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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득 베트남, ‘파병’ 모르고 ‘김치’는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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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천천히 빨라지는 베트남, 한국도 통일되서 교류와 도움 더 많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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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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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 갔다 온 이야기
지난여름에 마을 친목회 친구와 함께 하노이에 다녀왔습니다. 월남전에 갔다 온 친구가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갔는데 너무 더워서 고생을 했으나 어딘가 다른 동남아 나라에 비해 정감이 가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아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베트남의 지난 역사와 오늘날 처지가 우리와 비슷해서인지 가까워질 수 있고,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라였습니다.
1. 하노이 시내의 저수지와 시민들의 아침 운동
하노이 시내엔 호수라기엔 적고 저수지치고는 꽤 큰 곳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시내 한가운데 있어도 썩지 않고 물고기가 떼 지어 놀고 있었습니다. 강한 자외선 때문이랍니다. 서울 주변의 북한산이나 남산, 관악산처럼 하노이의 허파와 같고 명물이었습니다. 새벽 6시에 호텔에서 일어나 호수가로 아침운동을 나갔더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와 부지런히 걷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뛰는 게 아니고 무표정한 동양인 모습으로, 마치 큰비가 오기 전에 개미 떼가 이동하거나 군인들이 행군하듯 모두 열심히 호수 갓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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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가에서 새벽 걷기 운동하는 하노이 시민들 © 이대로 | 중국 공원에 아침에 가면 체조나 꿍후, 춤을 추는 것이 남달랐는데 하노이는 시민이 모두 나온 거처럼 떼를 지어 걷고 있었습니다. 하노이의 건강과 저력은 아침에 걷는 데서 나오는 거 같았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일요일에 등산을 하는 것과 견주어 보이고, 한강도 시민들이 잘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강과 그 지천인 중랑천, 안양천, 양재천, 요즘 연 청계천들을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강에 자전거 길과 산책길을 많이 만들었는데 자동차길로 막아서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요즘 청계천에 물을 흐르게 하고 주변에 술집과 찻집을 만들고 먹고 떠들 생각만 많이 하고 땅값이 오른다는 소리만 큰데 시민이 조용하게 걷을 수 있는 시내의 허파가 될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걷을 수 있는 길이 좁고 물가로 오르내리기도 힘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사는 중랑천에도 오르내리는 곳이 드물어 시민들이 접근하고 이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노이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걷거나 자전거로 출근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2. 베트남에 부는 한국바람
월남전 때 미국을 도와 우리 군대가 가서 전쟁을 한 슬프고 껄끄러운 일이 있었지만 어딘가 베트남이 다정하고 가까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중국 문화에 길들고 눌려 산 처지가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으로 느껴졌습니다. 동남아 사람들이 착해 보이는 데 베트남 사람들도 착해 보였습니다. 일본이나 몽골사람처럼 매섭고 날선 느낌은 주지 않았습니다. 요즘 중국이나 일본, 몽골, 동남아에 한국바람이 분다고 하는 데 그 곳에선 중국과 몽골, 일본, 태국에서 느끼지 못한 정감이 들었습니다.
거리에 대우 자동차가 많이 다니고 엘지 전자제품 가게와 선전문이 많이 보였습니다. 베트남에선 김우중과 대우 자동차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미원 조미료를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일본 아지노모도와 경쟁을 해서 이겼다고 합니다. 우리 연속극이 인기가 높아 한국식당 이름을 '대장금'이라고 짓기도 했습니다. 하롱베이 관광개발도 우리 대한항공이 앞장서서 개발하고 우리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한국 연속극을 하는 걸 봤는데 자막도 없고 출연자 모든 사람의 말을 한 사람이 베트남말로 말하고 해설을 했습니다. 그래도 잘 보고 인기가 높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적어도 남자가 하는 말은 남자가 하고 여자가 하는 말은 여자가 입을 맞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녹화 테이프를 만들 때 출연자 남녀와 어른 아이들의 말을 월남말로 녹음해(더빙)서 수출하고 방송하게 하면 더 실감나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하노이 시내 풍경과 호치민궁
아침에 호수공원에 아침 운동을 하러 오는 이가 많으니 새벽 거리시장이 열렸습니다. 옷가지와 채소, 날고기까지 팔았습니다. 돼지고기를 냉장고가 아닌 길에 내놓고 파는데 그곳 날씨가 더워도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강한 자외선 햇빛 때문이랍니다. 출퇴근은 오토바이로 많이 하는 데 네거리에도 신호등이 없었습니다. 그 큰 시내에 신호등은 몇 군데뿐이랍니다. 호수 가에 저녁이 되면 남녀가 사랑을 많이 나누는 게 볼거리이고 밤늦도록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다니고 맥주를 많이 마시고 있었습니다. 물은 석회질이 많아 함부로 마시면 안 되고 그들이 이가 빨리 상하는 게 물에 석회 성분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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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입구 거리에 선 새벽 반짝 시장 :옷가지나 채소들을 팔고 있다. © 이대로 | 길가에 생맥주 통을 내놓고 고무대롱으로 맥주를 따라 팔았습니다. 저녁에 한잔 마시러 가니 영문과를 다니는 남학생과 중국어를 하는 여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손님을 맞았습니다. 한국하면 월남 파병을 알고 떠오를 줄 알았는데 그건 모르고 '김치'를 안다고 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이라면 떠오르는 문화상품과 상징물을 많이 만들고 선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리에 옷, 모자, 안경, 신발, 전자제품 가게가 우리나라 못지않게 크게 화려한 게 많았습니다. 더워서 끌신(샌달)과 모자를 샀는데 싸고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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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대통령 궁, 바로 옆에 지나면서 찍었다 © 이대로 | 호치민궁에 갔는데 관광객과 시민이 줄이 길게 서 있었습니다. 그들의 정치인과 지도자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국민통합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청와대나 주요 국가기관에 경비가 심하고 접근할 수 없는데 그곳 대통령 궁이나 국가기관에 경비병도 없고 누구나 그 옆에서 구경할 수 있게 열어 논 것을 보고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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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시신이 있는 호치민궁, 비가 오는데도 관광객과 시민이 줄을 서 있다. © 이대로 | 4. 하노이에 있는 중국과 프랑스 문화흔적
