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 준비과정]----김서택 목사가 제시한 방법에 따라서 작성함
1. 본문 선택
2. 저자의 의도 파악
3. 본문에 대한 구상
4. 본문의 구조파악
5. 본문에 대한 주해-목회적 주해
6. 설교의 대지와 소지 및 핵심적인 논리의 구성
7. 설교의 서문 작성 및 설교 작성
8. 설교의 마무리 및 완성
실재적인 강해설교의 준비과정 ↣ 본문해석 ↣ 문맥 관찰을 통한 저자의 의도 파악 ↣ 저자의 메시지 복원 ↣ 목회적 주석 ↣ 설교작성
[본문 선택]
창세기12:1~9
[설교의 핵심주제: 저자의 의도]
*하나님께서 믿음의 가문을 세우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이방 신들의 관습으로 굳어진 곳에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곳으로 이주하게 하 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약속하셨다. 이 복은 아브라함의 이주의 이유와 목적을 담고 있다.
[본문에 대한 구상]
하나님이 갈급함으로 아브람을 찾아 오셔서 고향과 아비 친척집을 떠나라는 명령과 약속을 하셨다. 이 명령은 믿음의 가문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불신신앙의 혼탁한 사회에서 믿음의 가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불신 사회의 어두운 면의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밝고 참된 신앙의 세계로 이사가 필요하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복이라고 선언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진실로 복됨을 알아야 한다.
[본문 구조파악]
1. 하나님의 명령
1절--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이사하라
2. 하나님의 약속
2~3절--하나님의 약속 4지-(1)민족을 이루고,(2)번성,(3)이름을 창대(4)복의 근원.
3. 아브라함의 순종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갔고"롯과 함께 '75세'의 나이에ㅡ-(힘든 순종)
5절 -모든 가족들,친척,집안 사람들과 재물을 가지고 갔다--------------(결단의 순종)
6절-중간에서 돌아서지 않고 목적지에 분명하게 도착 했다-------------(완성의 순종)
4.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다
7~8절 세겜과 벧엘에서 제단을 쌓음----------------------(참된 신앙생활의 시작)
5. 남방으로 옮겨감
9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정착지를 찾아서)
[본문해석: 목회적 주석]
본문의 배경: 이 본문은 B.C. 2,165년 경이므로 아브라함의 가나안으로 이주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174년 경이다. 아브라함의 활동 무대는 갈데아 우르에서 에굽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땅이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후손인 셈족의 가문이었다. 당시에 많은 족속이 있었고 아브람의 고향 갈데아 우르는 수메르인들이 도시 국가를 건설하고 문자를 사용하는 문명인들로서 달신을 주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계는 노아의 자손으로서 믿음의 가계였던 셈의 후예였지만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달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집안이었다.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하나님께서 한 인간인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이때 아브람은 갈데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 오래 머물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데반의 설교에는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란에 정착 했다. 하나님이 다시 그를 부른 것은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였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인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갈급함 때문입니다. 보통은 다른 종교를 보면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신을 찾아가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필요 때문에 사람을 찾아오는 장면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왔고(출3:4), 이사야를 찾아오셨습니다(사6:1~5).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인간을 찾아 오셨습니다(마1:25).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마4:19). 사울을 찾아 오셨습니다(행9:4).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1절) 구체적으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름을 부르며 구체적으로 불렀습니다. 이름에는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좋은 뜻을 담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아브람의 이름에는 아브람은(이름도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을 하게 했습니다. 아브 (아버지) + 람(높은) = 아브람 '높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세속적으로 성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세상의 부모들은 세상적인 성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작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을 하게 했습니다. 아브(아버지) +라함(무리) = 아브라함 (많은 무리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뜻은 하나님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창22:17)라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1절 하반절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과거에는 씨족별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씨족들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의 모든 삶의 영역을 공유했습니다. 이것을 거역하는 것은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을 당했습니다. 씨족이 공유하는 종교 외에 다른 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대대로 전승되어온 종교를 믿어야 했습니다. 기독교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그렇습니다. 불교가 신라에 전래 될 때 이차돈의 죽음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유교가 강할 때 한국에 전파된 카톨릭 신자들은 많은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개신교도 초기에 전파 될 때는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에서 있었다면 고향 사람들이 섬기는 신, 집안사람들이 섬기는 신, 가정에서 섬기는 신을 거역하고 혼자서 따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 자손이 번성하기 전에 자손이 멸절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면 될 것 아닙니까? 이런 질문이 옳은 것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브람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믿음의 집안을 세우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사는 종족들도 종교가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종교문제로 아브라함과 직접적으로 부딪칠 염려는 없었습니다. 히11장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아브람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가고 있는 곳을 알았으나 그러나 특별히 자기의 거주지는 어딘지 몰랐다(원용국,창세기 주석)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 라"
하나님의 명령 다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아브라함의 혈통으로는 이스마엘(12방백),이삭(아곱의 12아들과 12지파),그두라(향, 향기)-아들 6명. 믿음의 조상(히11:10),그리스도의 조상(마1:1),신자들의 조상(마8:11: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약속을 따라 난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갈4:31).이 약속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창22:17).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약2:23),여호와의 종(시105:5,6),열국의 아비(창17:4,5), 그리스도의 조상(마1:1)이다,신자들(마8:11,갈4:31).
