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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그리고 군위, 경북의 속살 한 꺼풀 더 들여다보기
(2013.03.16~17)
정광수
금요일 밤 12시까지 아이들 도서관 자율학습하는 거 감독 끝내고 지친 몸으로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1시가 되에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오늘?)은 마눌님과 함께 경주를 가야하는 날이다. 초등학교 6학년 부장인 마눌님이 경주로 수학여행 답사를 다녀와야 하는데, 원래는 젊은 신임 담임교사들에게 갔다 오라고 했더니, “부장니~임, 저희는 좀…” 뭐 이러면서 다들 우물쭈물 빼더래나? 참, 시대가 많이 변했다! 어쨌든 그래서 마눌님이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나를 전속 운전사로 고용, 1박 2일간 ‘사모님’ 모시고 다녀올 수밖에 없었던 거다.
형식은 6학년 선생님들끼리 다녀오는 것이라, 어쨌든 여행경비는 나오겠지만, 모든 돈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써야하고, 지정된 장소 범위 안에서만 써야 하고, 하이패스도 쓰지 말고, 어쩌고저쩌고…. 좀 까탈스런 것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랴, 규정에 맞춰 다녀야지.
아침 9시에 출발하자고 했는데, 우리 사모님 이러구러 하다 보니 정작 출발 시간은 11시. 옛날 같았으면 속에서 ‘후~욱’ 솟아올랐을 텐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그래도 서하남 인터체인지에서부터 꼼짝도 못하고 막혀있으니 속은 부글거린다. 그래도 다행히 중부로 들어서서 톨게이트를 통과하니까 제법 시원하게 뚫렸는데, 영동에서는 다시 막혔다. 그래도 중부내륙으로 가니까 여주까지만 꾹 참고 기었고, 여주에서 벗어나서는 시원스레 달린다. 고속도로란 능히 이래야 하는 거 아냐? 이 맛에 고속도로를 돈 내고 가는 거지…. 그런데 이 중부내륙고속도로, 차들이 많이 빨리 달린다. 110이 제한속도지만, 거의 다 130~140으로 달리는 거 같다. 시간이야 단축되니까 좋지만, 정말 속도들이 장난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운전 1년 갓 넘은 우리 마눌님에게는 도저히 운전대를 넘길 수 없는 범위의 속도.
느지감치 아침을 먹고 출발한 바람에 점심도 1시가 훌쩍 넘어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먹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경상도 음식 좀 그렇다. 내륙에 와서 고등어 자반구이를 시킨 것이 좀 무리였나? 언제 구워놨는지도 모르게 말라 있어 보기에도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경주 근처에서 기름을 넣어야 한다고 해서 건천 휴게소에 들러 기름도 채워 넣고, 추억의 야구장에 들러 3000원어치 배트도 휘둘러보고…. 어쨌든 그렇게 해서 경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단지 내에 있는 숙소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도 한 때 콘도였기 때문에 시설이 비교가 되질 않는다. 여관과 콘도의 차이랄까? 암튼 경주 시내나 불국사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기도 해서 마눌님도 무척이나 맘에 들어 했고, 내친 김에 방을 하나 달라고 해서 하루 밤을 여기서 보내기로 했다. 공짜로? 그건 불가능하다. 규정대로 카드를 써야 하기 때문에, 7만 원짜리 17평형 방 하나를 만원 깎아서 6만원에 얻었다. 왜? 규정상 1일 여비가 그 이상을 될 수 없었으니까.
방에 짐을 풀고 내려와 피로도 좀 풀 겸 좋은 사우나를 프론트에 물어보니 추천해 준 곳이 경주교육문화회관에 있는 ‘스파월드’다. 마침 공제회원들은 20% 할인을 받을 수 있어 1인당 6000원. 동네 목욕탕 가는 값이면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니 좋다.
