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과 관련된 일을 하며 수없이 많은 전통건물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에 와닿는 건물은 사람이 거주할 목적으로 지은 살림집이다. 요즘은 이런 집을 일컬어 한옥이라고 부른다. 원래 한옥이란 의미는 한국의 전통건축을 통칭하는 말이다.
직업적인 영향이 크겠지만 직접 설계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전통건축의 구조와 양식에 좀 더 디테일하게 접근하는 버릇이 있다. 특이한 평면구성이나 구조를 발견하면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이런 습관이 발전해 나도 한옥 한 채 갖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땅이 있어야 하고 재정이 준비돼야 하는 일이므로 마음만 가진 다고 금방 뚝딱하고 집이 지어지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월급쟁이의 한계는 큰돈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그야말로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가지고 싶은 것 절제하며 저금해야 될까 말까 하는 일이다. 마음은 원이로되 현실이 받쳐주지 못하니 한옥을 짓겠다는 생각은 요원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란 말이 있듯이 마음속 깊은 곳에 나만의 한옥을 늘 그리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집 후원에 작은 집 한 채를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공사현장에서 버리는 기왓장이 대략 5톤 트럭 한 대 분량이 나와서 그걸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와편 담장처럼 벽을 쌓고 지붕을 꾸미면 되지 않겠나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하였다. 기둥과 인방재가 필요 없는 구조이니 목재 구입비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좋고, 진흙만 구하면 당장이라도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정작 심혈을 기울여야 할 건축구조계획은 건너뛰고 당장 집 짓는 것에 만 집착을 하였다.
고등학교 동창이 고향에서 가까운 곳에 농업인으로 살고 있다. 하우스를 통한 고추농사에 나름 성공한 친구다. 이 친구가 장비(굴삭기)사업을 겸하고 있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와편 담을 쌓을 만큼의 진흙(황토)을 들이고 친구의 지원을 받아 고향집 후원에 집터를 잡았다. 반입한 진흙을 한꺼번에 장비로 개어 천막을 깔고 흙더미를 쌓아놓았다. 여기까지가 장비의 도움을 받은 것이 전부다. 나머지 와편 담을 쌓는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낮엔 현장에 매인 몸이라 와편 담을 쌓는 일은 퇴근하고서 시작을 했다. 어떻게 하면 와편 담을 잘 쌓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 딴엔 기가 막힌 공법을 고안해 냈다. 집이라고 해봤자 단칸방이다. 거푸집을 내벽 선에 맞춰 일열 수직으로 설치하였다. 외부에서 보면 매끈한 거푸집 면이 보인다. 이 면에다 계획평면에 맞춰 문과 창의 위치를 표시하고 와편 층을 먹 선으로 표시하였다. 이론대로라면 일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었다.
매일 밤늦은 시간까지 혼자 기왓장을 나르고 쌓기를 일주일 정도 진행하였다. 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엄마와 아버지께서 함께 일을 거들어 주셨다. 약 1.5m까지 순조롭게 쌓았다. 때는 마침 장마철을 앞두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포장을 꼼꼼하게 덮어 우천에 대비하였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사나흘 내내 장대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관계로 자연스럽게 고향집 대신 도시에 있는 나의 집으로 퇴근하였다.
소나기가 줄기차게 쏟아지던 날 저녁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 ㅇㅇ 애비야 큰일 났다”
“왜요 아부지”
“담벼락이 다 무너졌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크게 낙심하였다. 부랴부랴 빗속을 달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와편 담이 아래 몇 단을 제외하고 처참하게 무너졌다. 뻘건 황톳물이 와편을 타고 핏물처럼 흘러내렸다. 기왓장은 부서지고 흙과 함께 뒤죽박죽이었다. 우산을 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처럼 가난한 놈은 집도 한 채 짓지 못하는구나’ 하는 서러운 생각이 복받쳐 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울다가 멍하니 무너진 와편 담을 바라보았다. 속에서 억울한 생각과 함께 오기가 발동하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겪고 사는 것이지 이까짓 와편 담하나 무너졌다고 세상 다 무너진 것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다시 친구를 불러 무너진 와편 더미를 정리토록 하였다. 친구도 내가 안 돼 보였는지 연신 용기를 북돋아 주며 위로하였다. 와편 담만으론 지붕의 하중을 받기엔 역부족한 구조다. 어찌 보면 무너진 것이 잘된 일이다. 소위 건축공학을 전공한 놈이 집 한 채 가지고 싶다는 생각만 앞섰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와편 담이 무너진 게 신의 한 수였다.
