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의 평범한 강마을, 생태 관광지 카무(Kamu) 마을
-라오스 외딴 마을이 던지는 개발에 대한 의문들
*여기 게재한 사진은 모두 '라오스 소수민족과 문맹인을 위한 재생가능에너지 교재개발 사업' 지원을 위해 현장조사에 참여한 <환경교육센터> 장미정 소장이 촬영한 것입니다.
라오스 메콩 강변의 외딴 마을 ‘반여이하이’
이번이 두 번째다. 2011년 초소수력발전기 쓰는 모습을 직접 보기위해 처음 찾아갔던 때와 다름없이 올해도 ‘반여이하이’(여이하이 마을)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반여이하이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로 지정된 라오스 북부의 아름다운 루앙파방(Luang-Prabang)에서 배로 서너 시간이 걸리는 메콩 강변의 작은 마을이다. 전통적으로 메콩을 이용한 하상교통이 발달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반여이하이처럼 작은 마을들을 정규적으로 들르는 배는 여전히 찾을 수 없다. 엄청난 소음과 속도로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스피드 보트는 마을까지 1시간여의 시간밖에 들지 않는 데다 뱃삯도 싸 마음이 동했지만 안전을 생각해 돈을 더 들이고 느리지만 확실히 우리를 마을까지 데려가고 데려올 배 한척을 전세 냈다.
발동기 소리 말고는 신선놀음만 같았던 서너 시간의 운행을 마치고 눈에 익은 마을 입구에 배를 대려는데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집채만 한 덩치의 물소들과 밤톨만한 꼬마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이었다. 아홉 살 여덟 살 난 아이들은 물소 네다섯 마리를 이리저리 능숙하게 몰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 등에 올라타는 가하면 내려서는 꼬리를 잡고는 마치 스키를 타듯이 모래밭을 달리며 놀았다.
한국에서 공부를 한 인연으로 라오스 교육부 공무원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이곳을 소개해주었지만 이번에도 그 덕분에 마중을 나오는 마을 사람은 없었다. 막막한 우리를 둘러싸고 모여든 아이들과 나무그늘에 앉아 있는 어른들에게 마을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물었다. 우선은 지난 번 왔을 때 가장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마을 유일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물었다. 오늘은 토요일, 학교는 당연히 쉬는 날이다. 한 분은 루앙파방에 나갔고 두 분은 산밭에 갔단다. 모두 해가 저물 무렵에야 올 거란다. 그래서 이장님을 물었다. 역시 밭에 가고 없단다. 이런 또 지난번과 다름없이 생각했던 중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역시 라오스에서 최악의 상황이란 없다. 절대 낙담하지 않고 역시 마을 유일의, 초소수력발전기를 쓰고 있는 가겟집을 찾아갈 요량으로 느긋하게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라오스는 언제나 내게 행운을 가져다준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가 누굴 찾는지는 금새 소문이 퍼져 마흔여덟 살 이장님 댁에서 스물네 살 막내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이름은 쩜. 국토 면적 같은 것은 물론 전화번호 수십 개도 술술 외우는 게 보통인 라오스 사람들. 쩜은 사실상 이장의 일을 도맡아 하는 있는 사람답게, 현재 마을엔 78가구 520여명 거주하고 있으며 라오족이 12명이고 나머지는 자기 가족을 포함해 카무(Kamu)족이라고 또박또박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라오스 메콩의 강마을 반여이하이 이장 댁에서 쩜과 필자
초소수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
반여이하이는 라오스의 대부분의 시골에서 그렇듯이 의식주 거의를 자급자족한다. 물고기를 잡거나 물소나 닭 등의 가축을 기르고 화전을 통해 옥수수 등 곡류를 재배하거나 우기엔 그 산밭에 벼농사를 짓는다. 지난번과 다름없이 초등학교도 하나, 절도 하나였는데 가게는 두 개로 늘었다.
지난번엔 없었던 태양광패널들이 몇 개가 보여 쩜에게 물었다. 마을에 10가구 정도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단다. 초소수력발전기와 달리 시장에서 산 게 아니라 어떤 회사가 설치를 해 준 것이란다. 20와트 패널 하나에 서너 개 전구와 전화기 충전을 위한 콘센트 하나 정도가 기본 구성인 것 같았다. 가격은 이백만 낍(Kip, 라오스 통화단위). 현재 라오스 환율은 1달러에 8000낍 가량으로 이정도면 신입 공무원들 월급의 두 배다. (최근 백 퍼센트 오른 월급은,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서너 달 밀리기가 일쑤란다) 시장이나 가게에서 사 자체 설치해 쓰는 초소수력발전기와 달리 회사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구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태양광발전기는 5년 보증이 되고 2년 안에 고장이 나면 회사에서 아예 교체해 준단다. 그런데 2년 안에 고장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이건 5년 보증이 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 워낙 고장이 빈번하니 보증을 해주며 팔수 밖에 없는 전략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왜 태양광발전기가 고장이 잦을까?
리조트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 마을에 설치된 것과 달리 연구소가 지원하는 설비를 맡아주고 있는 회사 Sunlabob의 것
초소수력발전기는 더했다. 2년이 아니라 두 달 쓰는 게 보통이란다. 마을에서 두어 집이 초소수력발전기를 쓰고 있지만 싼 중국제를 쓰는데 고장이 잦아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라오스에서 중국제라고 불리는 것은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을 말하는 관용구 같은 것이다. 태양광패널에도 역시 한자가 붙어있어 중국제인 것은 같아 보였으나 이들에겐 아직 태양광발전기가 중국제라는 공통의 폄하하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훨씬 나은 물건이었던 것 같다. 2011년 1월 이 마을을 처음 찾았을 때, 마을 유일의 가겟집에서 초소수력발전기를 설치해 쓰는 것을 보면서, 태양광발전기보다 훨씬 효율도 높고 가격도 싼 초소수력발전기 사용이 빨리 확대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3년 후, 전혀 그렇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치의 곤란함, 중국제라는 거 말고 초소수력발전기는 또 무엇이 문제일까?
