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18일-19일에 충북 수안보 상록호텔에서 열리는 실천민속학회에서
국립민속박물관 황보명 선생의 발표에 대해 논평을 하게 된다.
'性'은 그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이면서, 학문적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왔다. 황보 선생의 발표에 대한 이견이 적지 않아 논쟁적으로 논평을 할 예정이다.
‘성의 민속학’에 대한 의욕과 한계
-“한국 고대 성문화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선 비판적 읽기”(황보명)에 대한 논평
이경엽(목포대)
발표문에서는, 인간 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성의 중요성과 비중이 큰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학문적(민속학적) 관심은 미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90년대 이후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성에 대한 학문적 담론을 풍부하게 이끌어 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몇몇 연구성과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시피한 형편이다’라고 진단하고 있으므로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연구현황에 대한 비판적 진단과 ‘성의 민속학’에 대한 적극적 주장을 담고 있으므로 관심을 모은다. 발표자의 문제제기에 찬사를 보내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으므로 이에 대해 질의하고자 한다. ‘성의 민속학’에 대한 발표자의 의욕과 한계를 아울러 문제 삼아 논평하고자 한다.
1. 연구성과에 대한 검토가 충실히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그 동안 많은 논의를 통해, 민속 속에 성적 표현과 지식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고 설명되었으며, 어떤 경우 그것을 예로 들어 민중적 세계관과 생활상을 설명해왔다. 그런 논지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발표자의 연구현황에 대한 진단은 약간 의외로 비쳐진다. 그동안 민요․가면극․설화 등을 예로 삼아, 한국 민속 속에 담겨진 성표현과 성의식에 대한 논의가 꽤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제목(주제)으로 내세우지 않은 연구나 개인 연구를 제외하더라도 학회 차원의 기획 연구가 있었다. 1996년 한국민속학회의 육담세미나(『한국 육담의 세계관』, 국학자료원, 1997)와 비교민속학회 ‘민속과 성’ 세미나(『한국의 민속과 性』, 지식산업사, 1997) 등이 성과로 검토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기존 작업들을 통해 한국 민속(문헌설화, 구전설화, 탈춤, 세시놀이, 신앙, 춘화 등) 속의 성에 대해 어느 정도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보는데, 아직까지 학문적 접근이 미비하다고 지적한 것은 발표자의 문제의식이 남다르다는 뜻으로 보여진다. 역사학 연구자의 글이 시사점을 주었다는 각주2의 설명으로 보아, 기존 연구가 방법론 또는 관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본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와 관련된 설명을 듣고 싶다. 발표문에서 언급되지 않은 기존 연구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 설명해주셨으면 한다.
2. 문제제기의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당위성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는 느낌을 받는다.
발표문에서 가장 강조하는 사항은, 한국 고대 성문화를 왜곡하거나 주변화시켜 보고 있는 중국 사서의 기록을 제대로 봐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중국 사서를 대할 때 일반적으로 강조해온 사항이 아닌가 싶다. 기록 자체의 신뢰성․구체성에 문제가 있고, 자문화 중심주의적 관점이 깔려 있어 고대사회의 성풍속을 이해하는 데 문제점을 드러내주고 있다는 주장은 새로운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논의에서 실천되었는가가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2-1.
발표문에서는, 누가 기록한 것이고, 어떤 대상을 다룬 것인가를 특별히 구분하고 있지 않다. 또한 자문화 중심주의적 시각에 대해 입체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성에 대한 인식은 성별․신분․지역 등에 따라 편차가 심하므로, 누가 무엇을 다루었는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발표문에서는 《후한서》《삼국지》《양서》《위서》《주서》등의 기록자를 동일 인물, 동일 시각으로 다루었다. 또한 삼한,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대상도 시간적․지역적 구분 없이 동일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구별하지 않고 다루어도 무방한지 의문이다.
2-2.
