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日과 외교 마찰까지 부른 신라 사투리
계백과 김유신이 등장하는 <황산벌>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각각의 사투리로 인한 코메디 같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진짜 삼국시대에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작가의 오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다.
산등성이에 굽이굽이 쌓으며 산봉우리로 이어지는 <성(城)>의 백제말은 <기>다.
일본에서는 <키(き)>라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라말로는 <자시>라고 했다.
원래 <잣>이지만, 고대에는 받침이 있는 한마디 소리는 보통 두 마디로 늘려 발음했기 때문에 변형된 것이고, 일본에서는 <사시(さし)>가 되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본 측 성(城)은 모두 <키(き)>로, 우리나라 측 성(城)은 영낙없이 <사시(さし)>이다.
심지어 백제의 마지막 산성 주류성(周留城)조차도 쓰느사시(州柔城)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백제 멸망 후 백제 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축성되었다는 일본 땅의 성들은 모두 <키>라고 호칭한다.
대마도의 카나타노키(金田城), 북구주의 미즈키(水城) 중부지방의 타카야스노키(高安城) 등등이다.
그런데 작가는 백제 장수가 지었기 때문이기보다는 「일본서기」 집필자의 태반이 백제계 학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멸망한 백제인의 마지막 보루의 성은 백제말로, 신라 영토가 된 한반도의 성은 신라말 <사시>로 붙인 것 같다는 것이다.
천무왕 시절 왕궁이 있었던 일본의 도읍지 아스카(飛鳥)에 신라 사절이 당도하였을 때 일본 관리와 궁녀들이 아스카 관광을 안내하였다(그들은 백제계 사람들이었다.)
아스카에는 야마토(大和) 삼산(三山)이라 불리는 높이 200미터 내외의 작은 산들이 있다.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언덕 위에서 궁녀가 손을 들어 남쪽을 바라보면 설명하기를 “저 세모난 모습의 아름다운 산이 미미나시야마(耳城山)이고 동쪽에 보이는 산이 우네비야마(畆傍山)입니다.” * 우네비야마(묘방산; 이랑 ‘畆’ 곁 ‘傍’)
그러자 신라 사절이 대뜸 외쳤다고 한다.
“아, 우네비 바야! 미미나시 바야!”
그러자 이번에는 백제계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려 관광을 중단하고 궁궐에 되돌아와 왕자에게 자초지종을 알렸다.
그러나 왕자는 대수롭지 않게 “그건 신라 사투리니 너무 괘념치 마오”하고 말했지만, 궁내에는 신라 사신의 말이 쫙 퍼졌고, 신라 사람들은 비난을 면치 못했다.
화가 난 신라 사절은 그후로부터 왜에 보내는 선물을 대폭 줄여버렸다.
도대체 신라 사절이 말한 내용이 무엇이었기에 이러한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을까?
일본학자들은 지금껏 이 대목을 풀지 못하고 있지만 “우네비 바야! 미미나시 바야!”는 이러한 뜻이라고 작가가 설명한다.
<바야>는 일본식 이두로 흔히 <波夜>로 표기되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하야>로 읽고, 감탄사로 여겼다.
그러나 이것은 <바야>라 읽히는 신라의 옛말이라고 한다.
신라말로 <보아>, <보자>라는 뜻이고, 백제말로는 <(칼로) 베자>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네비>, <미미나시>의 뜻인데, <우네비>는 ‘웃애비(웃어른)’을 상징하는 말소리이고, <미미나시>의 원래음 <미미나지>는 ‘물을 지키는(보는) 왕; 水見王’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신라 사절이 경치를 보며 “아, 그 유명한 우네비 산과 미미나시 산이로구나. 잘 봐두자” 라고 한 신라말을 “웃애비(왕)을 베자! 미미나지(왜왕)을 베자!”로 들은 것이다.
그러니 백제계 관리가 능히 흥분할만도 하다.
백제 사투리나 신라 사투리는 원래 한 핏줄의 언어다.
그러니 서로 알아들을 수 있지만, 뜻이 영 다른 낱말과 맞닥뜨리면 엉뚱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서로 자기네 뜻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고대가요 「만엽집」에는 백제식 <바야>가 엄청나게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만엽집」의 성격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섹스로 포장된 정치적 의도의 이중적 노래 묶음이라는 점이다.
5세기 초 이후 왜 정권은 백제계가 도맡다시피 했으나, 7세기 후반에 그것이 무너지자 정권 탈환을 위해 암투하다, 7세기 말에 한 차례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빼앗기고 8세기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백제계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
「만엽집」의 대부분의 시가는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중반 사이에 읊어졌으며, 몰락한 백제계 정치인들이 권토중래를 위해 혈투를 벌인 시기에 읊어진 노래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남근을 넣고 싶어>라고 읽히지만, <왕을 베어버려> 라는 속뜻이 있다는 것이다.
「만엽집」이나 「일본서기」, 「고사기」, 지방사를 엮은 「풍토기」에서도 백제말과 신라말은 더욱 많이 비교 발굴된다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옛말이 송두리째 캐어지니 기막힌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귀중하고 재미있는 책에 좀 더 관심을 갖자!”
** 뜻이 영 다른 낱말
당신
1. 대명사.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 하오할 자리에 쓴다.
2. 대명사. 문어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3. 대명사. 부부 사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실제 충청도 친구가 경기도 친구에게 이 호칭을 썼다가 해석의 차이로 다툰 일이 있었다^^
일없다
1. 형용사. 소용이나 필요가 없다.
2. 형용사. 걱정하거나 개의할 필요가 없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주간 바둑
바둑은 애초에 배우지 않았지만, 기사(記事)에 등장하는 기사(棋士)들 이름 조치훈. 섭이평. 조훈현. 유창혁. 임해봉. 요다. 서봉수. 이창호는 추억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