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6) - 아동문학가 문삼석
“너를 보면 그리움이 무언지 알 것 같아”
“하도 맑아서 가재가 하늘 구경합니다.”
한국어의 고유한 소리결을 빛내는 언어의 마술사
서정성의 시화와 전통 민속놀이를 시적으로 재생하는 데 전력
산골물과 함께 항상 살아 움직이는 동심...
2003. 01.22(수) 12:56
아동문학가 문삼석(61)씨는 한국아동문학계와 이 지역 아동문학계를 대표하는 동시인이다.
또한 한국어의 고유한 소리결을 빛내는 언어의 마술사로 통한다. 특히 서정성의 시화와 전통 민속놀이를 시적으로 재생하는 데 전력을 쏟아옴과 더불어 동시에 적합한 운율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 대표적인 시인이다.
현대산업문명시대에 우리는 모든 언어소통 수단의 많은 부분을 외래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수많은 아동문학가들을 우리말을 아끼고, 잊혀져 가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재생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한국어가 아름답다는 것이 다분히 치기어린 투정이나 낭만적인 애국심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또 앞으로도 우리글을 사랑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음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 대표적인 아동문학가를 뽑는다면 서슴지 않고 문삼석 시인에게 손을 들어주고 싶다.
아동문학은 꿈을 가꾸는 문학이다. 현실을 뛰어넘어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다운 마음을 가꾸는 문학인 것이다.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문학일 필요가 없다. 우리 인간이 인간다운 점은 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현실에 함몰하지 않고 무난한 상상력을 발휘해 가공의 세계를 창조해냄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에 ‘시골학교 난롯가에는’이 당선돼 등단한 이후 40여년간 줄곧 동시 창작에 전념해 온 보기 드문 순수 동시인이다.
그의 어릴적 추억은 언제나 맑고 투명한 섬진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섬진강 부근의 생활은 그가 살아온 40여년의 소중한 문학적 자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삼석 시인은 늦둥이로 태어나서 그의 아버지는 어디를 가던지 데리고 다니길 좋아했다고 회상한다. 논일을 하러 가실때도 빼놓지 않고 데리고 다녔는데, 아버지가 논일을 하실동안 자그마한 논 옆에 잴잴잴 흐르는 산골물에서 노는 일이 다반사였다. 거기서 가재를 잡던일 등등을 형상화해 연작시 ‘산골물‘을 창작, 첫시집을 상재한다.
“하도/맑아서//가재가 나와서//하늘구경 합니다.//하도/맑아서//햇볕도 들어가//모래알을 헵니다”(‘산골물 12’전문)
위 작품은 물 밑바닥에 사는 가재도 높은 하늘을 구경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햇볕이 물 밑바닥까지 내려가 모래알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로 맑은 물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맑고 깨끗함, 그리고 속까지 환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함을 선호하는 취향은 그 어릴적 생활에서 싹이 튼 동심의 눈이다.
또한 그가 ‘이슬’이란 연작시에 집착했던 이유도 거기에 근원이 있다고 보여진다.
“아무리/닦아도/더 맑을 순/없을 거야”(‘이슬 9’ 전문)
“달빛 속에/자라서/저리/고옵고,//별빛 보고/자라서/저리/말갛고”(‘이슬 10’전문)
‘이슬’연작도 맑음과 밝음, 그리고 순수함의 극치를 추구해 나가는 그의 창작의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그는 물에서 맑고 깨끗한 동심의 원형질을 발견하려는 동시의 심상이 물처럼 투명하고 순수하다. 밝음과 맑음을 토해내는 눈으로 동심이 세계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밤이면 으레 마을위로 쏟아지는 별빛 또한 그에게는 또 하나의 기디림이었고 황홀한 꿈이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밤하늘에 열려 있는 별들은 어린 동심의 시선을 밤내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을 것이다.
