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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경험의 농부의 이야기~~ |
깔끔, 개운, 황홀한 청주 한 잔에 농부 김광화씨가 기분 좋게 취했다. 아들이 손수 빚은 술이니 얼마나 맛나겠는가. 이뿐인가. 지천에 널린 꽃을 따다가 밥에 비벼 먹고, 뜨끈뜨끈한 퇴비에 달걀을 익혀 까먹는 맛도 기막히다. 새로운 음식을 창조하는 기쁨, 음식을 손수 하는 즐거움, 그리고 이 맛을 공감해줄 가족이 있다는 고마움. |
날마다 먹는 밥. 그 밥상을 마주하고 설렌다면? 더 나아가 먹는 과정 그 자체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런 마음으로 지난 가을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요리를 하기로 했다. 이 다짐을 지키기 위해 요리일기를 틈틈이 썼다. 그런데 요리라는 게 취미로 하면 재미있지만 날마다 하기는 쉽지 않다. 요리를 할수록 하루 세 끼를 마련하는 아내가 얼마나 위대(?)한지 실감한다. 게다가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장류나 술 빚기까지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요리를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 우리 집안 식구 사이의 권력(?) 관계를 보면 나는 껍데기일 뿐 힘은 아내에게 쏠려있는 듯하다. 그 힘의 원천은 ‘밥상’인 것 같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 엄마에게는 고마워하지만,농사일을 한 나는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서운한 마음에 “이 밥상은 대부분 아빠가 농사지은 걸로 만든 거야” 하며 나를 내세워보지만 왠지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손수 반찬을 하고 아이들이 잘 먹었을 때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물론 이 힘이 누군가를 누르는 건 아니다. 단지 끼니를 같이하는 식구 사이에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열쇠가 된다. 그런 점에서 밥상을 손수 차려낸다는 것이야말로 ‘자기 권력’을 완성하는 게 아닐까. 아내는 식구를 위해 밥상을 차리지만 나는 우선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 그 대신에 준비에서 먹기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설렘을 맛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밥상 전체를 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참새 한 마리로 온 식구가… 밥상의 설렘이란 먼저 맛보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한번은 비닐 집에 문이 열린 사이로 참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문이 닫혔다. 참새가 도망가려고 이리저리 난다. 잡아야지.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지난해부터 부쩍 많아진 참새. 우리집 처마 곳곳이 참새 둥지다. 아예 참새 아파트다. 참새가 많아지니 닭장에도 오리장에도 참새들이 모이 찾아 날아든다. 한꺼번에 열 마리쯤 날아들 때도 있다. 비닐 집에 갇힌 참새. 제 놈이 날아보았자, 비닐 집 속이다. 이리저리 날다가 힘에 부치는지, 곧 땅으로 떨어진다. 잡았다. 아내가 신기하다며 참새를 자세히 보고 싶단다.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날개, 발가락, 똥구멍, 부리…. 이 놈을 어떻게 먹지? 우선 머리와 발을 떼어 고양이에게 주었다. 껍질을 벗기는데 잘 벗겨진다. 닭 잡는 일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 털을 다 벗기자, 정말 먹을 게 조금밖에 안 된다. 참새구이가 맛있다지만 구웠다가는 그나마 먹을 게 없겠다. 일단 삶아야겠다. 내장을 들어내는데 알이 한 개 보인다. 위는 어디 있나. 너무 작아 잘 안 보인다. 그래도 이리저리 찾으니 붉은빛이 나는, 작은 손톱만한 게 있다. 닭을 잡으면서 익힌 느낌이다. 칼로 살짝 반을 가르니 역시 똥집이다.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고 끓인다. 이걸로 무얼 해 먹을까. 참새 한 마리로 온 식구가 먹을 수 있는 메뉴. 아무래도 죽이 좋겠다. 아침에 불려놓은 찹쌀을 냄비에 담아 물을 붓고 끓인다. 통마늘 몇 조각. 참새도 새인지라 약간의 누린내가 난다. 생강을 조금 넣고 함께 끓였다. |
아내의 도움말에 따라 무를 연필 깎듯 ‘깎아썰기’를 하고, 대파도 두어 줄기 넣고 함께 끓였다. 마음이 바쁜지 내 손이 투박해서 그런지 깎아썰기가 두꺼워졌단다. 익을 동안 10분쯤 더 끓이는 사이 호두도 네 알 까서 넣었다. 어째 환자식 비슷해진다. 소금 간을 살짝 하고 나서 뚜껑을 닿고 다시 5분쯤 기다린다.
