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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칙 이각어언離却語言
風穴和尙因僧問: “語默涉離微, 如何通不犯?” 穴云: “長憶江南三月裏, 鷓鴣啼處百花香!1”
풍혈 화상에게 한 승이 물었다. “언어나 침묵은 이離나 미微에 어긋나는데, 어떻게 하면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두루 통할 수 있겠습니까?”
풍혈이 화답和答하였다. “오래도록 강남의 삼월을 추억한다네,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였지!”
無門曰: “風穴機如掣電, 得路便行。爭奈坐前人舌頭不斷! 若向者裏見得親切, 自有出身之路。且離却語言三昧, 道將一句來。”
무문이 말하기를,
“풍혈의 선기는 번개 같아서 길이 보이니 곧바로 나아갔다. 그래도 어찌 앞에 앉은 사람의 혓바닥은 그대로 놔두었는가!
어쨌든 이를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라면 나아갈 길은 스스로 알게 되리라. 자! 그럼 어디 언어 삼매를 떠나 한 마디 일러 보시라.”
頌曰: “不露風骨句, 未語先分付。進步口喃喃, 知君大罔措。”2
노래하기를,
격조 있는 글귀를 쓰지 않고 말도 하기 전에 모두 이루었으니,
이러쿵저러쿵 말이나 떠벌였으면, 그대들은 어찌 할 바를 몰랐을 걸!
I. 배경背景
풍혈연소風穴延沼3 화상은 송나라 초의 선승으로 임제의 4세 법손이다. 처음에는 유학儒學에 힘썼으나 출가하여 천태와 화엄을 섭렵하였다. 임제종 남원혜옹南院慧顒 선사를 찾아가 그의 법을 이었는데, 법을 구하러 다닐 때의 이야기가『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에 간략하게 전한다.
스님의 법명은 연소(延沼)이며, 여항 유씨(餘抗劉氏)자손이다. 처음엔 강원에서 지관(止觀)을 익히다가 이를 버리고 경청 도부(鏡淸道怤: 864~937)스님을 찾아갔는데 경천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동쪽에서 왔습니다.”
“작은 강을 건너온 적이 있는가?”
“큰 배가 홀로 하늘에 떠도니 작은 강은 건널 게 없습니다.”
“경강(鏡江)과 진산(秦山)은 날아가는 새도 건너갈 수 없는데 길바닥에서 주워들은 허튼말을 지껄이지 말아라.”
“넓은 바다도 전함의 위세에 오히려 겁내니 기나긴 강줄기에 돛대 날리며 오호(五湖)를 건널까 합니다.”
경청스님은 불자를 세우며 말하였다.
“이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무엇입니까?”
“정말 모르느냐?”
“나타났다 꺼졌다 폈다 말았다 하는 것을 스님과 함께 운용하겠습니다.”
“별점[星占]치는 사람은 헛소리를 듣고, 깊이 잠든 사람은 잠꼬대가 심하다.”
“못이 넓으면 산을 감추고 살쾡이는 표범을 굴복시킵니다.”
“죄와 허물을 용서할 테니 얼른 나가라.”
“나갈 수만 있다면 곧 나가겠습니다.”
스님은 그곳을 떠나 북쪽으로 양주(襄州) 땅을 돌아다니다가 화엄 휴정(華嚴休靜)스님에게 귀의하여 그곳에 머물자 화엄스님이 물었다.
“나의 ‘목우가(牧牛歌)’를 스님이 화답해 보시오.”
“오랑캐 북치고 채찍을 휘두르니 소와 표범이 뛰는데 머언 마을 매화나무 가지마다 벙긋벙긋”4
풍혈의 대답이 매우 시詩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다음은 그의 스승이 되는 남원혜옹을 참문 했을 때의 일화이다.
그 후 스님께서 남원 혜옹스님을 만났는데 남원스님이 물었다.
“남방의 몽둥이[一棒]를 어떻게 헤아리는가?”
“굉장하게 헤아립니다만 이곳의 몽둥이는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이에 남원스님은 주장자를 옆으로 누이고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몽둥이 끝에 무생법인(無生法忍)이 기연을 만나고도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스님은 이 말끝에 크게 깨치고 풍혈산에 나아가 남원스님의 법을 이었다.4
남원이 ‘남방의 몽둥이를 어떻게 헤아리는가[南方一棒作麼商量]?’라고 물으니, 풍혈이 굉장히 헤아립니다만 ‘이곳의 몽둥이는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此間一棒作麼商量]?’라고 되묻는데, 이에 남원이 주장자를 어루만지며 ‘몽둥이 끝에 무생인이 기연을 만나고도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棒下無生忍5 臨機不見師].’라고 하니 크게 깨쳤다고 한다. 대화 내용이 다소 모호한데『벽암록碧巖錄』에는 당시 모습이 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길지만 인용한다. 당시 선사들의 선문답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풍혈은 처음 남원(南院)을 찾아가서 문에 들어가 절을 하지 않았다.
남원이 말했다. “문에 들어와서는 마땅히 주인을 알아봐야 한다.”
풍혈이 말했다. “(수행자에게) 단적(端的, 선의 핵심)을 제시해 보이는 것은 선지식의 몫입니다.”
남원이 왼손으로 무릎을 한 번 치자 풍혈은 즉시 할(喝)을 했다. 남원이 오른손으로 무릎을 한 번 치자 풍혈이 또 할을 했다. 남원이 왼손을 들며 말했다. “이것은 그대 맘대로 (생각)하라.”
(남원은) 또 오른손을 들면서 말했다. “이것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풍혈이 “눈멀었다.”고 말하자 남원은 (풍혈을 때리려고) 주장자를 잡았다. (그러자) 풍혈은 말했다.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제가 주장자를 빼앗아 스님을 때리더라도 설(說)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남원은 주장자를 던지면서 말했다. “오늘 이 누렁이 절강 (태생인) 놈한테 한바탕 바보 취급을 당했군.”
풍혈은 말했다. “스님은 마치 발우(鉢盂, 밥그릇)도 없으면서 ‘난 배고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원이 말했다. “자넨 일찍이 여기에 온 일이 있는가?”
풍혈은 말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남원이 말했다. “참으로 잘 묻는군.”
풍혈은 말했다. “또한 놔줄 수가 없습니다.”
남원이 말했다. “자 앉아서 차나 마시게”
(-라고 했으니) 그대들은 보라. 준수한 사람은 그 기봉(機鋒)이 높고 험하여 남원조차도 저(풍혈)를 점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날 남원은 그저 평상시처럼 물었다. “금년 여름은 어디 있었는가?”
풍혈이 말했다. “녹문산 화엄원(鹿門山 華嚴院)에서 곽시자와 함께 여름을 보냈습니다.”
남원이 말했다. “뜻밖에도 작가종사(作家宗師, 눈 밝은 사람)를 만났군. 그(곽시자)가 자네에게 뭐라 하던가?”
