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강: 제사와 차례
1. 조상신은 모시고 귀신은 내치고
우리 조상들은 승천하는 양기를 신명이라고 하여 신과 구분했다. 신명은 일종의 조상신과 같은 존재다. 한편 신이라 함은 예수님이나 하느님, 부처님 등과 같이 예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말한다. 따라서 조상신 격인 신명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예배의 대항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조상신 중에 숭배의 대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차례나 제사 때 절하는 것은 단지 신명 격인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지 결코 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전통에서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조상을 신처럼 숭배한다면 제사도 영원히 지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풍속에서는 보통 4대 조상까지만 제사를 지낸다. 4대 조상에게만 제사를 지내는 것도 단지 관습 때문에 그리 정한 것뿐이다. 요즘은 그것도 힘들다고 해서 2대만 지내거나 아예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귀신이란 죽어서도 한이나 원한이 많아 승천하지 못한 혼이 음기가 되어 구천에 떠다니다 내려온 혼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귀신은 음이 뭉쳐서 된 것이다. 우리 민속 신앙의 밑바탕에는 반드시 귀신 관념이 깔려 있다.
옛날부터 동양에서는 이 우주를 형성하는 본직적인 요소를 기로 보았다. 만물의 기본 요소로 음양이란 것이 있는데, 만물은 이 음양의 협조, 음양의 조화에 따라 생성하고 변화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귀신 퇴치법을 통틀어서 ‘양귀법’이라고 한다. 양귀법은 첫째, 귀신을 적대시해서 공격하거나 위협 혹은 자상을 내어 쫓아내는 적대적 방법이다. 둘째, 귀신의 위력에 굴복하여 가무와 공물을 공손히 접대하여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타협적인 방법이다. 셋째, 주문이나 부적과 같은 주술물, 약물 등의 힘을 빌려 쫓아내는 의타적 방법이다. 넷째, 귀신도 인간의 성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귀신이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색채나 냄새, 맛, 빛 등을 사용해서 물리치는 혐기적 방법 등이 있다.
2. 제사의 의미
제사와 차례의 대상인 조상은 우리의 뿌리요 우리를 가장 아껴준 분들이다. 이 조상신들은 기성 종교의 신보다 유명하지도 않고 권능도 없지만 우리와 우리 집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없다. 또 조상신을 모시는 제사와 차례는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며, 친척간의 핏줄을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제사는 형식이 아니라 정성이다. 풍성한 제물보다 맑은 물 한 그릇 떠놓고 정성을 담아 지내는 제사가 더 낫다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정신이었다. 제사는 우리와 조상을 연결해 주는 고리다. 조상을 잘 모시는 사람이 자기 부모도 잘 모시게 마련이다. 이것을 보고 자란 자식들도 그 부모에게 그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사가 죽은 자만을 위한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작은 축제인 이유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부모나 형제를 소홀히 한다면... 목사에게 하는 만큼 친족에게...)
요일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3. 제사의 종류
제사(祭祀)에 있어서 제(祭)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 양, 돼지 등 희생으로 쓴 고기를 손으로 바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그러므로 제사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제물을 하늘과 땅과 같은 자연신이나 조상에게 바쳐 국가와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고 복을 구하는 의식이다.
제사는 대상에 따라 하늘의 귀신(天神)에 대한 제사는 사(祀), 땅의 귀신(地神)에 대한 제사는 제(祭), 문묘의 공자에 대한 제사는 석전(釋奠), 그리고 사람 귀신(人鬼)에게 지내는 제사는 향(享)이라 한다. 통상적으로 이들을 통틀어 제사라 한다.
또 모시는 대상에 따라 제사 지내는 장소가 다르다. 하늘에 대한 제사는 원구단(圓丘壇), 땅과 곡식에 대한 제사는 사직단(社稷壇), 농사를 관장하는 농신에 대한 제사는 선농단(先農壇), 누에를 관장하는 신에 대한 제사는 선잠단(先蠶壇)에서 지낸다. 그리고 왕실 조상에 대한 제사는 종묘(宗廟), 공자의 제사는 문묘(文廟)에서 지내고, 일반 백성들은 사당이나 대청, 안방 등에서 지낸다.
우리나라에 유교식 제사가 도입된 것은 고려 말이다. 그러나 양반 사대부 사회 전반에 걸쳐 정착한 것은 성리학이 심화하기 시작한 16세기 중엽부터다. 공자 (孔子, BC 551-479)
『주자가례』에는 사시제(四時祭), 시조제(始祖祭), 선조제(先朝祭), 예제(禮祭), 기제(忌祭), 묘제(墓祭) 등 여섯 가지의 집안 제사를 정해놓았다.
사시제는 사계절이라는 자연의 운행에 맞춰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한 차례씩 부모, 조부모, 증조모, 고조모 4대 조상을 함께 제사하는 합동 제사다.