큰아이가 조심스럽게 먹어보더니,
“맛있네요. 닭죽이랑 비슷해.”
아내도 참새죽을 먹으면서 멋쩍은지,
“정말이지, 별걸 다 먹어보네.”
모두 잘 먹는다. 새 알은 아내 그릇에 들어갔다. 아내는 그 알을 무위 먹으라고 준다.
큰아이와 아내는 참새죽을 한 그릇 먹고 또 한 국자 더 먹었다. 죽이 부족했다.
퇴비 열로 달걀 익히기
농사를 짓다 보면 뜻밖의 일을 겪곤 한다. 퇴비 만들기도 신비한 일 가운데 하나다. 퇴비를 만들 때 발효 과정에서 뜨끈뜨끈 열이 난다. 농사 선배들을 통해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손수 해 보니 훨씬 신비롭다. 퇴비가 발효되기 시작하고 며칠만 지나면 퇴비 속 온도가 나날이 달라진다. 온도계로 재어보니 60℃, 그 다음날은 65℃ 또 다음날은 70℃. 여러 가지 미생물의 먹이 활동이 놀랍다. 먹고 먹히는 과정 자체가 열이고 에너지인가 보다.
이 에너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열이 나듯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도 모이니 무척 뜨거워진다. 우리집 고양이는 틈만 나면 퇴비더미 위에서 따뜻한 온욕을 즐긴다. 뱃속에 새끼를 배고 있으니 아침 햇살을 즐기며 따뜻한 퇴비더미 위에 엎드려 있으면 뱃속 새끼에게 참 좋겠다 싶다.
퇴비 속에서 올라오는 열이 아까워 달걀을 익혀보기로 했다. 퇴비 거죽을 파내고 안에다가 식구 수대로 달걀 네 알을 넣었다. 퇴비 속은 너무 뜨거워 자칫 손을 델 정도다.
하지만 열이 펄펄 끓는 정도는 아니니 달걀을 오래오래 익혀야 한다. 아침 10시에 넣은 달걀을 저녁 6시에 꺼냈다. 껍질을 까보니 반숙이 지나 살짝 익었다. 그런데 흰자보다 노른자가 더 잘 익은 게 신기했다. 끓는 물에 반숙을 하면 노른자는 안 익고 흰자만 익는다. 그런데 퇴비 속에서는 노른자는 다 익었고 흰자는 흐물흐물하다. 그래서인지 껍질 까기가 쉽지 않다.
조심조심 껍질을 까서 먹었다. 그런데 다른 식구들은 안 먹는다. 안 먹어본 음식이라 비위에 안 맞나 보다. 스스로 퇴비를 만들어보면 맛이 달라질 텐데.
예전에는 시골에서 두엄을 썩혀 썼다. 두엄을 썩히면 냄새가 고약하다. 하지만 퇴비는 썩히는 게 아니라 ‘띄우는’ 거다. 청국장, 김치처럼 미생물 발효가 되는 것이다. 퇴비가 발효되자면 먹이가 충분하고, 온도가 적당하고, 수분이 있어야 한다. 쌀겨, 산의 부엽토, 볏짚, 왕겨, 깻묵 따위가 발효를 촉진한다. 여기에다가 사람 똥오줌 그리고 동물 똥도 함께 넣고 발효를 시킨다. 이 모든 것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열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자연 에너지로 익힌 달걀. 똥오줌에 대한 선입견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손수 했기에 느낌이 다르다. 나 혼자서 두 알을 맛나게 먹었다. 다른 식구들이 안 먹어도 서운하지 않았다. 눈을 돌려 세상을 넓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혐오스럽거나 별난 요리도 고급요리가 되지 않는가. 프랑스 달팽이 요리, 중국의 모기 눈알 수프. 그리고 구더기 요리는 에스키모인의 별미라고 하니까.
