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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s Treatment Story 4
Story 4.1
On June 27, I went to the hospital at 10 am to see YS KSN.
저는 27일 아침 10시쯤 김 권사님을 뵈러 병원에 들렸습니다.
His wife MK KSN lay down on the small bench chair on the side of the bed near the window. He was on the bed.
사모님 되시는 민근 권사님께서는 침대 옆 창가 쪽 작은 방석의자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리고 김 권사님께서는 침대에 누워계셨습니다.
The device connection was put on him by min MK KSN. This time I would like to put it on the opposite position. So I changed it to right foot to left arm connection.
민근 권사님께서 전기기구를 김 권사님 몸에 연결해 드리셨나 봅니다. 이번에는 제가 반대쪽에 붙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오른발에서 왼손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Then, I started treat him on face, nose, neck, forehead area to reduce inflammation and infection caused by the pneumonia he contracted from the hospital after the surgery.
그런 후 김 권사님이 수술 후 병원에서 옮은 폐렴에 의해 생긴 염증과 붓기를 내리기 위해 저는 얼굴, 코, 목, 그리고 이마 부분을 치료해 드렸습니다.
The surgery wound I heard was a long cut in the middle of the stomach vertically dissected. I spent 30-40 min while MK KSN fell asleep on the chair.
제가 듣기에 수술 자국은 배를 위로부터 아래로 가로지르는 긴 상처라고 들었습니다. 민근 권사님이 잠든 동안 30-40분간 김 권사님을 치료해 드렸습니다.
She did not go to home last night also. I told her to sleep. She did for a while and got up.
사모님은 어제도 집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더 주무시라고 말하자, 좀 더 주무시고 나중에 일어나셨습니다.
MK KSN wanted to take a walk and came back soon. She might have gone around the hallway. So I told her to go outside to get sunshine, and she went out.
민근 권사님이 산책을 하고 싶다고 나가시더니 금새 돌아 오셨습니다. 아마 복도를 한 바퀴 삥 도셨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밖에 나가 햇볕을 좀 쬐시라고 하자 나가셨습니다.
Story 4.2
I was visited by a BioMed Engineer, George, asking questions about some interference on the remote heart beat monitoring display. I showed my hand-held device, H-point, but he thought it’s from something else. I did not know they were using an RF transmitter for the heart monitoring.
생의학 기사, 죯지가 들어와서는 원거리 심장박동 측정기 나오는 전기에 여느 방해전파가 있다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제가 손으로 잡고 하는 제 기구를 보여주자, 그는 다른 것에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환자의 심장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뢔디오 주파수 출력기를 쓰는 지 몰랐었습니다.
I asked him to show me the interference. He took me across the hallway to the monitoring room. I saw a harmonic modulation onto his heart beat signal. So I went back to the room to turn off the connection device. The interference went away.
그에게 방해전파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복도 건너편에 있는 신호 측정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김 권사님의 심장박동 신호에 한 화합신호가 같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병실로 돌아가 몸에 연결한 기구를 껐습니다. 그 후 그 화합전파가 없어졌습니다.
George told me I cannot use the device. So I told him that I got the permission from the doctor in ICU last Sunday. He asked the Doc's name but I could not remember, so I told him she is an Indian-American doctor and promised him that I will get her name for him. He said he had to report it to his boss. I told him, “Go ahead.”
죯지가 저에게 이 기구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일요일 중환자실 담당의사의 허락을 받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가 의사의 이름을 물어 보았는데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담당은 인도-미국인 의사였으며 제가 이름을 알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윗사람에게 이 일을 보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Story 4.3
And then we chatted about alternative cure methods. He mentioned Rife’s work in the 50ties. I responded with “Royal Rife” brought out his answer of “you know him.”
그리고 나 우리는 대체 치료방법에 대해 말은 나눴습니다. 그가 50년대의 롸이프의 연구에 대해 애기했습니다. 제가 “뤄얄 롸이프” 하고 대답하자, 그 기사는 “그를 아는 군요” 하고 화답을 했습니다.