풍혈이 말했다. “시종일관 저더러 주인이 되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들은) 남원은 (풍혈을) 후려쳐서 방장실 밖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이런 망할 자식을 어디에 쓰겠는가?”
풍혈은 이로부터 (남원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면서 남원의 문하에서 원두(園頭, 채소밭 관리책) 직책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남원은 (풍혈이 일하고 있는) 밭에 와서 물었다. “남방의 일봉(一棒)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풍혈이 말했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이 회상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원은 봉(棒)을 잡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 봉(棒) 아래의 절대 진리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풍혈은 이에서 (이 말을 듣고) 확연히 크게 깨달았다.6
『오가정종찬』과 비교하면 대화 내용이 양적으로 풍부하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당시 상황이 명확하게 전해질 뿐 아니라 앞서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臨機不見師].’ 대신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臨機不讓師].’로 되어 있어 무리 없이 연결이 된다. 이를 보면『오가정종찬』같이 축약된 선종서는 편집되는 과정에서 중심 되는 대화만을 선별해서 나열했기 때문에 본래 상황을 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뜻 또한 모호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앞에 경청도부鏡淸道怤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여서7, 선어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 부분을 한형조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남원이 물었다. “남쪽의 몽둥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쪽의 몽둥이란 남원이 파지하고 있는 진리를 가리킨 것이다. 풍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경을 표한 다음 이번에는 풍혈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그 몽둥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역습에 남원은 들고 있던 주장자를 거두며, “몽둥이 아래의 무생인(無生忍)은 절대로 스승에게 양도하지 않는다.”고 정색을 했다. 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의 당체(當體)는 양도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엇이라는 남원의 견고한 확신에 풍혈의 고개가 깊이 숙여졌다. 그 인연으로 풍혈은 남원 밑에서 배움을 의탁한다. 6년이 지나 성태(聖胎)가 무르익자 하남의 여주(汝州)에 있는 풍혈사에 주석하며 임제의 종풍을 드날린다.8
전체적인 선문답의 윤곽이 드러나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은데, 다만 ‘시종일관 저더러 주인이 되라고 하더군요[始終只教某甲一向作主].’라고 한 말에 대해 남원이 “이런 망할 자식을 어디에 쓰겠는가[這般納敗缺底漢 有什麼用處]?”라고 풍혈을 후려쳐 방장실 밖으로 밀어낸 까닭이 무엇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그런데『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에는 이 부분을 “저로 하여금 처음과 끝에 주인 노릇을 하라고 하더이다[教某甲終始作主].”라고 하고 이에 남원이 “저 첨지가 여기에 오자 낭패를 당했다[這漢來這裏納敗闕].”고 하고는 ‘문득 때려 주고 방장에서 나갔다[便打出方丈].’로 기술하고 있어 보다 더 편안하게 읽혀진다.
‘낭패를 당했다’는 말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역시 모름지기 이렇게 일러야 한다.’고 칭찬하면서 풍혈의 “안목이 높고 수승하기 때문”이라고 평하고 있어,9 때린 것을 풍혈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또 ‘풍혈을 후려쳐서 방장실 밖으로’ 밀어냈다고는 하지만 ‘이로부터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면서 남원의 문하에서 원두 직책을’ 맡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또한 비슷하게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풍혈조사심인風穴祖師心印
『선문염송·염송설화』에는 이 일화 이외에도 17개의 일화가 더 실려 있어 풍혈의 선풍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데, 그중『벽암록』에도 거론한 일화 하나를 살펴보기로 한다.『벽암록』「제38칙 風穴祖師心印, 풍혈風穴화상과 조사의 심인心印」이다.
풍혈화상이 영주(郢州) 관청(官衙)의 법당에서 설법하였다. ‘조사의 마음 도장(心印)의 모양이 무쇠 소(鐵牛)의 지혜작용(機)과 같다.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찍어두면 도장으로 쓸모가 없다. 도장을 떼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지도 못하니,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찍지 말아야 옳은가?’
그 때 노파장로가 대중 가운데서 나와 말했다. ‘나한테 무쇠소의 지혜작용(機)이 있습니다. 화상은 찍지 마시요!’
풍혈화상이 말했다. ‘고래를 낚아 바다를 맑히는 일은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에는 흥미 없다.’
노파장로가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자, 풍혈화상이 고함치며 말했다. ‘장로는 왜 말을 계속하지 못하는가?’ 여전히 장로가 머뭇거렸다.
풍혈화상은 불자(拂子)를 한번 치고 말했다. ‘할 말을 찾고 있는가? 어서 말해봐라!’ 노파장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풍혈화상은 또 다시 한차례 불자로 내리쳤다.
지사(牧使)가 말했다. ‘불법과 왕법이 똑같군요.’
풍혈화상이 말했다. ‘그대 지사는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지사가 말했다.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풍혈화상은 곧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10
‘심인心印’11이란 마음의 도장으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해지는 부처의 내적 깨달음을 말하는데, 풍혈은 조사의 심인을 글자 그대로 도장에 비유하여 찍고 나서 떼면 심인이 나타나고[去卽印住], 찍은 채로 두면 심인이 나타나지 않는데[住卽印破], ‘찍어야 옳은가? 찍지 말아야 옳은가[印卽是. 不印卽是]?’라고 묻고 있다. 즉 불법(心印)을 전해야 하겠는가? 전하지 말아야 하겠는가? 라고 묻는 것과 같다. 본칙에서 제기한 ‘語默涉離微, 如何通不犯’과 같은 딜레마dilemma 구조이다.
즉 불심을 도장에 비유하여 도장을 종이위에 찍은 상태로 놓아두면 그 도장은 쓸모가 없으며, 도장을 종이에서 떼면 인장의 문자가 종이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자취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중략)
도장 없이 문자를 나타낼 수가 없고, 문자 없는 도장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풍혈화상은 이 문제를 학인들에게 제시하면서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찍지 말아야 옳은가?” 라고 질문하고 있다.12
이에 한 노파장로가 나에게는 이미 무쇠소의 지혜작용이 있으니 찍지 말라고 하였다. 자신은 이미 갖추고 있으니 심인이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말로 하면 인가해 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기세는 좋았지만 그것은 풍혈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기회를 주었지만 노파장로는 그 관문을 뚫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옆에 있던 지사(목사)가 불법과 왕법이 똑같다고 하면서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됩니다[當斷不斷 返招其亂].’라고 거들고 있는데, 이 또한 세속적인 입장에서 본 것으로 풍혈이 원하는 안목 있는 대답은 아니다.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은 노파장로가 ‘이미 무쇠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착어하고 있어, 장로가 인가에 걸려 풍혈의 그물을 뚫지 못하는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풍혈은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찍지 말아야 옳은가?’라는 언구에서 자유로운 여여如如한 답변(본칙의 풍혈의 대응 같은)을 기대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풍혈과 수산성념首山省念
풍혈의 법이 제자인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으로 이어지게 된 재미있는 사법嗣法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汝州(여주)의 풍혈사에서 오랫동안 교화하였으나 한 사람도 깨치는 이가 없었다.