퇴비 열로 익힌 달걀의 신비로운 맛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연 발효되는 약한 열로 천천히 오래오래 익혔기에 맛이 깊다. 게다가 수억, 수조 마리의 미생물이 힘을 함께 써준 것이다. 이를 제대로 맛보자면 아주 천천히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맛을 다시 보자면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 퇴비 만들기는 봄가을 들꽃이 필 때가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달걀 요리는 내가 퇴비를 만들 때나 한두 번 먹어볼 수 있는 아주 ‘희귀한 요리이자 고급요리’라고 자부한다.
꽃 반찬, 꽃비빔밥
참새죽이나 퇴비 달걀 요리는 정말 어쩌다 먹는 것이다. 일상에서 설렘이 있자면 아무래도 제철 음식이어야 할 것이다. 지난 가을에 씨를 뿌려둔 조선배추에 꽃이 활짝 피어난다. 배추꽃은 줄기 꼭대기 꽃이 가장 탐스럽다. 줄기 곁가지에도 노란 꽃이 복스럽게 핀다. 밭 한 귀퉁이에 조선배추 열 포기만 있어도 꽃이 피면 밭 전체가 환해진다. 배추꽃에는 벌레도 많이 꼬인다. 그만큼 먹을 게 많다는 건가. 입맛이 절로 당긴다.
한 그릇 그득히 땄다. 집으로 와서 물에 씻었다. 사실 배추꽃은 씻을 게 많지 않다. 봄비가 온 뒤에는 먼지도 없다. 물에 씻는 건 꽃에 달라붙은 벌레 때문이다. 배추꽃에 잘 오는 곤충 가운데 배추흰나비가 있지만 이 놈은 사람만 다가가면 날아가 버린다. 꽃을 따는 데도 도망을 못 가는 녀석들은 대부분 작은 벌레들이다.
물에 한 번만 씻어 밥상에 놓았다. 꽃만으로도 먹고, 반찬으로도 먹고, 상추쌈에 얹어서도 먹는다. 향도 좋고 아삭거리는 느낌도 좋다. 뒷맛은 약간 매워 반찬이 절로 된다. 준비에서 먹기까지 그 과정이 행복하다. 이것도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배추꽃은 한 달가량 피기에 여러 번 먹을 수 있다.
5월초, 이맘때 가장 맛있는 꽃을 꼽으라고 하면 골담초꽃이 아닐까 싶다. 집 둘레에 심어두면 울타리 구실도 하고 꽃도 예쁘고 맛도 좋다. 이 꽃은 처음에는 풀빛이다가 꽃잎이 벌어지면 노란빛으로 바뀌며, 나중에 꽃이 시들면서는 적갈색을 띤다. 꽃 자체에 꿀이 많고 수분도 많아 아삭아삭 달콤하다. 쪼그리고 앉아 반찬으로 하려고 꽃을 따다가 보면 꿀벌이 둘레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꽃을 많이 따서, 모으기가 미안할 정도다. 더불어 같이 사는 생명으로 ‘지금 삶’의 충만함을 느끼곤 한다.
이렇게 꽃 반찬으로 하나둘 먹다 보면 어느 순간 온 들판이 꽃밭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꽃을 한꺼번에 먹고 싶다. 그건 바로 꽃비빔밥이 아닐까. 꽃비빔밥을 하자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들꽃 중 못 먹는 꽃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독이 있어 아주 쓴 꽃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무리지어 많이 피어 있어야 한다. 제비꽃처럼 드문드문 피어서는 비빔밥을 할 만큼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골담초꽃과 배추꽃은 꽃 비빔밥에 주된 재료가 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노란빛이어서 색깔이 단조롭다. 밭두렁에 피어 있는 광대나물꽃은 오래도록 핀다. 3월부터 5월까지 무리지어 피어난다. 이 꽃은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맛이 없다. 맛이 묵직하다고 할까. 그러나 색깔이 홍자색이라 골담초꽃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다가 자운영꽃이 들어가면 색깔이 확 달라진다. 자운영은 꽃 하나에 흰빛과 붉은빛이 골고루 어울려 화려하다. 꽃잎 모양도 나비 여러 마리가 빙 둘러 앉아 있는 것처럼 매혹적이다. 맛도 상큼하다.