광고 글에서와 같이 큰 실내 온천탕은 노천탕으로 연결이 되어 있고, 온천탕 안에는 개인 샤워부스와 냉탕, 온탕, 열탕 등이 고루 갖춰져 있고, 탕마다 버블젯이나 폭포 등 다양한 시설들이 가동 중이다. 특히 맘에 든 것은 핀란드식 사우나, 황토사우나, 습식사우나 등 세 방 모두 너무 뜨겁지 않은 쾌적한 온도로 맞춰져 있어 편하게 사우나를 할 수 있고, 메타세콰이어 나무에서 나는 진한 피톤치드를 가슴 가득 호흡할 수 있다는 것. 마치 생나무를 켜대는 목재소에 들어온 듯한 진한 나무향이 너무 좋다.
온천으로 개운해진 몸으로 저녁을 먹으로 갔다. 교육문화회관은 경주시내에서 동쪽에 있는 보문호수 옆 보문단지에 있고, 우리 숙소는 남쪽으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영지’ 근처에 있으므로 숙소 쪽으로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먹기로 했다. 4번국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블루원보문 CC 남쪽에 있는 ‘井수가성(054-745- 0066)’이란 주차장도 넓고, 한옥식으로 새로 지은 듯 깔끔한 한정식집에서 ‘한우석쇠불고기 정식[2인 34000원]’으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국물이 있는 서울식 불고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짜로 석쇠에 구워주는 광양식도 아니고, 뜨거운 철판에다 국물 없이 구워주는, 일종의 퓨전식 불고기인데, 어쨌든 불맛이 살아 있어 국물식 불고기보다는 훨씬 맛이 좋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인 이스트힐리조트에 돌아와 경주에서의 하루를 보냈다.
2. 2013년 3월 17일 일요일: 경주(괘릉-황남빵)-군위(화본역-한밤마을-삼존석굴암-김수환추기경 생가-군위향교)-서울
일단 아무 계획이 없었다. 경주는 와 볼 만큼 와 봤다. 작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마눌님 답사 전속 드라이버로 님을 모시고 와서 그 동안 안 봤던 것들, 즉 골굴사나 기림사, 경주 남산, 포석정의 야경 등 속속들이 봤으니까, 구태여 다시 찾아 봐야 할 것이 따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으니까.
선택의 기준은 하나다. 고속도로의 정체구간을 통과하는 시간을 가능한 한 짧게 만드는 거. 그러면 선택의 두 가지다. 아침만 먹고 그냥 서울로 출발하든지, 아니면 아예 저녁까지 먹고 7시 넘어 느긋하게 출발하는 것. 현재로서는 마눌님 학교 6학년 꼬마들이 묵을 숙소를 점검하는 기본 임무는 완수했으므로, 이번 여행의 품질은 오롯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물론 마눌님이 하시겠지만….
한참 지도를 뒤적이던 우리 마눌님이 제시한 것은 ‘군위’. 한 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는 경북의 속살이다. 그 중에서도 마눌님의 흥미를 끈 곳은 ‘한밤마을(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1,2리, 남산1,2리, 동산1.2리 일대/ http://www.hanbam.net)’이다. 이곳은 우리 마눌님 고향인 제주와 같이 돌담이 예쁜 마을이라 한다. “Yes, Mam! You name it, and I'll do it.” 그렇게 우리 부부의 이번 답사여행의 ‘보너스 여정’은 자연스럽게(?!) 경북의 속살, 군위로 정해졌다.
짐이라야 달랑 가방 하나지만, 그래도 짐을 꾸려서 Check Out하고, 우선 바로 근처에 있는 ‘괘릉(掛陵)’으로 향했다. 아침을 먼저 먹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어제 저녁을 넉넉히 먹어서인지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성왕릉으로 믿어지고 있는 사적 제26호 괘릉(掛陵)은 통일 신라의 묘제를 모두 갖추고 있는 무덤으로, 화표석, 문무인상, 사자상을 세우고 무덤 둘레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호석에는 12지상을 새겼다.
이 왕릉이 ‘괘릉’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원래 연못이었다고 한다. 연못을 메우고 무덤을 만들었는데, 물이 무덤 안으로 스며들어와 관을 바닥에 놓지 못하고 무덤 벽에 걸어 놓아 ‘걸 괘(掛)’자를 써서 괘릉(掛陵)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괘릉’에는 몇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우선 무인상과 문인상이다. 무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외국사람이다. 갑옷을 입고 있지도 않고, 서역에서 온 무역상이 입었음직한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모습으로 만드어져 있다. 그래서 이 괘릉의 무인상을 들어 통일신라시대에 벌써 서역인들과 교통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고 한다.