"너는 복이 될지라"--복의 근원----메시야 탄생---만복의 근원 하나님(찬송가 1장)--이 복은 아브라함의 믿음(복음: 예수 그리스도)을 통해서 온다(행3:22,25~26).갈3:9 복; 행7:2하나님의 현현
3절--하나님의 약속-"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내가(하나님이)-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 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붙들고 사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위해 일하신다. 다른 사람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명 된다. 인관 관계에서도 유사한 경우가 있다. 친분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자잘못을 떠나서 도와준다.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는 그런 면이 있다. 하나님은우리가 잘 할 때도 도와 주지만 잘못을 할 때에도 도와준다. 척 스미스 목사의 강해 설교에서는 역사상 유대인, 즉 아브람의 후손을 핍박하는 민족은 얼마 못가서 쇠망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을 핍박하거나 대량 학살을 한 스페인, 그리이스, 로마, 독일 등의 예를 듬. 미국이 축복을 받은 것은 미국이 유대인들의 피난처이기 때문으로 설명(사적인 견해를 전제) 이런 견해는 조심할 부분도 있다. 이 부분은 유대주의를 옹호하는 인상도 준다. 아마 유대인이 많이 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적 상황은 다를 것이다. 아브라함으로 인한 축복은 그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족속에게 전파 됩니다.
4절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명령과 복에 대한 약속을 신뢰함--무조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갔다 - 여기서는 나이를 강조하고 있다.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혼자 간 것이 아니고 가족 친척(조카 롯). 이 함께 갔다. 이번에도 그는 완전히 순종치 않고 롯을 데리고 갑니다. 그의 친척을 떠나라 하셨으나 아마 아브람은 그의 조카 롯을 양자로 삼아 데리고 가는 모양입니다(척 스미스 목사).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세였더라. 사래는 65세였다.-고향을 떠날 나이가 많았다-이사할 나이도 많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도 넘었다. 예) 지금까지 확인된 세계 최 고령의 임신은 스페인 출신의 안달루시아라는 여인으로 체외 수정을 통해서 쌍둥이 딸을 낳았다. 그리고 중국의 주위메이라는 여성이 78세로 임신을 했다. 그녀는8명의 자녀를 출산 했다.
5절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4~5절은 이사를 떠날 때의 상태를 보여준다. 5절은 일행과 규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이사는 많은 사람들 과 가축과 재물을 가지고 갔다.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어감이 멀고 힘들고 위험한 길을 오래 여행해서 무
사히 도착을 했다. 오늘 날의 예) 남아 공화국-한국까지 거리-아랍 에밀레이트 에어라인--요하네스버그-두바이=9시간 듀바이-한국까지 9시간=공중에 떠 있는 시간만 18시간 걸렸다. 동물이 교통 수단이었던 과거에는 자동차 비행기가 주요 교통 수단이 오늘 날은 다르다. 그래도 먼 길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한국에서 몇Km 떨어져 있나
6절 "가나안 땅에 들어서서"-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거주하였더라.
가나안 땅의 정보를 알 수 있 다.
7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르시되-하나님께서 2번째 아브람에게 나타 나셨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주실 땅을 말씀
하셨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그가 그 곳에 제단을 쌓고"-아브라함이 하나 님께 첫 제단을 쌓았다. 이 세상에서 우상을 위한 제단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를 드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미약했다. 그러나 창대하게 되었다. 제단을 쌓은 일이 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이유이다.
