 하시겠습니까?
TLChoi
귀하는 나를 비난하는 것입니까?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입니까? 나는 일관되게 많은 것을 참으며 알려주고 있는데! ㅎ 내가 뭐가 아쉬워 변명하고 있겠는가?ㅎ
朴埰同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들어가는 천국은 ‘시내산 모세 율법(하나님의 계명: 천국의 통치법, 즉 천국의 헌법인 십계명)’ 없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③>
황영철 목사님께 “엉터리” 운운했던 귀하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와 아직인 천국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싸우려고 바다 위에 선 ‘#용’을 후원하는 처지가 아닌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정말 그러한가 해 날마다 (구약)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
베뢰아 성도들처럼 신사의 자세로 곰곰이 생각하셔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마 5:3)라는 주님 말씀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마 5:6) 다윗의 고백,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해 그분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라는 고백을 떠올려, 이 고백이 귀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뢰아 성도들처럼 신사의 자세로 귀하 처지가 어떤 처지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셔서 “행위 완전해 여호와의 법을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실로 그들은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님의 도를 행하는도다. 주님께서 주님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제가 전심으로 주님을 찾았사오니, 주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제가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주님 말씀을 제 마음에 뒀나이다. 주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 제 눈을 열어서 주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저는 땅에서 객이 됐사오니 주님 계명을 제게 숨기지 마소서. 주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제 마음이 상하나이다. 교만해 저주를 받으며 주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 저를 깨닫게 하소서. 제가 주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제가 주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제가 주님 법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 주의 말씀의 맛이 제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이요 제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편)라는 다윗의 고백이 귀하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TLChoi
싸움이라, 그만합시다! 우리 복음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지? 헛수고였네요! ㅎ
朴埰同
저에게서 복음 사역 본질 하나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또 어려서부터 (구약)성경을 알았나니, (구약)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읽어볼 테니, 귀하에게서 “복음 사역의 본질”을 서술해 주십시오.
TLChoi
옛 관점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천국) 복음 사역입니다! 귀하의 복음을 주장만 하고 있으면, 싸움질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TLChoi
복음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대화가 되겠습니까? 황 교수님 복음도 하나님 나라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싸움질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엉떠리와 같은 표현을 말꼬리 잡고 대화를 하면 진흙탕 싸움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하려고 하는데…. ㅎ
TLChoi
하나님 나라 복음을 아직 공부하지 않했으면,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고 격려하며 읽어 주어야지…. 귀하는 유난히 비난 조롱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 5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신학자, 목사, 선교사 등을 경험했겠습니까! ㅎ
TLChoi
그리고, 본인 이야기에 집중하셔야지 황 교수님 두둔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면 본질에서 벗어날 수밖에….ㅎ 하나님 나라 복음, 어렵습니다! 지금의 자세로는 이해하기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헬라어성경 원본이 어려운데….
TLChoi
지금처럼 대들면서 한번 말해 봐라 식으로…. ㅎ
朴埰同
지금 저와 싸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를 잘 아는 지인들은 저를 “불도그”, “쌈닭”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귀하와 싸움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황영철 목사님 담벼락이라서 제가 ‘쌈닭으로서 제 기질’을 귀하에게 모두 보여 주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평’과 ‘비난’도 구분 못 하시는데,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고 격려하며 읽어 주어야지, 귀하는 유난히 비난 조롱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걸 “내로남불”이라고 하지요.
“격려”요? 애써 주님 말씀과 요한 사도 말씀과 바울 사도 말씀을 적어 ‘#길게’ 설명해 드려도, 앵무새처럼 ‘#짧은’ 말로 “용용 이겨라! 용용 이겨라!”라며 용을 응원하니, 격려가 나오겠습니까?
“비난 조롱”이요? 비난과 조롱당할 일을 안 하시면, 됩니다.
朴埰同
“본인 이야기에 집중하셔야지 황 교수님 두둔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면 본질에서 벗어날 수 밖에”??????? 제가 황영철 목사님을 두둔했습니까? 아니면, 천국의 복음을 변증했습니까?
‘#천국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나라’입니다. 그러함에도 귀하는 넘어질 때도 있었던 다윗처럼 ‘천국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맞서 “용용 이겨라! 용용 이겨라!” 하며 사탄의 편을 드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귀하에게 천국의 복음 하나로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주님 말씀을 제시해 천국의 복음을 변증한 것 아닙니까?