둘째는 문인상인데, 분명 앞에서는 관리의 복장인데, 뒷모습에는 갑옷 문양이 보인다. 결국 이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문인과 무인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문인상, 무인상 둘 다 쓰러져 있었는지 앞뒤의 색이 다르다.
셋째는 사자상들이다. 성덕왕릉이나 흥덕왕릉 등 다른 왕릉들에 있는 사자들은 능을 둘러싼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여기에 있는 것들은 모두 능 앞에 좌우 양쪽에 두 마리씩 도열하고
괘릉의 좋은 점은 우선 접근성이다. 다른 능들은 주차장에 내려서 안쪽으로 좀 걸어 들어가야 하지만, 괘릉은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니까 좋다. 거기다 대릉원처럼 너무 드러나 있지도 않고, 살짝 숲속으로 들어가 차를 세우면 바로 연결되는, 아주 좋은 접근성과 위치적 이점을 겸하고 있다. 또 하나, 무료다. 주차시설도 좋고 화장실도 잘 되어 있고, 형태상으로도 가장 완벽한 신라 왕릉 중 하나인데 무료다.
괘릉을 나서서 일단 황남빵집으로 향했다. 경주 특산물로 손꼽히는 것 중 황남빵이 있다. 황남빵은 1939년 경주 최씨인 최영화란 분이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이 빵을 사러 오던 사람들이 이 빵집이 있는 동네인 ‘황남동’에서 연유해 ‘황남빵, 황남빵…’하고 부르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현재 그 이름이 의장등록되어 있고, 경주시 향토전통음식, 경상북도 명품 제2호 등 대단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데, 그래서 같은 모양을 한 다른 곳에서 만들어지는 빵에는 이 이름을 쓰지 못하고 ‘경주빵’이란 이름으로 팔린다. 작년에는 오후에 왔었는데, 그때는 주차하기도 어려웠었다. 오늘은 아침에 들러서 그런지 주차장은 여유가 있다. 물론 우리 말고도 황남빵을 사려는 사람들은 끊이질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카운터 뒤로 수십 명의 요리사들이 테이블에 반죽과 팥소를 쌓아 놓고 정신없이 황남빵을 만들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선물로 줄 빵까지 사고 나니 이제 경주를 벗어나야 할 시간이 되어 간다. 그래서 우선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식당은 작년에도 들렀던 ‘황남맷돌순두부(경주시 황남동 155번지 / 054-771-7171)’다. 전통 한옥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실내 분위기에 깔끔한 식당인데, 작년과 같이 ‘산송이 순두부정식(1인 11000원, 2인 이상)’을 2인분 시켰다. 작지만 송이버섯 한 송이를 썰어 넣어 끓여 주는데, 그 향이 너무 좋고, 특히 양념도 강하지 않아서 부드럽게 아침으로 먹기에 부담이 없어 좋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경주를 떠나려고 군위로 가려고 고속도로로 향하는데, 길거리마다 노란 산수유와 홍매화가 벌써 피어서 봄을 노래하고 있다. 몇 번이나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다가 차들의 흐름 때문에 실패하고, 결국 톨게이트 바로 앞 경주휴게소 거리에 피어있는 녀석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우린 경주를 벗어나 한 꺼풀 더 깊은 경북의 속살 군위로 향했다.
팔공산 북쪽, 안동 남쪽에 위치한 군위군은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쓰신 ‘인각사(麟角寺)’가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1박 2일에서 방영한 후 부쩍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마눌님이 지도를 보며 지시하는 대로 다니다 보니 화본역, 대율리 돌담마을, 제2 석굴암이라고 하는 삼존석굴, 고 김수환추기경의 생가, 지보사, 군위향교 등을 보게 되었는데, 제법 알차게 다니게 된 것 같다. 물론 ‘삼국유사’의 고향에서 인각사를 들러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그거야 담에 또 올 수 있는 여지가 될 수 있으니까….