아들이 빚은 이양주(二釀酒)
꽃바구니 전체를 다시 보니 아무래도 흰빛이 적게 느껴진다. 그럼, 하얀 냉이 꽃이 있다. 하지만 뿌리와 달리 냉이꽃은 맛이 별로다. 그래도 색깔이 하얀빛이라 구색을 맞추기 위해 뜯는다.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꽃을 한 바구니 땄으면 물로 헹구듯 씻어, 물기를 뺀 다음 그릇에 놓는다. 식구마다 식성대로 먹는다. 그냥 꽃만 먹어보면서 꽃 그대로의 맛을 느끼기도 하고, 밥에 반찬으로도 먹는다.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보고, 상추나 취 잎에 쌈을 싸듯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먹을 수 있는 온갖 꽃을 모아, 한 그릇 가득 잡곡밥으로 비빈다. 꽃비빔밥이다.
비빔밥에 달걀을 부쳐 넣으려고 하니 아내가 말렸다. 된장찌개 두어 술에 햇고추장 한 술이면 좋단다. 포슬포슬 밥과 싱싱한 꽃들을 비빈다. 무슨 맛일까. 비비면서도 마음이 설렌다.
설레는 밥상이라면 아무래도 잔칫상을 빼놓을 수 없겠다. 우리 식구는 산골 생활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잔치를 많이 벌였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면서였다. 학교를 안 다니니 처음에는 남들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 조촐하게 잔치를 벌이며 기죽지 말고 당당히 살아보자는 의식을 치른 적이 있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꾸고 싶었다. 잔치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밥상이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제철음식에 특별한 요리가 한두 가지만 있으면 잔치라고 이름을 붙이곤 했다. 아이들 성장에 ‘밥상잔치’는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이후에도 조그마한 핑계만 있으면 잔치라는 이름으로 밥상을 차리곤 했다. 아이가 책을 한 권 다 뗐다든가, 키가 얼마나 자랐다든가. 핑계를 찾으니 잔치할 구실은 많고도 많았다. 그러다 이제는 잔치를 즐기는 분위기가 점점 잦아들고 있다. 잔치를 하고 싶은 만큼 해본 셈인가 보다. 그런데 최근에는 뜻하지 않게 잔치를 하게 생겼다. 이번에 책을 한 권 냈다. ‘아이들은 자연이다’. 나로서는 책을 낸 감회가 깊다. 산골살이 꼬박 10년 만의 일이다. 그것도 혼자 낸 게 아니라 아내와 공저인데다가 우리 아이들을 기른 이야기다. 함께 책의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부부 사이가 부쩍 더 좋아졌다.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글을 고치고, 가다듬었다. 한마디로 아내와 함께 셋째아이를 낳는 기분이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어느 날 무위가, “아빠, 축하해요. 책 낸 기념으로 제가 뭘 해드릴까요? 이참에 이양주(二釀酒) 빚을까요?” 술을 한 번 빚는 것을 단양주라 한다면 이양주란 두 번 빚는 걸 말한다.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가고 어려운 과정이다. 아이가 단양주도 아니고 이양주를 빚겠다는 데는 나름의 조금 긴 사연이 있다. 지난 가을 내 생일을 기념해 무위가 갑자기 막걸리를 빚어보겠다 했다.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아내가 막걸리를 빚는 걸 옆에서 보고 조금씩 거들기는 했지만 스스로 빚는 건 엄두를 못 냈다. 무위가 술을 빚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만화책이 큰 구실을 했다. 바로 허영만의 ‘식객’. 그 만화책에는 술 빚기에 대한 내용이 두 꼭지 나온다. 하나는 속성주 빚기, 또 하나는 속성주에 견주어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이양주 빚기. 술은 여러 차례 빚을수록 맛이 좋으며 빛깔도 곱다 한다. 아이는 내 생일상이라 그런지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이양주에 도전해보고 싶단다. ‘만화 주인공처럼…’ 자식이 술을 담가준다는 데 마다할 리 없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양주로 목표를 잡으니 불안하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어쩌나? 