하루는 대성통곡을 하므로 대중들이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그는 “臨濟(임제)의 법이 나에게 와서 끊어질 줄 어찌 알았으랴?”
이때 省念(성념)이 “저 같은 것도 스님의 법을 이어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자네는 아깝게도 법화경에 걸려있네.”
“법화경만 버리면 되겠습니까?”
“그러면야 될 수 있다 뿐인가.”
이에 省念(성념)은 참선에만 전력하여, 마침내 깨치게 되었다.13
수산성념은 풍혈의 법제자로 처음에는 경전에 몰두하였다고 하는데, 특히『법화경法華經』에 밝아 “염법화念法華”라고 불렸다고 한다.
수산은『무문관』「제43칙 수산죽비首山竹篦」의 주인공으로 ‘죽비를 들고 대중에게 보이며 가로되, “너희들 만일 이것을 죽비라 부르면 범하는 것이고, 죽비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는 것이다[若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라고 하면서 “무어라고 불러야 하겠느냐.”고 물었던 선사이다. 그 종풍이 풍혈을 닮았는데, 다음의 풍혈과 수산의 두 선문답도 또한 그대로 닮아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부처 아닌 게 무엇이냐?”
“현묘한 말씀을 알 길이 없으니 스님께서는 딱 짚어 주시오.”
“바다 동편 언덕에 집을 지으니 동녘에 뜨는 해 가장 먼저 비치네.”
“유와 무가 모두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춘삼월 꽃길 아래 진탕 노니는데 온 집안 시름 젖어 빗속에 문을 닫네.”14
한 스님이 물었다.
“여래의 말씀은 어떤 모습입니까?”
“당나귀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신부는 나귀를 타고 시어머니는 고삐를 잡고 간다.”
“이 말씀은 어느 법문에 들어 있습니까?”
“3현(三玄)도 그것을 포함할 수 없는데 4구게(四句偈)인들 그것을 포함할 수 있겠느냐?”
“무슨 뜻입니까?”
“긴긴 하늘 땅에 해도 밝고 달도 밝구나.”15
앙산仰山의 예언
풍혈은 임제의현(臨濟義玄, ? ~867)의 종풍宗風을 다시 일으킨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임제록』에는 임제의 ‘소나무를 심는 뜻’과 함께 풍혈의 출현을 예언한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와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의 대화를 싣고 있어 흥미롭다.
41-1 소나무를 심는 뜻
임제스님이 소나무를 심고 있는데 황벽스님께서 물었다.
“깊은 산 속에 그 많은 나무를 심어서 무얼 하려 하는가?”
“첫째는 절의 경치를 가꾸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후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하고나서 괭이로 땅을 세 번 내리치니 황벽스님께서 말씀하였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그대는 이미 나에게 30방을 얻어맞았다.”
임제스님이 또 다시 괭이로 땅을 세 번 내리치며 “허허!”라고 하니 황벽스님께서 “나의 종풍이 그대에게 이르러 세상에 크게 일어나겠구나.” 하셨다.16
황벽黃壁의 종풍이 임제에 의해 크게 떨칠 것이라는 황벽의 예언을 담고 있는데, 이 일화에 이어 예언력이 뛰어나 “소석가小釋迦”로 불리던 위앙종潙仰宗 앙산의 예언으로 이어진다.
41-2 앙산스님의 예언
뒷날 위산스님이 이 이야기를 하시며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황벽스님이 그 당시 임제 한 사람에게만 부촉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있는가?”
“있습니다만, 연대가 매우 멀어서 스님께 말씀드리지 않으렵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도 또한 알고 싶으니 그대는 말해 보아라.”
“한 사람이 남쪽을 가리켜서 오월지방에서 법령이 행해지다가 큰바람을 만나면 그칠 것입니다.”16
황벽의 법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겠느냐고 묻자, 앙산이 ‘한 남자가 남쪽을 가리켜서[一人指南], 오吳와 월越의 지방에서 법령이 행해지다가[吳越令行], 대풍을 만나서는 바로 그친다[遇大風卽止].’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이 풍혈의 스승인 남원과 풍혈의 출현을 예언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풍혈이 남원을 참문 했을 때도 남원이 이 일화를 들려주면서 임제의 종풍을 부흥시킬 것을 당부하였다고『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등에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임제록』전편에 흐르는 일관된 성향으로, 당시 세력을 떨치고 있던 위앙종의 위세를 끌어들여 임제의 선풍을 고양高揚시키려는 의도로 활용된 것이다. 황벽의 종지가 임제에 의해 크게 떨치고 다시 먼 후대에 까지 전해진다고 하므로 서 신비감을 높이고 법맥을 정당화 하려는 수단으로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II. 사설辭說
본칙에 나오는 ‘어묵섭이미語默涉離微’의 “이미離微”는 승조僧肇17의『보장론寶藏論』18에 나오는 말이다. ‘입리출미入離出微’의 줄임말로 ‘들어감이 이離이고, 나옴이 미微다[其入離 其出微]. 들어가는 離를 알면 바깥 경계에 의지함이 없고[知入離外塵無所依], 나오는 微를 알면 마음에 할 일이 없다[知出微內心無所為]. 마음이 하는 바가 없으면 모든 견해에 변함이 없고[內心無所為 諸見不能移], 바깥 경계에 의지함이 없으면 만법에 끄달리지 않는다[外塵無所依 萬有不能機].’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를 풀면 다음과 같다.
이미의 이는 일체의 속박을 벗어난다는 뜻으로 번뇌와 작위적인 행위를 활달하게 떨쳐버린 것이고, 미는 만물 속에 감추어져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자타의 구별이 없으면서 묘용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입리를 알면 밖으로 경계에 이끌리지 않고, 출미를 알면 안으로 마음에 분별심이 없다. 안으로 분별심이 없으면 모든 견해에 끄달리지 않고 밖으로 경계에 이끌리지 않으면 만유에 걸림이 없다. 이로써 언어[語]는 미에 통하고 침묵[默]은 이에 통한다.19
다시 말해 일체 색상色相을 초월한 절대의 경지가 離가 되고, 그 절대의 경지가 무한하게 작용하는 차별의 세계는 微가 되는데,20 이를 합쳐서 離微라고 한 것이다. 離는 절대평등의 세계를 말하고 微는 현상차별의 세계를 말하는데, 둘을 합친 離微는 일체一體의 세계인 우주 본체本體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법의 본체本體를 중심으로 하여 세간 ․ 분별 ․ 명상을 여의고[離], 법[眞如]의 본체에 들어감[入]은 離이며, 진여에서 나와[出] 인연 ․ 현상 ․ 경계로 나옴[出]은 微라 한다. 그러므로 ‘이미’는 출입이며 語黙이며 有無다. 말하는 것은 出 ․ 微이며, 黙은 入이며 離가 된다.21
離는 본질을 말하고 微는 그 작용을 말한다고 할 수 있는데, 본체가 일체 제법의 이름과 모양을 떠나있을 때는 離였다가, 그 본체의 작용이 미묘微妙하게 나타나면 微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語’는 微에 통하고 ‘묵默’은 離에 통한다.
