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는 애써 걷지 않아도 1박2일 일정이면 섬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육로일주에 나서고, 또 하루는 유람선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유람일 뿐,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아니다. 울릉도는 걸어 다녀야 되는 섬이다. 걷기를 주저하면 울릉도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기 어렵다. 게다가 울릉도에는 아주 매혹적인 트레킹코스가 적지 않다. 특히 내수전~석포 옛길과 태하등대 가는 길은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트레킹코스로 손꼽을 만하다.
울릉도는 참으로 묘한 매력을 가진 섬이다. 거기 머무르는 동안에는 “이 먼 데까지 왜 건너와서 이 고생을 사서 하나”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곤 한다. 오가는 뱃길은 수시로 끊기고, 교통사정은 적잖이 불편하며, 먹고 자는 비용 또한 만만찮은 탓이다. 하지만 막상 그 섬을 벗어난 뒤에는 정인(情人)에 대한 상사병만큼이나 애틋하고 간절한 그리움이 무시로 밀려들곤 한다. 울릉도에서 고생스러웠던 것들조차도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런 과정을 수년 동안 되풀이하다보니, 이제 내게 울릉도는 ‘사무치도록 그리운 우리 땅’이 되었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설렘을 가슴에 담고서 다시 울릉도를 찾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가급적 튼튼한 두 발로 걸어서 울릉도의 속살을 더듬어보기로 작정했다. 문명의 이기로부터 멀어질수록 원시의 자연과는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울릉읍 내수전마을과 북면 석포마을 사이를 잇는 옛길의 트레킹에 나섰다.
내수전과 석포 사이에는 일주도로가 없다. 그 대신 일주도로보다 더 운치 있고 아름답고 편안한 옛길이 남아 있다. 일주도로라는 것이 아예 없던 옛날부터 울릉도 동북부와 동남부 지역의 주민들이 서로 왕래하던 이 길은 줄곧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가면서도 바다가 바라보인다. 그래서 산길의 소슬한 운치와 바다의 장쾌한 멋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이 옛길이 울릉도 최고의 트레킹코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또한 MTB자전거동호인들 사이에는 울릉도 최고의 MTB코스로 알려져 있다. 울릉도 동북부 해안의 가파른 산비탈과 벼랑을 따라가는 이 옛길은 지금도 사람들의 왕래가 간간이 이어진다. 그래서 길은 비교적 넓고 뚜렷하다. 특별히 위험하거나 몹시 비탈진 구간도 없다. 산 옆구리에 비단을 두른 듯 자연스럽고 율동감 넘치는 길이다. 길바닥에는 녹색융단 같은 이끼와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있어 발바닥에 와 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푹신하다.
내수전~석포 옛길은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걷기가 수월한 편이다.
동네 뒷산을 산보하는 기분으로 2시간쯤만 걸으면 반대편의 종점에 닿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쉽고 편안하게 이 길을 더듬고 싶다면 석포 쪽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내수전에서 출발하면 와달리 갈림길을 지날 즈음부터 북면 표지판 부근까지 계속되는 오르막길의 기세가 제법 녹록치 않다. 반대로 석포에서 출발하면 비교적 경사 급한 내리막길을 한동안 걷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내수전에서 출발할 경우에도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오르막길조차도 도중에 잠시 멈춰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면 거뜬히 오를 수 있다. 울창한 숲으로 난 옛길은 지금도 사람들이 간간이 왕래하는 덕택에 비교적 넓고 뚜렷하다.
조붓한 오솔길을 감싼 숲은 원시적 야성과 순수함을 여태껏 간직하고 있다.
너도밤나무, 섬피나무, 섬잣나무 등의 울릉도 특산식물과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등의 상록수, 그리고 고비와 관중 같은 양치식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원시림의 맑은 기운이 온몸에 느껴진다. 여름철에는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말나리의 어여쁜 자태도 감상할 수 있다.
도중에 지나는
정매화골에는
수 백m의 지하에서 끌어올린 천연암반수보다
더 깨끗하고 시원한 계류가 폭포수처럼 기운차게 흘러내린다.
무색, 무미, 무취의 물맛이 일품이다.
숲길 곳곳에는 나무로 튼실하게 엮어서 만든 벤치와 다리도 놓여 있어 잠시 고단한 다리품을 쉴 수도 있다. 숲길에 들어선 지 1시간쯤 지나면 길고도 나직한 고갯길을 넘어 북면 땅에 들어선다.