내 걱정을 말하자 아이는 술 빚는 과정을 막힘없이 이야기한다. 그만큼 만화책을 여러 번 본 것이다. 이것저것 짚이는 대로 물어보니 아이는 만화에서 본 내용을 줄줄이 꿰고 있다. 이양주를 만들려면 술 빚기에 들어가는 재료도 많이 늘어난다. 당연히 술독도 큰 걸로 따로 마련해야 한다. 일단 무주장날 항아리 집에 가서 술독으로 쓸 항아리를 하나 샀다. 용수(술을 거르기 위해 대나무나 싸리로 만든 도구)가 박힐 만한 크기로. 막상 독을 마련하고 보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쌀과 누룩을 저 큰 항아리 가득 집어넣어야 한다니…. 아내와 함께 아이를 설득했다. 처음이니까 단양주 해서 성공하면 그 다음에 이양주로 넘어가자고. 아이는 자신의 꿈을 접고 단양주로 바꾸었다. 아이가 술 빚는 과정을 곁에서 보니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이 부분이 매력이라 한다. 그 가운데 백세(百洗)라는 게 있다. 글자 그대로 술 빚을 쌀을 수십번 물로 씻어내는 것이다. 아이는 만화 그대로 따라 한다. 중간에 아내가 그만해도 된다고 해도 자기 방식을 고집하며 한마디 한다. “모든 음식은 정성이에요.” |
그런데 백세보다 더 정성이 들어가는 과정이 ‘치대기’다. 이는 고두밥을 한 다음 누룩과 섞는 과정을 말한다. 이것 또한 만화책에는 40분에서 한 시간가량 하라고 나와 있다. 나로서는 말만 들어도 질리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는 치대기가 다 되어갈 때 오는 독특한 느낌을 가져보고 싶단다. 어쨌든 아이는 술 빚기 전 과정을 고스란히 소화해내며 술을 빚었다. 첫 작품이면서 잘되었다. 아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올초에 다시 이양주에 도전했다. 그런데 술을 술독에 안치고 나자 날이 추워졌다. 집안의 온도가 따라서 내려가자 술이 발효되기에 어려움이 있었는지 여간해서 끓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하룻밤 아랫목에서 재웠더니 이번에는 너무 더웠는지 술이 조금 쉬어버렸다. 아이는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알아냈다. 처음 빚은 술이 잘되었기에 자만했다는 것이다.
이양주는 밑술(처음 담근 술)이 잘되는 게 기본이다. 그래야 이를 덧술(밑술에 덧치는 술)과 함께 다시 빚어야하는 것이다. 밑술이 실패니 이양주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한 번의 실패가 아이를 더 성장하게 만든 것 같다.
이러한 사연이 있었기에 이번 이양주 빚기에는 온 식구가 힘과 지혜를 모았다. 그래서인지 밑술이 잘되어 덧술 빚기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아이와 아내가 손발을 맞추고, 나도 그냥 얻어먹기가 뭐해 아이가 부탁하는 심부름을 하고, 뒷설거지를 하며 이양주 빚는 과정을 함께 했다. 막상 해보니 과정도 복잡하지만 곡식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밑술에만 멥쌀이 5kg. 누룩은 밑술에도 들어가지만 덧 술을 빚을 때도 또 들어간다. 이 둘을 합쳐 누룩이 2kg, 덧술에 들어간 찹쌀이 7kg. 모두 합하니 14kg의 곡식이 들어갔다. 여기에다 아이 정성은 또 얼마나 들어갔나. 항아리 소독에서부터 법제(法製, 누룩을 깨뜨려 햇살과 이슬에 소독하기), 침지(쌀을 물에 담그기), 백세, 치대기…. 여기에다가 술독 안의 온도가 얼마나 올라가나 수시로 온도계로 재고, 냄새를 맡고…. 이 복잡한 과정을 꼬박 두 번씩이나 거쳐야 한다. 밑술에다가 새로 한 찹쌀고두밥, 그리고 새로 법제한 누룩. 이 모두를 잘 섞어 새로 마련한 항아리에 안치고 나자, 나 스스로 감격스럽다. “우와, 이건 인간 승리다. 인간 승리야!” 그랬더니 무위가, “아직 멀었어요. 자연이 인간 손을 들어줘야지요.” 아이 말에 흥분했던 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양주 발효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술은 최고의 음식이며 문화”라는 말이 있다. 술 빚기는 우선 밀과 쌀의 만남이다. 밀로 누룩을 디뎌, 이 누룩이 뜨는 과정에서 미생물(누룩곰팡이와 효모 등)과 결합한다. 누룩의 미생물이 쌀을 분해하며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농사에서 쌀과 밀을 거두자면 일년 열두 달을 온전히 돌아야 한다. 