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의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며? 열일곱 번 째
빠아으의 밤은 깊고 길기만 합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아침을 기다립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기다리지요. 저녁 6시면 어둡기 시작합니다. 8시까지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더위를 피해 마당에 나와서는 모기를 피해야합니다. 방법은 하나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당을 왔다 갔다 서성거리며 한 시간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도 운동이라 생각하니 중요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면 그땐 정말 문제가 됩니다. 지금도 더 잘 수가 없어 내려왔는데 새벽 2시 반 이니까요. 잠자리에 들면 시간차로 온도가 내려갑니다. 두 세 시간 지나면 그래도 서늘해집니다. 일교차가 심하고 지금 같은 우기 철에는 새벽에 들어가면서는 습기 찬 냉기로 몸이 굳어질 지경입니다. 벗고 자는 것으로 시작해서 티셔츠를 입고 이불을 끌어안고 자다가 카시미론 이불을 덮습니다. 어떤 때는 견디지 못하고 두 겹으로 해서 덮고 자다가 동이 틉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래도 밤이 시원해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건기 때의 밤은 하루가 멀다고 새벽 4시까지 반복되는 댄스파티의 찢어질듯 한 확성기 소리에 잠 못 이루며 탄식합니다. ‘이래서 캄보디아는 못사는 거야!’‘싸다 싸!’‘못살게 그냥 내버려 두지 뭐!’그런데 지금은 도리어 그 시끄러웠던 것이 지금은 그립기까지 합니다. 사람보다 더 간사한 것이 있을까요? 지금 빠아으의 밤은 적막강산입니다. 무섭기까지 합니다. 어두워지면서 대자연의 오케스트라는 시작됩니다. 귀뚜라미로 시작해서 각종 풀벌레 소리는 깊어가는 가을 한복판에 있는 듯합니다. 한편 개구리의 요란한 합창은 한 여름 밤의 꿈을 연주합니다. 맹꽁이의 우는 소리는 충청도 속도로 반복되는데 스자폰 악기소리 같은 커다란 베이스입니다. 간간이 들리는 닭이 우는 소리는 한국의 닭이 우는 것과 달리 알토로 끝이 내려갑니다. 여기에 ‘꺽꺽’소리내는 ‘똑가이(커다란 이구와나 같은 섬찟 한 파충류)’쏠리스트가 한 몫 낍니다. 이쯤대면 완벽한 오케스트라 멤버를 갖춘 셈이지요? 연주가 시작됩니다. 이 연주는 오케스트라 악단이 연주전에 각자 악기 음을 맞추려고 울려대는 소리 같은 요란한 연주입니다. 이렇게 오늘도 빠아으의 밤은 깊어가기만 합니다.
휴~~ 캄보디아의 교육
캄보디아에 와서 잘 이해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왜 공부하지 않는 것이지? 왜 학교에 다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초, 중, 고, 심지어 국립 프놈펜 왕립 대학교도 등록금이 없답니다. 물론 다닐 만한 좋은 학교 중, 고, 사립학교는 월 몇 백 달러나 합니다. 이런 학교는 선교사가 보낼만한 학교이지만 학비 조달에 어려움이 크다 합니다. 교민 자녀가 다닐 만한 학교가 드물고 학력인정이 되는 한국학교는 없고 겨우 한글을 가르치는 한글학교가 하나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교민이 이곳 캄보디아에서는 지식의 혜택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Global 시대인데 한국 선교사나 교민 자녀의 희생이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왜 학교를 중단하는지 의문이 좀 풀렸습니다. 시험을 볼 때는 시험지 값을 내야하며 좀 많이 내는 학생은 책을 보고 써도 못 본 척 한답니다. 대학에 들어가는 시험을 볼 때도 많게는 1,000$ 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over time 이라 해서 방과 후에 교사가 하는 과외수업이 있고 이 공부를 해야 제대로 공부 할 수 있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에도 있습니다. 시간당 얼마를 내야하고 한 달이면 큰 부담이 되는 금액입니다. 정규 수업은 대충 설명하며 학과를 진행하니까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규 수업이라야 아침 7시에서 11시까지 공부하고 끝납니다. 중학교만 나와도 초등학교 교사를 할 수 있고 고등학교 나오면 중학교 교사를 할 수 있으니 교육수준이 어떨지는 뻔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여도 신분상승과 잘 산다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글학교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고 살도록 의식을 깨워주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한글을 가르치기 보다는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 교과 내용입니다. 