8절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벧엘의 의미 하나님의 집-신앙적인 지명이다-야곱도 여기서 제단을 쌓음 벧엘과 베들 레헴-떡집의 차이는 벧엘은 예루살렘 위쪽에 있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아래쪽에 있 다. 이고근처에 4개의 우물이 있었다.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그곳에 서도 옮겨 다녔다-농경사회라기 보다는 유목생활을 했다는 정보를 알 수 있다.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자리를 옮겨 다녀도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그의 삶의 중심이, 그의 가정이 하나님께 예배 생활이 중심 이 되었다.
9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남방-네게브는 문자적으로 마른땅 지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남부 이차적으로 남쪽-복쪽은 네겝방향. 북쪽은 다른 부족들이 자리를 잡았다. 남쪽은 애굽이있다. 바벨로니아 문명과 에굽의 문명 사이에 히브리인의 문명이 자리 잡았다. 그렇게 큰 세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버라함에게 한 약속이 이루어 졌다. 한국 사람들이 남아 공화국에 와서처음에는 정착지를 정하지 못하고 레소토에 정착 했다가 살 곳을 찾아서 다른 곳으로 이주함.
[설교의 서문 작성 및 설교 작성 / [설교의 마무리 및 완성]]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12:1~9 (강해설교) 20091206(한소망교회 주일 오후)
http://www.myhansomang.net(동영상)
70년대 한국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를 많이 했습니다. 울산에 현대 조선과 현대 자동차가 들어서고 한참 계발이 될 때 저희 고향에서도 몇 가정이 이사를 했습니다. 저희 가정도 집과 농토와 가축을 모두 팔아서 울산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좀 더 잘 살아 보려는 꿈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이주를 했습니다. 오늘 날에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서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이주를 합니다.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기도 하고 외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 또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해외로 나갑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가족과 친지들이 있는 고향이나 고국을 떠나서 외국으로 이주를 하는 데는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급함 때문에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람을 갈데아 우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람이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종교들을 보면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신을 찾아가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필요 때문에 사람을 찾아오는 장면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왔고(출3:4),이사야를 찾아오셨습니다(사6:1~5).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인간을 찾아 오셨습니다(마1:25).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 오셨고(마4:19), 사울을 찾아 오셨습니다(행9:4).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택함 받은사람을 찾으십니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서 살던 사람들을 홍수로 모두 멸절을 시키고 방주를 탄 노아의 가족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홍수로 심판한 목적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한 동안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던 사람들은 또 다시 힘을 모아서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을 대적 하려고 해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하게 해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노아의 후손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갈급해서 아브람을 찾아 왔습니다. 사실은 아브람이 영적으로 깨어 있었다면 먼저 갈급해서 하나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며 영적으로 죽은 아브람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시켜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 위해서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1. 하나님의 명령(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은 '높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세속적으로 성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보통 세상의 부모들은 세상적인 성공을 바라는 의미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중에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개명을 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의미는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창22:17)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땅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정체성을 보여 줍니다. 데라는 아브람이 세상에서 높은 존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절 하반 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왜 고향의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명했을까요? 과거에는 씨족 별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씨족들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의 모든 삶의 영역을 공유했습니다. 이것을 거역하는 것은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을 당했습니다. 씨족이 공유하는 종교 외에 다른 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대대로 전승되어 온 종교를 믿어야 했습니다. 기독교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그렇습니다. 불교가 신라에 전래 될 때도 이차돈의 죽음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유교가 강할 때 한국의 카톨릭 신자들은 많은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개신교도 초기에 복음이 전파 될 때는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에서 있었다면 고향 사람들이 섬기는 신, 집안사람들이 섬기는 신, 가정에서 섬기는 신을 거역하고 혼자서 따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 자손이 번성하기 전에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면 될 것 아닙니까?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옳은 질문인 것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브람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믿음의 집안을 세우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사는 종족들도 종교가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종교문제로 아브라함과 직접적으로 부딪칠 염려는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보여 줄 땅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명령만 하시지 않고 아브람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의 이주에 대한 목적을 분명하게 담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약속(2~3절)
하나님께서는 4가지의 약속을 열거하고 있습니다(2~3절). (1)큰 민족을 이루고, (2)자손이 번성하게 되고, (3)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고 (4)복의 근원입니다. 이 4가지 약속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믿음의 조상의 요건' 입니다.
