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리포트 pt.13
[Beijing Report, 2008년 10월 15일 수요일]
래피드 남성, 여성 단체전 3, 4, 5, 6 라운드가 있는 날이었다. 한국팀은 마지막 날에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인 마카오를 만났는데 그만 게임 포인트 1-3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패배였다. 물론 우리보다 기력이 약한 것은 아니고 다만 비슷한 실력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질 수 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 대회에서 우리가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팀이었기 때문에 우리 한국팀은 초상집 같은 분위기로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분위기를 좋게 해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대갈일성 화를 내고 말았다.
정성훈씨가 프렌치 오프닝과 관련된 한 가지 질문을 했는데, 이에 대하여 성실하게 답변해 주는 대신, 나도 모르게 크게 호통을 치며 꾸짖고 만 것이다. 왜 이제야 이렇게 간단한 오프닝 트릭을 물어보는지, 왜 평상시 이러한 라인에 대한 분석도 하지 않고 베이징에 와서야 이러한 라인을 공부하는지, 왜 평상시 이상훈씨가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화요일마다 같이 트레이닝 및 스파링을 하자고 했는데 나오지 않았는지, 하나하나 따지면서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그렇게 아랫사람 꾸짖듯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완전히 우는 아이 뺨때린 격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주제 넘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나는 어디까지나 심판으로 왔을 뿐이고 공식적으로는 한국대표팀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신사답게 묻는 질문에 열심히 대답이나 해주며 잘 하라고 격려해주어야 했는데 내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히스테리인지, 나도 모르게 성격을 죽이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점점 인내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상당히 염려스럽다. 글로서 대신 한국 국가 대표팀이었던 이기열군, 정호진군, 황성재씨, 정성훈씨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할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정성훈씨의 질문은 그렇게 쉽고 기초적인 것은 아니었다. 정성훈씨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만일, ‘1.e4 e6 2.d4 d5 3.e5 c5 4.c3 Nc6 5.Nf3 Qb6 6.Be2 Nh6!? 7.Bxh6 이후 정수인 7...gxh6!를 두지 않고 흑이 7...Qxb2를 둘 경우, 백이 또한 정수인 8.Be3! 대신 8.Bc1? Qxa1 9.Qb3?! cxd4 10.0-0 a5! (10...dxc3 11.Nxc3!) 11.Bb2 a4 12.Qb5 등으로 나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였다.
이러한 질문은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야 나도 체스베이스8과 메가 베이스, 프리츠 등을 통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위의 라인은 흑백 모두 최선의 수를 교환한 라인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흑이 실전처럼 12...Ra5??를 둔다면, 13.Bxa1 Rxb5 14.Bxb5 등으로 백이 기물 하나 많은 결정적인 끝내기로 들어가고 만다. 따라서 애시 당초 흑은 백의 7.Bxh6 이후부터 시작되는 교환희생[exchange sacrifice]을 받아들이지 말고 냉정하게 7...gxh6!로 대처해야 한다. 이 경우 8.Qd2 Bg7 9.0-0 0-0 10.Na3 cxd4 11.cxd4 f6! = 등으로 진행하면 된다. 흑은 왕 편 폰 구조가 무너졌지만 백 또한 중앙의 폰 사슬을 유지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흑이 만족할 만한 포지션이 된다.
정성훈씨가 자신의 오프닝 레퍼토리를 정교하게 가꾸어서 드레스덴에서는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