“옛/친구/눈짓/같고,//먼/친구/손짓/같고”(‘별 2’전문)
“너를/보면,/그리움이 무언지/알 것 같아.//너를/보면,/기다림이 무언지/알 것 같아.”(‘별 10’전문)
그는 세시풍속과 민속을 주제로 한 산문시에서도 하나의 경지를 보여준다. 세련된 시적 표현으로 민속의 세계를 생생하게 노래하기도 한다
“서까래에 내걸린 동그란 전등이/초저녁부터 벙글벙글 웃고 있습니다/지지직, 지지직....../푸우, 푸우...../부엌에선 몇 마리의 생선이/적쇠 위에서 아픈 소리를 내지르고,/호박전 붙이는 고모의 하얀 이마에선/이슬 같은 땀방울이 송알송알 돋습니다./이태만에 왔다는 서울 고모,/대처 바람이 들어 속눈썹도 길고 예쁜데,/오늘따라 어머니의 칼도마 소리는/딱딱딱딱 요란스럽기만 합니다./무우찜 냄새, 호박전 냄새, 쑥떡 냄새,/안방 가득, 건너방 가득, 사랑방 가득..../뜨거운 김도 냄새도 그득한 그믐날 밤은/온통 집안이 돛을 달고 둥둥 뜨는데,/짖다가 지친 강아지는 기둥만 돌며/연신 꼬리를 흔들어대고,/툇돌에 모인 낯선 신발들도 흥겨운지/이리저리 몸을 뒤채며 밤을 새웁니다.”(‘그믐날’전문)
명절 전날의 흥겨운 분위기가 생동감 있게 그려진 작품이다. 어릴적 체험의 현장성이 있고, 구체적인 세목이 담겨 있어 그만큼 실감나게 다가온다. 적절한 시적 형상화에 힘입어 한 편의 서정시로서 손색이 없는 산문시다. 좋은 산문시란 이렇게 시를 느끼게 하는 표현과 이미지, 음악성이 곁들 때 하나의 감탄사를 연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단시에 능한 것이 사실이지만 긴 호흡의 산문시에서도 뛰어난 작품을 선사한다. 마치 백석의 시를 연상시키는 민속을 주제로 한 일련의 산문시는 그의 또다른 작품세계의 일면이다.
“바람이/숲속에 버려진 빈 병을 보았습니다.//”쓸쓸할 거야!“//바람은 함께 놀아주려고/빈 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병은/기분이 좋았습니다//”보오, 보오.“//맑은 소리로/휘파람을 불었습니다.”(‘바람과 빈 병’전문)
이 작품은 바람의 착한 행적을 찾는 기록중의 한 편이다. 바람이 결코 원망이나 들어야 할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고마운 자연의 일부임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아동들에게만은 어떤 자연 현상일지라도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철학과도 일맥 상통되어 있다.
“-참/맑지?/단풍나무가 빨간 얼굴로/시냇물을 내려다봅니다.//-참/곱지?/시냇물도 빨개진 얼굴로/단풍나무를 올려다봅니다.”(‘산골에서’전문)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시냇가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형상화한 작품이다. 물이 맑기 때문에 빨간빛이 반사되고, 그 아름다움은 한결 고조된다. 이는 상호보완적인 아름다움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이란 서로를 인정하고 벼려하는 관계 설정에서 배가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다름아닌 문삼석 시인이 ‘유년동시’를 개척했다는 점이다. 유치원 교육이 발달하면서 동시에는 유년동시, 동화에서는 유년동화, 동극에서는 유년동극이 따로 분화돼 나온 것이다. 자유시가 이미지의 시로 창작되면서 저학년 내지 유치원 어린이들의 읽을 만한 동시가 생산되지 못한 까닭이다.
그 선구자적 역할은 바로 문삼석 시인이 발간한 유아동시집 ‘아가야 아가야’를 시작으로 ‘엄마랑 읽는 아가 동시’와 ‘엄마랑 종알종알 말놀이 동시’가 한국아동문학계의 커다란 역할을 했다.
“오물오물 아가 입/오물오물 귀연 입./오물오물 젖 먹고/오물오물 웃는 입”(‘오물오물’전문) “아가 배꼽은/웃음 단추지요./살짝만 눌러도 까르르르/웃음방울 펄펄 쏟아지지요”(‘아가 배꼽‘전문)
아동들이 대하는 세상은 호기심으로 가득찬 미지의 공간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호기심의 촉수를 뻗어 해면처럼 세상의 실상을 빨아들인다. 그런데 그들의 촉수는 비판이나 선별의 기준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온갖 현상들이 단지 수용의 대상이 될 뿐이다. 문학작품도 다를 수 없다. 있는 그대로 그들이 가슴에 투영되고 각인된다. 여과장치 하나 없이 그대로 흡수되고 양분이 되는 문학, 그것이 아동문학이고 또한 동시다. 결국 아동을 위한다는 것들이 순기능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역기능으로 작용할 때, 인격형성이 아니라 인간파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역설적 추론은 그래서 가능하다. 아동을 위한다는 말은 결코 가볍게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개념이다.