한국 풍속에 대한 중국(한족?) 중심적 관점은, 중국이 자문화를 다루는 태도와 비교해볼 때 분명히 드러난다. 중국 사서에서 스스로의 성풍속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서 한국 고대 성풍속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도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이런 비교를 거쳐야 중국사서의 자문화 중심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3. 논거 선택과 그것에 대한 해석이 적절한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발표가 ‘무엇을 기술하는 시각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으므로 논거와 그것을 다루는 시각의 문제가 핵심적인 논의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주목해야 발표자의 의도를 잘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문제들을 보기로 한다.
3-1.
논거들이 적절한 것인지, 등가적인 것인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삼한인들이 “옷은 윗도리만 입고 아랫도리는 없어서 마치 바지를 벗고 다니는 것과 같다.”는 설명은 성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의생활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따뜻한 지방이니까 여름철에 옷을 대충 입던 모습을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성적 노출을 의식적으로 의도하는 요즘의 배꼽티, 미니스커트와는 다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삼한인들이 “온 집안 식구가 ‘무덤같은 집’에 살며, 장유와 남녀의 분별이 없다.”는 기록은 주생활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가족이 한두 개의 방에 한꺼번에 기거하던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다. 가족이 함께 기거하는 것을 두고 성문화로 읽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3-2.
이 발표는, 중국 사서에서 문제 삼는 음란을 ‘혼전에 중매인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교제’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제시된 기록을 자세히 보면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여인들에 대한 기록에 “남녀가 음란한 짓을 하면 모두 죽이는데 투기하는 여자를 더욱 미워하여 죽인 뒤…”, “남녀 간에 음란한 짓을 하거나 부인이 질투하면…” 등이 있는데, 이 기록은 ‘혼외정사’와 관련된 음란으로 보인다. 淫 또는 奔 등의 문자 해석에 집착하여 기록을 실상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3-3.
중국 사서에서 음란하다고 한 것을 부정적 관점이라고만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음란하다는 용어를 썼지만 실상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구려인들의 성풍속으로 소개된 “풍속이 음란하고 노래와 춤을 즐겨 밤이면 남녀가 떼지어 어울려 노는데 귀천의 풍속이 없다.”라는 구절은 표현상의 농도만 조절하고 보면, 얼마 전까지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민속이다. 대표적인 예가 서남해의 산다이다. 산다이에서는 남녀가 밤이면 노래와 춤을 즐기고 떼지어 어울려 놀곤 했다. 문제는, 누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인데 민중의 풍속에 대해서는 우리측 기록에서도 음란성을 시비거리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풍속의 음란성을 문제삼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음란성 시비는 중국측 시선만이 아니다. 중국측 기록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문제가 그 자체의 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4. 한국 고대 성풍속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국 고대 사회의 성풍속이 ‘성 양의적 문화’에 속한다는 설명은 중국 기록의 비판적 읽기를 통한 결론에 해당한다. 발표문에 고대 성풍속에 대한 본격적 분석이 있는가는 따지지 않더라도(발표문에서는 중극 측의 시선을 주로 문제 삼고 있다.), 그 결론이 고대 성풍속만의 차별성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성문화에 대한 인식은 신분, 계층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조선시대만 해도 지배계층과 민중의 성생활은 상당히 달랐다. 또한 지배계층의 경우도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상은 차이가 있다. 당시 완고한 유교적 도덕률이 작동하고 있었지만 민중의 경우는 그것과 별도의 성문화를 누려왔다. 그러므로 조선시대를 두고 ‘성 긍정사회’ 또는 ‘성 부정사회’ 또는 ‘성양의적 사회’라고 일괄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고대의 성풍속에 대해 무조건 ‘성양의적 사회’라고 규정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 부정 담론의 장르가 확대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성 양의적 사회’가 한국 고대 성풍속의 차별성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려우므로 G. Becker의 분류에 애매하게 편입시키는 정도에 만족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발표는 앞으로 본격적 논의를 펴가기 위한 과정적 단계가 아닌가 여겨진다. 발표자의 글을 통해 고대 성풍속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의 구상을 소개해 주셨으면 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