뤄얄 뢔이먼드 롸이프 (1888년 5월 16일 - 1971년 8월 5일)는 미국인 발명가로서 빛의 시간차를 이용해 물체를 매우 크게 확대시키는 초극 현미경을 최초로 연구한 사람입니다. 1930년대에 그는 특별히 제조한 광학 현미경으로 당대의 기술로는 너무 작아 볼 수 없는 미세생물체를 볼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기가 발명한 빛쬠 계기를 이용하면 병원체의 구성물질을 파괴할 수 있는 울림파를 쬐어 그것들을 약하게 하거나 없앨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Rife's claims could not be independently replicated, and were ultimately discredited by the medical profession in the 1950s. Rife blamed the scientific rejection of his claims on a conspiracy involving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AMA), the Department of Public Health, and other elements of "organized medicine", which had "brainwashed" potential supporters of his devices.
롸이프의 주장을 독립적으로 재생하여 똑같이 그가 한 일을 반복할 수 없었으며, 1950년대에 와서는 의료계의 불신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의사협회, 보사부, 그리고 다른 조직적인 제약회사가 그의 발명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세뇌시킨 것으로 불평했습니다.
Interest in Rife's claims was revived in some alternative medical circles by the 1987 book "The Cancer Cure That Worked", which claimed that Rife had succeeded in curing cancer, but that his work was suppressed by a powerful conspiracy headed by the AMA. After this book's publication, a variety of devices bearing Rife's name were marketed as cures for diverse diseases such as cancer and AIDS.
어느 대체의학 추종 동아리에서 회자된 1987년에 출간된 책 “돼는 암 치료“ 에 롸이프가 암 치료에 성공적이었는데 권위를 가진 의사협회가 주동이 되어 이를 암암리에 묵살시켰다는 글을 실어 그의 주장을 재현시켰다고 흥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책 출판 이후 암과 에이즈 등등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제품들이 롸이프의 이름을 빙자해 시장에 나왔습니다.
An analysis by Electronics Australia found that a typical 'Rife device' consisted of a nine-volt battery, wiring, a switch, a timer and two short lengths of copper tubing, which delivered an "almost undetectable" current unlikely to penetrate the skin.
호주의 전기협회의 한 연구에 의하면 롸이프 계기는 9 볼트 배턿뤼, 전기줄, 스위치, 시간측정기, 그리고 두 개의 짧은 구리 연결고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기서 나오는 “측정 불능” 전류는 살갗을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역자주: 이것은 TENS unit을 말합니다. 1974년에 처음 FDA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호주의 연구를 실었을 까요? 국제적으로 연구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인가요? 전압이 높으면 “측정 불능” 전류도 살갗을 통해 들어갑니다. 그러나 FDA에서 허가되어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제품은 그 전류의 양이 세포에 나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Several marketers of other 'Rife devices' have been convicted for health fraud, and in some cases cancer patients who used these devices as a replacement for medical therapy have died. Rife devices are currently classified as a subset of radionics devices, which are generally viewed as pseudo-medicine by mainstream experts”
그 ”롸이프 계기”를 판 몇몇 사람들은 의료사기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어떤 암환자의 경우 이 계기를 사용한 후 죽었습니다. 롸이프 계기는 방사성 기기의 한 기종으로 분리되고 있으며 현재 의료계의 전문가들로부터 가짜 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역자주: 이상은 위키피디아에서 발췌함.
암 치료를 받으며 죽은 사람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치료한 의사들이 유죄판결을 받지 않습니다. 의료계에서 오직 인정하는 수술, 키모, 방사능은 모두 사람에게 해로운 것입니다. 암이 낫는 것은 그냥 날 수 도 있습니다. 조직검사를 위해 세포를 떼어 내면 암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수술하면서 또 퍼뜨릴 수 있습니다. 키모를 하면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세포 중 어린 것을 상하게 합니다. 어린 것을 죽이기에 사람을 더 늙게 만듭니다. 치료 받는 사람의 수명을 짧게 합니다. 몸의 적은 부분에 사용하지만 종국에 방사능도 마찬가집니다.