가. 화본역/ 화본마을(군위군 산성면 소재)
화본역의 상징은 그 중에서도 단연 급수탑이다. 지금이야 필요 없어서 그냥 하릴없이 서 있는 고독한 거인 같아 보이지만, 증기기관차가 계곡을 누비고 다니던 시절에는 그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했을 것이다.
또 화본마을 집들의 담에 그려져 있는 벽화들도 눈여겨 볼 것. 통영에 갔을 때 동피랑 마을에서 시작된 마을 벽화를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후 전국으로 퍼져 지금은 마을 벽화를 가진 마을이 많지만, 여기는 나름 색다른 주제가 있어 보인다. 바로 일연스님, 삼국유사라는 모티브가 다른 곳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폐교된 신성중학교를 개조해 만들어 놓은 추억의 시간 여행,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도 특히 아이들이 어리다면 꼭 들러볼만 한 곳이다. 실내에는 60, 70년대 모습을 재현시켜 놓았고, 운동장에서는 지금 30, 40대들이 어렸을 적 놀던 ‘스카이 콩콩’, 자전거 등 추억의 놀이감들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열차까지 만들어 놓았다. 사실 내가 클 때는 스프링 장치까지 내장되어 있는 이런 멋진 스카이 콩콩은 없었다. 조악하게 만들어진 빨간색 스카이 콩콩이 있었고, 그나마 그건 잘 사는 애들 거고, 우리는 ‘삽’을 타고 놀았다. 운동장에 칼자국처럼 퍽퍽 찍힌 자국이 남는…. 그것도 뾰족한 ‘땅 파는’ 삽인지, 사각형 모양의 ‘퍼 올리는’ 삽인지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졌고.
나. 대율(大栗)리 돌담마을(군위군 부계면 소재)
정겨운 화본마을을 떠나 옮겨간 곳은 화본마을 남쪽에 위치한 대율리 돌담마을이다. 제주가 고향인 우리 마눌님은 비록 제주시에 살긴 해도 부모님 고향 곽지 올레길뿐 아니라 제주 어디서나
특이한 모양의 마을 입구 상징물을 통과해 마을로 들어서니 촘촘하게 쌓은 돌담이 집집을 둘러싸고 있는 정겨운 마을이 나온다. 검은 현무암 돌로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의 제주 돌담과 달리 대율리 돌담길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검푸른 돌이끼가 오랜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살벌한 시멘트 벽돌담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매력과 정감이 넘친다.
더군다나 돌담마을 제일 북쪽은 산수유가 가득한 산수유 마을이다. 경주를 벗어나면서 산수유와 홍매화를 만나 반가웠지만, 거기의 산수유들은 ‘아기’와 같았는데, 여기 산수유들은 건강한 청년들 같다. 여기저기 산수유를 찾아 이 마을 저 마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보니 그 홀연함에 더 반갑다.
이 마을에서 봐야 할 것이 세 가지다.
- 보너스 2: 주차장에 10년 넘게 고들빼기, 깻잎 콩잎 절인 거 등 고린내 나는 전통 절임음식을 파는 트럭이 있는데, 주인아주머니 솜씨와 프라이드가 대단하다.
- 보너스 3: 군위로 오는 길 내내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이 언덕마다 펼쳐져 있는 사과 과수원. 그래서 길거리 곳곳에 사과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석굴에서 나와 5분쯤 오다 보면 여러 상인이 모여 사과를 파는 매장이 있다. 여러 종류의 사과를 그래도 시중보다는 싸게 살 수 있다. 안 사도 아주머니들이 잘라 주는 사과를 맛 볼 수 있고.
다. 김수환 추기경 생가(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 군위군에 사는 서예가 한 분이 추기경님의 유언인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글을 써서 아마 여러 장 처마 밑에 매달아 두나 보다. 관광객들에게 자유롭게 하나씩 가져가라고 말이다. 우리는 늦어서 못 가져 왔지만, 나중에라도 주소를 보고 신청을 하면 보내주신다는 안내문이 써 있다. 정말 보내는 주겠지?