매주 시험을 봅니다. 공부 잘한 학생에게 선물을 주기도합니다. 자주하면 안 될듯하여 당근과 채찍을 달리하는 방법 찾기에 고심합니다. 학급 전체의 실력 평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때로는 지진아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도 합니다. 매주 한번은 시험을 봅니다. 60여명의 시험지를 채점하는데 두 시간이 넘을 때도 있습니다. 틀린 것을 바로잡아서 정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점수는 매기지 않습니다. 10점 20점 하면 얼마나 상처가 되겠어요? 나도 어려운 외국어인데. 생각이 들어 대신 그림을 그려 줍니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화난 얼굴, 남자, 여자 얼굴, 쥐, 꽃, 다람쥐, 토끼, 나르는 새, 장원은 말 탄 아이입니다.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한 점수입니다. 성적이 제자리에 맴도는 아이는 다람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을 내가 알지! 하면서 웃는 얼굴, 공부 잘할 녀석이 안하면 화난 얼굴 뭐 이런 식이지요.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성적 평가입니다. 시험지를 돌려받는 학생들은 저마다 궁금해서 연신 앞뒤로 고개를 돌리며 다른 그림을 보면서 한바탕 교실은 웃음으로 가득 찹니다.
한국어로 배우는 성경공부의 진풍경
작년에 교회를 세우고 건물도 지으면서 더 큰 걱정은 어떻게 예배드리며 성경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현지 목회자를 구해서 이곳에 현지인이 목회하는 교회를 세우면 되지요. 그런데 현지 사역자를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포기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하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겠다는 뜻을 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싫기만 했습니다. 한국에서 목회를 은퇴하고 왔는데 여기서 또 교회를 개척하고 설교하며 성경 공부하는 사역을 정말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내몰리다 싶게 교회를 지었고 주일 예배는 시작되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한국어로 하면 되지!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젠 제법 자리를 잡았습니다.
창세기 1장만 4개월 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 칠일 간 만든 내용들/ 그리고 한날 한날의 창조와 의미/ 하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창조 이래 땅크라상에서 무엇을 가르치든 가르치는 것마다 이곳 사람들에게 제일 첫 번째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주제넘은 생각으로 뿌듯한 마음의 대단한 자부심을 가집니다. 이번 주에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을 공부했습니다.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서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공부를 하다 신기한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캄보디아가 못사는 것이 가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가면 성경대로 살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너희가 못사는 것이 가정이 없기 때문이야!’ 했더니 눈이 동그라지며 한마디하고 싶어 하는 표정입니다. ‘좀 더 들으면 알거야!’
남자와 여자가 장성하면 부모를 떠나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난 다는 것은 부모를 버린다든지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스스로 독립하여 자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공동체를 말하며 서로에 대한 의무와 배려가 있고 자신의 것을 나누어야 하는 봉사의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캄보디아는 부모를 떠나지 않습니다. 여자가 장성하여 결혼 하면 그 남편이 처가에 들어와 처가살이를 합니다. 일군이 하나 더 늘고 농사지을 농사꾼이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 캄보디아는 모계사회입니다. 딸이 많을수록 좋겠지요. 캄보디아는 정말 딸이 재산입니다.