약햔 전기로는 암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를 더 건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암세포가 건강한 세포를 암세포로 바꾸려면 건강해진 그 주위 세포보다 더 힘이 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옆 세포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힘센 사람이 지체부자유자에게 힘으로 지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얘기입니까? 변이된 세포가 강해진 세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Story 4.4
Two nurse aids popped in and told us that they wanted to let him sit on a chair for exercise.
두 간호보조원이 들어와 권사님을 의자에 앉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fter they put him on the chair, he complained that he is chill. Ever since I saw him he has been complaining this because of his fever. I thought about giving him ‘feet bath’ in hot water that my friend Jae Won’s mother gave me this treatment once before my wedding at her home.
그녀들이 권사님을 의자에 앉히자 마자 춥다고 불평을 하셨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열이 있었기에 한기를 호소하셨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 친우 재원 어머님이 저에게 해준 온수족욕을 해드리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So I went out to get a plastic container from a nurse, who turned out to be a physical therapist. I used the container to get hot tap water. It took a long time to get barely warm water. I found another same container in the room used for the medical supplies. I alternatively use the two containers to collect the hottest water I could and gave him the feet bath.
처음 제가 간호원으로 착각한 재활치료사로부터 물받이 통을 하나 얻으려고 같이 나갔습니다. 그것을 이용해 뜨거운 물을 수도꼭지에서 받으려고 했습니다. 좀 따스한 물을 받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얻은 통과 똑같은 것이 병실안에 의료기구 통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좀 더 뜨거운 물을 받기 위해 이 두 통을 번갈아 이용해 받은 따뜻한 물로 권사님께 온수족욕해 드렸습니다.
Immediately I could see his face turned bright with smiles. He was very happy. I have been using this method to treat fever for my family last 31 years.
곧바로 권사님의 얼굴이 펴지며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매우 만족해 하셨습니다. 저는 이 방법으로 지난 31년 동안 우리 식구들의 열을 내리도록 치료해왔습니다.
MK KSN came back and saw me giving him the bath. She wanted to do it herself. So I let her do it and told her to do this whenever he complains chill. Also, I told her about the incident with George and make sure she put the connection on and if necessary, give Dr. Babu name to him
민근 권사님께서 돌아오셔서 제가 발을 씻어 드리는 것을 봤습니다. 사모님은 자기가 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권사님이 한기를 호소해 오면 언제든지 이 방법으로 치료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죯지와 있었던 사연을 말씀 드리고, 그가 와서 뭐라 그래도 전깃줄을 계속 권사님 몸에 채우고 계시고, 필요하다면, 의사 '바부'의 이름을 그에게 대 주라고 했습니다.
I visited Byung Suk JSN house to give him a connection to his device. He is very interested in my wired device. He prepared lunch afterward.
전깃줄이 연결된 기구를 윤병석 집사님께 드리려고 그분 댁에 들렸습니다. 그 분께서는 이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로부터 점심을 대접받았습니다.
Story 4.6
Then, I visited Bae Myo-Seol KSN, who is going under chemotherapy after two surgeries on her right upper arm/shoulder muscle cancer.
그리고 나서 오른쪽 윗팔과 어깨 근욱 암 수술을 두 번 하시고 키모를 받고 계신 배묘설 권사님을 문안했습니다.
After the first surgery a year ago, I went to see her three times consecutively to convince her to use the device I connected for her. On the third visit, I had to shout at her emotionally because she would not listen. I told her, “Why you are not listening to me, do you think I will give you a bad one for you?”
일년 전 첫 수술이 끝난 후, 제가 권사님을 위해 줄을 연결한 기구를 차라고 세 번이나 찾아 갔었습니다. 셋째 방문 때는 그 분이 말을 듣지 않아 소리를 쳐야 했습니다. 제가 “왜 내 말을 듣지 않습니까? 생각하시기에 제가 나쁜 것을 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After my urges, she agreed to use it and used it for approximately 3 weeks and stopped. I noticed much benefit then but she complained about nausea as the reason for stop using it. I witnessed her eyes were much clear and muscle tone was good on her arm then. But she stopped using it and got the second surgery and now undergoing the chemo.
