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신호등처럼 색색의 물고기들
한데 어울려 멍한 두 눈망울
끔뻑이며 멕아리없이
지느러미 흔들어 댄다
바다 쩐내 품은 바람 한 번
쐬어보지 못하고 차가운 유리를
둥지 삼아 내뱉는 관념에 찬 공기방울
플라스틱 산호초들이
푸른 밤 별처럼 빛나는 곳
파도처럼 밀려오는 회한에 잠겨
바라건대 한 몸 팔리더라도
싱크대 옆 조그만 어항에 담긴
금붕어 신세만은 면하길
※창작동기: 대형마트 애완동물 코너에 있는 물고기들을 보며 그들이 만약
생각할 수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하면서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해
보며 창작해낸 작품이다.
능소화
궁 담장가에 홀연히 피어난 능소화
뿌리부터 힘을 내어 줄기 뻗어
담벼락 넘어가려는 그 모습이
가련하기도 하다
님을 담벼락 하나 두고
보지 못하여 검은 옥과 같던 두 눈
젖어있더니 이내 뽀얀 볼 타고
버찌 열매같은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구나
초록치마에 주홍 저고리입고
어여삐 단장하여 환생했건만
아직도 님과 손바닥 한 번 못맞춰보니
한 밤의 신기루 같던 님보러
다시 한 번 뿌리에 힘 실어보려무나
※창작동기: 우연히 능소화에 대한 설을 듣고 감명을 받아 쓴 시이다.
지슬
고요하던 그 새벽에 다리 저는 어매는
아궁이에 앉아 지슬을 쩌냈다
살구빛 두 볼 가진 처녀는
그 날밤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겼다
먹구름이 바닷가로 밀려오던 날
천진난만한 봄은 총소리에 젖은 장작
불꽃 되어 안개처럼 흩어져 가고
녹아드는 동굴 속 연보라 연기는
숨을 죄어드는데
베어물고 남은 지슬만이 차게 식어가며
동굴 이슬 맞고 나뒹군다
※창작동기: 독립영화 지슬을 보고 감명받아 그를 소재로 시를 써보았다.
첫댓글 저도 지슬이라는 독립영화를 보았는데요. 이 시를 읽을 때 영화 장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맘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묘사부분을 다듬을 필요가 있지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당^^
「수족관」은 묘사가 특히 잘 된 시인 듯싶습니다. 물고기라 하면 흔히 떠올리기 쉬운 역동적인 이미지 대신 무료하고 권태로운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능소화」는 애달픈 연정을 서정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어 좋았습니다. 「지슬」은 영화 지슬에서 느꼈던 불안과 한이 절절하게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 같습니다. 영화 속 장면들이 시를 통해 그때와는 또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이 은은한 감동을 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명 받은 것이 유난히 많네요. ㅎㅎ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흐르고 적절한 비유가 그 때 그 때 들어가주어서 참 좋았습니다. 지슬에서는 감동도 있었구요.
능소화란 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초록치마에 주황 저고리를 입었다는 점에서 능소화에 대한 이미지가 뭉게뭉게 떠올랐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어 더욱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애절함을 증폭시키면 좋은 시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의 두가지 작품도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어 좋았습니다.
전경진! 세 편의 시가 다 좋구나. 완성도는 [능소화]가 가장 높지만 [지슬]의 역사의식도 좋구나. 정경진! 열심히 쓰거라.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어!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06.21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