시조제는 문중의 시조에게, 선조제는 시조 이후 5대조까지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예제는 부모를 위한 제사고, 기제는 기일에 지내는 제사다. 기제는 공자 때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약 천 년이 지난 송나라 때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제사가 모든 제사에 우선할 만큼 중시한다. 제사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술은 물론 마늘처럼 냄새가 나는 것도 먹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으며, 부부가 잠자리도 하지 않는다. 기제사는 일반적으로 4대조까지 지낸다.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는 오늘날처럼 큰아들이 제사를 전담하지 않았다. 아들들을 구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들딸 구별도 하지 않고 모든 자녀가 돌아가면서 한 차례씩 제사를 맡아 지내는 ‘윤화봉사’를 했다. 심지어 외손봉사도 널리 행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들어 성리학이 사회 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점차 사라졌고, 오늘날처럼 모든 제사를 장자가 주관하게 되었다. 부계중심의 종법 질서가 확고해지고, 재산 분배도 균등상속에서 차등상속으로 바뀌면서 윤회봉사가 장남 단독봉사로 변한 것이다. 현재에는 재산 분배가 균등분배이므로 윤회봉사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형제간의 왕래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4. 제사상 차림
제사상을 차리는 방식과 절차는 지역과 집안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 원칙은 있다. 기제사나 명절 차례나 반드시 신위(神位-조상의 혼이 의지할 곳)를 모실 곳에 병풍을 치고 그 앞에 제사상을 차린다. 신위를 모신 위치는 방위에 관계없이 북쪽이 된다. 두 분을 모실 경우 세사상의 왼쪽에 남자, 오른쪽에 여자를 모신다.
기제사나 명절 때 지내는 차례나 제사상을 차리는 법은 동일하나 차례에는 밥 대신 시적 음식, 즉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을 올린다.
제사상은 보통 다섯 줄로 음식을 놓는데, 1열(신위를 모신 맨 앞)에는 밥, 국, 시접(수저를 담은 대접)을 놓는다. 2열에는 전(煎), 적(炙), 국수, 떡을 놓는다. 3열에는 탕(湯)을 올린다. 4열에는 반찬 격으로 말린 포, 식혜, 나물, 간장을 올린다. 5열에는 과일과 조과(造菓)를 올린다.
고춧가루 같은 붉은 양념과 복숭아처럼 털이 있는 과일은 귀신을 쫓는다 하여 올리지 않는다. 마늘처럼 향이 강한 음식도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쓰지 않는다. 갈치, 꽁치, 날치 등과 같이 ‘치’자로 끝나는 생선도 제물로 쓰지 않는다. 이런 제물을 쓰면 가난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잉어나 붕어처럼 비늘이 두꺼운 생선도 올리지 않는다.
5. 제사 지내는 법
제물을 올리는 것이 서론이라면 집전이 본론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차례는 일반적으로 아침에 지내지만, 기제사는 돌아가신 전날 자시(子時, 밤11-1시)에 지낸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제사에 참여하며, 남편의 뒤를 따라 주부가 두 번째 술잔을 올린다.
제사를 지내는 절차는 신을 부르는 청신(請神), 음식을 대접해 조상을 즐겁게 하는 오신(娛神), 제사를 마치면 신을 보내드리는 송신(送神)의 순서로 진행한다.
제사상 앞에 남자인 경우 지방을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쓰고, 여자인 경우 ‘망실유인ㅇㅇㅇ씨신위(亡室孺人ㅇㅇㅇ氏神位)’라 쓴다.
죽은 이에 대한 호칭은 자(子), 선생(先生), 학생(學生) 등을 쓰는데, 자(子)는 일가의 학설을 세워 학파를 개조한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최상의 존칭이다(공자, 맹자, 순자...). 선생은 자보다 한 단계 아래의 존칭이다(율곡선생, 퇴계선생...). 학생은 관직이 없는 훌륭한 유학자를 지칭하는데, 이승에서 못 배운 한을 저승에서라도 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관직은 없었지만 평생 공부하는 자세로 살았다는 예우의 의미이기도 하다.
현고(顯考)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나 제삿날 거룩하게 나타나셨다는 뜻이고, 부군(府君)은 아버님이란 말이고, 신위(神位)란 신령님의 자리란 말이다.
여자의 지방에 쓰는 망실(亡室)은 '아내를 잃었다'라는 뜻이고, 유인(孺人)은 9품직 부인에게 내린 호칭이다. 조선시대에는 각 품관의 정처(正妻)에게 남편의 직급에 맞는 관작 관직(官職)과 작위(爵位)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을 주었다. 여자에게는 설사 남편이 관직이 없더라도 지방에 유인이란 칭호를 쓰도록 해 높여주었다.
6. 차례
차례(茶禮)는 매달 보름에 사당을 참배할 때 ‘차를 올리는 예’라는 뜻에서 유래한 듯하다. 따라서 차례란 가장 간략한 제사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명절 때 그 계절에 먹는 시절 음식을 사당에 올려 참배하는 것도 차례라 했다.
이처럼 차례가 기제사와 다른 것은 시절 음식을 차린다는 것이다. 산 사람만 먹고 즐기기 미안하여 시절에 난 음식을 마련하여 사당에 주과포를 차려놓고 술 한 잔 올리는 간단한 제사다. 산 사람에게는 세배로 인사를 하고, 조상에게는 차례를 지내 인사하는 것이다.
차례는 설과 추석 때 지낸다. 설은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이기 때문이고, 추석은 조상에 대한 감사의 의미다. 추석의 성묘는 여름 장마를 거친 조상묘를 돌보기 위한 수단이었다.
첫댓글 이성민출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