제가 그렇게 호소한 후에 권사님은 사용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그리고 한 3주 사용 후 그만두셨습니다. 저는 그 효과를 감지했었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은 어지러움 증세로 그만 두었답니다. 눈동자가 더 맑아졌고, 팔 근육의 탄력이 좋아진 것을 제가 직접 목격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만 사용하신 후 두 번째 암 수술을 하고 이제는 키모를 받고 계십니다.
Story 4.7
She stayed home alone. She refused let me treat her at first but I insisted on for a while. She was laid down on the couch.
권사님께서는 혼자 댁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집요하게 치료를 권하는 것을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다가 응접의자에 누우셨습니다.
I started treat her by the foot to foot treatment so that the current could go to her pelvis and low abdomen. Then I switched it to her head and neck areas and the face. Finally I started to do neck to abdomen by deeply pressing with my middle finger down to her guts. I moved my finger all around her stomach area and then I switched my hand so that I can induce the current from the stomach to her feet.
저는 배 권사님 발과 발을 이용해 그분의 대퇴부와 아랫배로 전기가 갈 수 있도록 치료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굴과 목 그리고 머리 쪽으로 바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목에서 배를 가운데 손가락이 창자가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깊게 누르며 치료했습니다. 내 손가락으로 그녀의 배 전체를 돌며 깊숙이 찔러 치료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손을 바꾸어 배에서 발로 전기가 내려오게 같은 방법으로 치료하였습니다.
I could hear her stomach growling a lot. At first time I notice the sound, I told her that it helps your stomach growling. She responded with “I took pills to aid my digestion.” As more sounds come from all over her abdomen, she did not say anything. At the end she was enjoying my treatment as if it was comforting her.
권사님 배에서 꾸루룩 소리가 많이 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그 소리를 듣고 제 치료가 소화를 돕는다고 하자 권사님은 “소화제 먹었어”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이후 계속해서 배에서 소리가 나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분이 제 치료가 마치 안위를 주는 것처럼 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I left her house at 4 pm and came home and collapsed onto the couch I brought back from Robia's, my youngest daughter, apartment and placed in my garage.
권사님 집을 오후 4시에 나와 집에 오자마자 제 막내딸 로비아의 아파트에서 되가지고 온 작은 응접의자를 차고에 넣어 두었는데 거기 무너져 잤습니다.
Yo’s Treatment Story 5
Story 5.1
On June 28, it was about 10 am when I got to the hospital. YS KSN was sat on the wheelchair. His wife MK KSN greeted me. It appeared she did not go home again. She wanted to go outside for a walk. I told her to go home and rest and comeback in the afternoon with extra cloths because I saw a shower room is attached. She agreed and left.
유월 28일, 병원에 도착하니 약 아침 10시였습니다. 김 권사님은 바퀴의자에 앉아계셨고 사모님이 저를 맞이 했습니다. 여전히 사모님은 집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제가, 그 병실에 화장실이 딸린 것을 보고, 집에 가 좀 쉬시고 오후에 오실 때 옷가지를 여분으로 가지고 오시라고 하자, 그렇게 하신다고 하면서 떠났습니다.
I started treat YS KSN by me sitting on a chair facing each other. I heard he could not walk yesterday. The IV was off from him, and he was given a meal but not able to eat much. So he was weak although his voice and alertness were better than yesterday.
의자를 하나 마주 보게 놓고 거기 앉아 권사님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듣기로는 어제 걷지를 못하셨다고 합니다. 영양제를 맞지 않고 계셨고 음식은 나왔으나 먹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목소리와 눈치는 어제보다 더 좋아지고 재빨리 지신 것 같은데 힘이 없이 약해 보였습니다.
Also, he complained pains on his butt sitting too long in a fixated position. So I treated his face and neck first and then R knee to L knee, R ham to L ham areas, and then both feet. I also did each finger to the opposite knee top area on both sides.
그리고 권사님은 오랫동안 앉아 있어 엉덩이가 아프다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먼저 목과 얼굴을 치료한 다음, 오른쪽에서 왼쪽 무릎, 오른쪽 허벅지에서 왼쪽 허벅지 주위를, 그리고 양 발을 이용해 치료했습니다. 또한 각 손가락에서 반대편 무릎의 위쪽 부분을 이용하여 양쪽을 다 치료하였습니다.