쩜은 10년 안에 대전기가 보급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라오스에서 실제 송전선 설치 계획이 있더라도 실행되기까지는 계획 기간의 몇 배가 걸린다. 알려진 계획도 없다면 정말 10년이 넘어도 이 강마을에 대전기가 들어올 일은 없다는 거다.
소수민족 강마을, 생태 관광지 카무 마을
쩜은 ‘KAMU LODGE’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처음 만나 무슨 일을 하는지 물으면 라오스 시골 사람들은 보통 직업이 없다고 답한다.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고 가사를 돌보는 것을 직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쩜은 가슴에 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답해 마을 인근에 그 리조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14년 전 리조트가 생겨 자신을 포함해 마을 청년 24명이 일하고 있단다. 리조트는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하루 적으면 서너 명 많으면 이십 명 사십 명의 손님을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리조트에 마련된 작은 공연장에서 춤과 노래, 악기 등을 공연하고 방문객들이 카무족의 문화와 생태를 체험하는 관광지다. 여기서 일하는 청년들은 월급으로 사십 만낍에서 오십 만낍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옆에 있던 우리 통역, 후왕이 조금 놀라는 기색이다. 후왕은 몽족 청년으로 지난해까지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루앙파방의 작은 호텔에서 백만낍 정도를 받으며 일 한 바 있다. 쩜은 외국인(프랑스인) 직원은 천 달러 이상 받는다고 말했지만 내 예상컨대 최소 그 세 배는 더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 리조트 손님들은 프랑스인 등 주로 유럽 사람들로 하루 200~300달러를 내고 묵는다.
카무 마을 바로 옆에 생긴 생태 여행지 리조트 풍경
인터뷰를 더 하고 싶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더니 쩜이 잠시 후면 손님이 도착할 시간이어서 리조트에 가봐야 한단다.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은 때여서 어서 가라고 서두르니 괜찮단다. 리조트는 마을을 감싸듯 둘러서 있는 대나무 숲을 빠져나가 바로였다. 잘 다듬어진 계단식 논 가운데 사방이 트인 넓은 카페가 자리해 있었다. 카페로 가는 작은 길엔 옹기로 만들어진 장식등들까지 놓여있고 논을 둘러싸고 배치된 풀 지붕을 인 숙소들이 리조트가 더욱 아늑한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숙소마다는 물론 공연장과 카페에도 태양광발전기가 있어 독립적으로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동화 속 풍경이다. 헌데 그 풍경의 한편에 대나무 숲이 다 가리지 못한 틈으로 우리가 건너온 카무 마을이 보였다. 공정여행에 특히 관심을 가진 친구가 물었다. 마을이 보이는 리조트에서 그리고 리조트가 보이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서로 어떤 생각을 할까?
리조트에서 바라다 보이는 카무 마을
루앙파방에서 넉넉히 싸 온 샌드위치를 게서 일하는 다른 청년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들에게 리조트에서 일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는데 리조트에서 일하게 되어 돈을 벌 수 있게 되어 좋단다. 다만 나이가 들면 여기서 일할 수 없단다. 2010 여름 큰 홍수로 강에 가까이 위치한 학교 운동장 한편이 무너져 내렸을 때는 리조트에서 팔백 달러를 지원해 돌을 운반해와 축대를 새로 보강할 수 있었단다. 마을의 유일한 그 초등학교도 라오스 정부가 지은 건물 외에 이 리조트에서 지원한 돈으로 부족한 교실을 더 마련할 수 있었다. 또 리조트는 손님들이 마을에 들르면 공연에 참여한 사람이나 아니나, 애나 어른이나 상관없이 마을 사람 모두에게 만 낍씩을 전달한다고 한다. 마을 이장은 그 돈은 모아서 가축을 사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등 마을 사람들을 지원하는데 쓰고 있다. 혹시 리조트에서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인지를 물었더니 그렇지 않단다. 마을 사람들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카페 한쪽에는 이 리조트를 우수 여행상품으로 인정해 수상한 상장들이 걸려있다.
학교와 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쩜의 집으로 가는 길
복잡한 심사로 마을을 나왔다. 물소들과 뒤엉켜 놀던 꼬마들이 이젠 옷을 훌러덩 벗고 물놀이에 한창이다. 도둑 촬영은 말아야지, 꼬마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불렀더니 너나할 거 없이 옷을 주섬주섬 입고 가까이 다가왔다. 개구쟁이들과 사진을 찍으며 그 천진난만한 표정 덕분에 무거운 마음들이 덜어졌다. 우리가 배에 모두 오르고 나도록 아이들은 손을 흔들어 주고 다시 옷을 벗고는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다시 놀이를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바닥이 모래밭에 닿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배를 밀어주었다. 언제나 이렇게 내 의문은 늘어가고 나는 이 사람들에게 빚을 진다.
물놀이 하느라 벗었던 옷을 일부러 챙겨 입고 사진을 함께 찍어준 꼬마들 덕분에 우리들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배가 잘 나아가도록 밀어주고 있는 반여이하이 꼬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