‘톰 라이트 그리스도론’에 관한 이승구 목사님 글을 알려드렸으면, ‘여러 사람 망치는 톰 라이트가 그릇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셔야 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복음 사역 본질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변증하는 일입니다. 이 점에서, 모호한 글쓰기가 주특기인 톰 라이트가 망쳐 놓은 사람, ‘이 땅 위 주님의 신성을 부정한 바보 박창진 목사’를 논박한 시詩, 제가 ‘불후의 명시’로 여기는 시를 소개합니다. 이 시를 쓰신 ‘파발’ 님은 저와 같은 일반 신자이자 노동자로 ‘통신과 관련한 일을 하는 노동자’로 밝히신 분입니다. 저는 “그 바보가 박창진 자네라고 생각되면, 목을 곧게 해 진리를 거스르지 말고 돌아서게나. 늦지 않았네.”라는, 이 시 마지막 문단에서 박창진 목사를 향한 파발 님 사랑을 읽었습니다.
참고로, ‘이 땅 위 주님의 신성을 부정한 이단’이 되기 전 박창진 목사는 행위 구원론자 톰 라이트 노예가 돼 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다가 예장 고신 목사 명부에서 제명을 당한 사람입니다.
https://cafe.daum.net/reformedcafe/HylP/12
TLChoi
최소한 나는 이승구 목사보다 새 관점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 같으며,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하여는 내가 훨씬….ㅎ 새 관점에 대하여 긍정적인 책을 쓴 신학자를
朴埰同
비난과 조롱을 당할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가르쳐 드렸건만, 박창진 목사와 같은 바보짓은 여전하십니다.
“최소한 나는 이승구 목사보다 새 관점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 같으며,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하여는 내가 훨씬”???????
사탄 편에 서서 “용용 이겨라!” 하며 용을 응원하는 귀하가 새 관점에 관해 이승구 목사님보다 많이 알고 있어요? 새 관점에 관한 귀하 지식은 ‘들은 풍월’ 수준이에요. 즉, ‘새 관점’, ‘톰 라이트’라는 용어 정도만 아는 지식, 앵무새 지식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톰 라이트 새 관점에 관해 자세히 모르고 있어요. 최현만 역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는 읽어보셨어요?
안 읽어보셨으면, 이 책을 가지고는 있으세요? ‘행위 구원론자 톰 라이트가 이 책에서 귀하처럼 “용용 이겨라!” 하는가?’를 살펴보게 답변해 주세요.
어려운 질문 아니니, 딴소리 말고 “있다.”. “없다.”로 답해 주세요.
TLChoi
그만 합시다! ㅎ
朴埰同
하나님 말씀에는 굴복하지 않은 귀하에게 귀하가 진리로 여기는 새 관점, 새 관점 대표 신학자 제임스 던이 말한 천국의 윤리(시내산 율법)를 알려드렸으면, 이에는 굴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임스 던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걸 보면, 귀하가 곧 진리임을 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TLChoi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알기 전에 새 관점 따위에 관심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구 헷갈릴 것입니다! ㅎ
朴埰同
새 관점을 이제야 따위로 말하신 게 "용용 죽겠지!" 하며 천국의 윤리를 말한 새 관점에 관한 배신감으로 충격이 크신가 봅니다.
朴埰同
다음은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TLChoi
네끼! 이 사람아, 그렇게 수준 낮게 대화하지 맙시다! ㅎㅎ 우리가 그리스도인 아닌가요? 이 현실이 안타깝네요! 하나님 나라 복음을 모르면 오히려 새 관점이 오히려 복음을 아는 데 방해요소가 된다는 의미인데, 왜 그리 삐딱하게.🐐
朴埰同
“네끼! 이 사람아,”는 친한 친구나 친한 아랫사람에게 쓰는 정겨운 우리말인데, 1962년 8월 15일에 태어난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가 봅니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TLChoi
나보다 2 년이나 어리구먼! 60년생 쥐띠. 자 이제 여기까지 나눔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공부한 다음, 기회 있으면…. 다시 감사합니다!
노승환
아이고, 목사님! 며칠 동안 너무 고생 많으시네요.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더니 딱 그 짝입니다. 저는 교회 교육의 권위에 대해서는 츠빙글리의 입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가 꿈꿨던 prophezie 모임처럼, 고전어를 배우고, 신학 일반을 섭렵한 특정 인물들에게 성경 해석을 맡겨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자신의 터전에 목사가 아는 체하면 그렇게 화를 내면서, 평생을 연구한 목사, 교수들 업적은 헌신짝처럼 여깁니다. 만인 제사장에 대한 이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 일반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지요. 그 교회가 부끄럽고 임직이 부끄럽습니다.
황영철
그러게요. 그래도 어떻게 오해를 풀어줄까 해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고 있네요. ㅎㅎ
朴埰同
빨간 펜 선생님이신 노승환 목사님께서 TLChoi 님 답안지에 채점을 매겨주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댓글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