창고를 뒤져 쓸 만한 목재가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기둥과 수장에 필요한 여분이 보관돼 있었다. 평소 현장에서 버려지는 자재를 고향집 근처에 가설창고를 짓고 수집해 두었었다. 그게 큰 도움이 되었다. 목수 두 분을 모셔와 정면 2칸 측면 1칸에 해당하는 목구조를 의뢰하였다. 도리와 대량은 선산(현재는 남의 산이 됨)에 올라가 소나무를 베어와 직접 가공해 사용했다. 때는 팔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하는 날씨에 생나무를 베고 운반하여 현장에서 껍질을 벗기고 대 자귀질 하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모른다. 대량감이라고 베어온 것이 하필이면 팔자로 휘어진 것이어서 사괘에 걸다가 몇 번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는지 모른다. 목수도 지켜보는 나도 점점 지쳐갔다.
가칭 ‘주향원’이라 명명한 건물의 구상은 이러하다. 내실은 방 한 칸이며 외부에 노출된 부엌칸이 전부다. 와편은 화방벽 용도로 낮게 쌓고 안쪽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은 오량구조로 하였다. 도리 이하의 내벽과 화방벽 위로 황토벽돌을 쌓고 북, 동, 서쪽에 창을 단다. 남쪽에 출입문을 구비하고 출입문 밖에 아궁이 시설을 마련한다. 지붕은 송광사의 요사채 중 하사당을 모방하였다. 하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이다. 왼쪽 두 칸은 온돌방이고 3 칸 째는 부엌인데 부엌 지붕 위에 공기구멍용으로 작은 중층지붕을 구비하였다. 주향원의 중층지붕은 건물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공기구멍 역할보단 다락용으로 설치하였다.
한여름 찜통더위와 씨름하며 주향원의 목구조가 완성되었다. 그동안 수고하신 목수(도편수로선 부족한 실력이지만) 어르신과 그를 도와준 젊은 목수에게 너무나 감사하였다. 그분들과는 그때 이후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비록 능숙한 목수는 아니었지만 주향원을 짓느라고 최선을 다해 주셨기에 가슴깊이 감사함을 안고 산다. 지금쯤은 아주 실력 있는 목수로 성장하셨을 것이라 믿는다.
목공사가 끝나고 곧바로 와공을 모셔와 기와이기를 시작하였다. 처음엔 아래지붕에 먼저 바닥 기와를 깔았다. 그런데 평고대를 이은 중간지점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다. 작업을 중단시키고 원인을 분석했다. 원인은 지붕하중이 처마 밖으로 쏠리면서 덩달아 추녀가 지면으로 처지면서 평고대가 양쪽 추녀 쪽으로 벌어진 것이었다. 일반적인 지붕에선 일어나선 안 되는 현상이다. 결정적인 원인은 중층구조에 있었다. 중층구조 때문에 추녀 길이가 짧아 충분한 지지를 해주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중증지붕에 기와이기를 먼저 하도록 하였다. 중층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 추녀 뒤초리 위에 얹혀 있기 때문에 바닥으로 처지려는 추녀를 지탱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중층지붕을 먼저 완성하고 나자 아래지붕에서 더 이상 변위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 벌어졌던 평고대가 유지되고 있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주향원이 완성되었다. 비록 단 칸 방이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한옥의 정취는 여느 고택 못지않았다. 달이 차오르면 동쪽 창을 열고 달빛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달빛이 남쪽 창문으로 스며들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고요한 달빛 아래에 앉아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안산을 바라보았다. 늦은 가을 가마솥에 콩을 삶아 부뚜막 마루에 앉아 부모님과 함께 메주를 만들었다. 정월 대보름이 아버지 생신이다. 이때는 가마솥에 쌀엿을 고왔다. 주향원이 지어진지 올해로 18년이 되었다. 지금은 이우재(주향원 이후에 지은 한옥)에 가려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정식으로 허가를 받지 않고 지은 건물이어서 언젠간 철거를 해야 할 처지다. 주향원을 짓고 몇 년은 틈만 나면 그곳에 거하기를 즐겼다. 한 겨울에도 장작을 넉넉히 준비해 군불을 지피며 뜨끈한 아름 목에서 몸을 지져대곤 했다. 그곳 용도는 서실이다. 화장실도 세면실도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책을 읽고 지친 몸을 쉬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이우재가 생기고 나선 거의 출입을 하지 않는 건물이 되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주향원은 내손으로 지은 최초의 한옥이다. 비록 충분한 계획과 정상적인 건축허가절차를 밟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갖고자 했던 집을 직접 구상하고 지은 건물이다. 집의 안전과 실용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한옥 한 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앞서는 바람에 부족한 부분이 많은 건물이다. 그래도 내겐 소중한 경험이었고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던 한옥이었다. 언젠가 무허가로 지어진 아버지 집과 주향원을 밀어내고 새로 집을 짓게 된다면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실용적이고 안전한 작은 한옥 한 채 다시 짓고 싶다.
주향원 전경 | 주향원 전경 | 주향원 천장구조 |
주향원 내실 | 주향원 출입구와 부뚜막 | 주향원 아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