‘이(離)’는 어구를 떠난 묘처이고 ‘미(微)’는 그 묘용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묘처는 사람의 본체고 묘용(妙用)은 그 활용을 말한 것이다. 묘처를 공(空) ․ 무(無) ․ 평등(平等) ․ 진공(眞空) 등으로도 표현하고 묘용은 색(色) ․ 유(有) ․ 차별(差別) ․ 묘유(妙有) 등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풀이하고 보면 ‘이’는 ‘묵’이 되고 ‘미’는 ‘어’가 된다는 얘기다.22
그럼 ‘어묵섭이미語默涉離微, 여하통불범如何通不犯?’은 무슨 뜻인가? 말[語]을 하면 微에 떨어지고 가만히[黙] 있으면 離에 떨어지는데, 어떻게 하면 말을 하면서도 침묵을 지키면서도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느냐, 불법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떠 보고 있다. 선가에서 하는 전형적인 질문으로, 말에도 침묵에도 자유로운 경계를 말해보라는 것이다. 그런 딜레마를 타파할 일전어는 무엇인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양극단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풍혈화상은 이렇게 노래한다. “참 그립구나. 강남의 삼월이여! 자고새가 우는 곳에 온갖 꽃이 만발하였네.” 그렇다. 양극단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중도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삼월엔 꽃이 피고 새가 울고 있지 않는가? 여름엔 덥지만 소낙비가 있지 않는가? 가을엔 멋진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눈발이 날리지 않는가? 이것으로 족하지 않는가?23
『무문관』「제32칙 외도문불外道問佛」에는 세존에게 외도外道가 와서 묻는 일화를 전하는데, 외도가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이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不問有言 不問無言].”라고 하자 세존은 아무 대꾸 없이 그대로 앉아 있는데[世尊據座], 외도는 “세존께서 대자대비로써 미혹의 구름을 열어 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라고 찬탄하며 물러난다. 세존은 그 딜레마를 침묵으로 돌파한 것이다. 그런데 풍혈은 태연히 두보의 시를 읊는다.
바로 이 순간 풍혈 화상은 뜬금없이 두보(杜甫, 712~770)의 시를 읊조립니다. “오랫동안 강남 춘삼월의 일을 추억하였네. 자고새가 우는 그곳에 수많은 꽃들이 활짝 피어 향기로웠네.” 풍혈 화상은 지금 남의 문자에 집착하는 주석가나 이론가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 면목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을 갖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시인은 꽃을 보면 꽃에 마음을 가득 담고, 노을을 보면 노을에 마음을 가득 담습니다.24
풍혈의 대답은 자연을 여여하게 노래한 것으로 문자의 손님이 되지 말고 문자의 주인이 되하고 하고 있다고 해설하고 있는데,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선객으로서는 어쩐지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이 화두를 참구하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시를 읊건 침묵을 하건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해결된 것처럼 강요하고 있지만 깔끔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깔끔하게 해결될 수도 없는 문제이고 보니 이렇게 끝내야 하는 것일까?
복잡하고 이론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그 스님에게 신경질적으로 이것저것 따지고, 논리적으로 불법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생각을 일체 접어두고, 교외에 나가서 자연과 더불어 산책이나 한 번 해 보게나! 이렇게 좋은 봄날에 두보의 유명한 시 한 수를 감상해 보게! 들에는 두견새가 울고, 산천에는 어느 곳이나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다. 그대가 생각하는 복잡한 불법의 이론을 떨쳐버리고 대자연에 펼쳐진 제법의 참된 모습(實相)을 체득하는 것이 불법을 지금 여기서 그대가 깨닫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25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묻는데, 꽃이 피고 새가 운다고 대답한다. 시냇물은 푸르고 꽃과 풀은 향기롭다고 딴청 한다. 따져서 알려 들지 말라. 그냥 그대로 숨 쉬듯 느껴라. 무슨 말이냐고 묻지 말라. 몽둥이와 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26
오조법연의 제자인 불감혜근(佛鑑慧懃, 1059∼1117) 선사 또한 “여러분은 어디에서 풍혈을 보려고 하는가?”라고 묻고는, 다음과 같이 시로써 대답하고 있다.
채운영리신선현彩雲影裏神仙現 오색비단 구름 위에 신선이 나타나서,
수파홍라선차면手把紅羅扇遮面 손에 든 빨간 부채로 얼굴을 가리었다.
급수저안간선인急須著眼看仙人 누구나 빨리 신선의 얼굴을 볼 것이요,
막간선인수중선莫看仙人手中扇 신선의 손에 든 부채는 보지 말라.
그도 풍혈의 흉내를 낼 뿐 그렇다할 뾰족한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문은 말한다. “왜 그 사람의 혓바닥을 잘라 놓지 못했는가?”라고.
무문은 그러나 이런 은유와 암시도 못마땅해 한다. 풍혈의 번개 같은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대처가 썩 흡족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럴는지도 모른다. 증조할아버지 임제였다면, 승조를 들먹이면서 자못 문자 속을 자랑하는 질문자의 혓바닥을 가차 없이 잘라버려 세상의 평온을 도모했을 것이다.27
왜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그렇게 시나 읊고 있어야 했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무문이 보기에는 그런 문자 놀음이 풍혈을 지나 그의 제자인 수산성념首山省念에 이르고, 이어 분양선소(汾陽善昭, 947~1024)에 오면『송고백칙頌古百則』이라는 공안집으로 탄생되는데, 이들 공안집이 이후 불립문자를 표방하던 선종을 지배하게 된 것을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양선소의 이후 선종의 공안집들이 유행처럼 번지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설두중현雪竇重顯의『설두송고雪竇頌古』와 굉지정각宏智正覺의『굉지송고宏智頌古』이다.『설두송고』는 원오극근圓悟克勤에 의해『벽암록』이 되었고,『굉지송고』는 만송행수萬松行秀에 의해『종용록從容錄』으로 되어 공안선公案禪 시대를 화려하게 열었던 것이다.