아동들은 모름지기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아동문학은 그들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동시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도록 정서적으로 자극하고 부추켜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으로 묶어진 공존 사회의 실현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해와 조화의 섭리가 존중되어야 한다. 자연은 바로 이런 화해와 조화의 섭리가 지배하는 이상적인 현장이다. 그러므로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존의 섭리를 파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동문학은 모름지기 자연 속에 내재된 화해와 조화의 섭리를 찾아내고 이를 일깨우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집게발을 앞세우고 경계하던 가재가 시리도록 맑던 산골물과 함께 항상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서 자꾸만 멀어져만 가는 동심을 되살려 놓곤 하는 것이다.
어린시절의 경험은 참으로 중요하다. 만약 그에게 그 가재에 대한 기억이 없었더라면, 또한 그 가재와 함께 각인된 맑고 깨끗한 산골물의 영상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어린이를 위한 동시 창작에 매달릴 수 있었을 것인가. 어림없는 일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 흐르고 있는 그 가재와 산골물 때문에 그는 다시 어린이가 되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시를 쓸 때마다 작품을 대할 어린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옛날 시골학교 도서실에서 느꼈던 재미와 즐거움을 그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밝고, 맑고, 즐겁고, 새롭고, 재미있는 동시를 쓰는 일, 날이 갈수록 더욱 굳어져 가는 것이 그의 믿음이자 소망이기도 하다.
좌절 딛고 40여년 동시창작 외길인생
문삼석 시인은 1941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신월리에서 태어나 구례중학교와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의 고향인 구례 산동면 원촌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첫 교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그가 서울 녹촌중학교 교장에서 정년퇴임 할 때까지 교직에 몸담아 왔다.
그가 최초로 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초등학교 시절이다. 숙제로 써낸 수학여행 기행문이 담임선생의 눈에 들어 그 당시 유일한 등사판 신문인 ‘구국신보’에 게재돼 학교 운동장 단상에 올라가 낭독한 것이 그가 지금까지 문학을 하게된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해 줬다. 그때 젊은 나이로 요절한 고교생 문청인 추홍련을 만나 중학 졸업 때까지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며 꿈을 키웠다.
사범학교에 진학한 그는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문예부에 들어 극성스런 몇몇 친구들과 문학동인회를 결성 동인지 ‘초록별’과 ‘악(嶽)’을 10여차례 발간했으며, 소설가 오유권 선생의 지도를 받는 등 매주 합평회를 갖고 교내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또한 지역신문 학생문예란에 작품을 게재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습작에 매달리기도 했다.
고향의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그는 당시의 3.15 부정선거와 4.19, 5.16이라는 국가적인 격랑에 공직자의 무력감을 앓으며 문학지의 투고와 신춘문예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첫 신춘문예에 시를 투고해 탈락의 좌절을 맛본다. 그후 그는 월간지 아동문학지 신인추천제도에 응모하기 위해 시골도서관에 소장된 동시집을 독파하면서 신천지나 다름없는, 형언하기 어려운, 일종의 희열감에 빠지게 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이 동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 쓴 작품 ‘학교종’이 아동문학 3집에 입상돼 실렸다. 그로서는 최초의 발표작이기도 하다.
그해 62년 겨울을 맞으면서 그는 업보처럼 신춘문예병을 앓기 시작, 시골아이들의 풋풋한 생활상을 그린 ‘시골학교 난롯가에는’을 조선일보에 투고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그후 그는 40여년을 한결같이 동시 창작이라는 한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동안 발간한 저서만도 30여권에 이른다. 첫 동시집 ‘산골물’에서부터 ‘가을엽서’ ‘바람 하늘 산’ ‘이슬’ ‘별’ ‘빗방울은 즐겁다’ ‘바람과 빈 병‘ ’도토리 모자‘ ’고운말 동시집‘ 등과 동화집 ’당나귀알‘ ’토끼전‘ ’은혜 갚은 학‘ ’성냥팔이 소녀‘ 등을 발간했으며, 말하는 그림책으로 ’땅과 바다‘ ’해와 달과 별‘ ’불은 심술꾸러기‘ 등을 냈다.
또한 그가 수상한 문학상도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61년 전남아동문학작가상을 시작으로 계몽사아동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전라남도문화상, 대한민국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박홍근아동문학상, 이주홍아동문학상, 가톨릭아동문학상, 방정환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글 ; 이재창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