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견(犬) 내 강아지
靑岩 류기환
내일 서울 뚝섬유원지에 있는 한강컨맨션홀에서 텃밭문학회 창립 2주년과 텃밭 3호 사화 집 출판 기념행사가 있다, 그 다음 날은 고향에 시제를 지내러 가야 한다. 그래서 이틀 동안 농장에 못 가게 되었다.
농장에서 기르고 있는 어미 개 두 마리와 강아지 다섯 마리에게 이틀 동안 먹을 수 있는 사료를 주기 위해 오늘 가야 한다. 아내와 함께 승용차로 농장에 가던 중 시장에 들려 개 사료 3포(큰개용 1포, 강아지용 2포)를 36500원을 주고 사 가지고 갔다.
차 안에서 아내가 투들 거린다. 사료 값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하지만 그 강아지들을 잘 길러서 내년에 아들 사위들에게 개소주 내려 먹이려면 도리 없지? 하며 마음을 간신히 달래면서 농장으로 갔다.
농장이 도착 했을 때 숫놈 큰개가 목줄이 끊어져 마구 농원 전체를 누비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를 잡아매려고 했으나 모처럼 자유를 누리는 그놈이 쉽게 잡힐 리가 만무 하였다. “이리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면 꼬리를 흔들며 가까이 다가 왔다가는 잡으려 하면 또 달아난다.
아마도 농장에 와 보지 못한 지난 2일 동안 저렇게 자유로이 해방 된 기분으로 뛰어 다녔을 것이 분명 하다. 지난 2년 동안 강아지 때부터 묶여서 지냈으니 저렇게 자유스럽게 뛰어 다녀 보고 싶어 함도 이해가 되었지만 .....
그렇게 나와 신간을 하고 있는 모양을 바라보는 어미 개와 강아지들도 그런 자유를 누려 보고 싶다는 듯 마구 짖어 대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갑자기 농장은 마치 전쟁터와 같이 개들 짖는 소리로 몹시 시끄러웠다.
쫒고 쫓기는 나와 수캐의 한바탕 소동....그렇게 승강이를 버리며 달아나던 누렁이 수캐가 내 눈치를 알아차린 듯이 온 몸을 비비 꼬며 꼬리를 흔들고 자세를 낮추어 항복이나 한 듯이
내 앞으로 기어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지난 세월 동안 네게 밥을 주었고 털갈이를 할 때 빗으로 너를 곱게도 빗겨 주었는데....네가 나를 배반 할 수 있느냐 하며 목을 껴안아 주었더니 한동안 승강이가 힘들었는지 혓바닥을 내어 밀고 침을 흘리며 눈웃음치는 모양이 너무 귀여웠다.
끊어진 쇠 목줄을 살펴보니 지난 1년 동안 자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 친 흔적이 완연 하다.
약간은 굵다고 생각 했던 쇠고랑이 그 놈의 몸부림으로 닳고 닳아서 끝내는 끊어지고 말았다.
그동안 묶여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으면 저토록 굵은 쇠사슬이 끊어 졌을까? 생각하면 마음 한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들어 나에게 순종하며 따르는 누렁이 목을 다시 한 번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갑자기 다정한 내 행동에 어리둥절한 누렁이는 그저 좋아 하는 표정으로 내 손등을 핥아 주기만 한다. 나는 누렁이를 바라보면서 개는 저렇게 묶여 살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잘 못 되었음을 깨닫고 목줄을 풀어 줄까 생각하다가 아니다. 낮 선 사람에게 달려들어 물기라도 하면 어떻게하지?
TV에서 개가 사람을 물어 인명을 해쳤다는 기사도 보았는데......우리 누렁이가 사람을 물면.....안돼, 다시 옆에 있는 더 굵은 쇠사슬로 고리를 채웠다. 누렁이는 그토록 갈망 하던 자유스러움과 해방된 기분도 잠시, 그렇게 끝이 나고 다시 목줄에 묶여 제 집 앞에 쭈그려 앉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바탕 소동이 그렇게 지나고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 왔다. 사 가지고 간 사료를 수캐 누렁이와 어미 개에게 한 그릇 씩 퍼 주고 강아지에게로 갔다. 생후 3개월이 된 강아지 다섯 마리가 각자 제집에서 가느다란 쇠줄에 묶여 나를 보고 앞발을 치켜들며 반가워 낑낑 거리고 있다.
아니 그건 반가움이 아니고 배가 고프니 사료를 달라는 뜻이었으리라. 얼른 첫 번째 강아지부터 사료를 주기 시작 했다. 이틀 전에 주었던 밥통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배가 몹시 곱은가 보다. 첫 번째 강아지에게 사료를 조금 많이 주었더니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며 나 한번 사료 한번 번갈아 보며 잘도 먹어댄다.
둘째, 셋째. 넷째 강아지도 그렇게 주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강아지에게 갔을 때였다. 사료를 다 먹어서 밥통이 비어 있고 다섯 마리 강아지 가운데 덩치도 제일 커보였다. 그데.....앞서 네 마리의 강아지와 같이 나를 반겨 주었어나 앞발을 절룩이고 있었다.
앞발 왼쪽 발목이 이상 해보였다. 발목뼈가 밖으로 튀어 나와 굽어 있어 걷기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 절룩절룩 천천히 안간 힘을 기우리며 걷는 모습을 보고 곧 장애 견임을 알았다.
태어날 때는 다섯 마리 모두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왜 저렇게 되었을까?
아마도 생후 2개월쯤에 홍역 예방 주사를 주던 날, 내가 주사를 놓은 다음 제 집으로 넣을 때 잘못하여 다리를 약간 절룩거리더니 그때 어린 강아지의 발목뼈가 어긋나서 저렇게 되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 갔다.
아! 나의 작은 실수로 인하여 사랑스런 강아지를 장애 견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죄책감이 가슴 한 구석에 부풀어 올라 그 강아지의 절룩이는 모습을 바로 쳐다보기가 너무도 미안했다.
강아지가 말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나를 볼 때 마다 얼마나 원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는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워 가슴이 아팠다.
더 잘 해 주어야지...다른 강아지들 보다 맛있는 것을 더 주어야지....마음속으로 다짐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아차린 듯 낑낑대는 모습에 왈칵 서러움이 쏟아져 내렸다.
이제 제법 강아지티를 벗어나 사료도 잘 먹고 짖기도 잘 하고 발목이 점점 더 굽혀져 걷기가 매우 불편 하면서도 그런대로 몸을 지탱 하면서용감하고 씩씩하게 자라는 우리 강아지---
나의 작은 실수로 인한 장애 견 강아지를 바라보면서 만 가지 생각 속에 묻혀 있는 동안 농장에 저녁 노을이 말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 나의 장애 견 강아지야... 앞으로 더욱 씩씩하고 훌륭하게 자라만 다오. 나의 작은 실수를 용서 해 주는 그날까지 너를 지성껏 돌봐 줄게.....알았지? 꼬리를 살랑 이는 네 모습이 너무 불쌍해.... 흑 흑 흑......나는 그 강아지를 더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