공부하다가 ‘가정’이라는 단어를 물으니 ‘프떼아’라 합니다. 그것은 ‘집(house)’이지! 이번에는 ‘끄롬 크루사’라 합니다. 그것은 가족(family)이야! 가정이 아니야! 신기한 발견입니다. 캄보디아 말에는 가정(home)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가정은 없고 가족만 있을 뿐입니다. 결혼을 하면 일군이 더 생기고 가족이 많아질 뿐입니다. 가진 농토는 똑같은데 일군이 많아지니 게을러집니다. 할 일이 없습니다. 먹는 입이 많아졌으니 더욱 가난해집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책임은 없고 권리만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가족을 돌아보고 일하며 도우는 것이 남다릅니다. 그러니 가족에 얽매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스스로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삶을 나누면서 사는 ‘자립이 없는 것’이 캄보디아를 더욱 곤경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마치면서 오늘 이것을 배운 너희들은 ‘썸낭(행운)’이야! 했더니 ‘선생님!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결혼 하면 가정인가요?’ 그래! 완전한 가정이야! 자녀가 없어도 완전한 가정이야! 했더니 ‘선생님! 저는 꼭 가정을 만들겠어요’하는 것입니다. 한국어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진풍경입니다. 학교 수업을 봉숭아 학당처럼 하는데 주일 예배와 성경공부도 봉숭아 학당처럼 합니다.
국제대학과 국제신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캄보디아에서 기독교대학을 세운다는 것은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교 금지국가이니까요. 더 심한 것은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차이나 5개국을 품는 아시아 신학교를 시작한다는 것은 해내기 불가능 할 만 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을 시작 한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큰 도전입니다. 태국은 5개국 중 가장 부유하고 불교의 힘이 큰 가운데 말레시아 쪽으로 100 여 년 전에 점령한 지역이 자주권을 주장하고 있는데 대다수가 이슬람입니다. 이슬람의 세력이 힘을 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시아권을 불교가 장악하고 있으나 세계복음화와 땅 끝 마지막 추수선교의 큰 장벽은 불교보다도 이슬람 일 것입니다.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은 공산 사회주의국가입니다. 선교사의 추방이 종종 있고 선교의 뿌리를 내리는데 어려움이 큽니다. 캄보디아는 밖으로는 선교가 금지되었으나 안에서는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캄보디아에 아시아 신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인도차이나를 중심으로 미전도 종족을 향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베트남만 해도 일반적으로 영어가 통하지 않고 화폐도 베트남 화폐로 바꿔야 합니다. 캄보디아는 영어가 일반적으로 통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오토바이 모토 택시나 오토바이에 관광 수례를 단 모양인 툭툭이 택시가 서민 교통수단인데 웬만하면 영어로 통할 수 있습니다. 지식 밑바닥 층이라 할 수 있는데도 필요한 생활 영어 정도는 구사하고 있다고 봅니다. 화폐도 굳이 환전 할 필요가 없고 시골 재래식 시장에서도 US 달러를 캄보디아 화폐보다 더 통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캄보디아에서 기독교대학과 아시아권을 향한 신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반드시 해내야 할 큰 도전입니다. 이 사역은 이미 하나님이 시작하셨기에 마지막까지 이루실 것이 분명합니다. 첫 단추는 끌렀습니다. 우선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개방하였고 학교부지도 무상 제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몇 군데 보여주는 땅 중에서 가장 크고 좋은 땅(15,000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총리도 당혹스러워 할 만큼 캄보디아에서는 기적이라 할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부총리가 결단하도록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대학과 신학교를 국제 학교로 만들어 영어를 강의 주 언어로 하면서 캄보디아와 한국어로 강의 하는 커리큘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이곳에 세우는 학교를 국제 학교로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공산권에서 국제대학에 유학생으로 오게 해서 신학을 복수 전공하게 한다면 인도차이나 선교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대학교영어 유치원도 곧 바로 시작 할 계획입니다. 학교 교수진도 월급을 캄보디아 교육부로부터 지급 받도록 하여 학교 운영이 캄보디아 자체 자립학교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조를 구 할 것입니다. 한국의 고급 지식 인력이 자원봉사로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눈다면 큰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큰 사명이고 매우 중요한 기도 제목입니다.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는 일에 함께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땅은 얻었습니다. 세 곳 중 어느 곳이냐? 주께서 주시려는 땅만 남았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