첫 번째 약속 '큰 민족을 이루는 것'과 두 번째 약속 '자손의 번성'에 대한 약속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으로는 이스마엘의 자손들(12방백), 이삭의 자녀들(아곱의 12아들과 12지파), 그두라(향,향기)의 자녀들(6명) 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여러 민족이 생깁니다(창17:6).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하늘의 별을 보여주고 바닷가의 모래를 보여주며 자손들이 저와 같이 번성케 될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창15:5;22:17). 이 약속의 성취는 신약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성취 됩니다. 신약성경에는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마1:1;눅3). 이것은 단순한 혈통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적인 혈통의 영역까지 포함됨을 의미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세 번째 약속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약2:23),'여호와의 종'(시105:5,6),'열국의 아비'(창17:4,5)입니다. '그리스도의 조상'(마1:1)이며 '신자들의 조상'입니다(마8:11,갈4:31).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친구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라는 이름보다 존귀한 이름은 없습니다.
네 번째 약속은 아브라함은 복의 기준이 됩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됩니다. 찬송가 1장은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세 찬송 성부 성자 성령 아멘".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아브라함은 복의 기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을 평가 할 때 다윗 왕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줄을 세울 때 한 학생을 기준으로 세웁니다. 기준하면 거기에 맞추어서 줄을 섭니다. 아브라함은 또한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붙들고 사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위해 일하십니다. 권력형 비리는 부정적인 면에서 힘 있는 사람을 의탁하는 것이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한 사람들은 더불어서 복을 받았습니다. 성도의 힘의 배경은 하나님입니다. 성도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3. 아브라함의 순종(4~6절)
아브라함의 순종은 '힘든 순종'이었고 '결단의 순종'이었고 '완성의 순종'이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75세' 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고향을 떠났던 사람도 돌아올 나이입니다. 모험을 할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힘들지만 순종해서 고향을 떠났습니다(4절). 가족들과, 친척, 집안의 종들과 소유물을 전부 가지고 떠나는 일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는 길을 떠나서 도중에 돌아서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목적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보게 됩니다.
4.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다(7~8절)
아브라라함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세겜과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주실 땅을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하나님께 첫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상을 섬기기 위한 제단이 아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곳으로 이사를 하게 한 이유입니다. 그의 삶의 중심이, 그의 가정의 중심이 하나님께 예배 생활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결 론
오늘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해야 합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도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며 불신앙에 빠져서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갈급하셔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2,000년 전에도 하나님이 갈급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갈급하셔서 교회를 세워서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와 불신앙의 세계를 떠나서 믿음의 세계로 이주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들에게 이 일에 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신 하나님은 또한 성도들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십니다.
저는 요즈음은 강해 설교를 더 정교하게 다듬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10년 정도 다양한 설교 방법을 읽혔고 이제 강해설교를 승부구로 구사하기 위해서 입니다. 한국에서 강해 설교의 대가는 잘 아는 것처럼 이동원 목사와 김서택 목사입니다. 제 생각에는 김서택 목사가 강해 설교의 이론이나 정교함에서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의 방법론으로 강해설교를 준비 합니다. 많은 설교책을 읽는다고 설교를 잘 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2권 정도의 책을 가지고 다양한 설교형식으로 만들어보는 습작이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서택 목사의 강해 설교의 기초라는 책을 마스트하고 그 방법으로 습작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습작을 하다보면 강해 설교가 눈에 드러오게 됩니다. 습작시에는 대가의 방법을 그대로 습작을 해서 익히는 것이 지름 길입니다.
또 다른 책은 주승준 교수의 성경적 설교의 원리와 실제 입니다. 이 책은 현대 설교의 다양한 방법론에 따라서 소개하며 예문을 싣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읽히면 다양한 설교형태를 적절하게 변화시키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단독 목회를 하면서 설교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그것을 보완 하고자 계속 노력해 왔습니다. 잘 해서가 아니라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꿈 가운데 한 가지는 다양한 설교형식을 자유 자제로 사용하는 설교의 달인이 되는 것입니다. 정상급 투수가 강속구를 뿌리며 적절하게 변화구로 타자를 압도 하듯이 청중을 압도하는 정상급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 생명 다할 때 까지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력 합시다. 정상급 설교자가 되기 위하려.....
첫댓글 끊임없이 노력하는 영호목사님이 아름다워 보여요 우리 모두가 강해설교의 대가가 되는 그날까지 전진합시다
탁월한 성품을 가지신 변목사님의 목회에 계속 전진이 있기를 빕니다.