베트남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고 한문을 썼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한문을 버리고 베트남 말을 서양 로마자로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서 한자를 찾아 볼 수 없고 모두 로마자로 간판도 쓰고 글을 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성균관 같은 유적지가 있는데 절에서 부처님을 모시듯 중국 유학자들 공자와 또 다른 인물 모습을 만들어 모시고 있었고 베트남의 옛 한문학자와 교육자 모습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한문과 중국문화 흔적은 절간 같은 유적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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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시내에 있는 우리 성균관 같은 유적지에 모신 공자 상. © 이대로 | 그런데 중국의 경극이나 우리 판소리와 같은 베트남 민속극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관객이 7할이 한국인이고, 3할이 프랑스 관광객이었는데 그 설명문도 프랑스 말과 베트남말로만 되어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일본인과 가깝지 않은 것이 비하면 색다른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사람들이 일본사람처럼 악랄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노이 시내 곳곳에 프랑스 문화 흔적과 천주교 성당이 있었습니다. 문화흔적이 정치흔적보다 오래 가고 깊게 남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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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민속공연 모습, 관객이 거의 모두 한국인과 프랑스인 관광객이었다. © 이대로 | 5. 하노이와 평양을 견주어 본다.
옛 공산국가였던 중국과 몽골, 러시아 연해주를 갔을 때도 북한이 빨리 개방하고 남쪽과 통일을 해서 저들보다 앞서고 이끌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하노이에 가서 더 그런 생각을 하고 평양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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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경영하는 대장금 식당 건물. 앞은 4미터, 뒤쪽으로 12미터 건물 © 이대로 | 공산국가는 너무 통제되어 경제와 문화발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경험과 능력이 있는 남쪽이 북쪽과 통일해 빨리 발전하고 공산국가였던 나라들을 우리가 품에 앉고 새로운 동북아시아 시대를 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양은 가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공산국가였던 도시, 베이징이 상하이 그리고 중국의 여러 도시들, 내몽고나 몽골, 러시아의 이르크츠크 들 모두 서울이나 부산 못지않게 자유로운 분위기이고 흥청거립니다. 하노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양을 그렇지 않은 거 같습니다. 한심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트남의 개인 집은 앞쪽에 4미터, 뒤쪽으로 12미터 크기로만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노이도 농촌도 모두 그렇게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더운 나라에서 땅도 넓으면서 왜 그렇게 답답하게 사는지 몰랐습니다. 요즘 짓는 아파트나 빌라도 그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너무 통제된 정치체제나 사회 환경은 발전을 더디게 하고 가로막습니다. 북쪽이 빨리 개방하고 변하면 우리나라와 겨레는 아시아에선 말할 거 없고 세계를 이끄는 나라가 될 것을 굳게 믿습니다.
6. 마무리 말
내가 갔을 때 일행 중에 호치민시, 중국 등에 나가 사업을 하는 한국 젊은이들이 하롱베이에서 할 사업을 구상하려고 온 것을 봤습니다. 하롱베이는 풍경이 좋고 진주와 도자기가 많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최근에 대한항공이 개발에 나서서 한국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곳 사람과 결혼을 하던가. 가까워야 하는데 우리 안내원은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온 사람과 함께 여행사를 차렸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한국말을 잘 하는 데 반말과 욕을 잘 한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그런 소리를 많이 들어서랍니다. 일하러 온 외국 노동자에게 친절하고 바른 말을 가르치는 건 큰 재산이고 중요한 일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안내원이 하노이에 아파트를 사도 좋고, 진출해 할 일이 많다고 하는 데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트남은 민족 정서나 역사가 우리와 가깝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와 가깝다고 하나 어딘가 만만해 보이지 않고 거리감이 있습니다. 필리핀과 태국은 문화와 역사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연해주 쪽으로 우리가 진출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믿음이 가지 않고 정감을 주지 않습니다. 중국과 우리처럼 땅으로 붙어있으나 중국이 완전히 먹히지 않고 전혀 다른 글자를 쓰는 나라, 베트남과 가까워지면 서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북이 빨리 통일해서 베트남과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돕고 살아가는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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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0/03 [19:03] 최종편집: ⓒ 대자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