While I treated him, I asked him questions to beat boredom. He told me about his grandpa, who, seemed to me, very rich and smart. He remembered his grandpa’s arms holding him when he was baby that was different than anyone else.
치료하는 동안 지루함을 잊기 위해 질문을 하자 권사님은 큰 부자였고 총명했던 할아버지에 대해 말해 줬습니다. 할아버지가 앉아 줬던 팔이 다른 사람의 것과 달랐다는 것을 느꼈다고 기억한다고 말해주셨습니다.
He was born in Jae-Ryoung, HwhangHaeDo, North Korea currently.
권사님은 지금 북한의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셨습니다.
He told me he also played soccer when he majored in music (violin)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boasted that the SNU was the best in soccer. Not that I remember this school was and is well known for any sport other than its top notch academic excellence.
권사님은 서울대학에서 봐이올린을 전공할 때 축구도 했다고 합니다. 서울대학이 축구가 제일 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학이 전에나 지금이나 공부를 잘 하는 것 빼고 운동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He said he second-married with Min Geon KSN about 30 years ago because his mother told him so and said, “I finally listened to her.”
권사님은 민근 권사님과 결혼은 약 30년 전쯤에 한 두 번째 결혼이라고 하며 그의 어머니께서 간곡하게 말씀하셔서 그렇게 했다며, “결국엔 내가 어머니 말에 순종했지.” 라고 하셨습니다.
He worked on a string quartet and was an initial member of who created KBS orchestra and came to USA in 1959 or 1964 (I can’t remember). He went to UCLA but did not complete. Then he was picked as a member of LA Phil Harmonic orchestra as a viola player. He also said he studied medicine in Korea but he did not like it so he quit. He was accepted by Intelligent Officer job in Monterey, CA, but he said he did not join because the pay was too small and requiring too many travels. He said he traveled a lot as the member of the orchestra.
그는 현악 4중주을 했고 KBS교향악단 창단 요원이었는데, 제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1959년 인가 1964년에 미국에 오셨다고 합니다. 졸업은 못했지만 UCLA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LA퓔 하모니 교향악단에서 뷔올라 연주자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에서 의학을 공부해보려고 했으나 싫어서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캘리풔니아 몬테뤠이 기지에서 보안장교 직을 지원하여 뽑혔는 데, 월급은 작고, 출장이 많아서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권사님 교향악단과 출장여행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He also mentioned about women, and was womanizer. I thought about, many women liked him and especially his performance, or those rich women in movie like to mingle or have an afire with any intellectual musical player that was the case for him.
권사님은 많은 여자에 있었다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바람둥이였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특별히 그의 연주모습에 반한 많은 여자들이 그를 따랐거나, 마치 영화에 나오는 부자 여인들이 한 유명한 음악연주가와 사귀거나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그를 좋아해 쫓아다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He also said he worked in a computer hardware business made him a fortune but sounded like he burned it off.
권사님은 셈틀기 만드는 사업에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느끼기에 그 돈을 다 까먹으신 것 같았습니다.
Story 5.2
At around noon his surgeon came in. A short but very sharp and unhappy looking doctor stood behind me facing YS KSN. He asked YS KSN’s condition. He said fine.
정오쯤에 수술의사께서 오셨습니다. 키가 작지만 매우 똑똑하게 보이나 그러나 시무룩한 표정의 의사께서는 김권사님을 마주하고 제 뒤에 서 계셨습니다. 그가 김권사님의 상태에 대에 물어보자 권사님은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I asked him about his surgery and why he was not ordered to eat for so long. He drew a picture on a piece of paper to explain me. It was the biggest artery (aorta) coming straight down out of the heart feeding blood to all organs and spilt down to his legs. He showed me bulged up area of the artery below sections perpendicularly branch to kidneys and goes down before it splits to two branches of legs. The blood was leaking to the abdomen area that possibly made him fainting by the loss of much blood.
