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국보 제 289 호 전라북도 익산시 황궁면 왕궁리에 위치한다.
이 탑은 전형적인 백제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 높이는 8.5m 이다.
단층으로 된 기단과 얇고 넓은 오계석 등 미륵사지석탑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탑 주위에서 사찰 이름으로 보이는 관궁사(官宮寺), 대관사(大官寺)라는 글자가 쓰여진
기와 조각이 출토되어, 연대와 사찰의 성격 등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현재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65년에 해체 복원하여 탑의 구조가 밝혀졌으며 금으로 만든 사리 보관함,
불경 경전인 금강경을 새긴 금고판 등 중요한 불교관련 유물이 발견되어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





왕궁리 일대를 계속 유적발굴을 하고 있다.
王宮里遺蹟은 사적 제 408 호로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위치한다.
왕궁리 유적은 왕궁리성지, 모질메산성 등으로 불리우며 기준의 도읍지,
백제무왕의 천도지 또는 별도지, 안승의 보덕국지, 후백제 견훤의 도읍지로 전하고 있다.
1989년부터 실시한 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백제말경부터 고려시대까지 존속했던 유적으로 성곽 및 건물지와 관련되 유적이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세시기로 구분된다.
가장 이른 시기는 국가에서 경영했거나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가 있고,
다음시기는 궁성과 관련 건물을 만들어 경영하던 시기,
최후에는 사찰 경영시기이나 궁성과 사찰은 한때 공존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은 백제 무왕이 별도를 경영했거나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 고구려에서 건너온
안승을 보덕궁왕으로 봉하고 이곳에 거주케 했다는 기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백제 말부터 고려시대까지 다양하며 건물의 지붕에 올려졌던
각종 기와류와 생활용기가 공주, 부여 지역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을 만큼 질이 높다.
유적과 유물로 본 왕궁리 유적은 백제말경에 부여오 함께 국가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상호 수준이 비슷하게 유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5층석탑은 목탑이 불탄 후 다시 세워진 것이다.
이상은 안내문 내용입니다....

일출시 왕궁리 유적전시관 배경으로...

왕궁리유적전시관 개관이 2008년 12월 23일에 되었네요..


발굴단이 발굴하고 있는 유적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저는 아침 7시 반경이라 볼 수 없었는데
개방은 9시부터 한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이고 날씨까지 추운데 남들이 나보고 잠 안자고 미쳤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