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팬의 초대로 갔지만
그리 오래 계속 살지 몰랐다
지금은 성산에서 오조리로 작업실을
옮기는 중
우리 나중에 제주에서 같이 살자 하셨지만
이제 나도 없는 제주에서 더 고립과 고독을
사랑하며 사시겠지
오래 전 서울 한 겔러리
나와 미친 꽃 초설과 엄마 꽃 시집 제목을 붓으로 써주신 방송국에 근무하시는 캘리그라피 장천 선생님과의 행사가 있던 날 (장천 샘은 그 후로 팀장으로 승진되어 요즘은 예전처럼 많이 쓰시지는 않고 특집방송이나 그런 것ㅡ최근에 쓴 것은 한국인의 밥상)
어디 게스트라도 한 명 불러야 겠는데
내가 서울에 부를 사람이 있어야지
현 샘은 당근 오셨고 이 생진 선생님과
목연 수필 샘들은 점심 사준다고 미리 왔다 가시고 그리고 본 공연 시작 후 마지막 초설의
이야기 시간
벙거지 모자에 떨어진 청쪼끼에
기타하나 둘러매고 누가 들어 온다
지하철 타고 왔다면서
참석자들은 깜짝 놀라고
선생님의 노래에 더 놀라고
조영남이 부른 모란동백이란 노래가
울 샘이 환갑기념으로 만든 건데
원곡자와 원곡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ㅡ
그리고 특히 그때는 방송과 언론과 사람들 모임에는 나타나지를 않는 분이라
다들 처음 실물을 접하는 거라ㅡ
노래도 대충 한 두곡 하고 가시지
다섯 곡 정도 부르셨나ㅡ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분을 섭외할 수 있냐고?
그럼 어떡해 ㅡ부를 사람이 이 생진 이 제하밖에 없는데ㅡ
내가 제하 샘에게 샘 안 오면 올 사람도 없고 인연 끊는다고 공갈도 쳤지만ㅡ
내가 서귀포에 살 적에도 성산에서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엄청 자주 오셨다
내 친구가 늘 하는 말
ㅡ도대체 자기는 알 수가 없다고?
샘을 따르는 사람도 많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너를 유독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고
ㅡ야ㅡ인물이 되잖아ㅡ이 정도 생기기가 쉽냐
이 정도 생기서모 당연히 좋아하시야지
울 샘 나랑은 낚시도 가고 시장도 가고
맛나는 거 먹어로 가자고 늘 그러시는데
샘!
쫌만 기다려유
몸 좋아지고 여유 생기면 헤엄쳐서라도 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