제가 그 의사에게 왜 이렇게 오래 동안 환자에게 식사를 주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주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복부대동맥이 심장으로부터 나와 모든 내장 기관에 피를 공급하며 밑으로 내려가 두 다리로 갈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늘어난 그 동맥의 자리가 콩팥으로 수직으로 갈라지는 밑부분에서 양 다리로 갈라지는 부분까지라고 보여주셨습니다. 복수로 새는 피 때문에 권사님이 어지러움이 있었을 것이라 합니다.
The Doc said even the half of his aged patent will have hard time recovering from the surgery. I could not still exactly understand what went on with YS KSN surgery and how miraculously he recovered and why he can't eat. He can’t swallow food!
그 의사는 권사님 나이의 절반밖에 안 되는 환자도 이런 수술을 받고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그래도 어떤 수술을 했는지 어떻게 기적적으로 회복되셨는지 또 왜 못 드시는 지 잘 몰랐습니다. 왜 권사님은 음식을 삼킬 수 없을까 하고요!
The surgeon explained me that he had to take out his organs during the surgery, which explained why the insertion cut was so large! Knowing this fact, I could understand why they told Min Geon KSN to call in all family to see him for the final visitation.
그 의사는 권사님의 내장을 다 꺼내 놓고 수술을 했다고 하기에 왜 그렇게 길게 배를 갈라야 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그 애기를 듣고 나니, 왜 주치 의사가 민근 권사님보고 마지막 면회를 위해 가족들을 모두 부르라 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I did not even face the surgeon, but I could sense that he noticed what I was doing. He did not ask, so I continued my treatment while he was talking.
저는 그 수술의사와 마주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치료하는 모습을 그 의사가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아서 저도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계속해서 권사님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Abdominal aortic aneurysm (also known as AAA, pronounced "triple-a") is a localized dilatation (ballooning) of the abdominal aorta exceeding the normal diameter by more than 50 percent, and is the most common form of aortic aneurysm. Approximately 90 percent of abdominal aortic aneurysms occur infrarenally (below the kidneys), but they can also occur pararenally (at the level of the kidneys) or suprarenally (above the kidneys). Such aneurysms can extend to include one or both of the iliac arteries in the pelvis.
복부대동맥 경화(영어약자로 트리플 에이, AAA, 라고 부름) 가장 흔한 경우는 그 동맥이 부분적으로 약해져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 직경의 약 50 퍼센트가 정상보다 더 늘어나는 것을 복부대동맥 경화라 합니다. 그 증상 중 90 퍼센트 정도는 콩팥 밑부분에 생기며, 콩팥과 수평선에서 혹은 그 상단부분에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경화증은 또한 한쪽 혹은 양쪽 엉덩이 동맥까지 연장될 수 있습니다.
Abdominal aortic aneurysms occur most commonly in individuals between 65 and 75 years old and are more common among men and smokers. They tend to cause no symptoms, although occasionally they cause pain in the abdomen and back (due to pressure on surrounding tissues) or in the legs (due to disturbed blood flow). The major complication of abdominal aortic aneurysms is rupture, which is life-threatening, as large amounts of blood spill into the abdominal cavity, and can lead to death within minutes. Mortality of rupture repair in the hospital is 60% to 90%.
복부대동맥 경화는 흔히 65에서 75세 되는 노인 남자에게 더 흔하며 흡연자에게 잘 나타납니다. 이 병은 증상이 별로 없으나, 샌 피의 압력으로 가끔 배나 등의 통증을 호소하거나, 피가 통하지 않아 다리가 저리다고 합니다. 제일 중한 복합증세는 핏줄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숨을 위험하게 하는 엄청난 양의 피가 복부에 고이며 그 결과 수분 안에 생명을 잃게 됩니다. 터진 동백을 수술로 회복하는 것은 60-90퍼센트 정도 성공률이 됩니다.
Surgery is recommended when the aneurysm is large enough (>5.5 cm in diameter) that the risk of surgery is less than the risk of rupture. In open surgery, the surgeon opens the abdomen and stitches in a replacement section of artery; in endovascular surgery the surgeon feeds the replacement section through the patient's artery and replaces it from inside.