바다에서 곧장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스럽고, 이따금씩 길가의 너덜(온통 바윗돌로 뒤덮인 산비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풍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순식간에 씻어준다. 인공조림된 솔숲을 지나면 근래 콘크리트로 포장된 찻길에 접어든다. 이곳 갈림길에서 곧장 직진하면 ‘정들깨’로도 불리는 석포마을이고, 왼쪽 길로 내려가면 죽암마을이다. 좀더 트레킹을 즐기고 싶다면 석포 쪽의 길을 선택하는 게 좋고, 한시 바삐 탁 트인 바다에 안기고 싶으면 죽암마을로 내려서는 게 좋다. 울릉군 북면 죽암마을은 바닷가의 자연풍광이 아주 빼어난 곳이다. 마을 바로 앞쪽에는 둥글둥글한 몽돌로 뒤덮인 해수욕장이 있고, 근처의 얕은 바다에는 딴바위(일명 죽암), 삼선암 등의 기암괴석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남태평양의 어느 휴양지 같은 바다 빛깔이다. 옥빛을 띤 바닷물이 마치 강원도 깊은 산중의 계곡물처럼 맑고 시원하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새끼 물고기들이 떼지어 헤엄치는 모습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게다가 죽암해수욕장 옆쪽에는 늘 수량이 풍부한 죽암천이 바다로 흘러들기 때문에 담수욕과 해수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마침 날씨 좋은 여름날의 해질 녘이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하고 눈부신 일몰과 저녁노을까지도 감상할 수 있다. 멀고도 지루한 뱃길을 달려 울릉도까지 간 김에 반드시 들러봐야 할 데가 한 곳 있다. 바로 태하등대이다. 조선시대에 울릉도의 중심지였던 울릉군 서면 태하1리에서 산책하듯 가벼운 기분으로 약 30분만 걸으면 당도할 수 있는 곳이다. 등대를 찾아가는 길은 바다 전망이 매우 탁월하다. 무성한 솔숲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태하리 일대의 산자락과 바다가 웅장하기 그지없다. 길바닥에는 솔잎이 두텁게 쌓여 있어서, 마치 융단을 밟는 듯한 푹신함이 발바닥에 전해온다. 올 여름부터는 경사가 몹시 심한 초입의 304m 구간에 20인승 모노레일 운행이 시작됐다. 덕분에 노약자나 장애인들도 태하등대 일대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굼벵이처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모노레일 안에서도 태하리 일대의 절경을 편안하고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다. 상부의 모노레일 승강장부터는 길이 아주 평탄하고 운치 좋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과 같은 아름드리 상록수들이 길 양쪽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마치 남해안의 어느 상록수림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든다. 한낮에도 어둑할 정도로 울창한 상록수림 터널을 지나면 금세 태하등대에 도착한다. 등대 관사를 벗어나자, 머나먼 대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은 바람보다도 훨씬 더 상쾌하다. 성인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는 수평선과 거의 직각을 이룬 채 바다로 떨어지고, 바다와 절벽이 맞닿아 있는 해안선은 율동감 있게 굽이치며 동쪽으로 내달린다. 해안선을 좇던 시선은, 우뚝한 송곳산과 봉긋 솟은 공암에 가로막혀 더 멀리 뻗질 못한다. 종횡(縱橫)으로 교차되는 절벽과 바다의 풍광이 웅장하고, 엄숙하며, 위대하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 일렁이는 바다는 때묻지 않은 비췻빛, 에메랄드빛, 쪽빛이다. 바다 쪽으로 툭 불거진 암벽은 제멋대로 뒤틀리고 구부러진 울릉도 향나무의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9호)가 형성돼 있다. 이처럼 장엄하고도 시원스런 풍광의 대풍감 절벽 위에 태하등대가 서 있다. 태하등대에서 지는 해까지 보고 나면, 날이 어둑해진 뒤에야 태하에 도착하게 된다. 그래서 천상 하룻밤 묵을 수밖에 없는 이 갯마을은 여름철 성수기에도 조용하고 한갓지다. 특히 이곳의 밤 분위기와 정취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만큼 운치가 좋다. 먼길 떠나온 나그네는 밤새도록 들려오는 몽돌해변의 해조음에 잠 못 이루며 뒤척거리기 일쑤다.
Travel Information
숙박
사동리에 위치한 울릉대아리조트(054-791-8800)는 140여 개의 객실과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종합리조트이다. 북면 추산마을의 전망 좋은 해안절벽 위에 올라앉은 전통가옥 펜션 추산일가(054-791-7788), 산나물요리를 잘하는 나리분지의 산마을민박(054-791-6326)도 추천할 만한 숙박업소이다. 도동의 칸모텔(054-791-8600)과 성인봉모텔(054-791-2677), 저동의 황제모텔(054-791-8900)은 비교적 근래에 신축한 모텔이라 시설이 괜찮은 편이다.
맛집
울릉약소, 홍합밥, 산채비빔밥, 오징어, 호박엿 등의 ‘울릉5미’만큼은 한번쯤 먹어봐야 울릉도를 제대로 여행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산 따개비를 넣은 따개비밥과 따개비칼국수도 울릉도만의 별미이다. 맛집으로는 도동의 99식당(따개비밥, 054-791-2287), 보배식당(홍합밥, 054-791-2683), 향우촌(울릉약소, 054-791-8383), 우성식당(오징어물회, 054-791-3127), 나리분지의 산마을식당(산채비빔밥, 054-791-6326), 천부의 신애분식(따개비칼국수, 054-791-0095) 등이 권할 만하다. 건조 오징어는 태하리 오징어를 최고로 꼽는 사람이 많다.
가는 길
-여객선 : (주)가고오고(054-254-1700, www.onbadaro.co.kr)의 독도페리호가 1일 1회(23:40포항발), 대아고속의 썬플라워호와 한겨레호가 포항(054-242-5111)과 동해 묵호(033-531-5891)에서 각각 1일 1회씩 왕복운항한다. 그 중 독도페리호에서는 선상에서 해돋이를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도 해볼 수 있다. 여객선의 운항시간과 횟수는 기상, 계절, 요일 등의 변수에 따라 자주 변동되므로 반드시 미리 확인한 뒤 예매하는 게 좋다. 성수기에는 증편된다.
-섬 내 교통 : 울릉도 내에는 정기노선버스(우산버스/054-791-2179), 관광버스(울릉도개발관광여행사/054-791-6866), 개인택시(054-791-2612)와 울릉택시(054-791-2315) 소속의 지프형 택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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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You'r wel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