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감상문
2024250160 홍준우
영화는 사오리, 호리, 미나토 시점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총 3부작의 형태로써 전개된다. 세 시점 모두 동일한 시간선을 중심으로 두고 있으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오리의 시점에서는 인지하지 못했던 일들을 호리의 시점에서 보여주고, 마지막 미나토의 시점에서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는, 처음 경험해보았던 매우 신선했던 플롯이었다. 이러한 플롯은 영화 전체적으로 동일한 시간선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각본이나 영화 구성이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으나,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연출과 각본이 눈에 띄었고 충분한 반전 요소를 영화에 삽입함으로써 2시간 보는 내내 영화에 빠져든 채 관람했던 것 같다.
처음에 ‘돼지 뇌를 이식한 사람은 돼지일까 사람일까’라는 대사를 듣고 나는 ‘내가 사는 피부’라는 영화와 ‘감염’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이 영화도 그 두 작품과 비슷하게 ‘과학 윤리’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거니라고 생각하고 보다가, 또 호리의 시점에서 볼 때는 돼지 뇌를 이식했다는 것이 트릭이고 사회 구조의 비판을 담은 영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미나토의 시점에서 요리와 미나토의 관계와 얽힌 이야기들을 보여줄 때 정말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당했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영화 초중반에 보여준 메시지들도 영화의 여러 소주제로 분류될 수도 있게으나, 결국 감독이 가장 전하고 싶어 했던 메시지는 ‘어린 아이들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관념’이 아니었을까. 일본에서 ‘남자답게 행동해야지’과 같은 말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었는지, 또한 그러한 관념에 일찍이 노출된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사할 수 있는 폭력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피의자와 피해자를 발생시키고, 세대가 반복되며 끊임없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미나토는 요리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사회와 주변 아이들의 띠꺼운 시선에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기도 했으나 결국 그러한 변태의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 미나토와 요리가 모든 근심을 버려둔 채 뛰어노는 모습에서 진정한 ‘나’를 서서히 찾고 있다는 희망적인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가정폭력, 사회의 부정적 관념, 학교 폭력 등 어른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 암면에서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미나토와 요리 모두 그들 개개인으로 본다면 아직 온전한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 어린 아이들일 뿐이고, 그들에게 사회의 잣대를 들이밀기 보다는 선택의 자유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 제목의 괴물 또한 처음에는 미나토가 괴물인 것처럼 트릭을 꾸며 놓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 사회 전체의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괴물일 수도 있다.
영화 크레딧이 등장할 때쯤 정말 얼어붙은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에 제일 충격적이었고,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다. 영화 초반의 영향으로 큰 기대를 안해서 그런건지 그 충격은 후반부에 배로 왔다. 전체적인 흐름은 이해가 됐으나, 아직 교장선생님이라는 인물이 시사하는 바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2회차때는 처음 영화를 볼 때보다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도 여럿 있을 것 같고, 아직 이해하지 못한 몇몇 장면들의 메타포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다시 한번 <괴물>이라는 영화에 도전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