동맥 부풀어 오른 곳이 직경 약 5.5cm이상되면, 터지는 것보다 수술 위험도가 낮기에 수술을 권장합니다. 절개수술은 배를 가르고 동맥의 부분을 절개하고 인공동맥을 연결하고, 비절개수술은 그 부분에 인공 막을 들여 보내 안에서 약해진 동맥 벽 둘레에 협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There is moderate evidence to support screening in individuals with risk factors for abdominal aortic aneurysms (e.g., males’ ≥65).
위험율이 높은 65세 이상의 남자들의 복부대동맥 경화를 검사하는 방법이 있으나 그 잘못된 곳을 찾을 수 있는 성공률을 그 다지 높지 않아, 그런 그런 정도입니다.
Story 5.3
Lunch was delivered. It was chicken salad with a small extra salad tray, a glass of iced tea, and a small can of lime soda. YS KSN wanted me to eat together so that he could eat more. So I cut to small pieces of the small tray salad for him and placed diced chicken strips. He ate only two diced pieces of vegetable and chickens. That was it. I mean the piece was smaller than pinky nail size! I kept chatting while we ate. I ended up eating all chicken salad and two drinks.
점심이 배달되었습니다. 닭고기 생채와 작은 여분의 생채접시, 냉차 한 잔, 작은 깡통 라임 탄산수였습니다. 권사님은 제가 같이 먹어야 당신이 더 먹을 수 있다며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작은 여분의 생채접시의 야채를 더 잘게 썬 후 썬 닭고기 몇 조각을 위에 얹혀 드렸습니다. 권사님은 겨우 잘게 쓴 두 조각의 야채와 닭고기 한 개를 드신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썬 것의 크기는 새끼 손가락 손톱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그래도 같이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종래 제가 모든 야채 및 닭고기와 마실 것 두 가지를 몽땅 먹어 치워야 했습니다.
At around 2pm MG KSN came back and surprised that I was still there.
약 오후 두 시쯤 민근 권사님께서 돌아 오셔서 제가 그때까지 있는 것에 놀라셨습니다.
A physical therapist and a voluntary student named Daniel came in to give him walk exercise. MG KSN concerned that he will not be able to stand. I thought he could walk since I gave him treatment for last 4 hours. He stood up with the help from the therapist who wrapped him a strap around his body over the chest to hold him from behind when emergency happens. He used the walker to step out to the hallway to the left. He came back shortly afterward and was put on the bed.
물리치료사 한 분과 대디얼이라는 자원봉사 학생이 권사님 걷기 연습을 시키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민근 권사님은 남편이 일어설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셨습니다. 저는 4시간을 치료해드렸으니 권사님께서 걸으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권사님은 물리치료사가 만약을 대비해 널부른 띠를 가슴에 둘러 채워 뒤에서 잡고 도와 주자 일어스셨습니다. 걸음 보조기를 이용해 복도로 나가 왼쪽으로 가셨습니다. 조금 뒤 돌아오셔서 침대에 누우셨습니다.
He stayed up on the chair all morning and until this exercise. His mind was clear except the surgeon mentioned about that he need a couple of weeks of the rehabilitation before he can be discharged. He said he will send a rehab staff to arrange for him to move to the 4th floor. I discussed with two KSNs about the rehab program, and if he cannot recover fully, he will be arranged to a convalescent home for further assistance. He was not happy that he may end up in a nursing home. He said, “It gives me headaches.” He has not prepared himself for going to a nursing home.
이 걷기 연습을 하기 전까지 오전 내내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수술의사가 약 두주 더 물리회복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신 것 외에는 권사님의 정신은 맑은 것 같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4층 물리회복치료 병동으로 옮기기 위해 거기 책임자를 주선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의사가 가신 후 저는 두 분 권사님과 그 치료에 대해 이야기 하며, 만일 거기서 온전하게 회복이 되지 않아, 사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양로원으로 퇴원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양로원으로 퇴원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게 골치 아프게 해” 하셨습니다. 권사님은 양로원으로 가는 것에 대해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