이들 선종서가 지식인들을 매료시키고 禪의 대중화大衆化를 이끄는데 기여하였지만, 그 폐해 또한 심각해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는 스승이 지은『벽암록』을 불태워 버리기도 하였다. 대혜 또한 새로이 간화선법을 개발하는 등 노력하였지만 문자를 떠날 수는 없었는데, 이후 선종서는 상징적인 주석과 은유적인 방법으로 현란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28
장억강남……이라고 길게 빼 부를 것까지 있겠는가? 간단하게 이놈! 해도 좋을 것이고 잔소리 지껄이지 말라 해도 좋을 것을. 그러나 길게 부르건 짧게 부르건 보통 말로 하거나 시조로 부르거나 간섭할 바 아니다. 만약 이 점에 대해 정말 알았다면 뛰쳐날 구멍이 생겨 자유자재의 경계에 이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범(不犯)’처를 스스로 알 것이 아니겠는가!29
III. 참구參究
말을 해도 불법에 어긋나고, 안 해도 어긋나는데, 어떻게 하면 어긋나지 않고 두루 통할 수 있겠는가? 풍혈 화상은 “오래도록 강남의 삼월을 추억한다네~”운운 하였다. 만일 그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겠는가? 이 관문을 뚫을 그대의 견해를 밝히시라.
여기 재미있는 문답이 있다.
방장 스님 앞에서 본칙 전문을 외우자마자 갑자기
방장: 본칙의 시는 두보 작품이지?
김 : 예, 그렇습니다.
간발의 틈도 없이 방장 스님의 죽비가 날아든다. ‘아차, 또 거리를 두고 보았구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30
그대는 방장의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했겠는가? 앞서 대답을 명쾌하게 한 사람이라면 방장이 날린 죽비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방장의 의도는 무엇이었겠는가? 또 ‘아차, 또 거리를 두고 보았구나.’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 말은 뜻은 무엇인가?
IV. 상당上堂
입실
생각은 다만 자신의 경험이나 체험으로부터 온 자신만의 특별한 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화두 수행이다. 머리로 또는 생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우리를 구속하는 관념들로, 그것들을 부수고 버리고 쏟아내어 관념으로 뒤덮인 본래의 자기를 찾아 가는 것이 간화선 수행이다. 그래서 화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으로는 풀기 어렵다.
간화선은 구하는 세계가 아니고 덜어내는 길이다. 돈오의 길이다. 돈오란 더 이상 덜어낼 게 없는 상태다.31
구조적으로 화두참구는 나하고의 싸움이요, 자기 관념과의 투쟁이다. 아군과 적군이 같다. 옳다고 생각하여 가다보면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하고, 삐끗하면 엉뚱한 곳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그때 방향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선지식이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입실점검이다.
참선할 때 일어나는 모든 번뇌 망상은 바닷물에서 일어나는 파도와 같다. 바닷물이 마음이라면 파도는 망상번뇌다. 파도가 바닷물이다. 바람만 잠재우면 파도는 그대로 바닷물이다. 파도를 없애려고 싸우지 말라 파도란 없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일어나는 바닷물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31
그러므로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다니면서 밖에서 구하기보다는 우선 열심히 참구하다가 갑자기 어떤 기발한 생각이 떠오를 때, 또는 “이것이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때 입실하라. 이도 저도 안 되거나 더 이상 생각이 진전되지 않을 때도 억지로라도 답을 만들어서 입실하라. 처음에는 무작정 “그냥!” 입실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입실이 거듭되다 보면 길이 보일 테니까! 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만일 이를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나아갈 길은 스스로 알게 되리라[若向者裏見得親切 自有出身之路].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매일 매일 입실하여 힌트를 받고 답에 접근해 가야한다. 그렇게 해서 선사들의 경계에 다다르면 그때는 자료도 찾아보고 그 의미를 새기면서 얼결에 투과한 자신의 견해를 다듬어 가게 된다. 그러면 화두의 의미가 더욱 더 명확하게 잡힌다. 화두를 투과하고 나야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견해들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면 그것은 아직 화두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저절로 견해가 밝아지고 경계도 뚜렷해진다.
꼭 앉아서 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선. 그것은 다시 말해 선어록을 읽는 것이며 공안을 읽는 것이다. 선승의 에피소드를 읽고 또 읽고 열심히 읽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선 사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알려고 애쓰면 선의 사고방식이 어느새 몸에 밸 것이다.32
중요한 것은 공부다. 입실 전에 얼마나 열심히 화두에 몰입해서 의심하고 참구하였느냐는 것이다. 대의심大疑心이 큰 깨달음을 낳는다고 하는데, 그 절실함의 깊이만큼 깨달음의 깊이는 크다. 다만 그것을 꾸준히 유지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또한 입실인 것이다. 입실점검은 수행을 이끄는 견인차牽引車인 것이다.
덕산德山이 말했다.
“제가 오늘부터 천하의 노화상들의 말씀을 의심치 않겠습니다[不疑天下老和尙舌頭也].”
다만『무문관』과정을 어느 정도 공부하신 분들은 바른 경계라는 생각이 들 때 입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입실하여 힌트를 얻으려고 하면 그만큼 배움이 적을 것이다. 물론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자신의 경계를 끌어내기 위한 “마중물” 의미의 입실은 꼭 필요하다. 경계는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서두르되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수행
간화선은 화두의 답을 맞히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선사들의 선문답을 보고, “그 뜻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참구의 과정을 거쳐 스스로 그 뜻을 깨우쳐 가는 것이 간화선 수행의 핵심이다. 입실점검으로 도움은 받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기가 부족한 점 또는 넘치는 점을 가늠할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중도中道를 깨닫고 평상심으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답을 맞히고 통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수행과정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요, 그 과정을 무심히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수행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진다하더라도 뭐 어떤가? 또 좀 손해 본다 한들 어떤가? 과정을 충분히 즐겼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은가? 현대인들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33
화두를 푸는 것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이다. 자기 스스로 고민하며 풀어보는 이 기회를 놓치면 그 화두가 갖는 깨달음의 장치는 영영 다시 작동하지 않는다. 그 환희를 다시는 맛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답을 알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답답하고 숨이 탁탁 막혀야 기존의 자기 관념과 아집을 타파하고 새로운 자기 본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순간은 그저 오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을 고심으로 끙끙 앓고, 중증의 변비 환자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이것을 어떻게 하기 전에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한동안 지속된 끝에만 찾아온다.34
주위 사람들에게 화두에 대해 묻거나 도반들과 화두에 대해서 논할 때도 주의를 요한다. 물론 토론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되도록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쉽게 해결하면 그 쾌감도 그 명쾌함도 맛 볼 수가 없다. 다음 화두로 달려갈 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한발 한발 걷는 걸음, 매일 매일의 생활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샐러리맨은 샐러리맨, 주부는 주부, 병자는 병자로서 매일 매일을 나름대로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나날을 소중하게 사는 것,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매일 매일 이외에 어디에도 우리들의 인생은 없다.35
입실시 받는 힌트는 양날의 칼이다. 힌트를 자주 많이 받으면 화두 투과 하는 데는 편할지 모르지만 자기 생각의 범위를 넓히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그만큼 놓치게 되기도 한다. 조동종의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는 스승이 그에게 법을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고마워하였다.
“스님께선 처음에 남전스님을 뵈었는데 어째서 운암스님에게 재를 올려 주십니까?”