그러니 쌀과 밀은 우리네 한 해 생명의 근본이 된다. 게다가 누룩을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 많은 뜻이 있다. 가을에 밀을 심고 이듬해 여름에 거둔다. 그 밀을 빻은 다음 거친 껍질에 알맞게 물기를 주어 발로 디뎌놓는다. 그러면 누룩곰팡이와 효모가 달라붙어 누룩이 완성된다. 술에 대해 알수록 술도 마시기 전부터 조금은 알딸딸해지는 것 같다. 술에는 한 해 농사가 고스란히 술을 빚어보니, 술을 마시기 전부터 사람을 취하게 하는 건 냄새와 소리다. 술을 안치고 이틀쯤 지나 알코올 발효가 시작되면 ‘술이 끓기’ 시작한다. 술독에서 퐁퐁하고 공기방울이 올라와 위에서 터지니까 ‘끓는다’고 하는 거다. 물론 실제 뜨거워서 끓는 건 아니다. 온도는 20℃에서 30℃ 안팎. 퐁퐁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하루쯤 지나, 술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술 냄새가 점차 집안을 맴돈다. 술독에 얼굴을 들이대면 냄새만으로도 취하는 것 같다. 술 방울이 올라오면서 터지니까 냄새가 더 강하다. 조금 매운 맛이다. |
술이 끓는 모양을 보노라면 유혹이 생긴다. 방울이 터지는 순간이 마치 달 분화구 같다. 그 속에 풍덩 빠지고 싶다. 참을 수 없어 무위에게 반 국자만 먹어보자 했다. 처음에는 거절하더니 내 간절한 눈빛을 보고는 손수 반 국자 떠준다. 숟가락으로 조금씩 맛을 본다. 탑탑하다. 술 약 하나 넣지 않고 쌀과 누룩 그리고 물만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너무 신기하다. 술이 끓는 소리를 글로 나타낼 수 있을까? 방울이 위로 올라오면서 나는 소리는 ‘뽀골 고롤 싸랄’.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표현이 아니다. 그 모두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방울이 터지면서 나는 소리도 복, 펏, 부욱. 한마디로 술이 살아 있다. 작은 미생물들이 숨쉬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먹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가스는 커지면서 방울이 되고 위로 올라오면서 터진다. 무위가 만화에서 본 대로 라이트를 가져와 불을 켠다. 불이 라이터에서 술독 위로 스르르 나아간다. 길게 늘어지다가 흔들리더니 꺼진다. 재미있어 또 해본다. 그냥 꺼지는 게 아니라 꺼지기 직전 불꽃의 뿌리 쪽이 먼저 꺼지다가 마지막에 머리 쪽이 꺼진다. 꺼지는 게 아니라 사라진다는 말이 더 맞겠다. 눈을 홀리듯 사라진다. 이게 이산화탄소 작용이란다. 이제부터는 내가 아이보다 더 궁금하다. 수시로 냄새를 맡고, 온도를 재고, 맛을 보고….
‘엄청난 농축 에너지’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이양주를 완성했다. 용수를 박아 청주를 걸렀다. 병에 담아 냉장고에 두자, 맑은 청주가 또렷이 구분된다. 청주는 막걸리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맛도 향도 뒤끝도 알코올 도수도. 사실 집에서 담근 막걸리 맛은 담백하기는 하지만 약간 텁텁하다. 그래서 시중에 나오는 막걸리의 단맛이나 한약재를 넣어 맛을 살린 민속주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양주를 빚어 청주로 마시는 술은 아주 깔끔하고 개운하다. 그리고 황홀하다. 단순히 알코올이 우리 몸속 혈액을 돌다가 뇌를 마비시킨다는 설명만으로 만족이 안 될 만큼.
이렇게 술 빚기를 함께 해보니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겠다. 곡식 14kg이 들어가서 청주로 거르니 기껏 10ℓ정도다. 청주는 엄청난 농축 에너지다. 그야말로 이 술은 약주여야 하지 않은가. 내 뱃속에 미생물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약으로 먹고 싶다. 술 이야기하다 보니 거기에 취해 이야기가 이리저리 갈지자로 흘렀다. 본래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뭐였더라? 그렇다. 설레는 밥상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뭐 해 먹을지 궁리해봐야겠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