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에서는 사자가 왕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가축의 왕국에서는 어떨까하고 한번쯤 의문을 가져볼만하다. 답은 ‘말’이다. 어떤 경쟁이나 싸움을 시켜본 것은 아니지만 예부터 내려오는 놀이는 적어도 우리에게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가축의 왕을 확인하기 위해 윷놀이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보자. 놀이판을 달리는 말 옛날 놀이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이 빠지는 곳은 드물다. 수천 년을 말과 함께 해온 인간의 역사가 이미 그것을 보여주지만 수렵, 농경, 교통, 운송 등 생활 깊숙이 파고 든 말은 인간들의 놀이판에서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장기판의 ‘말(馬)’이 그렇고 서양장기인 체스(Chess)의 ‘기사(Knight)’라는 것도 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어린시절 열심히 주사위를 굴려 위로 올라갔다가 뱀을 타고 수십 칸 아래로 미끌어지기도 했던 뱀주사위놀이를 비롯하여 세계를 돌며 부동산 투기를 배우게 했던 부루마블 게임에 이르기까지 모양은 달라도 게임판을 대신 움직이는 것은 모두 ‘말’이라고 불렀다. 실제 전쟁터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전투를 수행해온 말은 그 축소판인 모의 전쟁터, 즉 놀이판에서도 사람들을 대신하여 경쟁하고 점령하는 상징물로 오늘날까지 부지런히 뛰고 있는 것이다.
윷놀이에는 등장하는 두 가지 말 설부터 대보름까지 하는 것이 관례이긴 하지만 명절마다 빠지지 않는 놀이 중의 하나인 윷놀이에도 말이 등장한다.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고 하는 윷놀이는 페르시아의 ‘파치시’라는 놀이가 인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으로서 비슷한 놀이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다고 한다. 윷이라고 불리는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막대 네 개를 던져서 뒤집히거나 엎어진 모양에 따라 윷판 위에서 칸을 옮기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동시키는 것이 ‘말’이다.
실제 말 모양으로 생기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이런 놀이에서 사람 대신 움직여 주는 것을 약속처럼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이라는 것에는 정해진 규정이나 규격이 없어 동전이나 바둑알, 심지어 돌맹이를 조달해 쓰기도 한다. 이러한 간편함과 융통성 때문에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29개의 동그라미와 선으로 별자리 모양의 윷판을 그린 뒤 윷과 가마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이 놀이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도는 꿀꿀이, 개는 멍멍이라고? 또 하나의 말은 네 개의 막대를 던졌을 때 나타나는 패에 등장한다. 윷놀이의 패는 가축의 세계를 옮겨 놓은 형상이다. 도는 돼지, 개는 멍멍이, 걸은 양, 윷은 소, 모가 바로 말을 의미한다. 네 개의 막대를 던져 나올 수 있는 다섯 종류의 패에 각각 ‘도˙개·걸·윷·모’라는 이름을 붙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칸에 차이를 두었다.
가장 많이 나갈 수 있는 것은 윷과 모인데 이들은 각각 네 칸 다섯 칸씩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시 한번 던져서 말을 이동시킬 수 있는 더블 찬스의 기회까지 주어졌다. 예부터 사람들이 소나 말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놀이에까지 이렇게 그 공덕의 순서를 매겨 우대한 것을 보면 고마움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윷판을 달리는 십원짜리 동전과 병뚜껑 그러나 가끔은 아쉬울 때도 있다. 세계대회까지 열리는 서양장기, 체스는 최고급 원목이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고가에 판매되기도 한다는데 명절마다 가족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던 우리 윷놀이는 십원짜리 동전이나 병뚜껑으로 말을 대신한다는 것이 영 석연치 않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넘쳤던 우리 조상들은 조상과 하늘뿐 아니라 가축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는데 병뚜껑 대접이 웬 말인가. 윷놀이에도 무언가 기품을 불어 넣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도 판 위에서 움직이는 말들을 태조 이성계의 ‘팔준마’처럼 화려하게 만들어 윷놀이의 최강자인 ‘말’을 다시 한번 부활시켰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윷놀이의 주인공은 누구 윷놀이라는 것은 잡아먹고 먹히는 야생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점잖게 순서를 정하는 가축의 세계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말에게 그렇게 고마워하면서 놀이의 이름은 왜 ‘소’가 주인공인 ‘윷놀이’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동물의 왕국’을 소재로 만든 게임에 여우나 하이에나가 주인공을 맡은 격이다. 네 개의 막대를 던지는 놀이이기 때문에 네 칸을 나아가는 윷을 이름으로 썼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아니면 말이 귀하고 유용하긴 했지만 서민들에게 너무 먼 존재였던 때문일까. 양반들은 차근차근 높은 관직에 올라가는 승경도 놀이라는 것을 더 즐겨서 윷놀이에 큰 관심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지만 민속이라는 것이 정확한 연원이나 기록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더 호기심이 생기고 재미난 것일지 모른다. ★ 윷놀이를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
가족들의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색다른 방법의 윷놀이를 시도해보는 것도 연휴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 지뢰밭 윷놀이 - 흰 종이 위에 말판을 그린다. - 윷을 던져 많이 나온 사람 순으로 위치를 정한 후 벌칙을 정해 넣는다. 벌칙 예) 통아저씨 춤 흉내내기 오른쪽에 앉은 사람에게 시원한 안마 20번 등 가장 많이 나간 말을 출발점에서 가장 가까운 말과 바꾸기 - 벌칙을 정한 사람은 그 자리에 오더라도 벌칙을 피할 수 있다. ☺ X맨 윷놀이 - 제비뽑기로 X맨을 정한다. - 놀이가 끝날 때까지 절대로 자신이 X맨임을 밝혀서는 안된다. - X맨이 들키지 않고 결승점에 말을 하나라도 먼저 들어오게 하면 모든 말을 한번에 다 들어오게 할 수 있다. -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X맨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지목할 수 있으며 이 때 지목된 사람이 X맨이면 그가 던져서 나오는 패만큼 자신의 말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X맨을 잘못 지적한 경우 5번 쉰다.
== 마사박물관 김정희 |
출처: 여기는 경마공원 ^^ 원문보기 글쓴이: K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