라. 지보사(持寶寺)
경북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선방산(船放山)의 남쪽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지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 말사(末寺)로 신라 문무왕13년(673)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오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이다. 이 절에 오면 눈에 띄는 게 절집의 위치다. 주차장에서 봤을 때 절집이 산 등성위에 높게 자리 잡고 있어, 몇 십 계단을 올라야만 절마당에 오를 수 있다. 그 계단 왼쪽엔 부처님의 말씀을 바위에 새겨 세워 두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운명을 좌우한다.
특이한 것은 그 계단 양쪽으로는 축대가 쌓여 있고, 절마당 둘레로는 아름다운 전통식 담장이 앝으막하게 둘러져 있어 절집의 정취를 더해준다. 본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마주하게 되는 것이 왼쪽으로 보이는 삼층석탑(보물 제 682호)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양식을 하고 있는 이 석탑은 작지만 탑의 2층 기단을 에워싸고 있는 부조(浮彫)의 조형미가 무척이나 정교한데, 탑의 균형미도 석가탑에 못지않아 보인다.
천 년 고찰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종루도 없지만, 너무도 고즈넉하고 고요해서 처마 밑 풍경소리 하나가 다른 절 동종만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 착각이 들 정도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지금까지 전국 절집들을 다녀 봤지만, 이렇게 아무도 없는 절은 처음이다. 나와 마눌님 둘 만 있을 뿐, 다른 이들이 하나도 없다. 관광객은 고사하고, 심지어 차에서 내려서 절집구경을 다 마치고 다시 주차장까지 와서 차를 타고 돌아 나오도록 ‘스님’도 못 만났다. 그래서 부석사의 안양루처럼 절집 마당으로 오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누각인 보화루(寶華樓)에서 차 한 잔도 못하고 나왔다. 양수리 수종사 누각에서와 같이 이 곳 보화루도 방에 들어가 앉아 차를 마시고 책도 읽을 수 있도록 되어는 있는데, 아무도 없으니 그냥 나올 수밖에….
마. 군위향교(문화재자료 제185호)
군위향교(鄕校)는 조선 성종 1년(1470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곳이다. 선조 40년에 서애 유성룡과 이오봉 선생이 터를 잡아 옮겨지었다가 숙종 때 현재 위치로 다시 옮겨지었다고 한다. 군위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데, 길에서 보이질 않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제일 쉽게 찾아가려면 군위 천주교 성당을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이 일대가 좀 우습다. 교파가 다른 교회 두 곳, 천주교 성당, 향교, 중학교가 군위 시가지를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언덕이 군위를 대표하는 종교와 학문의 성지처럼 보인다. 그나저나 향교와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 있는 폐가나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폐가가 군위향교를 찾는 사람들에게 군위의 인상 다 구기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입구를 꽉 막아서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자물쇠…. 그래도 여기는 향교 왼쪽으로 해서 위쪽 성당을 거쳐 대성전 뒤로 돌아난 길에서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상황이라 다른 곳과는 달리 짜증은 좀 덜하다.
이렇게 해서 ‘마눌님’ 모시고 다녀온 1박 2일 경주, 그리고 경북의 속살 군위로의 여행이 끝났다. 군위라는 곳에 대해 좀 더 알고 시작을 했더라면 좀 더 알차고 한 꺼풀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여행이란 늘 그렇게 아쉬움이 남는 맛에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다시 한 번 이란 생각이 나니까…. 성인(聖人)들의 삶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결국 눈 감을 때 대부분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그런 여행일 테니까….
2013. 3. 23. 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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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기행기쓰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그런데 날짜가 17, 18이 아니고, 16, 17인 것 같은데요.
사모님이 여행지선택하는 수준이 대단하네요.
군위는 잘 안가는 곳인데 알차게 여행하셨네요
두분의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이 부럽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부가 정부회장님부부처럼 살면 좋을텐데...
여행의 진수를 보여 주시는군요. 어쩌면 이렇게 알차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여행기를 보면 여행할 수 있게 상세한 정보와 재미있는 설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재주입니다.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항열 선생님: 아, 제가 착각했습니다. 16, 17일 맞습니다. 허접한 글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 주시다니.....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승규 선생님: 선생님 따라 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사모님 덕분에 올려 주신 게시물을 통해
두루두루 구경 잘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산마루님: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앞으로도 여행 후기 계속 올려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