“나는 스님의 불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에게 법을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중히 여길 뿐이다.[我不重先師道德佛法 祗重他不爲我說破]”36
착어도 마찬가지다. 화두를 투과하더라도 구조상 힌트를 받고 투과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 뜻을 명확히 알기 어렵다. 그래서 착어 찾기가 필요하다. 착어 때문에 공부를 그만 둘 정도로 어렵기도 하지만, 반면에 찾으면서 한자도 배우게 되고 구절들을 보면서 자체적으로 선공부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착어를 바르게 제시했을 때 자신이 몰랐던 ‘무엇’을 알게 된다.
“모든 화두는 결국 풀린다.”
부연하면 선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되도록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헤쳐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를 개조하는 공부요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공부이니 목숨 걸고 해야 하는 것이다. 빨리 풀고 늦게 풀고는 중요하지 않다. 1년 더 걸린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수행을 어떻게 했느냐는 공부과정은 시간이 흘러도 끝까지 남는다. 그 투과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노력만큼 자신에 대한 신뢰감도 커질 것이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 갈 때는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 말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남긴 내 이 발자국이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37
하나 덧붙일 것은 선 공부는 항상 떳떳하고 당당해야 한다. 조주는 ‘막자만莫自瞞’, 즉,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생사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서 자신을 속여서야 제대로 공부가 되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납승 문하의 일입니까[如何是衲依下事]?”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莫自瞞].”38
그리고 변명하려 하지 말라. 핑계를 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냥 또 하나의 망상일 뿐이다.
선이 싫어하는 것은 그곳에 핑계가 개입되는 것이다. 선은 바로 불필요한 분별인 핑계를 타파하자는 것이다.39
“나를 망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사람이 스스로 망하지 않는데 누가 능히 그를 망하게 하겠는가?” 명明나라 사람, 여곤(呂坤, 1536~1618)이 한 말이다.
지도
화두를 투고하고 나서도 환희심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었거나 고뇌하고 참구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지도자의 몫이기도 한데, 지도자는 힌트를 줄 때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어디까지 주어야 하는지 수행자로 하여금 얼마나 답답하게 막힌 상태로 있게 해야 하는지, 그 적절한 타이밍을 짚어내야 한다. 포기하기 직전까지 몰아가면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경계들을 제시하도록 하여 사고의 범위를 넓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수행자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인간이란 열심히 하면 할수록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하게 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므로 너도 그래야만 한다는 논리에 빠지기 쉽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도 노력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능력이나 성향이 다를 수 있다. 부처님이 행하신 대기설법對機說法40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할 것이다. 그것 또한 지도자의 몫인 것이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므로 너도 그래야만 한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생각에 얽매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노력이 모자라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41
그냥 다시 살피라고 하면 끝없이 벗어나는 사람도 있고 마냥 멈춰있는 사람도 있다. 개인차가 심해 매번 다른 조언을 해야 하고, 앞 뒤 사정을 살펴가며 신중하게 힌트를 주어야 하는 상황들을 겪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생시키는 것 같아 무심히 밀고 나가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기 직전에 새로운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 심정을 지도법사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본인을 지도하면서 가졌을 스승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한편 가끔 지도 방법에 불만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는데, 법사에 대해 불만을 표할 일이 아니라, 자신이 그 자리에 섰을 때 그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 필자의 경우 단지 ‘다시 살피라’ 혹은 ‘다시 참구하라’라는 말이라도 매일 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매일 매일 입실점검을 해 드리고 있다. 다만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폐해도 알 수 있었다. 지나치는 것은 이르지 못하다는 평범한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입실에 너무 열중하는 것 또한 선에서 지극히 싫어하는 집착일 수 있다. 무엇이든 중도를 지켜 알맞게 해야 할 것이다. 송대 오조 법연(五祖法演, ? ~1104) 선사는 제자가 어느 절의 주지로 나갈 때, 다음의 네 가지 계를 제자에게 주었다고 한다.
첫째, 복을 받으려 진력하지 마라 다 받지 말라. 복을 탐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
둘째, 기운을 쓰려 진력하지 말라. 기운을 많이 쓰면 반드시 사기를 만난다.
셋째, 말을 하려 진력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면 말의 내용이 사라진다.
넷째, 규칙을 행하려 진력하지 말라. 규칙만을 강조하면 주위에서 사람이 떠난다.42
V. 감상感想
가을빛이 문득 나타나더니
겨울바람에 가을 잎이 흔들린다.
며칠 째 눈이 내리고 추위가 밀려와 모든 것을 얼려 버렸다.
산하대지만 얼었겠는가?
해가 뜨고 추위가 가실 때 쯤
마음 또한 온기가 느껴진다.
세상은
그렇게 슬프지도
그렇게 기쁘지도 않다.
슬픈 마음이 일어나면 기쁜 마음이 천천히 퍼지고
기쁜 마음이 일어나면 슬픈 마음이 서서히 물든다.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새롭게 다가올 것이지만
무언가 없어지는 나를 더듬는다.43
VI. 참고한 책과 글
1) 두보(杜甫, 712~770)의 시. 두보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이백李白과 더불어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율시律詩에 뛰어났으며, 인생의 애환을 뛰어나게 노래하여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2) 무문의 게송은 무문의 창작이 아니라,『오등회원』제15권 운문문언 선사의 다음과 같은 상당법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운문화상이 법당에서 법문할 대에 주장자를 들고서 말했다. ‘이 주장자는 변화하여 용이 되어 하늘과 땅을 모두 삼켜버렸는데 산하대지가 어느 곳으로부터 생겼는가?’ 선사는 게송으로 읊었다. ‘풍체 좋은 시로서 표현하지 않고, 말하기 전에 이미 부촉하였네. 한 걸음 나아가 입으로 불법을 설명한다면 그대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를 거야(不露風骨句, 未語先分忖, 進步口喃喃, 知君大罔措)’라고.」무문은 이 운문의 게송을 그대로 인용하여 앞의 두 구절은 풍혈의 대답을 노래했고, 뒤의 두 구절로서 질문한 스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無門慧開, 鄭性本 譯註,『무문관無門關』 pp. 212~213).
3)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의 성은 유劉씨. 절강성 항주부 여항현餘杭縣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고기와 마늘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유학儒學에 힘썼으나 과거에 낙방하자 출가하여 천태와 화엄을 공부하였다. 임제종 남원혜옹(南院慧顒, 860~930) 선사에게 가서 깨닫고 그의 법을 이었다. 송나라 개보開寶 6년 78세로 입적하였다. 풍혈은 임제의 4세 법손으로 그의 계보는 임제의현(臨濟義玄, ? ~867) → 흥화존장(興化存奬, 830∼888) → 남원혜옹(南院慧顒, 860~930) →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 →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 → 태자원선太子院善 → 자명초원慈明楚圓으로 이어진다.
4) 선림고경총서 9, 백련선서간행회 편,『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上』「4. 풍혈 연소(風穴延沼)선사 / 896~972」 pp. 117~118. [원문] 後見南院。院問師。南方一棒作麼商量。曰。作奇特商量。卻問。此間一棒作麼商量。院橫按拄杖云。棒下無生忍。臨機不見師。師於言下大悟。出世風穴。嗣南院。
5) 무생인無生忍(무생법인無生法忍)은 보살의 다섯 가지 수행 단계 가운데 네 번째 단계로, 모든 사물과 현상이 공空이므로 생기고 사라짐의 변화란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 마음의 평정을 얻는 단계이다. 모든 것을 알아 참을 것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6) 원오 극근 저, 석지현 역주 해설,『벽암록碧巖錄 2』「第38則 風穴鐵牛機」 pp. 342~343.
7) 원오 극근 저, 석지현 역주 해설,『벽암록碧巖錄 2』「第38則 風穴鐵牛機」 pp. 338~342 참조.
8) 한형조 지음,『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pp. 170~171.
9) 혜심慧諶 ․ 각운覺雲 지음, 김월운 옮김,『선문염송禪門拈頌·염송설화拈頌說話 9』「1246. 입문入門」 pp. 414~417.「설화說話」“문에 들어왔거든 주인을 알아보아야 되나니[入門須辨主]......”라고 함은 다만 손님 가운데 주인[賓中主]을 가려내려는 것이다. “왼손으로[以左手]......오른손으로 무릎을 한 번 친다[右手拍膝一下]”함은 왼쪽은 주인으로서 노스님 쪽의 일이요, 오른쪽은 손님으로서 사리 쪽의 일이니, 손과 주인으로 나누는 내용이다. 낱낱이 문득 할[便喝]을 한 것은 남겨두지 않으려는 뜻이요, “왼손을 들고[擧左手]......”라고 한 것과 “그대의 판결에 맡기거니와[且從闍梨]......”라고 한 것은 사리와 노승을 엇바꿔 든 것이다. “소경이군요[瞎]”라고 함은 놓치지 않으려는 뜻이요, “주장자를 들거늘[拈起拄杖]”함은 왼쪽에도 떨어지지 않고 오른쪽에도 떨어지지 않은 중간 구절이다. “무엇을 하시렵니까? 주장자를 빼앗아서[作什麽奪拄杖]”함은 역시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요, “주장자를 던지고[擲下拄杖]......”라 함은 중도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며, “마치 발우도 얻지 못하고서......하는 것 같습니다[大似待鉢不得]”라 함은 역시 다그치는 것[折拶]은 아니다. “상좌는 일찍이......오지 않았었는가?[上座莫會到]......물음이로다[相借問]”라고 함은 손도 있고 주인도 있으니, 사리와 노승 사이에 물음과 대답이 있은들 역시 방해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是何言歟]”라고 한 것과 또 “놓칠 수 없습니다[也不得放過]”라고 한 것은 끝내 놓치지 않으려는 뜻이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라[且坐喫茶]”고 함은 극칙처(極則處)에 이르러서는 역시 모름지기 이렇게 일러야 한다는 뜻이다. 남원은 오직 그의 안목을 시험할 뿐 아니라 설법하는 차례가 진실로 이와 같으니, 차츰차츰 추궁하여 그의 선 자리를 시험하다가 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다만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라”고 하였다. 그 뒤를 따라 묻되 “일찍이 무엇을 보고 왔느냐?”하니, “양주(養州)와 면주(沔州) 사이에서 곽(廓) 시자와 함께 여름을 지냈습니다.” 하였다. 남원이 다시 이르기를 “작가(作家)를 친견했겠구나.”라고 하고는 “그가 무엇이라 하더냐?”라고 하니, “저로 하여금 처음과 끝에 주인 노릇을 하라[始終作主]고 하더이다.”라고 하였다. 남원이 말하기를 “저 첨지가 여기에 오자 낭패를 당했다”고 하고는 문득 때려 주고 방장에서 나갔다. 다음 날 다시 묻기를 “남방에서 이 한 방망이를 어떻게 헤아리는가?......”라고 했으니, 풍혈이 낱낱이 놓치지 않는다 한 것은 처음과 끝에 주인 노릇을 하라 한 데 안목이 높고 수승하기 때문이다.
10) 원오극근圓悟克勤, 정성본鄭性本 역해譯解,『벽암록碧巖錄』「제38칙 풍혈(風穴)화상과 조사의 마음(心印)」 pp. 236~237.
11) 조사의 心印은『벽암록』1칙에 달마조사가 인도에서 중국에 온 것은 불심인(佛心印)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공화상이 양무제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불심인(佛心印)과 같은 말로 부처와 조사가 이심전심으로 전한 불법의 근본정신으로 각자가 구족하고 있는 불심이며,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한다(원오극근圓悟克勤, 정성본鄭性本 역해譯解,『벽암록碧巖錄』 p. 238).
12) 원오극근圓悟克勤, 정성본鄭性本 역해譯解,『벽암록碧巖錄』 pp. 238~239.
13)『불교 용어집』「풍혈 연소(風穴延沼)」에서 인용.
14) 선림고경총서 9, 백련선서간행회 편,『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上』「4. 풍혈 연소(風穴延沼)선사 / 896~972」 p. 120.
15) 선림고경총서 9, 백련선서간행회 편,『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上』「5. 수산성념(首山省念)선사 / 926~993」 p. 125.
16) 무비스님『임제록 강설』 pp. 329~330.
17) 승조(僧肇, 384~414)는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西安]에서 출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서사가書寫家로 생계를 이었는데, 그 때문에 유교와 역사의 고전에 능통하였다. 특히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좋아하였으나, 뒤에 지겸支謙이 번역한『유마경維摩經』을 읽고 불문에 귀의하였다. 인도승 구자국龜玆國의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이 중국에 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401년 역경 사업에 참여하게 되는데, 승략僧략, 도항道恒, 승예僧叡와 함께 구마라습 문하 사철四哲로 꼽힌다. 승조는 왕필(王弼, 226~249)과 더불어 중국 3대 천재 일컬어지던 사람으로, 당시 그의 재능을 흠모한 후진의 왕 요흥姚興이 그에게 벼슬을 내리며 환속을 명하였으나 거절하자 죽임을 당하였다. 당시 불과 31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 일주일의 시간을 얻어 짧은 임종게臨終揭와『보장론』을 남겼다. 그의 임종게는 “四大元無主 사대는 원래 주인이 없고, 五陰本來空 오음은 본래 공이다. 將頭臨白刀 날카로운 칼날이 목을 지나도 猶似斬春風 그것은 봄바람을 베는 것일 뿐.”이다. 공空사상에 대한 그의 논문집『조론肇論』은 중국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8)『보장론寶藏論』은「광조공유품廣照空有品」「이미체정품離微體淨品」「본제허현품本際虛玄品」등 3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품「광조공유품」은 지智에 관한 내용이고, 제2품「이미제정품」은 만물의 본성에 대한 설명이며, 제3품「본제허현품」은 천진天眞(천성으로 타고난 참된 마음)의 이치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본제本際는 열반·여래장·불성·법계와 동의어로 만물을 포용하여 남기는 바가 없다는 뜻이다. 책명을 보장寶藏이라 한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이 책은 승조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즉일체一卽一體의 화엄사상을 포함하고 있고, 특히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가 번역한『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701년 이후에 저술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차난타는 695년 중국에 경전을 들여와 번역한 인물이고, 내용이 선종의 가르침에 적합하여 많은 선종 어록에 인용되었다는 점에서 8세기 후반 우두선牛頭禪 또는 정중종淨衆宗 계통에 속하는 스님들에 의해 쓰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선종 어록 이외에도 화엄종에서 이 책을 많이 인용하였는데, 특히 화엄종 제5조 종밀宗密과 송의 정원淨源 등이 애용하였다. 당나라 중기의 불교사상을 담고 있어 불교연구의 귀중한 서적으로 평가된다. (Zeroboard / skin by zero에서 인용 요약)
19) 김호귀, 동국대 선학과 강사,「[묵조선풍 날리며] ⑧풍혈연소의 꼼수」만불신문, 발행일 : 2006-04-01.
20) 無門慧開, 鄭性本 譯註,『무문관無門關』 p. 208.
21) 무문혜개 찬술, 금하광덕 역주, 송암자원 교정,『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p. 110
22) 無門 慧開 原著, 宗達 李喜益 提唱,『무문관無門關』 p. 257.
23)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65 풍혈화상의 법문」, 법보신문.
24) 강신주,「[철학자 강신주의 무문관과 철학] 33. 이각어언(離却語言) 불립문자는 남을 흉내 내지 않은 본래면목의 말」, 법보신문.
25) 無門慧開, 鄭性本 譯註,『무문관無門關』 pp. 210~211.
26) 정민,「禪詩 , 깨달음의 표정 (2)」.
27) 한형조 지음,『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p. 64.
28) 명법,『선종과 송대 사대부의 예술정신』 p. 18.
29) 無門 慧開 原著, 宗達 李喜益 提唱,『무문관無門關』 pp. 260~261.
30) 장휘옥, 감사업 제창, 간화선 수행의 교과서, 무문관『무문관 참구』 p. 217.
31) 혜국 스님(前전국선원수좌회 대표), 「간화선의 유래와 수행방법 The Origin and Practice of Ganhwa Seon」 (2010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Day 1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pp. 35~36.
32) 히로 사치야 지음 / 김혜경 옮김,『케이크와 부처』「53. 선을 읽자」 p. 179.
33) 히로 사치야 지음 / 김혜경 옮김,『케이크와 부처』「49. 조금 느긋하게 살자」 p. 164.
34) 정민, 한문학자의 예글 읽기, 세상 읽기,『스승의 옥편』 p. 272.
35) 히로 사치야 지음 / 김혜경 옮김,『케이크와 부처』「45.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p. 152.
36) 선림고경총서 14, 백련선서간행회 편,『조동록曹洞錄』 p. 24.
37)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중종 15)∼1604(선조37))의 선시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이 시는 조선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 1771(영조 47)~1853(철종 4)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는 조선후기 한시연구논고에서 위의 시가 이양연의 시임을 확인하였고, 안대회 교수는 서산대사의 문집인『청허집淸虛集』에는 이 시가 수록돼 있지 않은 반면, 이양연의 문집인『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과 장지연이 편찬한『대동시선大東詩選』등에 이양연의 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고 밝혀내었다.
38) 선림고경총서 18, 백련선서간행회 편,『조주록趙州錄』 p. 58.
39) 히로 사치야 지음 / 김혜경 옮김,『케이크와 부처』「51. 핑계 대지마라」 p. 173.
40) 대기설법對機說法이란 듣는 이, 혹은 질문하는 이의 이해와 수준(심리적, 근기)에 따라 맞추어서 적절한 언어와 방편으로 설법하는 방법을 말한다. 수기설법隨機說法, 방편설법方便說法이라고도 하고,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응병여약應病如藥이라고도 한다. 또, 사다리나 계단을 오르듯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수준을 높여가는 것을 차제설법次第說法이라 한다. 구체적인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인연법因緣法: 부처님 법은 모두 인연법에 근거할 수 있다. 일체 법이 발생한 원인과 조건 그리고 결론을 밝혀주는 방법으로 대중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고 자연스럽게 교감을 유도할 수 있다. 비유법比喩法: 사례나 우화를 들어 비유하면서 대중들이 쉽게 가르침의 본질을 파악하게 해주는 방법. 수기법授記法: 미래에 성불할 것을 예언함으로써 그 기별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 정진하는 마음을 복돋아 주는 방법. 우회법迂回法: 어리석은 질문에 대하여 상대방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거스르지 않고 우회적인 문답과 교설을 통하여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 반어법反語法: 상대방의 물음에 역설적으로 반문함으로써 도리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대비법對比法: 현명함과 어리석음,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 등의 대구對句를 사용하여 설법의 극대화를 이루는 방법. 문답법問答法: 일대일 설법이나 진리를 확실하게 알려 주어야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 고조법高調法: 명백한 사실을 더욱 명백하게 하거나 똑같은 표현 방식에서 그 핵심 문구만을 달리하여 반복함으로써 감정에 호소하고 감성과 이성을 고조시키는 방법. 위의법威儀法: 몸가짐과 생활태도를 항상 여법하게 갖춤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는 방법.
41) 히로 사치야 지음 / 김혜경 옮김,『케이크와 부처』「42. 불교인으로서의 자유」 p. 141.
42) 히로 사치야 지음 / 김혜경 옮김,『케이크와 부처』「55. 무엇이든 적절하게」 pp. 184~185. 法演四戒: 勢不可使盡。福不可受盡。規矩不可行盡。好語不可說盡。
43) 불교에서는 이 속세를 ‘사바娑婆’라고 부른다. 사바라는 말은 원래 고대 인도어(산스크리트어) ‘Saha’에서 온 말로서 한자의 음을 빌려 썼을 뿐, 그 한자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바는 ‘참다’ ‘견디다’라는 뜻이다. 아픔을 참고, 괴로움을 참고, 더위를 참고,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것이 사바인 것이다.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은 괴로움 투성이이다. 온갖 싫은 일로 가득 차 있다. (중략) 이 세상은 열심히 노력을 해도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보람 없는 일도 많고 불행해지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세상사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중략) 우리들은 타인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고서는 살 수 없고, 그러므로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괴로움을 주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사바라고 부르며,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괴로움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히로 사치야 지음 / 김혜경 옮김,『케이크와 부처』「34. 사바 세계」 pp. 11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